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이어달리기라는 말을 제가 되게 인상 깊게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러니까 혼자 무언가 시작해서 다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가 이미 해놓았던 거로부터 뭔가 얻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시작하기도 하고, 남들이 뭔가 하고 있는 거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 그런 작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전공과 관련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인적 분야에서 뭘 하고 있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는지를 듣는 게 되게 큰 공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기에는 신문연이 참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웃음)’
2023년부터 웹진 공유도시 팀은 ‘마포-신촌’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지식 공유 활동이 꽃피우고 있는 다양한 현장을 직접 취재하여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 중 두번째로, 2019년부터 다양한 젊은 연구자들이 학교와 학문의 경계 넘어서 신촌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이하 신문연)을 찾아가 보았다.
최근 MZ세대, 청년 담론에 대해 높아지는 사회적 관심과는 달리, 점점 묻혀가는 젊은 연구자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적극적인 메시지와 활동을 개진하고 있는 신문연의 연구원이자, 전∙현직 이사장인 이준형, 정보영 선생님을 만나 신문연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소개
Q: 우선 준형님과 보영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저는 신문연 연구원으로 2019년 창립 때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 이준형입니다. 올해 초까지는 이사장 역할도 잠깐 했었고, 저희가 비영리 사단법인이어서 대표자 역할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언론학 베이스의 문화 연구 공부를 하다가 최근 2월에 박사 졸업을 했고, 지금은 신문연에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언론 노조라는 곳에서 전문위원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 저는 신문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보영이고요, 지금 중앙대 사회학과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어요.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사회 운동입니다.
Q: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의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 창립할 때 모였던 멤버들의 입장이나 니즈와 같은 부분들이 서로 다르긴 했을 것 같은데, 제 입장에서는 신문방송학이라는 분과 학문 체계 안에서 공부를 석사 때부터 해 오면서 동료들이 좀 부족해지는 측면이 생겼고, 여기서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이 느껴졌습니다. 대학원생들은 많지만, 제가 공부하는 문화 연구라는 영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거나 아니면 숫자가 적거나 이런 일들이 있어서 공부 모임을 좀 많은 사람들이랑 해보고 싶다는 니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서강대에서 공부를 했는데, 가까이 있는 연세대에 문화 연구하는 친구들이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 많아서 그 친구들이랑 이제 공부 모임을 우연하게 시작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제 연세대나 서강대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들의 연구자들이 알음알음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언론 베이스가 많았는데, 확장을 하다 보니 사회학이나 비교 문화 등등 여러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공부 모임이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학술운동단체 형식으로 발전을 하게 된 사례라고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단체를 만드는 데 익숙한 경험이 있는 친구가 있었던 것도 한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그렇다면 어떻게 보면 한 단계 레벨업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소규모 공부 모임에서 학술운동단체로 만들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이: 사실은 공부 모임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이때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매년 콜로키움을 하고 있었어요. 자기들끼리 발표하고 토론하고 학과 내부 행사처럼 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 공부 모임하고 연관 지어서 좀 크게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콜로키움을 같이 준비하는 학회 준비단처럼 한번 같이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를 좀 연속성이 있게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던 것 같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법인화나 조직화에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안 계셨으면 그냥 모임으로 마무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경험들이 이렇게 상황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는 7~8명 정도로 그렇게만 시작을 했고요, 지금은 연구원은 한 10명 정도 되고 회비를 내시는 회원이 한 120명 정도에 계셔서 회비를 재원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Q: 그러면 보영님과 준형님도 창립시기에 공부 모임에서 만나신 건가요?
정: ‘문화연구포럼G’를 준비하던 모임이 하나 있었고 또 청년 연구하는 분들 모임이 하나 있었는데 그 두 가지가 합쳐져서 이제 만들어진 거고, 포럼에서 저희가 처음 만나기는 했죠.
이: 연대 대학원의 콜로키움 ‘문화연구포럼G’가 신문연보다 먼저 시작했고 두 번째 하고 나서 이렇게 조직이 됐던 것 같아요.
