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실험 ‘서울혁신파크’, 어떻게 볼 것인가
김상철 (서울재정네트워크 운영위원)
그간 서울시의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도 ‘서울혁신파크는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은 답하기 어렵다. 분명히 기존 건물을 사용하는 이질적인 공간으로서 혁신파크는 분명히 흥미로운 물리적인 환경이지만 그것이 실제 운영과 성과의 측면에서도 차별적이었나라는 점에서 확신할 수 없다. 혁신파크를 발신지로 하는 다양한 논의들은 충분히 이질적이지만 그것이 혁신파크라는 집산지로서의 속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곳에 입주한 중간지원조직의 사업이 가진 특징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서울혁신파크는 분명히 이질적이고 특이한 공간이긴 하지만 앞서 말한 특이점들이 구태여 그와 같은 공간을 반드시 필요로 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제도화된 혁신공간이라는 역설
사실 사회혁신 혹은 혁신OO은 대개 결과와 동시에 과정적 의미에도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본질에서 어긋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제도의 내부로 기입되는 순간 전통적인 행정의 문법이 기입된다. 즉 혁신이라는 원심력과 제도라는 구심력이 경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제도화된 혁신은 끊임없이 갱신을 통해서 경계선의 위치를 모색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제도의 영토 내에 새로운 개념 장치들을 이식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혁신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전통적인 행정의 성과 구조를 넘어선 가치를 재구성함으로써.
서울혁신파크의 제도적 위치는 조례라는 규범을 통해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서울특별시 서울혁신파크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는 서울혁신파크에 대해 ‘사회혁신의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고 사회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치 운영하는 일체의 시설’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조례 제2조 1호). 해당 조례는 명확하게 시설물에 대한 조례다. 그것은 이 조례 어디에도 정작 해당 시설의 목적인 사회혁신이 무엇이고, 그것의 생태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사회혁신이 대상으로 삼는 ‘사회 문제’가 어떻게 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사회문제에 대한 혁신적 해법 도출’이나 ‘새로운 혁신 아이디어 및 비즈니스 모델 연구’ 같은 것을 서울혁신파크의 기능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조례 제 제3조 1호, 2호). 오히려 조례의 대부분은 서울혁신파크라는 물리적 시설의 임대와 사용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즉 공공시설로서 서울혁신파크에 대한 관리 규정이 핵심이다. 알다시피 사회 문제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하는 것에 가깝다. 익숙한 현상을 문제로 재규정하는 것은 혁신정책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핵심적인 이유다.
하지만 조례가 제정된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혁신파크라는 공간은 새로운 문제의 발명이나 오래되었지만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의 새로운 해결 방안, 즉 혁신정책의 맥락에서보다는 오히려 해당 공간에 누가 새롭게 입주하는가라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회자되었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2017년 서울시와의 업무협약을 통해서 서울혁신파크에 설치된 ‘비전화공방 서울’ 사례를 보자.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고에너지 비용의 시대에 가급적 전기와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보자는 기술적 방법을 개발하는 비전화공방의 철학은 매우 중요하다. 서울시는 업무협약 이후 매년 1년 기간의 비전화제작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했고 서울혁신파크 내에 비전화까페를 설치해 운영했다. 연간 12명 정도의 제작자가 배출되다 보니 사업 자체의 성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공공재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홈페이지는 사라진 지 오래고, 제작자들이 운영하던 블로그는 2019년 2월을 마지막 게시물로 멈춰있다. 적어도 재정이 투여된 과정인 만큼 사업 결과의 공유가 필요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비전화공방 서울’의 실험들은 최소한의 정보도 없이 소실되었다.
표명된 가치체계와 미끄러지는 성과지표
2022년 12월, 은평상상컨퍼런스에 참여한 윤명화 서울혁신파크 센터장은 서울혁신파크가 ‘시민난제 해결. 혁신모델 창출’을 핵심으로 하는 거점모델이고 ‘시민시험실이자 안전한 시민 공원 조성’이라는 시민모델로 제시했다. 이런 설명은 2014년에 제정된 조례의 서울혁신파크 기능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의아한 것은 2017년 보수단체에 의해 청구된 공익감사 청구가 감사원에 의해 수용된 이전에 서울혁신파크에서 운영했던 혁신파크 운영개선TF에서 제시된 ‘혁신의 숲’ 모델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해당 TF의 구성원이었던 당시 이강오 서울어린이대공원 원장은 시 재원에만 의존하는 투입에서의 한계, 성과와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결과물 도출 전략 부재라는 결과에서의 한계,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성과 부재라는 성과에서의 한계, 대중적 영향력이 미약한 사회적 영향에서의 한계를 지적헸다. 이에 대한 극복방안으로 민간의 사회혁신 자원의 활용/유치 확대, 자율적이고 책임있는 의사결정 구조 보장, 영향력을 만드는 성과측정 방법 도입, 임팩트 리포트 작성과 같은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새로운 수탁기관은 서울혁신파크를 한 편으로 열린 공간, 다른 편으로 해방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수탁기관이 등장했음에도 정작 TF에서 제시된 과제들은 등장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최소한으로서 2014년 조례로 회귀하고 말았다.
