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을 커먼즈로 바꾸는 금융생활 | 지음 공동체은행 빈고 책임활동가

5월 31, 2025
공유하기

춘천 커먼즈 포럼 2 <커먼즈는 국가에 대항하는가 – 재정과 금융을 커먼즈로 보기>

자본을 커먼즈로 바꾸는 금융생활

지음 (공동체은행 빈고 책임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공동체은행 빈고에서 책임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김지음입니다.

저는 이 자리가 춘천 시민분들을 만나서 빈고 같은 거 어렵지 않고, 위험한 것도 아니고, 커먼즈적 활동에 도움이 되는 거다. 이런 점들을 소개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일정이 조정되다보니 어쩌다 전혀 공부를 해보지 않은 국가-조세에 대한 토론 시간에 같이 발표를 하게 됐는데요. 그래서 제 발표는 그냥 빈고가 바라보는 국가와 커먼즈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시고. 깍두기처럼 재밌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체은행 빈고

빈고는 2008년에 시작했으니까 이제 15년쯤 되었어요. 공동체 금융이면 위험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꽤 오래 잘 버티고 있는 겁니다. 주거 공동체 ‘빈집’이라는 곳에서 시작을 했고, 초기에 만들어진 목적은 두 가지 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진짜 없는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모아서 집 하나 유지하고 이런 것들이 저희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되게 유동적이고 불특정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와중에 보증금을 유지해야 공동체 공간을 유지할 수 있다라는 실용적인 목적이  제일 컸습니다. 두번째로, 그러면 같이 살아야 되는데, 같이 살 때 우리가 당연히 자본의 차이가 있거든요. 엄청 부자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전세 보증금 정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월세 보증금 정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게 전혀 없는 사람도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공유지에서 같이 살아가는 건데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다보니 협동조합 금융으로 간 것 같습니다. 현재는 ‘빈집’은 없어졌지만, 빈고는 계속 유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조합원 500명 정도의 자산이 한 6억 정도 되는 작은 금융 조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빈고 핸드북을 가져왔는데요. 필요하신 분들은 나중에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여튼 빈고는 어떻게 보면 은행하고 진짜 유사합니다. 보통 예금자가 은행에 저축하고 대출자는 은행에 대출을 받은 다음 이자를 납부하는 은행 시스템이 있잖아요. 여기서 조금 바꿔보자 한거에요. 우리가 예금자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은행에 저축했던 돈을 탈환해 와서 빈고에 출자를 하고, 대출자가 은행에 납부하는 이자를 탈환해와서 빈고에 공유를 하면 우리가 은행을 운영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올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고, 그 가운데 은행은 원래 자본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이지만 우리는 자본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연대 활동으로 이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드실 수 있는데 실제로 빈고는 그렇게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업에서 쓰는 재무상태표가 아닌 공유상태표를 쓰는데요, 공유자들이이 만든 돈이 이렇게 공유지의 형태로 전환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당연히 재무상태표와 마찬가지로 공유자와 공유지의 크기는 동일하겠죠. 이렇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교환양식론과 사양 교환

국가와 관련해서 이야기 해보면,  가라타니 고진의 교환양식론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이론적인 부분이 얼마나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입장에서는 적절한 답을 제시한다고 보고 이를 활용해서 빈고를 운영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설명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기본적으로는 촘스키가 제시한 국가의 네 가지 형태(평등-불평등, 자유-통제 축을 기준으로 나눈)에서 현대 국가는 국가사회주의, 복지국가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이렇게  3가지로 나타나는데, 가라타니 고진이 이 구조를 받아와서 국가, 자본, 가족/공동체가 각각 구분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자본이 우선하고 그 위에 상부구조 가 있는 이런식으로 설명했다면, 가라타니 고진은 교환양식으로 구분하죠. 그래서 국가는 수탈-재분배 교환이고, 가족 공동체 같은 경우는 선물-답례를 중심으로 하는 교환, 자본은 화폐-상품 교환인데, 이 교환 양식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사회가 구성되고 국가의 형태도 다양하게 변신을 하는거죠. 

