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픔은 병원에 닿지 않는다 | 양창모 춘천 호호방문진료센터장

1월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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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커먼즈 포럼 1 <돌봄으로의 전환에서 돌봄을 위한 전환으로>

세션 1 – Commons, 모두에게 좋은 삶을 위한 이야기

어떤 아픔은 병원에 닿지 않는다

양창모 (춘천 호호방문진료센터장)


안녕하세요? 춘천호호방문진료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양창모라고 합니다. 

제가 오전에 방문진료를 하고 왔는데, 방문진료에서 제일 만나기 힘든 분들이 누구인지 아세요? 바로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에요. 저희가 만나 뵙는 분들이 8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거든요. 한 번은 방문 진료 가는 차량에서 창 밖으로 30대쯤 되어 보이는 아빠하고 꼬마아이가 시골동네에서 공놀이하는 모습을 봤어요. 저희 직원들이 모두 같이 동시에 와! 탄성을 질렀어요. 시골에는 이제 어르신들밖에 남지 않아습니다. 어르신들이 제일 만나기 힘든 분들이 여러분들과 같은 젊은 사람들이거든요. 나이 들었을 때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 사회에 있는 시골 지역들은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아주 특이한 경력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방문진료 일을 하기 전에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이라는 일을 했었는데요. 저는 커먼즈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발표하기 전에 커먼즈가 무엇인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그 자료들을 읽으면서 제가 했던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 활동이 커먼즈라고 하는 것에 굉장히 부합했던 일이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7년 가까이 이 일을 했어요. 여러분들 알고 계시나요? 지금 앉아계시는 이 공간의 방사능 수치가 정상보다 높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여기가 200 nSv/hr 정도였어요. 춘천이 기본적으로 300-400 nSv/hr 정도로 높은 수치가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공간에서 살아가야하는 시민들의 건강에 굉장한 위협이 됩니다. 암 발생율도 증가되구요. 그것을 좀 해결해 보고자 했던 활동이 방사능생활감시단 이었습니다. 커먼즈인지도 모르면서 커먼즈 활동을 했던 겁니다. 제 깨알같은 자랑입니다. (웃음)

저기 창쪽에 앉아 계신 분들이 저희 직원분들입니다. 저하고, 최희선 간호사 선생님, 이주현 사회복지사 선생님. 이렇게 세 명이 팀을 이뤄서 방문진료를 하고 있어요. 제가 저분들 앞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갑자기 이렇게 얘기하려니까 떨립니다.

춘천에는 소양강댐이 있어서 댐 때문에 수몰된 지역이 있습니다. 수몰 지역에는 법적으로 지원 사업을 하도록 되어 있어요. 저희는 춘천 소양강댐 수자원공사에서 지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방문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이 파란색이 소양호고요, 여기에서 반경 5km 이내의 지역을 수몰 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인근의 지역들, 이 빨간 색 지점들이 다 저희가 현재 방문진료 하고 있는 지역이고, 그걸 앱으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이거 확대해 보면 이제 어르신들 있는 집이 다 나옵니다.

시골 노인을 위한 의료의 혁신, 마을 진료소

제가 방문진료 하면서 제일 많이 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병원에 어떻게 갈까?” 사실 저는 그전에 10년 정도 의료법인에서 운영하는 의원에서 진료실 진료를 했어요. 그때는 한 번도 안 했던 질문이에요. 나에게 오는 이 환자들이 어떻게 오는 걸까 하는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방문진료를 해보니까, 제일 많이 했던 질문이 이거였어요. “도대체 이분들은 어떻게 병원에 가는 걸까?”

