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사유화를 넘어서는 공공성 확대 방안*
: ‘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지 및 재공영화 기본법안’에 관한 발전적 제안을 위하여
이승원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전임연구원)
*이 글은 2023년 9월 12일에 열린 “기후재난과 불평등 시대,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는 사회공공성을 말한다: 사회공공 분야의 위장된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 확대를 위한 토론회” 에서 발표된 내용을 웹진의 정책 브리핑에 맞게 재구성한 글입니다.
1. 공공성
가. 공적인 것, 공통적인 것, 공무적인 것
공공성은 세가지 차원에서 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이해됨
1) 공적인 것(公, public): 사회적이고 개방적이고 관계적인 것
- ‘공적인 것’ 차원에서의 공공성은 사생활, 비밀, 사익 추구와 달리, 모두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접근가능하고, 일부가 아니라 모두 앞에서 발생하고 경험하는 것들의 영역을 가리키며, 누군가를 혹은 어떤 것에 대한 접근을 거부하거나 제한하지 않는 공간이나 상태를 의미함. 또한 공적인 것으로서의 공공성 영역은 사회적 정체성과 존엄성의 수준이 결정되는 영역이자, 문화와 역사의 영역이며, 세대가 연결되는 영역,,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의 내용과 의제’가 결정되고 작동하는 의사소통과 합의 과정, 즉 공론장으로서의 영역이기도 함
2) 공통적인 것(共, common): 특정 집단이 아닌 구성원 모두의 것
- ‘공통적인 것’ 차원에서의 공공성은 사적 영역과 달리, 구성원, 인간 모두에게 공동으로 열려있고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있는 세계와 관련되며, 구성원의 공통 이익, 공통 자산, 보편적 복지, 공통 규범과 질서 등을 가리킴. 중요한 것은 여기서 공공성은 우리가 모두 마주하고 경험하는 세계란 우리가 함께 어떤 식으로든 ‘공동 창조(co-creation)’, ‘공동 생산(co-production)’하는 ‘공동 창작물’이라는 것임(르페브르, 공동 창작물로서의 도시). 이런 의미에서, 이미 어느 누구도 양도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 존재 이전부터 존재해온 바다, 강, 수로, 하늘, 공기와 같은 자연적인 것은 물론, 헌법에서부터, 지식, 전파, 공원, 문화, 디지털 플랫폼, 그리고 국가, 도시, 사회, 마을, 일터 등 인간의 산물은 사실상 우리 모두의 공동 창작물이며, 따라서 공통적인 것임. 그러므로 공동 창작물로서의 세계에서 공동 생산자이자 사용자인 동료 구성원 사이 다양성과 차이가 차별과 배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구성원 사이 수평적 의사소통과 사회문화적 협력이 필요함
3) 공무적인 것(公務, official): 국가·정부를 중심으로 한 공식적 책임을 의미함
- ‘공무적인 것’ 차원에서의 공공성은 국가, 법, 정책 등을 통해 국민에게 시행되는 활동, 즉 공공사업, 공동투자, 공적 자금, 공교육, 치안과 안보, 공공서비스 등을 가리키며, 공무적이라는 측면에서 법적 강제와 의무, 행정적 책임과 권한 등이 연결됨. ‘공적인 것’과 ‘공통적인 것’이 쇠퇴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 협력, 실천의 영역을 의미함. 단지 현대 사회의 대의제 정치와 행정관료 시스템만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함께 책임지고, 함께 협력해서 사용·관리하는 수준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함
나. ‘공공성’의 내용
1) 공공성에 담긴 내용은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르며, 그 내용은 매우 정치적이고 헤게모니적인 문제임
- 문제는 공론장이 얼마나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민주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따라 공공성의 내용과 그 실현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임. 이는 공공성에 담긴 내용, 혹은 공공성이 지시하는 의미체계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르며, 매우 정치적이고 헤게모니적인 차원에서 구성된다고 볼 수 있음. 공공성은 어떤 보편적인 것과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 예를 들어, 중세 기독교 시대 공공성으로서 ‘순종’, 1960년대 이후 한국 반공주의 개발독재 시대의 공공성은 ‘국가 안보’, ‘공동체’, ‘반공’, ‘충효’, ‘GDP’, ‘조국 근대화’, ‘아파트 단지’, ‘오너 카 시대’ 등이고, 역사적으로 ‘혁명의 시대’ 공공성은 자유, 자유, 평등, 박애, 권리, 시민성이라 할 수 있음. 또한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 공공성은 일자리, GDP, 글로벌 스텐다드, OECD 순위, 재정건전성, 이익 극대화, 시장 자유화와 탈규제, 자기계발과 노동 유연화/통제, 경쟁, 성과, 능력, 공정 등에서 찾을 수 있음. 따라서, 어떤 공공성, 어떤 형용사가 붙은 공공성인가가 중요하며, 이것은 헤게모니 실천의 결과임. 그렇다면 ‘사회적 공공성’이나 ‘민주적 공공성’은 어떤 의미로 어떻게 가능한가?
