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고 | 서평「깻잎투쟁기」

5월 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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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깻잎투쟁기」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과정 심여은


저자 | 우춘희

출판사 | 교양인

어느 이주민 노동자의 죽음

이야기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 속헹씨의 사망 사건을 보도하며 시작된다. 그녀는 비전문 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극도록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서 밤낮없이 일하다가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생전 그녀가 한국에서 살고 있었던 거주지는 비닐하우스 안에 설치된 임시 건축물로, 건축법상 허가가 나지 않는 형태의 거주지였다. 저자는 장기간 동안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는데, 모두 속헹 씨가 겪어왔던 여러 문제점들을 마찬가지로 경험하고 있었다.

속헹 씨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서 생활하게 되었다. 저자가 만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개정된 고용허가제는 정부 기관의 취업 알선을 통해 지원자가 권리를 일정 수준 보호받는 노동자로서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며, 최대 4년 10개월의 근무 기간을 보장해 준다. 이 제도는 이전의 산업연수생 제도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인 법적 권리 미보장과 불법체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개정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선발되기 위해서는 한국어 시험과 기능수준 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고용주의 선택을 받고 합숙 훈련에 참석하는 등 녹록치 않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고용허가제가 ‘합법’이라는 명목 하에 도리어 근로자에 대한 고용주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는 사업주의 허락 없이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게 되었고, 옮기게 되더라도 많은 제약 조건이 작용했으며, 근무지를 무단이탈 할 경우 불법체류자로 간주되어 강제출국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4년 10개월의 리미널리티

2020년 저자는 깻잎 농장에 현지조사를 가며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연구하였다. 깻잎은 고용허가제와 크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계절의 영향을 타 작물에 비해 덜 받아 일을 더 많이 부여할 수 있는데다가 단위면적당 소득이 높아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본래 배추 농사를 지었던 김미자 씨 부부는 나이로 인해 외부 노동자를 고용하려 했지만, 한국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계절의 영향을 받아 노동집약성이 덜한 배추는 정해진 기간 (4년 10개월)을 근무해야 하는 이주 노동자를 고용주 입장에서 경제적인 선택이 되지 못했다. 결국 부부는 배추에서 깻잎으로 작물을 전환하였다. 김미자 씨를 비롯한 농민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무조건 복종한다며 다루는 데 매우 편리하다고 말하였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수익성만 따지는 셈이다.

자연히 노동자들은 근무 과정 중 여러 문제를 겪었다. 가장 대표적인 난관은 쓰레이응 씨가 경험했던 임금체불이었다. 물론 정부가 개정한 법에 따르면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이상 근로자가 사업장에서 일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고용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아는 노동자들은 거의 없었으며, 따라서 속수무책으로 참았다. 근무 기간 동안 사업장 변경이 없으면 본국에서 3개월 체류 후 4년 10개월을 추가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 ‘성실 노동자 제도 역시 불합리한 제도에 순응하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하였다. 근로시간 11시간, 휴식 3시간이라는 명시적인 기준을 제시한 근로계약서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례로 깻잎 농장에서 사업장을 변경한 니몰씨는 실질적으로 기준치의 근로시간 내에 끝낼 수 없는 일의 양을 할당 받았으며, 초과된 시간은 근로계약서에 따라 근무시간에서 제외되었다.

각종 외부 위험에 노출된 근무환경도 큰 문제를 야기하였다. 사망한 속헹씨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이 화장실과 같은 생활 시설이 갖추어 있지 않고 위생적이지 못한 불법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에서 상시로 거주하고 있었다. 2017년 정부는 자율적으로 관리되었던 기숙사비 징수가 초래하는 무분별한 지출을 해결하고자 주거시설과 제공 서비스에 따른 기숙사비 상한선인 숙식비 징수 상한선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도리어 기숙사비를 징수하지 않았던 농장까지 최대한으로 징수하게 유도했고, 속헹 씨의 사망 이후에는 불법 시설에 대한 고용불허가 계획이 발표되면서 노동자들은 상시 거주 시설에 살며 더 많은 월세를 지불하게 되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남성 사업주들이 행하는 성폭력으로부터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신고를 해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오히려 강제추방의 위험성을 안게 된다. 깻잎 농장에서는 빠른 시간안에 다량의 작업을 수행해야 하였기에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이 쉬거나 화장실에 가는 시간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많은 근무자들이 방광염 등 병에 시달렸지만, 농장에서 일하게 될 경우에는 제도 간 충돌로 인해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4년 10개월을 초과하여 근무하면 노동자들은 미등록 노동자, 즉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다. 하지만 불안정한 신분은 급하게 노동자를 구하는 농가와 협상 조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더 높은 임금과 삶의 질을 보장해줄 가능성까지 가져다 주었다. 향상된 조건은 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신분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들은 언제든지 더 좋은 조건이 마련된 일자리, 특히 제조업 분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조업은 농업에 비해 고용노동자 선발 시부터 더 높은 임금과 낮은 업무 강도로 인해 경쟁이 치열하며, 제조업 종사자는 농업 종사자와 달리 직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직장 가입자로서 국민건강보험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부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저자는 농업 분야의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농민들의 관행 준수라는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고용허가제가 이들을 사람이 아닌 ‘인력’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인력은 노동력과 비교될 수 있는데, 노동력은 생산을 위한 자원에 해당된다. 즉, 고용노동자들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고, 효율성을 위해 비용 절감이 필요한 ‘부품’인 셈이다. 또한 대다수의 고용노동자들은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오는 경우가 많기에, 열악한 생활환경에도 만족할 것이라는 인식이 기저에서 작용하는 듯 보인다. 실제로 저자가 만난 많은 노동자들은 본국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환경에서 생활한 경우가 많았으며, 이들 역시 자신들의 거주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결국 한국의 사회 골칫거리라고 인식되는 불법체류자 문제의 근원은 노동자의 개인적인 일탈이라기보다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이 기저에 존재함에 따라 정부의 해결방안 역시 이주 노동자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에서 언급된 국가 계획의 실패 요인인 향상된 가독성와 하이 모더니즘 이데올로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숙식비 징수 상한선은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기숙사비 부담을 증가하였고, 귀화 및 영주권 취득의 장벽을 높여 노동자들을 지속적인 감시 환경에 놓이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책들을 무작위로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수동적인 부품이 아닌 주관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즉, 무조건적인 통제가 아니라 합법적인 선 안에서 노동자들의 선택의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일굴 수 있을 것이다.  

글 | 심여은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김석준, 심여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3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