예를 들면 이런 분들입니다. 이 어르신은 제가 한 달 정도 전에 방문했습니다, 와상 환자세요. 아드님이 돌보고 있어요. 이 어르신이 콩팥 기능이 안 좋아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피검사를 해야 하고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이분은 어떻게 병원에 갈까요? 이분을 위해서 의사 선생님이 찾아올까요? 아직 춘천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방문진료 의사가 없어요. 그래도 이분은 병원에 가야 해요. 어떻게 가느냐. 병원 가는 당일날 119를 부르죠. 한 7-8만 원 든다고 해요. 아드님이 어르신을 업어서 구급차의 환자 이송침대에 눕힙니다. 구급차 타고 대학병원에 가요. 그러면 거기서 또 이송침대를 불러서 옮겨서 검사실로 가요. 검사실에서 다시 또 휠체어에 앉혀서 검사를 하러 가고 나와서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걸 3개월에 한 번씩 하고 있어요. 정말 기가 막힌 일이죠. 돌봄 요양보호사분들이 이런 얘기를 하세요. 너무 오랫동안 와상 상태로 있으면 제일 큰 문제중의 하나가 누워 있으면서 계속 칼슘이 빠져나가 뼈가 약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조금만 주물러도 뼈가 부러질까 봐 주무르지를 못하겠다고 하는 그런 분인데, 그런 분을 계속 옮기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뼈가 부러질 수 위험성이 높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분이 병원을 찾아갑니다. 의사가 이분을 찾아오지 않아요. 그래서 이 어르신의 보호자 분이 피 검사를 해달라고 저희를 부른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누워 있는 분 말고 걷고 계신 분들은 괜찮냐? 이 할머니는 혈압이 231 mmHg로 되게 높았어요. 이게 어떤 수치인지 아세요? 악성 고혈압입니다. 당장 혈압을 낮춰야 되고 늦어도 3일 이내에는 반드시 혈압을 낮춰야 합니다. 안 그러면 중풍을 비롯한 합병증이 올 수 있어요. 제가 할머니보고 빨리 병원에 가셔야 한다 얘기하고 의뢰서를 써드렸죠. 병원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셨냐 하면, 이 어르신이 지금 살고 계신 곳이 여기에요. 여기서 보건진료소까지 거리가 한 330m인가 그랬어요. 걸어서 4분 거리에요. 그러면 실제로 4분 걸렸을까요? 이 어르신은 가는데 1시간 걸렸어요. 왜냐면, 어르신의 심장이 안 좋으세요. 저희가 그때 방문했을 때도 무릎 주사를 놔드리려고 앉아 계신 걸 눕히려고 했더니 그 잠깐 눕는 사이에도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차하셨어요. 여기서 병원까지 갈 때 건강한 사람은 바로 가죠. 근데 이 어르신은 한시간을 가셨어요. 가다가 계속 쉬어야 돼요. 그렇게 해서 갔는데 진료도 못 봤어요. 왜냐하면 코로나로 의사가 진료소를 비운 거예요. 그래서 허탕을 치고 돌아왔어요. 그뒤로는 절대 병원에 안 간다고 고집을 피우셨어요.

병원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런 상상을 해봅시다. 시골에서 병원으로부터 10km 떨어진 곳에 사는 네 분이 있어요. 이분들한테 과연 10km라는 거리는 똑같을까요? A라는 사람은 시골에 살지만 건강해요. 차도 있어요. 그러면 병원까지 가는 데 몇 분 걸리죠? 한 20분 걸려요. 근데 B라는 사람은 건강하지만 차가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시골에 사시는 분들은 아실거예요. 시골에 버스가 자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나절 걸려요. 진짜 그렇게 해서 갑니다. C는, 건강하지도 않고 걷기도 힘들어요. 가다가 계속 쉬어야 돼요. 그런 분들은 병원에 가기가 너무 힘듭니다. 제가 처음에 보여드린 분처럼 와상 상태에 있는 분(D)은 아예 병원 가는 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근데 한국 의료가 이 네 분 중에서 어떤 사람한테 기준이 맞춰져 있냐는 거죠. 만약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면 당연히 C나 D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기준이 맞춰져 있어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 병원 한번 가보세요. 실제로 병원 시스템의 기준은, A에 맞춰져 있어요. 저는 이게 문제라고 봐요.

여러분 지금 시간이 오후 4시죠? 여러분들 삶의 시간을 24시간으로 하면 지금 몇 시쯤 됐나요? 저는 한 2시쯤 됐습니다. 지금 오후지만 결국 오늘 밤은 옵니다. 여러분들의 시간도 지금 각각 몇 시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밤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늙는다는 게 뭐예요? A에서 B가 됐다가 B에서 C가 됐다가 D가 되는 과정이에요. 이 과정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어요. 이게 우리의 운명인데 한국 사회의 의료 시스템은 기준점이 A라는 사람한테 맞춰져 있다는 거죠. 이건 정말 문제라고 봐요.

노인 장기 요양 등급이라는 게 있습니다. 노인 요양 등급4등급은 도움을 받지 못하면 혼자서는 걷지 못하는 분들이예요. 걸을 때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2022년 10월까지 몇 명이었을까요? 100만 명이에요. 그러면 이 100만 명이 병원을 어떻게 갈까요? 혼자서는 걸어서 갈 수가 없잖아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분들은 어떻게든 병원에 가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여기 건강한 사람이 있고 아픈 사람이 있어요. 정상적인 사회라면 누가 누구를 찾아가야 돼요? 건강한 의사가 있고 아픈 환자가 있으면 건강한 의사가 아픈 환자를 찾아 가는 길도 있어야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시골에 가면 제일 좋은 건물이 뭔지 아시죠? 바로 마을 회관입니다. 그곳에서 2-3개월에 한 번씩이라도 의료진이 마을진료소를 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을 진료소에서 아프신 동네분들을 진료하고 처방전을 발급해준다면 지금처럼 시골 노인들이 2-3시간 걸려 시내로 나가 병원을 찾아가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시청에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그래서 마을진료소를 만들어달라고 시청 앞에서 1인시위도 했는데 변화는 없었습니다.

