DMZ, 비어 있음과 채워짐에 관하여 | 윤여일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1월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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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커먼즈 포럼 3 <국가를 커머닝하기>

DMZ, 비어 있음과 채워짐에 관하여

윤여일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첫날부터 계셨다면 사흘 밤낮을 보내고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거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22번째 입장 윤여일입니다.

저는 DMZ를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DMZ에 예외적 가치가 있다는 건 알고 있고, DMZ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DMZ의 지금 생태계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커먼즈 연구자로서 DMZ를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국제적 커먼즈로서 상정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DMZ에 인류사적 의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백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DMZ 벡터

DMZ는 대체로 군사분계선 위아래 2km 내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다만 민통선 지역이나 한강 하구 등도 DMZ 내의 생태 조건과 유사해 광의의 DMZ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DMZ는 국제법, 국제협약, 국내법 그리고 남북관계 관련 법률 등에 의해 다양한 의미가 부여됩니다. 남북관계 관련 법률과 남북합의서는 경제협력에 주안점을 둡니다. 남북 간 경협을 위해 교통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국제법상 정전 협정은 당연히 비분쟁을 목적으로 합니다. 한편, 한국의 국내법 중에서는 자연환경보전법이 DMZ와 관련되는데, 이에 따르면 특례를 적용해 DMZ 안에서 통일정책 관련 사업을 벌일 수 있습니다. DMZ의 법적 보호 장치로는 통일 후 2년 동안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환경부의 자연유보지역이 유일합니다. 이렇듯 DMZ를 둘러싼 여러 가치의 힘 관계망을 DMZ 벡터라고 불러 보겠습니다. 이 안에는 경제도 있고, 평화와 생태도 있습니다. 저는 이 중 생태를 중시하고자 합니다.

DMZ 벡터라는 명명은 제주의 역사적 경험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제주는 세계 평화의 섬입니다. 수사적인 말이 아니라 2005년 법적으로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금 미군함이 드나들고, 우주산업을 명목으로 한 군수산업이 착착 진행 중입니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에 대한 구상이 나온 건 냉전체제가 해체된 1990년대 초반입니다. 당시에는 세계 평화의 섬을 둘러싼 여러 노선이 있었습니다. 주요하게는 네 가지인데요, 비무장지대, 인권생태 모델, 국제자유지대, 국제교류 거점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관광지형 국제자유지대 방향으로 향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죠. 매해 개최되는 ‘제주 포럼’이라는, 전직 대통령들을 포함해 국제 명사들을 잔뜩 초청하고 주로 국제정치학자들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고려하면 국제교류거점의 노선도 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대신 인권생태 쪽으로 가는 방향, 비무장 쪽으로 가는 방향은 탈각되고 말았습니다.

DMZ에 대한 적극적, 실질적 개입은 한참 나중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DMZ를 둘러싼 노선 간의 경합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최근 북한은 개헌을 해서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했으니, DMZ에서 공동의 사업을 벌이는 건 굉장히 요원한 일이죠. 그럼에도 제주와는 다른 경로로 나아갈 수 있도록 DMZ 벡터라고 포착해 의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DMZ의 지금 시점을 제주 세계 평화의 섬 구상의 1990년대 초기 국면과 겹쳐보려는 것입니다. 앞으로 30년 뒤에 DMZ는 어떤 모습일까요.

DMZ의 공동부

평화, 경제, 생태 등의 힘이 DMZ에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엮여 관광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오고, 특구에 대한 상상도 진행 중입니다. 그 가운데 평화생태지대로 가자는 제안이 역대 정부에서 꾸준히 나왔습니다. ‘DMZ 자연공원화’(김영삼), ‘생물권보전지역 지정’(김대중), ‘생태평화공원’(노무현), ‘생물권보전지역’(이명박), ‘세계생태평화공원’(박근혜), ‘생태관광, 녹화사업’(문재인) 등 생태와 평화라는 DMZ의 이중적 가치를 결합하는 그린데탕트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제안은 제안으로 그쳤습니다. 북한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에 불과했고, 유엔사와 미국의 협력을 얻어내기도 어려웠고, 인근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도 높지 않았습니다. DMZ의 생태평화 노선은 실효성이 부족했습니다.