신문연의 공간
Q: 최근 웹진 공유도시 팀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마포-신촌 지역에 인문사회 연구 공동체가 정말 많이 있다는 점인데요. 신문연 이름에도 신촌이라는 지역의 이름을 붙인 것이 어떤 배경이 있는지, 또는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신촌에서 대학 다니는 사람들만 오는 곳인지에 대한 오해가 있기도 한데, 연구소 이름 앞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이를 테면 ‘서교인문사회연구실’도 그렇고, ‘과천연구실’ 혹은 예전에 있었던 ‘망원사회연구실’ 같이 일종의 트렌드에 편승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름 짓는 게 어려운 만큼, 그동안 모임을 신촌에서 많이 해왔고 공부 모임이나 아니면 학회 포럼이나 그런 것도 신촌에서 많이 했으니 신촌이라고 이름을 붙이자고 결정한 것 같습니다. 아주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정: 당연히 제한을 두고 있는 건 아니지만, 초기에 ‘문화연구포럼 G’를 준비하던 사람들의 소속이 대부분 신촌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해요. 문화 연구를 공부할 수 있는 학교들이 점점 더 줄어가고 있거든요. 근데 몇몇 안 남은 그 당시에, 이제 전공들이 신촌을 중심으로 또 있어서 그렇게 시작이 됐던 것이고, 신촌에 자리를 잡고 보니까 마포-서대문-신촌 이쪽 지역에 같이 연대할 수 있는 학교, 연구단체들이 많이 있어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근데 이제 위치의 의미가 더 크고 신촌에 대한 무언가를 하겠다. 이런 거는 아니죠.
이: 안정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여기서 주로 하니까 활동을 그냥 마치 ‘신촌 마트’처럼 큰 의미 부여 없이 이름 붙인 거 아닌가 싶어요.
Q: 최근에는 신촌역 근처로 연구실을 이사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연구실에 대한 소개와 그동안 마련해오신 연구실 공간의 이주 경로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정: 신촌을 너무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임대료가 저렴한 사무실을 구하다가 처음에는 공덕 쪽에 있었고 그 뒤에는 이대 근처, 그리고 여기가 이제 세 번째 사무 공간으로 마련을 한 곳이에요.
그전에는 사무실 자체가 이 방만 있다고 말할 수 있죠. 이거보다 조금 더 크거나 이만한 작은 방에서 시작을 했어요. 그때는 이제 회원들이 많지도 않았고 아까 저희 연구실에 들어와 보셨지만 개인적으로 자리가 있잖아요. 근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어서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이만한 게 하나 있었던 것 같고, 테이블 자리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외부 공간을 찾았었어야 했어요. 그래서 계속적으로 좀 더 큰 공간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Q: 현재 입주하고 있는 공간인 ‘더 컬쳐럴’에 대해 조금 더 소개를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 여기는 연구원 중에 한 명이 어떻게 좋은 기회가 돼서 사업을 시작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 문화 공간 대여 사업을 시작을 했고, 그러면서 신문연이 한 방에 월세를 내는 형식으로 입주를 하게 되어서, 사실 ‘더 컬처럴’이라는 공간을 신문연이 잘 빌려서 활용하고 있는 거죠. 물론 비용를 지불하긴 하지만, 인터뷰나 세미나를 할 수 있는 방이 있어서 편하게 사용하고 덕분에 자영업을 운 좋게 하게 돼서 계기가 좋아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정: 저희는 지금 완전 분리된 법인이라 더 컬쳐럴에 대해서 엄청 자세하게 다루는 게 맞나 싶기는 한데, 사무실을 옮기다 보니까 공간에 대한 소중함이나 필요성을 너무 절감해서 그런 와중에 공간을 열기로 결심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학술 단체들이 학술 이벤트를 열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그럴 때마다 민간 공간을 대여하는 데 비용을 많이 지출해야 했거든요. 저희가 원래 총회나 큰 모임을 하게 된다면 밖에서 공간을 빌려서 추가 지출을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다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Q: 공간이 주는 중요성이 큰 만큼, 현재 연구실에 오기까지 많은 노력과 자원이 필요했을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공덕이나 이대로 연구실을 옮기는 과정에도 회원 수는 계속 늘어난건가요?