2) 시대적 과제와 오늘날의 공공성
- 공공성은 시대적 과제와 연결하여 그 의미를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함. 오늘날 전 지구적인 시대적 과제는 다음과 같이 크게는 3가지 이며,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합·다중 위기’ 시대라 할 수 있음: ① 기후재난 대응 생태적 전환, ② 불평등 대응 사회경제적 전환, ③ 민주주의의 후퇴 대응 정치적 전환. 오늘날 공공성은 기본적으로 전 지구적이면서도 일상적으로 가장 감각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이 세 가지 문제를 대응하는 전환의 세 방향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지향해야 하며, 공공 서비스는 바로 이 시대적 과제 차원에서 기획, 배치, 관리, 사용되어야 함
3) 성찰과 질문
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공공성을 지향하고 있는가?
② 세 가지 전환을 위한 공동 실천 구상을 준비하고 있는가?
③ 우리가 지향하는 ‘생태적 전환’, ‘사회경제적 전환’, ‘정치적 전환’은 무엇인가?
④ 포괄적 정세분석과 공동의 계획을 수립하고 그 차원에서 공공성,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저지와 재공영화를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⑤ 좀 더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이 ‘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지 및 재공영화 기본법안’ 제2조 1항 “공공서비스”란 주거·환경·에너지·교통·공항·항만·교육·보건의료·복지·돌봄·문화·정보통신서비스 및 이에 준하는 서비스로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서비스를 말한다“가 규정하는 공공서비스는 각각의 고유한 기능과 목적 이외에 총체적 전환을 위해 종합적으로 기획되고 배치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⑥ ‘법안’이 규정하는 ‘재공영화’, ‘기본계획’, ‘공공서비스위원회’는 이러한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설계되었는가?
법안이 실제 그 목표의 실현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공 서비스’를 공공성의 ‘공무적’ 차원에서 수행할 1차적인 책무가 있는 ‘국가’에 대하여 좀 더 심층적이고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함
2. 국가
1) 국가를 레닌주의적 계급지배 도구 혹은 그 총합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시하듯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헤게모니적으로 결합된 통합 국가(integral state) 차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음
2) 시민사회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이며 상호 자유 인정을 위한 윤리사회라 할 수 있으며, 마주침·충돌·환대·협력·경쟁·조정을 통해 욕망과 필요의 충족을 위해 상호 협력하면서 다양한 생산·소비 행위가 일상 영역에서 이뤄지는 사회임. 여기서 ‘자유’란 방임이나 방종이 아니라, 역량으로서의 자유, 자유로서의 발전, 타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나의 자유가 보장받는 제도적·물적 기반이 공공성의 가치에 따라 보장되어 있는가가 중요한 가치이자 속성이라 할 수 있음. 이는 자기 결정권과 자원 접근성으로 구체화될 수 있음. 예를 들어, ‘광장에서 춤을 추 수 있는 자유’와 ‘모두에게 개방되고, 사용자들이 상호 존중과 숙의를 통해 사용 규칙을 정할 수 있는 광장의 존재 여부’. 그렇다면, 자유를 위한 광장을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는 무엇인가? 자유는 공공서비스가 사회민주적 공공성을 중심으로 확장되어야하는 핵심 이유
3) 정치사회는 통치, 지배와 힘, 통일성, 법·규범 사회, 자유의 본체로서의 시민사회를 제도적으로 유지하고, 시민사회 구성원이 공론장을 통해 합의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그 결과를 ‘공공성’ 차원에서 집행하는 과정이 이뤄지는 사회임. 필요에 따라, 대의제 정치제도, 행정시스템이 적적한 규모에 맞게 배치·운영됨. 지금은 ‘민주주의’ 정치사회라 할 수 있으나, 어떤 민주주의인가가 민주적이지 않게 다뤄지고 있는 상황임. 공공성(공무적인 것) 차원에서 볼 때, 정치사회는 공공서비스가 특정한 방향으로 지속가능할 수 있도로 하는 거버넌스 작동 공간이라 할 수 있음
4) 덧붙여, 국가는 헤게모니 구성체로 이해될 수 있음. 헤게모니 구성체란 다양하고 이질적인 이해관계 세력·집단이 일정한 지적-도덕적 리더십과 윤리-규범적 질서를 상식과 과학으로 받아들이면서, 특정한 경제적 생산양식, 생애주기 형태, 정치적 규범이 하나의 총체성으로 얽혀있는 구성체임. 그람시는 이를 역사적 블록 차원에서 파악했고,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는 이를 헤게모니 구성체 차원으서 급진화 시킴. 현대 국가 차원에서 헤게모니 구성체는 역사적으로 복지국가, 신자유주의 국가, 사회민주주의 국가, 국가 사회주의 국가 등이 있으며, 한국의 경우 1970년대 본격화된 박정희 정권의 조국근대화 이데올로기(경제발전+민족주의+반공주의+권위주의+유보된 민주주의)와 이에 기반한 정치사회적 동원, 경제 성장의 특징이 한국 국가의 헤게모니 구성체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음
5) 현재 한국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상태는?