마을 돌봄의 대안, 이웃복지사

제가 방문진료갔던 할머니의 혈압 측정한 결과를 기록한 겁니다. 한번 보세요. 뭔가 이상한 게 있지 않나요? 저 위에 있는 128, 134, 140은 저희가 써드린 거고요, 이 밑에 있는 숫자들을 보세요. 이상하지 않나요? 이게 뭘까요? 제가 어르신께 혈압을 매일 기록하시도록 했을 때 이렇게 써놓으신 거예요. 왜 그러셨을까요? 글씨를 모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혈압계에 나와 있는 숫자를 보고 그리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이상하게 쓰게 된겁니다. 고혈압 있는 분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게 혈압 측정입니다. 근데 시골에 계시는 어르신들이요. 보통 문맹률을 보고 글자를 쓰지 못하시는 분들이 한국 사회에 한 6% 있다고 해요. 근데 시골에 보면요. 열에 두세 분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할머니들이 글자를 잘 모르세요. 그럼 그분들은 어떻게 혈압을 재요? 쓰지를 못하고 읽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돼야 되는 거에요? 저는 그래서 고혈압이나 어르신들 혈압 측정하는 걸 도와줄 분이 누구 없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또 다른 게 있어요. 혈압 조절이 정말 안 되는 할머니예요. 근데 이 어르신 냉장고 보시면 이래요. 음식이 없어요. 고혈압 있는 사람들은 혈압 조절이 안 되면 이렇게 먹어야 돼요. 지중해식 식사라고, 아침을 이렇게 먹어야 되는데 이렇게 못 드시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여기 갔을 때, 이런 식사를 준비해 줄 분이 없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분이 있어요. 누구죠? 이 어르신들의 이웃 분들이에요.

이 이웃 분들을 저희가 ‘이웃복지사’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자고 그랬어요. 요양보호사는 시골에 오기가 힘듭니다. 차로 1-2시간 걸리면 시골에 잘 안옵니다. 그래서 시골에 상대적으로 젊으신 분들을 이웃복지사로 해서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돌보도록 하는 거예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제가 만든 건 아니고, 저희랑 같이 협력하는 소양강댐노인복지관에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걸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보시면 지도가 있어요. 어르신들이 되게 많아요. 이 지도에 어떤 마을마다 어떤 이웃복지사분들이 있고 그분들의 연락처까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웃복지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건 이분들의 슬로건이에요. “마을은 1차 복지기관, 이웃은 1차 복지사.” 저희 센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이웃복지사 교육을 해요. 여기 계신 간호사 선생님과 제가 혈압 재는 거, 혈당 재는 거, 산소포화도 측정하는 거, 이런 걸 다 교육합니다. 그래서 이웃복지사분들이 어르신들 댁에 가면 능숙하게 혈압, 혈당도 재고 산소포화도도 측정할수 있게 됐습니다.

이걸 보시면요, 당뇨 있는 어르신이에요. 이분은 혈당이 떨어질 때는 66 mg/dL까지 떨어졌다가 올라갈 때는 326 mg/dL까지 올라가요. 혈당 조절이 안 돼요. 그러니까 당뇨가 오래되신 어르신들은 특징적으로 혈당이 요동쳐요. 올라갈 때 막 올라갔다가 떨어질 때 확 떨어져요. 이분이 1월에 쟀을 때 이렇게 나왔어요. 근데 3월에 다시 재보니까 이렇게 바뀐 거예요. 당뇨 앓은 지가 벌써 30년 되신 분인데 두 달 만에 혈당이 굉장히 고르게, 100 mg/dL 전후로 나왔어요. 이분이 이렇게 된 건 의사가 약을 처방해 줘서가 아니에요. 의사는 아무 것도 더 처방하지 않았어요. 이런 결과를 만든 사람은 바로 이웃복지사예요. 이 할머니가 원래는 하루에 커피 믹스 세 잔을 마시던 분이예요. 아침 먹고 마시고, 점심 먹고 마시고, 저녁 먹고 마시고. 일요일에는 교회 가니까 거기서 한잔 더 마시니까 네 잔 마셔요. 이런 분인데 이웃복지사가 할머니 댁을 매일 찾아가서 잔소리를 하는 거예요. 절대 커피믹스 먹지 말라고. 커피믹스 끊어야 된다고. 게다가 이웃복지사분이 전직 요가 강사예요. 마을에 있는 할머니들을 다 불러서 요가를 시킨 거예요. 처음에는 하기 힘들어했죠. 근데 나중에 이 할머니 말씀이 요가밴드에 보풀이 날 정도로 열심히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혈당을 이렇게 떨어뜨린 거예요. 의사 입장에서 이렇게 혈당이 조절된 걸 보면 이건 정말 기적이에요. 왜냐하면 당뇨가 한 30년 되신 분들은요. 군대로 치면 말년 병장 같은 사람들이에요. 절대 의사 말 안 듣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근데 그런 분들을 바꿔 놨잖아요. 두 달 만에.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에요. 이웃복지사 님들이.