정: 네, 회원분들이 계시니까 그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재원도 생기고 또 찾아오실 수 있게 되었어요. 이만한 공간에 있으면 회원들이 오셨다가도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회원분들 오시면 밖에 계실 수도 있고 안에 연구실에 저희랑 같이 계실 수도 있고, 행사도 다양하게 열리니까 더 익숙하게 공간을 방문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계속 회원분들이랑 교류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더 큰 공간을 찾게 됐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근데 이제 저희도 어떻게 보면 정말로 연구원들이 자기 공부하는 공간인데 회비를 받아서 운영하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제 최대한 우리가 회원분들의 회비를 받아서 운영되는 사단법인이라는 인지를 계속하고 이제 회원분들이 같이 모여서 학습하고 연구하는 분위기나 문화를 만들어감으로써 이제 보답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거죠.
Q: 연구원으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과 회원분들은 주로 어떻게 공간을 사용하나요?
정: 개인 공부를 하실 때는 밖 공간은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으세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혼자 오셔서 공부가 필요하다 하면 아무 때나 오셔서 여기 밖에 홀 공간을 이용하실 수 있는 있는데, 홀이 차 있으면 여기에 들어오신다거나 그렇게 항상 한 공간을 비워두거든요. 근데 이제까지 그렇게 운영을 하고는 있는데 대부분 엄청 많이 오시지는 않으세요. 그러다 보니까 밖에 그냥 혼자 계시지 말고 안에 들어오시라고 해서 연구실에 같이 각자 할 일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있었던 것 같아요.
신문연의 활동
Q: 신문연에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고, 방학 때마다 세미나도 꾸준히 개최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올해 미리 염두에 두고 계신 행사나 아니면 가장 최근에 진행했던 행사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이: 저희 겨울 방학 시즌에 ‘문화연구포럼G’를 했었고, 올해 6번째 포럼을 진행을 했고. 말씀하신 신문연 세미나도 진행을 해서 최근에 3월달에 다 마쳤습니다. 세미나는 약 6주에서 7주 진행을 했던 것 같고, 그리고 저희가 어떤 안건을 결의하거나 예산을 심의하거나 아니면 임원을 선출할 때 회원총회를 개최하고 의결을 해야 돼서 회원총회도 개최를 했었죠.
그리고 달 마다 ‘리서치 톡G’라고 ‘프로포절의 프로포절’이라는 부제도 있는데, 원고에서 갈팡질팡하거나 코멘트를 듣고 싶은 원고를 들고 와서 같이 얘기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신문연 칼럼’이라고 이 연구원들이 이제 매주 한 편씩 칼럼을 작성하는 사업도 진행합니다.
올해 새롭게 하려고 하는 사업 중 하나는 예전에도 진행했었던, 문화연구 영역에서 생산되는 어떤 논문이나 책들을 계속 갈무리하고 리뷰하고 알리는 ‘문화연구 아카이브’고, 다른 하나는 공동 연구 작업으로 자체적으로 연구원들끼리 연구 사업 진행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 사업을 쭉 놓고 보면, 이제 연구자들이 물론 학교나 학과라는 소속이 있지만 거기에 완전히 기댈 수 없는 사람도 외롭지 않게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자라는 취지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질문이 있을 때 그걸 공부해 볼 수 있는 ‘신문연 세미나’, 그리고 내가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 어려움을 느낄 때 동료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리서치 톡’, 그리고 이후에 주제를 발전시켜서 어느 정도 원고를 작성했을 때 그거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문화 연구 포럼’ 이런 식으로 쭉 연구하는 과정의 단계에 맞춰서 저희가 세팅을 해 놨거든요.