그럼 문제는 새로운 교환양식잖아요. 우리도 가본 길이 아니니까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소시에이션이라고 하면서 가라타니 고진이 제안한게 대안화폐 운동입니다. 대안화폐 운동은 자본화 하지 않는 어떤 화폐를 우리가 만들 수 있고, 활용할 수 있으면 전혀 다른 교환이 만들어지면서 세계 공화국이 가능할까 이런 생각으로 전개되는데요. 사실 저는 국가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가라타니 고진의 실험에서 대안화폐가 차지하는 역할, 즉 ‘어떤 교환’을 구체화하길 시도했지만 약간 난파되면서 실패한 부분에 대해서 애매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선물이 고차원적으로 회복되면 이런 거 아니겠냐 이런식으로 얘기를 하지만, 그래서 저게 뭔지 좀 불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저희가 사고 실험을 해본겁니다.

앞선 발표에서도 계속 얘기된 것처럼 국가와 자본의 관계도 되게 복잡해요. 어떻게 보면 하나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분명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공동체 또는 가족 또는 사회로 표현되는) 국가와 자본하고는 다른 것 같은 무언가가 하나 더 있는데, 또 국가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는 것도 사실 분명히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되게 복합적이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교환이라는 것을 분해를 해봤어요. 교환은 어쨌든 두 사람 사이에서 물건이 오고 가는 것이고,  어쨌든 누군가 한 명이 제안을 할 거고, 그에 대해서 어떤 상대방이 반응을 할 텐데, 내가 ‘이걸 줄게’ 했을 때 응답자가 ‘그래’하면 이게 ‘선물’이 될 거고요. 그다음에 ‘내가 가질 거야’ 이렇게 얘기했는데 ‘그래’ 순응하면 그냥 ‘수탈’이 되겠죠. 그런데 반대로 ‘내가 갖겠다’고 했을 때 내가 반발을 하면 ‘경쟁’이 벌어질 거잖아요. 경쟁을 벌여서 ‘나도 뭔가 가질 거야’라고 하게 되면 상품 교환이 되겠죠. 마지막으로 저희는 네 번째 교환이 어떤 교환인가를 상상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구조에서 ‘내가 줄게’ 했는데 상대가 반발하는 거죠. 내가 왜 받아야지? 나도 줄건데? 이런 교환. 그걸 저희가 ‘사양’의 교환이라고 이름을 한번 붙여봤습니다. 약간 애매하시죠? 그렇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구도에 따라서 표현을 해보면 이런 구도가 성립이 될 것 같아요. 국가, 자본, 가족이 있고 그다음에 네 번째 교환이 있는데 서로 ‘사양하는 교환’, 즉 가지려는 사람이 없고 계속 서로 주려고 하는 경쟁(니가 가져야지! 아니 너가 가져야지!) 이게 술집에서 보통 많이 벌어지는 이런 일인데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뭔가 계속 남는 게 하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자본, 국가, 가족은 분명히 다른 교환 논리에 기반해 있지만 복합적으로 연결되어서 서로 견제하면서도 뭔가 서로 약점을 보완해 주는 역할들을 하기 때문에 자본의 문제를 국가가 해소하고, 국가의 문제는 가족이 해소하고, 가족이 안 되는 문제는 자본이 해소하는 형태로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실제 이런 형태이기 때문에 여기서 크게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가라타니 고진도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벗어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을 조금 더 강조하던지 아니면 자본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하던지 아니면 가족 혹은 사회를 조금 강조하는 평면적 차원에서의 차이일 뿐, 이 구도에서 빠져나갈 공간이 잘 안 보이고,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움직여봐도 결국 우리가 원하던게 아닌 느낌이 드는 상황인 겁니다.  

국가와 세금 교환

이 세션이 국가니까 관련해서 얘기를 해보면, 국가는 수탈을 전제로 하잖아요. 물론 직접적인 수탈은 아니고 세금을 다 같이 내고, 재분배 받는 형태의 교환인데 이게 재밌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속적인 수탈을 위해서는 어쨌든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고, 그럼 수탈로서 교환은 최소한 소극적인 동의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죠. 만약 저항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게 잘 안 될 수도 있는 상황들도 항상 있다는 거죠. 그리고 반대로 선물에는 답례가 따르는 것처럼, 역방향의 수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일단 세금을 내고 나면, 세금 다시 가져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잖아요. 어쨌든 국가의 세금이니까. 그래서 이게 국가를 대하는 기본 자세인 것 같아요. 