① 과도한 신자유주의 노동시장과 소비주의에 갇혀 ‘개별 소비자’로 전락한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와 개입 역량의 약화 (소유적 개인주의와 소비무능력자)
② 민주주의의 정치제도적 결과가 지향하는 바가 더 이상 ‘사회적 가치’나 ‘상호부조적인 공동체주의적 목표’가 아닌 조합적 이해관계나 반지성주의적 요구로 귀결되는 경향 (반지성적 팬덤 현상과 공론장을 벗어난 진영 정치)
③ ‘포스트 민주주의’로1) 묘사되는 기성 보수 양대 정당의 중도 합의에 정치 공간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한정된 채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과 사회운동의 의제가 정치 공간에서 배제되는 ‘탈정치post-politics’ 현상과 초국적 금융자본의 결정력이 일국 차원의 정책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금융 과두제’ 헤게모니의 확장2) (새로운 정치 주체/정당 탄생의 어려움, 정치적 피로도와 무기력의 축적)
④ ‘포퓰리즘 (출현) 계기populist moment’로 묘사될 수 있는 포스트 민주주의 정치 질서가 팽창하는 시대. 즉 불평등, 기후 위기, 안보와 안전 불안이 점점 나빠지는 상황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노골적으로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하거나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모습을 드러내는 현행 보수정당 엘리트주의 대의제적 정치와 사법-금융관료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여과 없이 발생하는 상황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 여론조사 무당층 비율의 증가)
⑤ ①의 상황과 후원자 감소 속에서 상근활동가 생계는 물론 사회운동조직 유지 자체의 어려움에 따른 사회운동의 사회경제적 빈곤화와 함께, 오랫동안 관성화되어온 신공공관리형 민간위탁, 행정관료 주도 민관협치 사업 등에 따른 시민사회운동 문법의 행정관료화와 정부/정권의존성 심화(대안적 사회운동의 자기 기반·자원의 침식)
3. (재)공영화, 공공성 확장을 위한 주요 고려 지점
1) 신입헌주의와 그 효과
- 이미 1990년대부터 많은 연구자들은 민주주의가 사실상 근대적 유산으로서의 인민적 주권과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나 가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 즉 신자유주의 질서의 지구적 확산을 위한 시장 자유와 자본의 초국적 권한을 보장하는 형태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해왔음. 스테픈 길(Stephen Gill)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신입헌주의(new constitutionalism)’로 설명함. 신입헌주의는 OECD 국가들을 중심으로 각국의 공적 영역에서 추구하는 본질과 목적이 지구화의 원칙에 따라 보다 민영화되고 상업화되는 방식으로 다시 정의되는 거시정치적 과정을 의미하며3), 이것은 국가가 지배집단과 자본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제한하고 사회적 공공선의 확대를 위한 자신의 의무를 축소해나가는 것을 제도화하는 특징을 명시함. 신입헌주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편승하는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지구화 과정(글로벌 표준화)에서 대중들의 일상이 점차 악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정치사회적 저항으로부터 특권 집단이 추진하는 민영화 과정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 제도를 통제하는 제반 입법, 행정적 정책추진을 포함함4). 한국의 경우, IMF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신용카드 사용 확산, 가계 대출 증가, 불안정 노동의 확산 등에서 찾을 수 있음. 전 세계적으로 신입헌주의는 그동안 국가 간 그리고 계급·계층 간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 복지 체제와 사회안전망 붕괴, 과도한 상품 생산과 소비주의 확산에 의한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 악화를 정당화하고, 이에 대한 비판·저항·대안운동을 통제하는 제도적 기능을 수행해 옴. 신입헌주의는 포스트 민주주의 정치(탈정치, 금융과두제)현상으로 이어졌으며,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 계기를 확산하면서, 좌우 포퓰리즘 정치의 도전에 직면해 있음
2) 신 관료적 권위주의 통치 방식
- 특히, 한국의 경우, 앞서 위에서 열거한 반지성주의와 사회경제적 위기의 중력이 크게 작동하면서, 포스트 민주주의 현상이 확산되어 왔으며, 신공공거버넌스 차원에서 사회운동이 관료주의적 통제력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헤게모니가 약해지면서, 탈정치 현상이 점차 심해져 가고 있음. 이러한 정치현상은 행정관료와 전문가 중심으로 지식 권력을 독점하고, 이에 입각해서 정치엘리트-행정관료-대기업-유기적 지식인의 카르텔이 특정 산업기반을 중심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독점한 ‘신관료적 권위주의(neo bureaucratic authoritarianism)으로 묘사될 수 있음. ’신관료적 권위주의‘ 용어는 1980년대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1970년대 한국 유신정권 시대를 분석하기 위해 도입한 학술 개념인 ‘관료적 권위주의’를 오늘날에 적용하기 위해 필자가 새롭게 정의함.