그래서 이 과정들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우리가 직접 연구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체 연구 사업도 시도를 해보려고 올해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각자 선생님들이 가장 애정하고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정: 다 다르죠. 저는 아까 얘기했던 ‘리서치 톡’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저는 ‘신문연 세미나’입니다. 세미나는 다들 하는 거지만 뭔가 장기적으로도 할 수 있고 단기적으로도 할 수 있고 프로그램들을 잘 만들어 놓은 것 같아서 방학 때도 하고 학기 중에도 해서 저는 세미나를 제일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프로그램이 꾸준히 자리잡게 되면서 이제는 어떻게 보면 이제 새롭게 연구를 하고 싶어 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굉장한 도움이 될거 같아요.
정: 저희도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지금은 서로서로 돕는 것 같아요. 저희가 막 이렇게 선후배처럼 위계를 두거나 하는 시스템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런 게 없지 않아 있겠죠. 당연히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연구를 꼭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구의 형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연구를 시작했다 하면 그거에 맞춰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같고, 다들 학위 과정을 지내면서 아쉬웠던 것들을 여기서 좀 사업으로 푸는 느낌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런 프로포절을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 프로포절을 해보니까 내 연구 이야기를 제대로 안 듣는 것 같다는 불만이 들었어요. 그래서 진짜 잘 들어주는 자리를 마련해보자 해서 만든 게 ‘리서치 톡’이고. 이런 식으로 저희가 겪어왔던 어려움들에 기반해서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도움이 된다고 보면 볼 수도 있겠네요.
Q: 행사를 준비하시거나 조직을 운영하시면서 생기시는 어려움이나 고충 같은 건 없으신가요?
이: 많죠. 일단 조직이 굴러가야 되니까 계속 처리해야 될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회원 관리라든지 아니면 법인이 법인 사무나 회계와 같은 부분들을 나눠서 맡아야 되는 일들이 생기니까요. 공부만 하고 싶어서 참여하고 왔는데 그런 일들까지 맡아야 하는 게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곤함 같은 문제도 있을 것 같긴 하고요.
그 다음에 여러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또 같이 뭔가를 할 때 버겁게 만드는 사람들이 올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조직 관리 차원에서 잘 융화를 시키거나 아니면 선을 긋는다던지 이런 인사 관리 측면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꼭 내부 문제라기 보다는, 같이 연대를 한다거나 아니면 외부인이 온다거나 했을 때도 뭔가 그런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는 거죠.
정: 기본적으로 사람하고 같이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오는데 편안하고 기댈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 공간을 많은 분들이 이제 안전한 공간으로 느끼게 하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Q: 그러면 연구원과 회원들은 꾸준히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시는 편인 건가요?
정: 네 저희가 민간 단체가 아니라 비영리 사단법인이라서 법인 사무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프로그램들이 운영이 되려면 각각 사업에 개별 연구원들이 한 명씩 붙는 담당자 체계가 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고용을 하는 게 아닌데, 다 자발적으로 연구원들이 그런 걸 맡아주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점검하고, 새로운 사업 기획하고, 지난 사업들은 평가하는 등 여러 작업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연구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회원분들이 거기에 그런 의견 같은 걸 내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이제 온라인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각 사업에 대해서도 참여해보신 분들이 의견을 주신다거나 아니면 안 해봤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와서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하는 자리를 좀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어려운 거죠. 사람이 다 원하는 바가 같을 수가 없고 다 다른데 그거를 조정하면서 이제 해 나간다는 게 제일 어려운 미션이죠.
이: 그래도 오히려 젊은 연구자들끼리만 모여있다보니깐 이런 걸 해보자 하면 추진도 되고 뭔가 경로 의존성이 없잖아요. 무언가를 해오셨던 게 있으면 그걸 좀 따라가게 되는데, 그런 게 없다 보니까 좀 다양한 사업들이 막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Q: 최근에는 전장연 투쟁 관련해서 마포-신촌 지역의 연구자들이 모여 지식인들의 지지 선언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앞서 얘기했다시피 굉장히 많은 연구 단체들이 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에 이런 연대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신문연은 이러한 연대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궁금해요.