이런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2021년에 공개된 ‘서울혁신파크 애뉴얼리포트를 위한 성과분석 보고서’다. 2017년 당시에 제시되었던 성과와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결과물 도출 전략으로서 성과분석의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집행된 결과다. 해당 보고서는 2015년에서 2020년까지의 창출 성과를 한 편으로, 2021년의 창출 성과를 다른 한 축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런 구성은 2015년에서 2020년까지 단 한 차례의 성과분석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서울혁신파크의 사업목적을 사회혁신 영향력 확대, 사회혁신 시민체감도 제고, 이해관계자 협력 강화라는 사업과 연관된 지표와 파크 공간시설 운영 안정화, 입주단체 혁신활동 지원 강화, 파크 공간 활성화 라는 입주단체 및 공간 지원 및 관리와 연관된 지표로 구분했다. 이 보고서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개별 사업은 125개인데, 개별 사업에 복합목적을 인정하여 목적별 사업으로 260개로 중복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2015년에서 2020년이 되면서 하나의 사업에 3개 이상의 중복 목적 사업이 늘어났다. 이는 개별 사업의 구체적인 성과 지표가 모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특히 2020년으로 오면서 하나의 단위사업에 포함된 세부사업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과 2019년의 경우에는 아예 공간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상당한 규모로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사업목적별 사업의 경제적 가치를 계량화함으로써 서울혁신파크의 성과를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정작 서울혁신파크의 주요한 역할인 사회문제의 도출과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의 창출이라는 것은 성과 평가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서울혁신파크의 핵심적인 역할은 성과평가 과정에서 고려되지 못한 셈이다.
다시 2009년으로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혁신파크 개발 계획은 2009년 과거 오세훈 시장에 의해 추진되었던 개발계획을 일부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2014년 해당 부지 내 공공기관 이전이 완료된 후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에는 호텔 컨벤션 구역, 어린이복합문화 구역, 혁신문화 구역, 혁신업무 구역이 포함되어 있다. 달라진 것은 좀 더 고밀도 개발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고 또한 민간사업자의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SH공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서울시가 해당 부지를 SH공사로 현물 투자로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이 방식은 한강 위에 설치된 세빛섬 민간투자사업에 대하여 사업자의 투자 리스크를 완화하고 추가 대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식이다.
아쉬운 것은 2022년에 등장한 개발계획이 강조한 혁신파크 부지가 ‘저개발 되었다’는 알리바이를 제공한 것이 전임 시장 시기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새롭게 서울혁신파크로 활용한다고 할 때에도 기존 계획에 있던 호텔 건립 계획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후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하기로 함으로써 명시적으로 있었던 호텔 건립 계획이 추진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를 전제로 하고 있던 이해관계자들 입장에서는 호텔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맥락이 소위 전임 시장과 정치적 입장이 유사한 지역 정치인에 의해 ‘서울시립대 제2캠퍼스 건립’이라는 맥락으로 증폭되면서 더더욱 ‘저개발’이라는 논리를 강화하게 된다. 2020년 1월에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에는 제2 캠퍼스외에 서울연구원의 이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현재와 같은 서울혁신파크가 계속 존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가능성을 강화한 것은 전임 서울시장 시기에서 였다. 현재 서울시는 모든 정책에서 2011년과 2022년을 직접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오세훈 시장이나 서울시 내부의 관료들은 2011년 이후 근 10년에 이르는 시기를 예외적 시기이고, 그래서 바로 삭제하더라도 사업 단절로 인한 리스크가 거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실제 정상훈 서울시 행정국장은 2022년 11월 25일에 진행한 서울시의회 상임위 회의에서 “시범사업이라는 단계를 지나서 충분히 할 만큼 했고 이제는 성과가 나와야 할 시기도 한참 지난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판단하기에”라고 언급했다. 사실상 실패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서울혁신파크의 미래?
현재 서울혁신파크는 2024년 전면 철거를 앞두고 입주단체를 퇴거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관리업무만 진행되고 있을 뿐, 지금까지의 혁신파크 실험에 대한 아카이빙 같은 정리 사업도 없는 실정이다. 2023년의 시기는 서울시의 정책방향이 결정된 상황에서 잠정적으로 추가적인 조치가 동결된 공간이자, 서울시의 재정지원 등 제도적 자원에서 배제된 이들이 자리를 고수함으로써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때다. 또한 과거 광화문광장 논의에서 처럼 도시의 공간을 근린성 만 주목해 의사결정 구조의 위계를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서울혁신파크는 은평구 공간이 아니라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울혁신파크는 서울의 문제를 모으고 이를 해결하는 새로운 경로를 발견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기존의 서울혁신파크에 제도 그물이 걷히고 진부한 지역발전 논리에 기댄 개발 계획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이 혁신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혁신파크의 시기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글 | 김상철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심여은, 김석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3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