- 관료적 권위주의’는 일반적으로 산업화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특정 산업과 경제적 이익집단(예를 들어, 재벌)의 활동을 보장하고, 그 결과 사회 공공성에 기반한 보편적 가치 추구가 아닌,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함. 이와 달리 정치영역은 물론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민주화를 위한 적극적 시민운동과 시민의 정치참여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사회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최소화하고, 특히 시민의 주권적 정치참여를 제한하려 함(오늘날 정당법, 선거법, 각종 시민사회단체·사회적 경제 지원 예산 축소 등). 결과적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효율성을 중심으로 정치를 행정관료화함
- 지금이 신 관료적 권위주의 시대라고 불릴 수 있는 건, 기존 관료적 권위주의의 특징인 특정 기업과 산업의 이익을 위해 행정관료 집단의 역할을 넘어서, 특정 행정관료집단 자체의 이익을 위해 기업과 산업이 조응해가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임. 또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법무부와 검찰과 같은 행정관료집단이 선출직 대의제 권력 집단보다 정책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임. 물론 전문 관료집단의 의견은 중요한 국가적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이 엘리트화되고, 시민사회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과 요구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엘리트 관료집단의 판단 속에서 다뤄진다면, 이것은 일종의 과두제적인 ‘관료적 권위주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음5). 신 관료적 권위주의는 한국 정치의 민주적 의사결정 및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함. 이로 인해 시민들은 스스로 대안적인 정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정치적 상상 또한 행정관료의 판단 속에서 수동적으로 걸러짐. 신 관료적 권위주의는 실패한 정책의 책임을 고스란히 시민의 피해와 고통으로 전가함. 기업 도산 위기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을 비롯하여, 환경, 에너지, 교육, 부동산 정책은 물론이고, 최악의 사례 중 하나는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만들었으면서도 정부와 국회의 대책은 지극히 미온적이었던 신용카드 발급 규제 완화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음.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각종 중대 산업재해 및 재해재난 참사, LH 사태, 새만금 잼버리 사태 등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옴
- 결국 신 관료적 권위주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인프라, 국공유지 등을 ‘시민/한국사회 공동체 공동의 부’, 그리고 사회민주적 공공성이라는 차원에서 이를 대의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신 관료적 권위주의 세력의 사유재산처럼 일방적으로 운영·통제·매각하는 ‘공적 사유화’ 경향을 보이고 있음 (LH 민간분양, 한국철도공사, 국가철도공단, 서울시 서울혁신파크, 진주의료원 등)
3) 공공성의 변질, 취약한 공공 서비스, 시민의 정치 참여 약화
- 문제는 이러한 포스트 민주주의, 신입헌주의와 신 관료적 권위주의 질서가 민주주의의 후퇴는 물론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고통과 생존적 불안에 대해 효과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임.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현상이 바로 정부의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사업임.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공공성의 의미가 기업 경영과 재정적 이윤 추구 차원에서의 ‘효율성’, ‘긴축 재정/재정건전성’ 등으로 그 의미가 변질된 ‘공공성’을 필두로 진행되어 왔으며, 이것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기본적이고 존엄한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공공 자원이 개방된 형태로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 대상이 아니라, 개개인 소득수준에 따라 접근 방식과 수준이 달라지는 상품으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함. 결과적으로, 민영화 즉, 상품화된 공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과잉 노동/초과 노동을 수행해야 함. 노동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공적 참여 활동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진다는 것을 의미함