이: 어쨌든 저희가 공부하는 분야들이 사회학이 됐건 연구가 됐건 어쨌든 일종의 나은 사회를 만들고 하자 하는 그런 욕망들이 있는 공부인데, 그런 게 사실 아까 ‘리서치 톡’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무도 안 읽고 아니면,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게 소통이 안 되고 교류가 안 되면 의미가 반감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이런 학술 단체들이 또 다행히 주변에 많이 있고,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계셔서 같이 공부 얘기도 하고 그냥 사회 현안에 대해 의견도 같이 내는 것처럼. 공부하는 목표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이거나 그거를 잘 실현해 줄 수 있는 방향을 잘 제시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희는 전장연 시위에 연대하는 일뿐만 아니라 기존에도 연구 관련 사업들을 계속 같이 해왔어요. 세미나를 같이 한다거나, 여름에 ‘문화연구캠프’라고 하는 행사를 조직한다거나, 아니면 이론과 방법론을 다루는 ‘문화연구 썸머스쿨’이라고 해서 여러 단체들의 선생님들이 오셔서 강의도 하고 이런 행사들을 계속 해왔거든요. 지금은 ‘전국 문화연구자 네트워크’라고 해서 ‘전문넷’이라고 저희가 부르면서 좀 느슨하게 모여 있는데 활동 자체가 신문연이 처음에 좀 같이 젊은 연구자들끼리 연대해서 뭘 뭔가 해보고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자라고 했던 취지를 좀 확장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도 적극적으로 가능한 한 연대하려고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정: 근데 새 단체를 만든다고 하면 기존 단체들은 사실 싫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다른 영역에서 이제 운동 경험을 했을 때 일단 비슷한 유형의 단체가 생긴다면 ‘뭐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이전에 이제 관계들도 있어서 그런 걱정을 많이 하진 않았는데, 다행히 이제 앞서서 그룹들을 만들어 오셨던 분들이 왜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해 주셨고, 오히려 저희한테 엄청 지원해 주시고 도와주셨던 것 같아요.
특히 초기에 저희가 기반이 없을 때 자꾸 저희를 찾아와 주시고 후원도 해 주시고 밖에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저희한테 같은 주제를 다루는 여러 단체들이 있으니까, 입문자들이 찾아가기 쉬운 단체가 될 수 있도록 포지셔닝을 잘 해보자고 하시는 등 저희의 그런 이미지까지 상담해 주시고, 신문연에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보이면 방문하라고 추천도 해 주시면서 처음에 자리 잡을 때 도움을 되게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Q: 웹진을 구독해주시는 분들 중에는 연구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학부생, 대학원생 혹은 젊은 연구자들도 많이 있는데, 이들에게 어떤 말을 전달해주면 좋을까요?
이: 신문연에 오시라고 해주세요(웃음)
뭔가 혼자 공부하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공부는 이어달리기라는 말을 제가 되게 인상 깊게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러니까 혼자 무언가 시작해서 다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가 이미 해놓았던 거로부터 뭔가 얻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시작하기도 하고, 남들이 뭔가 하고 있는 거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 그런 작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전공과 관련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인적 분야에서 뭘 하고 있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는지를 듣는 게 되게 큰 공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기에는 신문연이 참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한번 와보시라(웃음)
정: 어떤 한마디로 요약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잘했다. 좋은 선택이다. 이런 좋은 길이 될 수 있다라고 꼭 얘기를 하고 싶어요. 왜냐면 이제 사회적 담론이 워낙 대학원생들을 불쌍하게 보는 시각이 있잖아요. 그게 자조적일 때도 있고 밖에서 놀릴 때도 있고 그런 다양한 대학원생들이 있는데, 저는 그걸 보면서 항상 불만이었던 게 저는 대학원 가서 공부하고 이렇게 동료들 만나서 연구하고 이런 거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너무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물론 바꿔야 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이제 처음에 대학원에 가는 사람들이 조금 위축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이제 대학원에 들어온 분들이 다들 새로운 시작을 좀 상쾌하게 맞이했으면 좋겠어요. 신문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있으니까 어려움을 나눠가면서 이게 절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자기가 만들어가면 되는 거니까요. 걱정하지 마시라고 이야기해드리고 싶어요
신문연의 미래
Q: 준형 선생님이나 보영 선생님도 이제 젊은 연구자로서 헤쳐나가시는 어려움도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요즘 최근에 어떤 관심사나 이제 주목하고 있는 연구 주제 같은 게 있으신가요?