여기서 커먼즈의 시각을 도입하겠습니다. DMZ를 일종의 커먼즈로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커먼즈(commons)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인접어들을 함께 사고하는 게 요긴합니다. 커뮤니티(community), 커머너(commoner), 커머닝(commoning), 공동자원(common resourecs), 공동부(common-wealth), 공동규칙(common rules), 공동감각(common sense), 공동 필요(common needs) 등이 있겠죠. 공동자원이라면, 먼저 동서 248km를 가로지르는 물리적 공간, 그 안의 생태계, 그 아래의 광물 등이 있겠죠. 실체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DMZ의 커뮤니티는 접경지역 주민, 남북한 당국, 나아가 국제사회까지를 고려해 볼 수는 있겠지만 전혀 튼튼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DMZ에 관한 공동필요가 불분명하고 공동감각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접어 중 핵심은 역시 공동부입니다.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따라 무엇을 자원으로 보고, 어떠한 공동규칙이 필요하고, 누가 주요 행위자, 즉 커머너가 되어야 하는지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달라지겠죠. DMZ의 공동부로 거론되는 것은 대체로 국제평화지대, 한반도 지속가능성, 평화협력지구, 세계생태평화공원, 생태관광지구, 유네스코세계유산 등인데, 이처럼 DMZ 벡터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평화, 경제, 생태 중 어느 지향이냐에 따라 DMZ는 다른 양상의 커먼즈가 될 테며, 저 인접어들의 구체적인 내용도 바뀔 것입니다.

탁월한 가치와 예외적 가치

그 중 생태 지향으로 향해보겠습니다. 그 경우 DMZ의 공동부라면 인간과 비인간의 생태적 평화와 지속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을 테고, 방법으로는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이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커뮤니티는 접경 지역 주민이나 남북한을 넘어 인류 차원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죠.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세계유산이란 게 실제로 그렇습니다. 세계유산협약의 전문은 “이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유산을 보호하는 것이 세계의 모든 국민을 위해서 특별한 가치를 갖고”라고 밝히고, 세계유산협약 제4조와 제5조의 조항은 세계유산 관리에 대한 책임이 소유국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도 있다고 천명합니다. 이 경우 세계 유산은 “전 세계적 또는 인류적 견지에서 보편적인 중요성이 인정되며, 이 중 특히 뛰어난 가치를 지녀 보호하고 보존하여 후대에 전승할 필요가 있어야 합니다.

DMZ는 생태적 다양성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DMZ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자는 학술적 접근과 정치적 시도도 실재합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DMZ 일원은 국토 면적의 1.6%에 불과하지만, 남한 전체 생물의 24.7%가 분포하고 멸종위기종은 44%에 달합니다. DMZ에는 약 15만 개가 넘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하는데, 20세기 냉전과 한반도 분단에 따른 의도치 않은 사회적 결과로써 예외적 생태가 보존된 것입니다. DMZ의 생태적 가치는 탁월하고, 예외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두 가치를 구분하고자 합니다. DMZ의 생태적 가치는 탁월하지만, 시야를 한반도 바깥으로 넓힌다면 열대우림처럼 탁월한 가치를 지닌 땅은 많습니다. DMZ의 고유한 가치는 탁월한 가치 이상으로 예외적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생태적 다양성은 인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며, 전쟁과 분단 상태로 가능했습니다. 원전 폭발로 인간의 접근이 차단된 체르노빌의 생태계도 이런 예외성을 지닙니다. 예외적 가치는 당연히 무척 드뭅니다. 만약 DMZ를 보존한다면 그 탁월한 가치를 보존해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예외적 가치를 의식하고, 의식적으로 보존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DMZ에 관한 기존 구상들은 대체로 그 예외적 가치를 훼손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어 있음과 채워짐

DMZ는 역설적 평화와 함께 예외적 생태가 유지되는 땅입니다. 카이스트 인류세 연구센터는 이 예외적 가치에 주목해 인류세 시각에서 DMZ를 조명했습니다. DMZ 구간 중 철원 일대는 지난 백 년간 식민화, 농업화, 전쟁, 산업화, 냉전 등 인간 개입에 의한 환경 변화를 겪은 동아시아 특유의 인류세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DMZ 내부는 70여 년간 민간인의 접근이 차단되며 평야의 논은 습지로, 마을은 숲으로 바뀌었습니다.