- 시민들이 이러한 상황을 이러한 탈정치적/상품화된 공적 영역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과 실천 방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임. 뿐만 아니라,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에너지, 돌봄, 의료, 주거, 교통, 국공유지 등 공공 기반·서비스의 민영화와 시민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주의적 가치 실현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부 지원의 철회 등은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 되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통한 주권행사를 가능케 하는 일상의 기본 토대를 약화시키고 있음6). 이런 차원에서 민영화 반대와 공공성 확대의 필요성을 고민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즉 생태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전환의 비전에 기반하지 않고 민영화를 반대한다는 것, 재공영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신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에 공적 서비스에 대한 모든 권한을 돌려주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며, 적어도 공공서비스의 기본·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공공서비스위원회를 적절히 구성한다 해도, 이것이 재공영화 자체가 사회 공공성을 보장·확대하는 것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없음
4. 민영화 금지와 재공영화 사례_커먼즈의 정치 차원에서
1) 미국 오리건 주 후드리버 카운티 생수 생산 제한 투쟁
- 미국 오리건 주 후드리버Hood River 카운티에서 벌어진 다국적 기업 네슬레 워터스Nestle Waters의 생수 생산 사업에 맞선 지역 주민의 투쟁과 이후 법 개정 사례. 네슬레 워터스가 후드리버 카운티에 있는 오리건 주 소유 옥스보우 스프링Oxbow Springs에서 생수를 생산하려 하자, 지역 소기업체, 농민, 과수원 농장주, 원주민 등이 협력하여 지역 물 동맹Local Water Alliance를 결성하고, 네슬레의 시도를 무력화함. 동맹은 후드리버 카운티 내에서 생수로 생산할 수 있는 물의 양을 영구히 제한하는 투표를 발의했고, 2016년 5월 17일 주민들은 68%의 투표율과 함께 발의안을 통과시킴. 이후 이 발의안은 후드리버 카운티에서 상업용 생수 생산을 금지하도록 카운티의 헌장을 수정함7)
2)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물 전쟁’ 사례
- 1999년 코차밤바Cochabamba의 상수도 공급업체인 SEMAPA는 다국적 기업 Bechtel이 주도하는 국제 컨소시엄인 Auas del Tunari에 임대됨. 이 민영화 과정에서, 수도 및 관계 시스템과 서비스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되었으며, 수도 요금이 급격히 상승함. 이에 대한 대응으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Coordinadora de Defensa del Aua y de la Vida’(물과 생명 방어를 위한 연합)를 결성하여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을 전개함. 결국, Aguas del Tunari는 쫓겨났으며, SEMAPA에 대한 통제권은 지방정부, 노동조합 및 물과 생명 방어를 위한 연합의 대표에게 이양됨. 여전히 SEMAPA는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코차밤바의 ‘물 전쟁’은 볼리비아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촉발함. 볼리바이는 2000년에 민영화법 2029를 철회했으며, ‘식수와 위생 서비스 법’을 2006에 제정함. 지방분권형 관계수로 거버넌스를 인정하는 법 2878과 함께, 이 법은 토착 원주민과 농장 노동자들이 지역의 물을 보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함. 2009년, 볼리비아는 헌법을 개정하여 물의 민영화 및 영리 조직에 의한 물 서비스 사업을 금지함8). 이외에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시민주도 물 관리9), 파리의 수자원 인프라, 공급 및 위생 시설의 재지방정부화 사례도 참고할 수 있음10)
3) 독일 함부르크 전력망 재공영화 사례
- 2000-2014년까지 함부르크의 에너지 인프라는 독일 전력 인프라 대부분을 통제하는 Vattenfall과 E.On이 소유하고 있었음. 문제는 이 민간 에너지 업체들이 화석 및 원자력 발전소를 오랫동안 지속하려 해서,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큰 장애물이 되어왔다는 것임. 함부르크 시민들은 에너지 인프라를 함부르크 시가 재인수하도록 하는 안건을 2013년 주민투표를 통해 통과시킴. 이후 함부르크 시 배전 계통(Stromnetz Hamburg)은 현재 함부르크 시가 100% 소유하고 있으며, 모든 정당의 대표와 에너지 인프라의 재공유화를 위한 캠페인을 펼치는 조직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설립됨. 이후 함부르크는 기후 위기 대응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다각적으로 적극 펼쳐나가고 있음
4) 2011년 이탈리아 물 국민투표와 2014년 볼로냐 도시 커먼즈 규약 제정 사례11)