정: 저는 이제 사회운동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기본적으로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회 운동이다라는 그거를 이제 연구를 통해서 설득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주로 이제 바라보고 있는 사회 운동은 청년 운동 쪽인데요. 청년 운동이 2010년대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지금은 청년을 떠올리면 청년 운동을 떠올리기보다는 정치인이라든가 더 다양한 존재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청년을 둘러싸고 이제 이게 과잉 정치화 되어서 무엇을 정치적으로 시도하건 거기에 청년을 덧붙여서 끼워 파는 정치적인 전략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를 되게 문제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청년 운동은 이런 담론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되는 걸까 전략적으로 그런 고민들을 좀 하고 있어요.
최근에 보면 일본이랑 협상할 때도 청년들을 위한 기금을 만들겠다 하는 등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거에 청년을 덧붙이는 경향들이 있거든요. 내가 정치하고 싶은데 나는 청년이니까 난 청년 정치인 시켜줘 이렇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운동의 차원에서 맞설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좀 저의 개인적인 연구 주제 고민입니다.
이: 저의 가장 큰 관심은 윤석열 정부인데, 관심 가는 건 어떻게 이렇게 전형적으로 할 수 있을까와 이런 전형성을 만들어내는 지금 한국 사회와 정치의 어떤 형태는 뭘까 어떤 형태의 위기일까 이런 게 좀 고민스러웠고 관심이 가는 지점이고, 아까 말씀드렸던 저희 안에서의 공동 연구 사업에서 한번 녹여내고 싶은 같이 얘기해보고 싶은 그런 주제이기도 하고요, 또 제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그런 이슈가 가장 현업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관심이 제일 많이 가는 주제인 것 같아요.
또 하나 신문연과 더 관련되는 고민은 저는 정규직 취직을 하고 연구원 활동을 하는 첫 사례란 말이죠. 그래서 신문연 연구원들 사이의 어떤.. 저에 대한 의구심..?(웃음)
그러니까 해보지 않았던 길이라. 저희 조직에서는 거의 다 대학원생들이 연구원으로서 주로 활동을 해오고 계속 이끌어왔는데 이게 이제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원생이 아니게 되는 그런 상황들이 발생하고, 그러면 후속 인원들이 들어올 수도 있고, 회원들도 또 바뀌거나 나이 드실 거고, 새로운 회원들도 오실 거고 그러면 이제 신문연이 계속 젊은 조직 정말 거의 어리다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조직이었다가 뭔가 시간이 지나면서 기성화되는 측면도 분명히 생길 것 같아서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적응하거나 아니면 거부하거나 할 수 있을까 등 미래에 대한 이런 고민들도 있는 것 같아요.
Q. 그러면 앞선 답변하고도 연관되어질 거 같은데요, 신문연이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지점도 궁금해요.
정: ‘청년’이나 ‘젊은’을 키워드로 붙이는 순간 이제 그런 부분에서 약간 어려워지는 건데, 청년 운동에는 그런 게 정말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거든요. 왜냐면 기존에 운동을 해왔던 선배들의 경로도 불분명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 청년 단체는 청년이 끝나면 내가 나가야 될 것 같고. 그러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대학원을 간다든지 정치로 간다든지 행정에 공무원으로 간다든지 이런 경로들이 있는데, 내가 계속 활동을 하고 싶을 때 어디로 가야 되는지가 조금 요원한 거죠.
