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성과주의에 찌든 연구 환경을 공공적 가치로 바꿔야 합니다”
지식 공유란 무엇인가? 왜 지식을 공유해야 할까? 우리가 일상에서 늘 지식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 공유’가 강조되는 것은 뭔가 지식이 공유되지 못하면서 생기는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해서가 아닐까?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하여 이번 웹진 공유도시 필진들은 지식 공유에 대한 관점과 지평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이자 지식공유연대의 공동대표인 천정환 선생님을 만나보았다.
천정환 지식공유연대 공동대표(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Q. 천정환 교수님께서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단체와 연구자 연대(이하: 지식공유연대)>는 2019년 8월 여러 인문사회과학 학회와 독립 연구자들이 모여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선언하고, 2020년 7월 창립총회를 통해 발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오픈 엑세스 운동에서부터, 다양한 지식 공유, 연구자 권리, 그리고 현 대학 체제의 대안적 변화 등을 위한 여러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지식공유연대가 출범하게 된 사회적 맥락과 목적 등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2019년 8월 29일 40여 개 학회와 독립 연구자들이 모여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선언했습니다. 2019년 5월부터 이름 그대로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하여 학술단체와 연구자들이 학교ㆍ전공ㆍ세대를 불문하고 모일 수 있었던 것은 한 마디로 이대로는 ‘다 죽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디비피아 같은 업체들의 횡포에 대한 문제의식이 계기가 돼서 인문학, 사회과학 그리고 이 문제를 오래 고민해온 문헌정보학 연구자들이 금방 모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문제의식은 경쟁과 성과주의에 찌든 연구 환경을 공공적 가치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식의 논문 쓰기, 학회 운영 그리고 각자도생/생존주의/비정규직-후속세대에 대한 착취를 종식시키고 학술활동과 유통을 그 본연에 맞게 고치는 일요.
Q. 어쩌면 학교와 직장은 물론, 놀거나 취미생활을 할 때도 사람들은 지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 공유’를 강조하시는 것은 뭔가 지식이 공유되지 못하면서 생기는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 공유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조금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고,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지식 공유 사례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왜 한국사회에서는 조국 딸 논문, 한동훈 딸 논문, 김건희-Yuji 같은 일이 마구 벌어질까요? 논문과 학벌이 돈과 (상징)권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런 특권층의 돈많은 인간들이 우리 같은 지식생산자와 대학에게서 그걸 약탈하는 거죠. 저들은 영원히 부와 권력을 누리고 세습하기 위해 돈과 인맥자본으로 싸게 학위와 논문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대 사례처럼 대학의 썩은 기득권자들이 거기 마름처럼 굽신대며 제 이득을 챙깁니다. 사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인데,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신평, 서민 같은 자들이 저런 걸 관행이라 옹호해줍니다. 그리고 우리도 알게 모르게 저런 부정과 부패에 많이 젖어있어 문제입니다.
학술논문은 인간과 사회, 예술과 자연 등에 대한 연구활동의 결과로서, 인간과 사회의 건강한 성장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가집니다. 학술논문은 어떤 연구자가 그것을 이용하더라도 다른 연구자에게 돌아가는 이용분이 감소하지 않는 공공재(커먼즈)입니다. 학술논문의 자유로운 공유는 이용분의 감소 없이 새로운 지식 생산에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되는 지식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학술논문은 기존의 연구, 이미 생산된 지식에 기반하여 학회 등을 통해 공동작업과 같은 사회적 협동을 통해 생산됩니다. 어떤 개인이 혼자 연구를 하더라도 사회적 협동의 결과인 이미 생산된 지식이라는 공통의 부에 영향을 받아서 이 공통의 부의 성장에 기여하는 식으로 사회적 협동의 과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동료평가의 본령 또한 지식 생산에 대한 학문 공동체의 기여라는 의미에서의 지식의 공동생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knowledgecommoning.org 지식공유연대 홈피 참조.) 논문 집필 뿐 아니라 투고, 심사, 출판의 과정 자체가 사회적이고 공동적인 작업입니다. 더구나 그런 논문이 국민의 세금으로된 공적 자금의 지원을 받았다면요.
