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집은 몇 종류가 되나요? | 새로운 사회를 여는 주택 권지웅 이사

1월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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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를 여는 주택 권지웅 이사

현실에서 집은 구하는 상황이 되면 같은 집이라 여겨지는 곳은 거의 없다. 같은 평수, 같은 단지의 아파트도 층이 다르면 다른 집처럼 여겨지고, 무엇보다 가격과 입주시기가 천차만별이니 같은 집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자. 여러 종류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교통의 편리, 적절한 평수, 쾌적한 환경 그리고 적절한 가격에 대한 기본적인 요구를 같게 충족시키는 집에서 다시 종류를 따져보면, 주택 간에 특별히 다른 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건축주 개인의 특별한 요구에 충실하게 지은 단독주택을 제외하곤 실상 주택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의아하기도 하다. 사람의 얼굴이 제각각 다르듯 사람의 삶도 다르고, 따라서 삶을 담는 주택에 대한 요구도 다른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국사회에는 2,000만 채나 되는 집이 있다. 다가구, 다세대, 근린생활 시설 등의 주택법상의 주택 종류와 여러 상표의 건설사 등을 생각하면, 주택이 다양한 것 같지만 체감상 뭔가 비슷비슷하다. 건축 시점의 유행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주택을 공급하는 원리’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요구로 지어진 주택을 제외하고 한국 사회에서 주택을 공급해내는 동기는 크게 두 가지이다. 공공 공급원리와 민간 공급원리이다. 

공공의 공급원리는 호당 지원금이 정해진 조건에서 시세 대비 정해진 임대료와 기준 주택 면적을 넘지 않게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민간 공급 원리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판매가격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공급을 말한다. 임대주택인가 분양주택인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큰 틀은 이 두 가지 공급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원룸촌의 경우도 최근 새로 지어지는 주택을 보면 외향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기능은 비슷하다. 한 호의 주택에 부엌, 화장실은 가능한 한 넣고 전체 면적은 되도록 작게라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공공 주택의 경우도 정부의 지침이 바뀌지 않으면, 크게 다른 주택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조금 거친 비유이지만 한국의 주택을 나무와 숲에 비유하자면 두 종류의 나무만 있는 숲과 같다. 조금씩 외향은 다를지 몰라도 사실은 같은 두 종류의 나무로 구성된 숲이다.

한 번 지어지면 60년에서 100년은 쓰는 건축물을 개별 욕구에만 맞추어 모두 짓는다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주택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다양한 우리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집이 만들어지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나는 그것을 ‘사회주택’이라는 공공과도 민간과도 구분되는 제3의 작동원리를 만드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택은 개념적으로 공공의 자원과 민간의 역량을 합쳐서 만든 주택을 말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가치, 조건, 특수한 필요를 만족시키려는 주택을 의미한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다양한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주택의 경우 공공만큼 자원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세입자들의 자원을 모아서 임대료를 낮추고 세입자 간의 관계망을 중시하는 주택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입주자 간 관계성과 부담 가능한 임대료를 중시한다면 그렇게 지어진 주택은 종전의 주택과는 모양이 다를 것이다. 또, 어떤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집을 크게 고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주택이라면, 그 주택의 모양은 어떨까? 아마도 이전에 한국사회가 만들어온 주택이랑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이 두 가지 예는 실제로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과 ‘유니버셜디자인협동조합’이 공급한 주택 사례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요구가 얼마나 많을까? 1인 가구가 편히 모여 살 수 있는 주택, 임시로 거주하기 좋은 주택, 여성이 살기 좋은 주택, 고령층이 살기 좋은 주택 등등. 이 같은 특정 목적이나 가치를 가진 주택을 공급하는 주체(사업체)들이 있다면, 분명 그 방향으로 주택이 발전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주택의 다양성이 늘어나게 된다. 시민 입장에선 그만큼 선택 가능한 주택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이다.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주체들이 생겨나면, 단순히 주택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주택의 질이 더 좋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여러 사회주택 주체들이 주택과 관련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면, 이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주택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실패든 성공이든 실험이 잦으면 주택과 관련한 건축, 관리, 부대시설과 관련한 역량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회주택이라고 하는 새로운 종자 사업에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이 새로운 종자(사회주택)는 분명 누군가에게 꼭 맞는 주택(선택지가 늘어나고)으로 자라나고, 나아가 전체 숲의 환경(주거 환경)을 더 좋게 만들 것이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홍지수, 홍다솜, 송지우, 심여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11월 30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