예를 들어서 제가 청년 노동조합에서 일을 했는데 청년이 아니게 됐을 때 그렇다고 기성 노동조합으로 들어가는 게 맞나 하면 그것도 또 고민되는 일이고요, 새로운 걸 해보겠다고 활동을 여기서 시작했는데 다시 노조로 돌아간다는 것이 약간 이상하기도 하고 그러면 그런 경로에 대한 고민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자유로웠던 게 이제 저희 소개 글 중에 학문하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어요. 그래서 애초에 만들 때부터 그런 걸 좀 염두에 뒀고, 저는 빨리빨리 자리 잡고 떠나고가 반복돼야 된다고는 생각해요. 준형 쌤은 아직 좀 더 있어야 되죠 이제 박사를 땄으니까 기여할 부분이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더 있어야 되는데 저는 절대 여기서 10년 20년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계속 초기 인원만 있는 게 아니라 이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되도록 떠나고 졸업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제 또 연구를 시작한 사람들을 연구원으로 모셔서 같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게 그 이유에요.
그래서 더 이상 이제 어떤 발디딜 곳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탄탄한 기반이 생긴 사람은 이제 우리를 응원해주는 존재로 이동을 하면 되고, 새로운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와서 같이 의샤의샤 만들어가고 그게 또 그 사람들이 원하는 다른 방향이 있다면 다른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이제 저희가 지금은 초기 멤버들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그냥 알아서 잘 굴러가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때그때 뭘 해야 되는지를 알고. 근데 이거를 잘 매뉴얼 화해서 그 다음 사람들이 초기에 겪는 그런 어려움들을 좀 덜 겪으면서 참여를 할 수 있게 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제 목표는 받은 만큼 다시 이렇게 되돌려놓고 잘 떠나는 게 목표인 거죠. 거기서 만약에 제가 학교에 자리를 봤는데 내 동료들이 필요하다 그러면 거기서 또 다른 조직들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여기가 그 정체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원을 다니고 있거나 막 졸업했거나 다른 데서는 연구자라고 부르지 않지만 우리들끼리는 연구자라고 꼬박꼬박 불러주는 그런 복작복작거리는 그런 단체로 계속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Q: ‘문화를 어떻게 잘 만들어 놓는다’고 표현을 해도 될까요. 굉장히 어려운 의미면서도 또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정: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요. 다들 자꾸 내 건 아직 부족하고 나는 아직 부족하고 내 그런 쓰레기 같고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단 말이에요. 근데 그런 것들이 다 약간 어디선가 받은 상처로부터 기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희 연구원 중에 한 분이 예전에 우리가 하는 세미나에서는 서로의 어떤 발제나 토론 과정에 과정에서 ‘’이건 오독이다’’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고 제안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함부로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규정하는 게 아니라 서로 이제 대화를 해 나가자는 거죠. 그래서 그걸 이제 세미나 시작할 때 약속문으로 한 번씩 꼭 읽고 시작을 하는데, 그렇게 여기가 뭔가 누구에게든 좀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공간. 거부되지 않는 공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공간. 이런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칭찬으로. 저는 칭찬으로 사람이 큰다 생각하거든요. 근데 꼭 사람들은 그렇게 뭔가 채찍질을 통해서 사람들을 키우려고 하더라고요
Q: 좋은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젊은 연구자로서 저도 위로가 엄청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혹시 마지막으로 해 주실 말씀 더 있으실까요?
이: 학술 운동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이런 걸 하다 보면 매너리즘까지는 아닌데 지금 이제 하루하루 그냥 세미나도 했다가 회의도 했다가 이러다 보면 뭔가 큰 그림을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인터뷰 덕분에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했는지 정리가 돼서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심여은, 김석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3년 3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