즉, 국가는 모두를 수탈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책임을 갖고 모두에게 책임을 분배해야 되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최소한의 평등과 공정의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자본, 가족 공동체하고 조금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요. 재정 정책 같은 경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세금을 계속 거둘 수 있다는 전제만 있다면, 지금 국채를 발행을 하던, 재정을 투여하던 상관은 없으니까요. 최근 한국은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로 가야 된다거나, 가족복지의 기반이 시장복지 쪽으로 갈건지 아니면 국가사회복지라고 쪽으로 갈건지 이런 논의가 있는 것 같은데요. 사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정당에 따라서 조세 정책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조세 부담이 그렇게 많이 변경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디까지 우리가 바꿔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걸 교환양식으로 보면 세금 교환에서 어떻게 사양 교환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를 수탈한 공동의 자원이기 때문에 이것을 공동으로 운영한다는 건 당연히 성립할 수 있는 얘기인 것 같은데요. 다만 중요한 자원이지만 세금의 논리상, 재분배는 모여진 세금에 대해서 서로가 모두 가져가려고 경쟁하는 체제라는 점이 문제인거죠. 그리고 정권은 계속 교체되고. 그러니 국가의 힘에 의존해서 만든 어떤 커먼즈라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불안정성은 계속될 수 밖에 없는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자본=국가=가족을 넘어서는 커먼즈

그래서 그냥 상상을 해보면, 세금 교환을 사양 교환으로 바꾸면 어떨까. 교환 양식을 분해하는 것의 효과 중에 하나는 행위자들의 선택에 따라서 쉽게 바뀔 수도 있다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선물하는 관계인데, 어느 순간 내가 마음이 바뀌었거나 아니면 더 이상 여력이 안 되서 ‘선물을 끊을 거야’ 하게 되면 그 관계는 불투명해지게 됩니다. 경쟁 관계에 들어갈 수도 있고, 교환 자체도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세금 교환 역시도 사양 교환으로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들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인데요.

사양 교환은 모두가 다 사양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의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고, 저희는 그게 커먼즈가 아닐까 생각을 하는 겁니다. 물론 한쪽만 사양하는 것은 사양 교환이 안 되죠. 한쪽만 사양하는 건 수탈일 수도 있고, 선물을 주기만 하고  끝날 수도 있는데요. 다만 커먼즈가 다른 차원, 즉 소유자가 정해져 있는 것과 달리 공동의 것이 남아 있고, 그게 계속 잠정적으로도 공동의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고, 또는 필요한 곳에 쓰일 수도 있는 여지가 있다면, 이건 문제를 다른 차원, 위치에 놓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커먼즈는 국가랑 겹쳐질 수도 있고, 또는 자본으로 생각해서 더 많이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 또는 오히려 가족에 더 가까울 수도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 이건 결국 국가-가족-자본의 삼위일체의 평면에서 보는 관점이라 커먼즈의 위치가 참 애매하다고 생각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실은 커먼즈가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각뿔 위에 떠있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즉, 소유의 평면이 아니라 사양과 돌봄으로 만든 다른 층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입체가 가능하고, 그것이 커먼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계속 쌓아올리는 형태로서의 커먼즈를 생각해보자는 거죠. 그리고 사양 교환양식과 관련해서 빈고는 실제로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보통 자본 수익으로 경쟁하는 것이 자본의 금융인데,  채권자-채무자 관계에서 양쪽 모두에서 수익을 추구하면 자본의 형태가 되겠지만, 채무자가 수익을 사양하거나 채권자가 사양하는 경우에는 다른 형태의 금융이 가능한거죠. 그런데 양쪽 둘 다 사양하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금융은, 즉 채권자도 채무자도 자본 수익을 사양하는 금융을 빈고가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할 수 있다. 더 넓은 차원에서 실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 김지음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