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커먼즈 포럼 1 <돌봄으로의 전환에서 돌봄을 위한 전환으로>
세션 2 – 도시커먼즈와 돌봄: 공간, 먹거리, 자원순환
대안먹거리 운동의 한계와 새로운 실험
: 커먼즈로서 먹거리 돌봄
김자경/박서현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밥은 먹었니?”라는 말에 담긴 것들
저는 대안 먹거리 운동의 한계, 그리고 새로운 실험들을 통해 먹거리가 커먼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관심이 있습니다. 근데 말이죠, 우리 “밥은 먹었니?”라는 말 참 자주 하잖아요. 인사처럼. 근데 그 말이 진짜 밥 먹었냐는 말이기도 하고, 직장 다니냐는 말이기도 하고, 말랐네, 살 좀 찌워라 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런 말들 안에 돌봄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는 다 대형 마트 가서 밥 먹을 걸 사 먹고 있죠. 그래서 이런 세상을 ‘먹거리 체계’, 더 크게는 ‘세계 식량 체계’라고 합니다. 이 시스템 안에서 대표적인 작물이 뭐냐면, 옥수수예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옥수수였던 거 기억나시죠? 옥수수가 진짜 상징이에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농산물 중 하나입니다. 커피, 설탕, 옥수수요. 밀이나 쌀보다도요.
그러니까 결국, 먹을거리입니다. 저는 그래서 ‘먹거리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게 요즘 제 고민이에요. 왜냐면 지금의 식량 체계는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요. 이와 관련된 연구는 거의 2010년쯤 멈춘 것 같아요. 너무 일상이 위기라서요. 물론 넷플릭스에는 여전히 다큐멘터리가 많죠. 어쨌든, 우리가 먹거리 체계라고 하면 생산에서 가공, 유통, 소비까지 일련의 과정인데, 이걸 넘어서서 우리가 대안을 어떻게 꾸릴 수 있을까, 그게 로컬푸드 운동이었고요.
제가 한살림 제주 부이사장이고, ‘밥상살림’이라는 로컬푸드 플랫폼도 함께 했습니다. 그 이름도 제가 제안했어요. ‘담’이라고, 담 넘는다는 뜻으로. 그래서 쌀 8kg 받았고요. 하하. 근데 진짜 어려웠어요. 1980년대 농약 피해로 농민들이 죽어가면서 유기농 운동이 시작됐고, 1997년에 친환경농산물법이 생겼는데, 이게 또 농민들을 옭아매는 제도가 되어버린 거예요. 옆밭에서 농약 한 번 날아오면 인증이 취소돼요. 또 다른 농민들이 죽어나가는 거죠. 학교급식 운동도 마찬가지였어요. 전국으로 퍼졌고, 급식엔 유기농산물이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조리 종사자들이 너무 힘들어요. 락스로 세척하고, 아이들이 먹기 5분 전까지 온도 체크하고, 다 이유가 있는 과정이죠. 아이들을 먹이기 위한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급식 종사자들한테는 우리가 돌봄을 주지 않았어요.
누가 누구를 돌보는가: 먹거리 커먼즈의 현장들
그게 저한테 되게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로컬푸드, 푸드 운동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노동자들, 농민들—돌보지 못했다는 거죠. 거기서 ‘돌봄’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또 하나가 있어요. 아이들, 특히 결식 아동 이야기인데요. 예전에는 급식카드가 ‘티’가 났대요. 그거 들고 가면 바로 “아, 이 친구는 어려운 아이구나” 하는 게 보였던 거죠. 근데 GS랑 협약 맺고 나서야 일반 카드처럼 생긴 IC 카드로 바뀌었대요. 10년 넘게 걸렸대요. 2021년에요.
그 뒤에 ‘선한 영향력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해요. 급식카드만 보여주면 밥을 내주는 가게들이죠. 근데 이런 시스템이 다 제도로만 설명되진 않아요. 예를 들면, 일본의 ‘어린이 식당’이라는 게 있어요. 이게 뭐냐면, 결식 아동을 도와주자고 시작한 게 아니라, 동네를 돌아보니까 밥 못 먹는 애들이 있는 거예요. 부모는 있지만 퇴근이 늦어서 혼자 밥 못 챙겨 먹는 아이들. 그러면 가게에서 직원식 만들면서 애 한 명 더 먹이는 감각으로 시작한 거예요. 그게 지금 9,000군데 넘게 생겼습니다. 가격도 100엔, 300엔 정도. 누구나 낼 수 있는 금액이니까 낙인 효과도 없고요. 공간도 가게 한 구석, 종교시설, 주민센터 조리실 등 다양해요.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숙제도 같이 하고, 동네 어르신들이랑 얘기도 하고요. 완전히 동네 사랑방이자 돌봄의 공간이죠.
한국에서도 있어요. 전주에 있는 ‘청년식당’이 그런 건데, 학교 밖 청소년들이 식당을 운영하고, 도시락을 만들어서 열 가족에게 배달을 해요. 여기서 재밌는 건, 원래는 돌봄을 받던 주체였던 청년들이 이제 돌봄을 주는 쪽으로 전환되는 거예요. 어르신들 밥을 해드리고요. 또 직장인, 유학생, 다문화 가정, 은둔 청년 등, 생각보다 ‘밥 못 챙겨 먹는 사람들’이 많아요. 칼도 없고, 도마도 없고, 가위랑 전자레인지만 있는 집들. 그런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장 봐서 같이 밥해 먹는 거예요. 공유 냉장고도 있어요. 집집마다 냉장고는 하나씩 있지만, 이걸 밖으로 내놓은 거죠. 나눔 냉장고요. 한살림 제주에서도 다섯 개 운영 중인데요, 걱정은 ‘안 가져가면 어떡하지?’였는데, 현실은 ‘기부할 물건이 부족하다’예요. 오히려 기부가 모자라요. 물건 정리하고 닦는 것도 동네 어르신들이 알아서 하세요. 이웃을 돌아보는 돌봄의 실천이 생겨나는 거예요.
커먼즈로서 먹거리, 그리고 돌봄의 네 가지 감각
그래서 저는 이 먹거리 커먼즈라는 걸 정리하면서 네 가지 감각을 정리해봤어요. 첫 번째는 이웃을 돌아보는 감각이에요. “내가 누군가를 챙긴다”는 게 돌봄이 되는 거죠. 두 번째는 돌봄의 주체가 재구성된다는 것이에요. 꼭 취약계층이나 복지사가 아니라, 나도, 이웃도, 누구든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세 번째는 관계망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냥 먹거리를 나눈다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자립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네트워크가 생깁니다. 마지막은 그 공간이 공동체 자산이 된다는 것이에요. 식당이든 냉장고든, 그것들이 그냥 물건이 아니라 관계가 쌓이는 그릇이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요, 돌봄이라는 게 꼭 제도 안에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제도 밖에서 커먼즈를 만들 수 있는 감각이 생긴다는 거예요. 저는 먹거리를 통해 이 감각을 다시 느꼈고, 이웃을 다시 알아보게 되었고, 결국 이 모든 게 먹거리를 커먼즈로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상입니다.
글 | 김자경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