통합돌봄은 연결돌봄이다

이 할머니는 스파이더맨이에요. 이 사진을 보시면 이 할머니가 부엌까지 가는 길이 보이죠. 어떻게 가는지 아세요? 여기를 붙들고 저기를 붙들고 건너가는 거예요. 스파이더맨이 쫙쫙 건너가듯이. 그렇게 건너요. 허리가 아프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무릎까지 안 좋아지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셨냐면,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아세요? (동영상) 한번 보세요. 어떻게 하시는지. 걷지를 못하시니까 이렇게 해서 겨우 부엌까지 가시는 거예요. 너무 힘들죠. 그래서 저희가 집수리 활동을 해요. 집수리 활동을 해서 이걸 깎았어요. 집수리 활동가가 약간 아마추어였던지 흔적이 조금 남았지만요. 여기를 열어놨기 때문에 이쪽으로 저걸 밀고 다니시는 거예요.

저는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돌봄을 “연결 돌봄”이라고 말해요. 요양보호사, 생활지원사, 이웃복지사, 집수리 활동가 분들과 저희가 연계되어 있어요. 이분들이 저희 연락처를 아세요. 저희도 이분들 연락처를 알아요. 그래서 저희가 필요하면 이분들한테 ‘할아버지 할머니 식단 이렇게 해주세요.’ ‘혈당 이렇게 재주세요.’ ‘혈압 재주세요.’ 말씀드리고, 이분들도 본인들이 방문했던 이웃들 중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저희한테 연락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가요. 이렇게 연결돼 있어요. 저는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통합 돌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커먼즈란 무엇인가?

이제까지 제가 한 이야기는,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을 설명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구고, 우리가 만나는 분들이 누구이며,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 한 장의 사진이 있다면 바로 이거예요. 제가 어르신 댁에 가서 찍은 사진인데 어르신 신발, 저희 신발, 그리고 지팡이입니다. 제가 원래 이 부분을 외워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걸 외우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냥 좀 읽겠습니다. 괜찮을까요? 고맙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운이 좋으면 모두 노인이 됩니다. 아픈 노인이 된다는 건 뭘까요? 결국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지팡이는 혼자 힘으로는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벽에 기대거나 무언가에 기대어야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이 지팡이에 기대어 몸을 일으키고 걷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르신들의 지팡이가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의료진이 그렇고 이웃복지사가 그렇고, 집수리 활동가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도 결코 혼자 힘으로는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합니다. 우리를 불러주는 사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우리를 지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5년이 아니라 단 5일도 지속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희가 만나는 환자들, 어르신들이 저에게 준 것은 뭘까요? 아마도 그것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르신들은 진실로 죽지 못해 산다는 얘기를 참 많이 합니다. 노인 자살률 세계 1위의 대한민국에서 제가 만나는 노인들 대부분은 어쩌면 자살 생존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이야기. 그것은 대부분 결코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희망이든 절망이든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이 진실이라는 점에서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어제도 한 할머니가 자신은 경로당 가서 화투 치는 걸 구경만 한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니까 자신은 고도리를 배운 적이 없고 민화투만 치는데 자기랑 민화투 치던 사람들은 다 죽고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어르신들은 이제 사라지시겠구나. 10년 후면 이 마을은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내가 하는 일은 10년 후면 사라질 분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저는 가끔 웃었고 자주 슬펐습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들려주는 이 이야기도 실은 제가 만난 어르신들이 없었다면, 그분들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노인들에게는 지팡이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지팡이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팡이는 혼자 힘으로는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벽에 기대거나 무언가에 기대야만 합니다. 커먼즈필드 춘천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커먼즈란 무엇일까요? 결국 우리가 서 있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또 누군가는 그런 우리에게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리라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지팡이이고 결국 누군가의 지팡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팡이들이 기꺼이 누군가의 지팡이가 되어주는 것, 이 당연한 일이 바로 커먼즈일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유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함께 가지려는 행위. 그것이 커먼즈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 양창모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김세환,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윤형준,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1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