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다시 돌아올 극장을 기다리며 | 이두찬 문화연대 활동가

1월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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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다시 돌아올 극장을 기다리며

이두찬(문화연대 활동가)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올 극장을 기다리며

1960년대 지어진 극장이 있었다. 새마을대회도 열리고, 신용협동조합의 총회도 열리고,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이 진행된 공간.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지금의 극장의 역할을 넘어서 지역에 시민들이 모이고, 또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공간. 그리고 과거의 명성과 역할을 다시금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 진행되었었다. 원주아카데미극장의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되었던 원주시의 중심지에 당시 최고건축 기법이었던 콘크리트 건물로 반듯하게 지어진 서양식 극장이 만들어졌다. 전쟁은 시민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나마 서울도 아니고 지역에 있는 도시에서 문화향유는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 원주에서 아카데미극장은 40년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세대의 시민들이 문화생활을 누리고, 일상에 행복을 느끼게 해준 추억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과거 원주에는 4개의 단관극장이 하나의 도로에 위치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주시민들의 영화 관람을 책임 졌다. 각각 원주극장, 시공관, 아카데미극장, 문화극장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5년 원주시에도 멀티플렉스극장이 개관을 하였고, 단관극장들은 하나 둘 문을 닫게 되었다. 극장이 문을 닫음과 동시에 주변 상권도 쇠퇴해갔으며, 2015년 문화극장이 철거되고, 아카데미극장은 유일한 단관극장 건물로 남게 되었다. 1960년대에 새로 지어진 인천의 애관극장, 1968년 화재로 전소해 새로 지은 광주극장 등이 있지만, 원형을 유지한 가장 오래된 극장은 아카데미극장이다.

특히,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선정하는 ‘이곳만은 꼭 지키자‘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하고 지역민들의 문화정체성이 투영된 상징적인 곳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카데미극장은 60년대 당시 모더니즘 건축의 미학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구현한 건축물로서, 수직적 요소를 강조한 전면과 좌측에 돌출된 발코니가 특징적인 건축물이었다.

또한 1963년에 개관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화재도 없이 단관극장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1,2층 총 662석 규모의 상영관을 보유하고, 극장 내에는 소유주의 살림집이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영화관이기도 했다. 극장주의 살림집이 딸린 내부 평면도 극장 전성기엔 평범한 풍경이었겠지만 지금 와선 보존해야 할 생생한 유산이라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아울러 아카데미극장은 영화관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유명 가수의 리사이틀 등 많은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무대장치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단순히 극장으로서의 존재가치 외에도 그 시대 문화예술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건축물이다. 또한 아카데미극장은 우리나라 영화사의 성장을 증거하는 많은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한국영화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현시점에서 우리 근대영화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메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큰 공간이었다.

올해 중반까지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민들과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시의 폭압적인 행정 아래 파괴되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위에 만들어진 극장이 다시 폐허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주 시민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보존과 개발의 싸움에 휘말린 시민의 공간

2015년 원주의 문화극장이 철거된 이후 아카데미극장은 꼭 지켜내자는 시민들의 의견이 조금씩 모아졌다, 그 마음들은 ‘아카데미 보존 추진위’로 모아졌고, 이 추진위는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설문조사·연구조사·포럼 등을 통해서 아카데미극장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했다. 전시회, 영화 상영회 등의 문화행사 등을 통해 극장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활동들을 이어 왔고, 이러한 활동들의 결실로 2021년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에 선정돼 문화재청장상을 받기도 했으며, 또한 202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 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에 선정돼 국비 30억 원, 도비 9억 원 등 총 39억 원이 배정되는 등 성과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미군부대 등으로 군사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던 원주시의 시민들은 저마다의 추억 등의 공간이었던 극장을 지키기 위해서 오래 방치되어 있던 극장을 청소하는 자원봉사에 참여하거나. 1인 1석 갖기 모금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극장을 지키기 위해 활동했다. 원주에 있는 문화공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시민과 시민을 연결하고, 아카데미극장을 지키자는 목소리를 골목 곳곳에서 확대해 가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6년 폐업한 아카데미극장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할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공간이 가진 과거의 특성과 미래의 가치를 구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곧 실현될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갈 시민들이 있었고, 시민들은 지역의 주민들과 지역정치권, 지방 행정을 설득해 왔다.