- 2000년대 초반 비판적 학술운동의 흐름 속에서, ‘공공유산, 공공재산, 사유재산’ 학술회의에서 참여 연구자들은 공공재 연구를 지속하기로 합의했고, 이 연구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법무부에서 기존 공공재 체제의 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공재 위원회’ 관련 법령을 만들고, ‘로도타 위원회(La Commissione Rodotà)’를 구성함. 로도타 위원회는 특히 나폴레옹 법전에서 빌여온 ‘데마니오(demanio: 양도할 수 없는 공공재)’ 개념에 주목하고, 데마니오가 당시 쉽게 처분·양도되는 민영화에 처했음을 파악함. 이후 로도타 위원회는 공공재가 시민의 공동재 또는 공동자원, 즉 커먼즈 자원으로서 관리될 수 있도록 공공재의 의미와 소유권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에 관한 입법화를 위한 보고서를 2008년에 제출함.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 속에서, 2009년 이탈리아 정부가 물 민영화 정책추진(모든 공공서비스와 경제관련 설비가 민간시장화될 수 있도록 함)을 위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대한 시민 저항이 일어났고, 로도타 위원회 일부 위원들이 물 민영화 번대 국민투표를 위한 국민발안을 추진함
- 2011년 4개 질문에 대한 국민투표가 이탈리아에서 시행됨
① 모든 공공서비스의 강제적인 민영화 프로그램 중단 여부
② 상수도 관련 ‘투자자본의 보수’ 연 7% 이상 보장 폐지를 통한 수도사업의 이익추구 동기 및 민간기업 인센티브 폐지
③ 이탈리아 핵발전 프로그램 재개 법 폐지
④ 베를루스코니 총리 사법적 보호 관련 법 폐지
- 민영화저지, 물, 핵발전, 정치 쟁점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만, 특히 ‘물은 곧 공공재/커먼즈’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가장 높았기에 ‘물 국민투표’라 불림.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물과 수도사업 민영화 저지를 위한 ‘물운동 국민포럼’이 사회운동단체, 비판적 연구자, 진보정당 등을 중심으로 사회운동 차원에서 조직되어 있었으며, 비록 상이한 정치적 입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커먼즈로서의 물’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서, ‘커먼즈로서의 물’이라는 국민투표 승리 플랫폼을 만들기도 함. 결과적으로 2011년 6월 12-13일 이틀에 걸친 국민투표에서, 총 2700만명 이상의 유권자가 투표했으며, 그 중 95%가 물 민영화에 반대함12). 물 국민투표 경험과 함께, ‘데마니오’와 커먼즈는 이탈리아 대법원의 중요한 결정들에서 인용되었으며, 시민사회운동 또한 커먼즈 차원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음 (로마 오페라하우스, 베니스 마리 노니 극장, 카타니아 코폴라 극장 등 점거 투쟁과 시민참여 공간 운영 실험). 이탈리아 볼로냐 시는 2014년 2월 참여적·숙의적 절차를 통해 시민들과 행정이 개인적·집단적 복지에 기여한다고 인정하는 여러 도시 인프라, 특히 공공공간, 공공건물, 디지털 플랫폼 등 물질적·비물질적·디지털 재화를 도시 커먼즈로 규정하고, ‘도시 커먼즈의 관리와 재생을 위한 시민과 시의 협력에 관한 볼로냐 규약(Regolamento Sulla Collaborazione Tra Cittadini E Amministrazione Per La Cura E La Rigenerazione Dei Beni Comuni Urbani)’을 제정함13)
5) 바르셀로나 협동조합 도시
- 스페인 바르셀로나시의 ‘협동조합 도시’ 모델은 여러 공공서비스를 시민들의 복합적인 삶을 위해 도시 정치차원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종합했는지를 잘 보여줌. 협동조합 도시로서의 바르셀로나는 여러 혁신적인 사례들(바르셀로나 악티바, 디지털 플랫폼 데시딤, 팬데믹 시기 비상 식량 및 돌봄 시스템 등)을 분산과 연결의 참여 민주주의에 기반한 ‘바르셀로나 엔 코무’라는 바르셀로나 시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는 커먼즈 실천 정치 네트워크를 통해 전개하고 있으며, 비록 최근 또 다른 정치적 도전에 부딪히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지역의 정치적 실험과 연결하여 스페인 중앙 정치의 오래된 보수적 양당 구조를 깨고 새로운 정치 공간을 확장한 주요한 정치적 실천으로 평가되고 있음
6) 주목할 지점
- 다양한 시민사회 주체들(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주민대표, 정당, 연구자 집단 등)이 동맹, 연합, 캠페인 단체 등을 구성하면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공론장와 실천활동을 펼쳤으며, 이후 이들은 민영화가 저지되거나 재공영화/커먼즈화된 공공재/공동재를 관리하는 공동 거버넌스를 정부와 함께 구축함
- 국민발안과 국민투표이 당시 전국 또는 지역 차원에서 가능했음. 이는 민영화 저지와 재공영화, 그리고 이것이 대안적인 사회민주적 공공성 비전과 전략 속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기회가 의회와 행정부의 결정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정치적 기회를 가능하게 함
5. ‘법안’에 대한 비판적·시론적 제안
<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지 및 재공영화 기본법> 제2조 2항 2. “공공부문”이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법인·단체 또는 기관을 말한다. 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나.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직영기업, 지방공사 및 지방공단 다. 「지방자치단체 출자ㆍ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출자기관 또는 출연기관 라.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 마.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 제2조 5항 “재공영화”란 민영화된 공공서비스를 다시 공공부문에 이전하여 제공·운영·관리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