E.O. 윌슨의 ‘지구의 절반’ 아이디어라든가,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도 떠올려봄 직합니다. 인간의 거주 구역을 지구 절반으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비인간 존재들에게 내어줘야 한다든가, 아니면 “인간 없는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상상들. 상상에 불과하지만, 생태적 전환 모색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근데 DMZ는 실제로 그런 땅입니다. 인간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손대지 못했으니까 마치 비어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비어 있으니까 자꾸 무언가로 채우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DMZ 벡터란 것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를 둘러싼 각축입니다. 무언가로 채우려고 할 때 DMZ는 잠재적 개발 대상입니다. 그런데 개발해서 호텔이든 컨벤션센터든 공단이든 집어넣는다면, DMZ의 탁월한 가치도 훼손되겠지만 예외적 가치는 잃고 말 것입니다. 그 예외적 가치를 보존해야 DMZ를 인류를 위한 커먼즈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DMZ는 역설적 평화와 함께 예외적 생태가 유지되는 땅입니다. 카이스트 인류세 연구센터는 이 예외적 가치에 주목해 인류세 시각에서 DMZ를 조명했습니다. DMZ 구간 중 철원 일대는 지난 백 년간 식민화, 농업화, 전쟁, 산업화, 냉전 등 인간 개입에 의한 환경 변화를 겪은 동아시아 특유의 인류세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DMZ 내부는 70여 년간 민간인의 접근이 차단되며 평야의 논은 습지로, 마을은 숲으로 바뀌었습니다.

E.O. 윌슨의 ‘지구의 절반’ 아이디어라든가,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도 떠올려봄 직합니다. 인간의 거주 구역을 지구 절반으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비인간 존재들에게 내어줘야 한다든가, 아니면 “인간 없는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상상들. 상상에 불과하지만, 생태적 전환 모색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근데 DMZ는 실제로 그런 땅입니다. 인간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손대지 못했으니까 마치 비어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비어 있으니까 자꾸 무언가로 채우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DMZ 벡터란 것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를 둘러싼 각축입니다. 무언가로 채우려고 할 때 DMZ는 잠재적 개발 대상입니다. 그런데 개발해서 호텔이든 컨벤션센터든 공단이든 집어넣는다면, DMZ의 탁월한 가치도 훼손되겠지만 예외적 가치는 잃고 말 것입니다. 그 예외적 가치를 보존해야 DMZ를 인류를 위한 커먼즈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공백의 커먼즈, 무위의 커머닝

DMZ가 인류사적 가치를 갖는다고 할 때, 그 가치란 무엇일까요? 되도록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아야 얻을 수 있는 예외적 가치란 무엇일까요? 바로 공백입니다. 공백이야말로 우리의 생태만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도 핵심적인 방편입니다. 공백은 DMZ가 보여주듯 생물 다양성이 높은 서식지이며, 완충의 지대입니다. DMZ의 커먼즈적 함의가 공백이라면, 이를 가꾸기 위한 실천, 즉 커머닝은 무엇일까요? 무위일 것입니다. 인위적 활동이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무위’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평화로 단장되든 생태로 치장되든 결국에는 개발주의 노선에 따라 훼손될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무위를 위한 많은 노력과 고도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DMZ의 공백 상태를 지키기 위한 국제적인 공동감각과 공동규칙도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미 DMZ 안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한다면 관리위원회가 얼마나 다층적으로 짜여야 하는지에 관한 연구들이 나와 있습니다. 관리위원회는 국제협약사항과 남북 간의 협약사항을 논의하고 결정할 국제위원회와 국내법상 공원을 유지‧관리하는 사항을 결정할 국내위원회로 구분할 필요가 있으며, 국제위원회에는 국제군사기구(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령부), 남북공동위원회, 정부 기관(국가안전보장회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국무총리실 등) 및 국내외 비정부민간단체로 구성되고, 국내위원회에는 중앙정부(통일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안전행정부, 국방부, 해양수산부, 문화관광부, 농림부 등 관계기관의 장), 지방정부(강원도, 경기도의 DMZ 관련 부서 등)와 함께 평화‧생태 관련 비정부 민간단체의 참가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DMZ의 공백 상태를 보존하기 위한, 무위의 커머닝을 위한 제도적 틀 또한 복합적이고 다층적일 것입니다. DMZ의 공백 상태가 지니는 국제적 커먼즈의 의의가 커질수록 그 틀도 보다 넓게 짜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DMZ가 공백으로 남는다면 그 안에서는 인위적 사업이 제약되겠지만, 생태적 전환을 위한 지구적 상징으로서 그 바깥을 향해 예외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글 | 윤여일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김세환,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윤형준,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1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