그리고 이 성과들도 지난 2022년 제21회 올해의 원주 시민운동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원주시민운동상 선정위원회는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는 원주 유일의 단관극장이자 지역 문화유산인 아카데미 극장을 보존하고 시민과 함께 재생의 가능성을 넓혀 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원주아카데미 극장을 보존하기 위한 운동은 단순히 극장을 남기는 운동이 아니라, 원주라는 지역의 시민사회가 모이는 계기가 되었고, 시민들의 힘이 분출되는 공간을 만드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극장을 보존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과 모아진 시민력이 바로 원주아카데미극장이 왜 지켜져야 하는지 해답이 되었다. 그리고 원주시는 이러한 시민들의 활동에 화답하듯 아카데미극장 매입을 공식화 했으며, 시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고, 지난 2022년 1월 매입을 완료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민선 8기 원강수 시장이 들어서면서 극장의 운명이 바뀌었다. 원주시는 안전, 관리비 등을 이유로 극장 철거를 고집하며 이미 선정된 문체부 유휴공간 재생활성화사업 39억을 거부하고,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지정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근대문화유산을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잘 꾸며, 그 문화적 가치를 극대화할 것 인지를 논하기에도 부족한 시점에서 원강수 시장은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다목적 공연장과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극장이 위치한 중앙동 일대의 만성적 주차난을 해결하고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그리고 지난 8월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에 철거 및 경비 용역 수십 명을 투여해 아카데미극장에 가림막 설치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극장 앞 버스정류장과 펜스 사이에 끼인 시민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등 매우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원주시는 시민과 대화도 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토론도 없이 철거를 위한 무분별한 행정을 자행했다.

극장이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

원주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원주만의 문제가 아니였다. 대전의 시민들은 원주아카데미극장을 등록문화재로 직권지정을 요청하며 문화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동두천 성병관리소와 애관극장 등 이미 근대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지역의 시민들도 원주아카데미극장의 싸움에 힘을 보탰다. saveouracademy 챌린지에는 많은 영화인 및 많은 시민들이 응원의 뜻을 보내주기도 했다.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한 4차례의 시민 대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버스를 빌려 원주로 달려갔으며, 극장이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치며 원주시내를 행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외침은 묵살되었다. 지난 10월 원주시는 결국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원주아카데미극장은 문화적 가치도 매우 크지만, 보존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원주시민이 보여준 공동체의 가치를 가장 훌륭하게 표출된 공간이다. 하지만 원주시는 이런 시민의 공동체 공간이자, 미래의 자산을 철거하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행정을 보여줬다.

극장은 무너졌다. 하지만 원주시민들의 원주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한 운동은 이미 여러 곳에 흔적을 남겼다. 인천 애관극장과 조병창 병원 철거 반대운동 및 동두천의 성병관리소 보존을 위한 싸움에도 원주 시민들은 큰 용기를 전했으며, 앞으로 원도심 개발 문제에 맞서 싸울 각 지역의 시민들에게 원주의 사례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원주 시민들에게도 여전히 원주아카데미극장 보존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11월 4차 시민대행진단이 극장 앞에 도착했을 때 원주 시민들은 폐허가 된 극장 터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극장의 모습을 참여자들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약속했다. 다시는 공권력에게 빼앗기지 않는 시민의 공간을 만들자고, 그리고 많은 시민들도 새롭게 마련될 시민의 공간에 벽돌 한 장씩 이고 지고 나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극장이 무너졌지, 시민은 무너지지는 않았다. 언젠가 다시 만들어질 우리들의 공간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글, 사진 | 이두찬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심여은, 신영수, 송민석, 이희라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4년 1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