- 기존 상식적 이해는 공공서비스를 법률이 정한 공공부문에 속한 공공기관, 단체, 공단, 기관, 법인 등이 직접 제공·운영·관리하는 것(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지 및 재공영화 기본법 제2조 2항과 5항)임. 이와 함께, 그리고 이러한 공영화가 후퇴하지 않고 사회민주적 공공성을(위 기본법 제5조) 실현할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 기본계획, 시행계획, 지역계획을 정부가 정기적으로 수립(제11조, 13조, 14조)하고, 공공서비스 주요 정책 및 계획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위촉하고 국무총리가 위원장, 기획재정부장관과 행정안전부장관이 부위원장인 공공서비스위원회(제15조)가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 선에서 동 법안에 담겨있음
- 그렇다면, 앞서 검토한 ‘현대 (한국) 국가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동 법안이 명시하는 기본계획 수립 절차와 위원회 구성방식이라는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넘어서서, 신 관료적 권위주의 통치 상황에서, 공영화·재공영화란 어떤 의미일까? 기본적으로 공공재와 공적예산을 사용하는 공공서비스가 사회민주적 공공성 확장 차원에서 시민 모두에게 정권교체라는 변수와 상관없이 지속가능하게 제공되기 위해서는 어떤 인식적, 정치적, 법적 변화가 필요할까?
- 공영화를 ‘정부의 운영·관리’라는 소유와 책임 주체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부나 민간기업의 재산이 되지 않고, 시장 상품으로 전환할 수 없으며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자유의 역량과 공동체의 공동 발전을 위해 누구나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고, 만들어지는 가치와 부를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수 있게 잘 관리하는 것’이라는 가치와 방식 차원에서 정의한다면 어떨까? 이를 위해서는 앞서 소개한 이탈리아 물 국민투표 사례를 심도 깊게 참조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물이라는 공공재 혹은 공공서비스를 어느 누구도 양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공공재, 즉 ’데마니오(demanio)’ 차원에서 인식하고, 이에 기반한 실천을 전개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함. 그렇다면, 우리는 공공 서비스를 어떤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는가? 공공 서비스를 한시적 대의제 권력기구, 공무적 책무 기관이 양도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건 어떤 (헌)법적 근거에 따른 것인지를 찾아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에 합당한 조치와 결론이 내려져야 함. 이런 차눵세 공여화를 적극적으로 재정의하고 이를 법안에 담을 필요가 있음. 따라서, 공공서비스는 이탈리아, 볼리비아, 미국의 ‘물’처럼, 바로 그 누구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없고, 사회민주적 공공성의 실현을 위해 사용·관리되어야 하는 이러한 새로운 공영화의 대상이자 공동재로 이해되어야 함
- ‘공영화’와 ‘공공 서비스’에 대한 더 급진적이고 발전적인 재정의가 필요한 것처럼, ‘국가’와 ‘정부’도 마찬가지의 재정의가 필요함. 정부는 통치 전략 차원에서 공공서비스의 사용·관리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숙의 민주주의 차원에서 개별 공공서비스는 물론 모든 공공서비스를 사회민주적 공공성이 추구하는 가치 실현을(생태적 전환, 사회경제적 전환, 정치적 전환) 위해 유기적이고 상호보완적으로 연결하고 재배치하는 전 사회적 기획을 위한 조력자이자 촉진자라는 시민사회의 파트너 국가/파트너 정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 나가야 함. 그 결과 혹은 목표로서, 공공서비스가 모든 시민의 삶을 보호하고, 존엄함을 지키는 기본적인 사회경제적 토대는 물론,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주권적 정치 권한을 자유롭게 행사하고, 포스트 민주주의와 신 관료적 권위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함
- 이를 위해서는 한편으로 기본법의 입법화를 위한 기존 정치적 실천(정당/의원 설득, 캠페인과 시위 등)이 중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위 이탈리아, 볼리비아, 미국, 독일의 사례처럼, 좀 더 거시적이고 급진적으로 국민발의, 국민소환, 국민투표의 법적 보장과 활성화를 위한 개헌, 참여와 숙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정당법과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와 함께, 공공서비스를 국유재산 그 이상으로 어느 누구, 특정 집단에게 양도되거나 배타적으로 의사결정될 수 없는 모두가 접근·사용가능하면서도 다음 세대를 포함해서 모두를 위해 민주적으로 공동관리해야 하는 공동재로 이해하고, 이를 다양한 규모와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커먼즈의 정치가 필요함. 즉, 궁극적으로 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지와 재공영화는 현실 입법 수준에 입각한 관련 법안 발의 이상으로, 정치의 영역, 시민의 정치적 참여와 관여 영역을 확장하는 국민 발안과 국민 소환제를 적극 제도화할 필요가 있음
1) 콜린 크라우치, 『포스트 민주주의: 민주주의 시대의 종말』, 이한 역, 미지북스, 2008; 샹탈 무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이승원 역, 문학세계, 2019 참조.
2) 탈정치란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좌우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다양한 민주적 경합의 공간이 축소되어서, 그 결과 대표성이 대표하는 집단과 이해관계 또한 축소되고 대중의 정치적 선택지가 줄어드는 민주주의의 후퇴 현상을 의미한다(샹탈 무페, 앞의 책 참조).
3) Stephen Gill, ‘Theorising the Interregnum: The Double Movement and Global Politics in the 1990s’ in Hettne, Bjorn (ed.),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Understanding Global Disorder, London: Zed Books, 1995 am, pp.399~423
4) 위의 글: pp.78~81; 1995b: “Globalisation, Market civilisation, and Disciplinary Neoliberalism”, Millennium: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vol.24., no.3., p.412
5) 신 관료적 권위주의는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에서 WTO(세계무역기구)로 바뀌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우리나라는 WTO, FTA, IMF,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질서로의 편입, 그리고 6자회담, NPT, 이라크 파병과 같은 외교안보 현안에 빠르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 정부는 통상, 안보, 국제관계, 국제법에 관한 엘리트 전문 집단을 중심으로 제한된 정보공유 속에서 필요한 국제협상을 신속히 진행했고, 이후 우리 사회는 시민들이 이해하고 적응하기도 전에 글로벌 스탠다드, 초국적 금융자본, 국제 통상 규범과 같은 낯선 전문 용어 속에서 새로운 전문 관료집단의 엘리트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6) 함께 고려할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1987년 6월 항쟁이 직선제 개헌을 이뤘으나, 전두환 정권을 계승한 노태우 정권이 민주적 제도로 선출되는 퇴행적 결과를 가져왔고, 2016년 촛불집회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되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세월호 참사 문제는 물론 부동산 가격 폭등, 가계 부채 증가 등 사회경제적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오히려 악화되면서, 탄핵된 대통령의 정당으로 정권이 다시 교체되는 역설적이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민주적 역설을 정치적으로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민주적 대중 투쟁의 성과가 기성 보수정당에게 귀속되는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학습효과는 새로운 정치 정당이나 정치 결사체가 제도적으로 등장하기 어려운 정치제도적 환경 속에서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현행 대의제 정치 제도를 혁신할 수 있는 시민들의 주권적 정치참여를 어렵게 하고 있다.
7) Shareable, 2018, ‘Sharing Cities: Activating Urban Commons: 198, https://www.storyofstuff.org, https://www.localwateralliance.org/
8) Roa-García, Urteaga-Crovetto &Urteaga-Crovetto, 2015 참고
9) Viero & Cordeiro, 2003, https://prefeitura.poa.br/dmae
10) TNI, 2014; Kishimoto, Lobina & Petitjean, 2015; http://www.remunicipalisation.org/
11) 주요 사건 전개과정은 정영신의 논문 “이탈리아의 민법개정운동과 커먼즈 규약 그리고 커먼즈의 정치”(2022, 환경사회학연구 ECO, 한국환경사회학회, 26권 제1호, 93-139) 함
12)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찬성 95.35%, 반대 4.65%, 두 번째 질문 찬성 95.80%, 반대 4.20%, 세 번째 질문 94.05%, 반대 5.95%, 네 번째 질문 찬성 94.62%, 반대 5.38%의 결과가 나왔다(Eligendo, 2011)
13) Bollier, 2015; The Urban Media Lab, 2014
글 | 이승원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3년 10월 12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