지식공유의 좋은 사례는 너무 많습니다. 위키 페이지들과 오픈액세스로 제공되는 몇몇 공공기관에서의 논문 다운로드가 얼마나 편리하고 유용합니까?
Q. 혹자들은 교수, 연구자들의 지식 공유, 특히 오픈 엑세스 운동이 오히려 경제적으로 어려운 연구자 개개인의 연구물에 대한 지적 재산권과 이를 통한 수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의미있는 사회적 가치 실현인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개별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견해를 비추기도 합니다. 지식 공유에 대한 관점이나 지평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한데요.
지식 공유와 ‘지적 재산권’ 사이 문제에 대해 지식공유연대에서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인문사회과학 연구단체가 자생력이 없고 재생산이 잘 안되기 때문에 사설업체들이 주는 코딱지만한 논문저작권료로 받는 수익마저도 아쉬운 거죠. 업체가 학회 누리집도 만들어주고 다른 서비스도 해주거든요. 중장기적으로는 다 독이고요.
현재 관행적으로 학회가 논문 판매를 위하여 저자로부터 저작재산권 일체를 양도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저자에게는 저작물 이용과 관련한 어떠한 허락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 우리가 함께 싸웠던 ‘해피캠퍼스’ 문제 같은 게 생겨납니다. 우리 같은 학술 논문 저자의 권리는 하나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호구 중의 호구지요. 그런데 학회 집행부는 이런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알면서도 묵과합니다.
OA 학술지는 논문을 판매할 필요가 없으므로 저작권을 양도받지 않거나, 양도를 받더라도 학회가 저작권을 독점하지 않고 CCL을 적용하여 논문 저자와 그 외 모든 사람이 논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에게 저작인격권(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과 저작재산권(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논문의 저자는 위의 많은 권리를 원저작자로서 소유하게 됩니다. 저작인격권은 일신 전속권으로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므로 학회에 저작권을 전부 양도하였더라도 저자의 권리로 남습니다. 또한 저작재산권 전체를 양도한다고 하더라도 특약이 없는 한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양도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원저작자로서 논문 저자는 자신의 논문을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사본을 제작하거나 인터넷의 어느 사이트에 올리거나 여러 사람에게 사본을 배포하거나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문 출판을 위하여 이들 권리를 양도하였다면 학회의 허락 없이는 이러한 이용행위를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이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knowledgecommoning.org/faq 지식공유연대 홈피를 봐 주세요.)요컨대 저자가 자기 권리의 주체가 되야 합니다. 공유고 뭐고 우선 저자 스스로가 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학회 관행 때문에 그마저 안 하고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호구들이 어디 있나요?
Q. 지식은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가를 중심으로 권력이 되기도 하고, 삶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대학은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장 체계적이고 강력하게 사회적으로 생산, 전파하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애주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자 유기적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정환 교수님과 지식공유연대는 오늘날 대학의 문제점과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구하고 계시는 ‘지식 공유’ 운동 차원에서, 교수님께서는 대학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보고 계시고, 미래의 대학은 어떻게 발전 또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한국 대학의 상황은 갑갑합니다. 앞으로 10년 내로 한편에서는 ‘스카이캐슬’과 그 아류 몇몇은 더 비싸고 강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수한 ‘지잡대’ ‘폐교’의 사막이 펼쳐질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극심한 계급불평등과 지방소멸 등의 사회 모순이 해소될 전망이 안 보입니다. 정권도 강남-서울대-법대 출신 같은 부류와 그 하수인들이 차지했습니다. 불평등과 지역소멸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자들입니다. 재앙적 연쇄 대학 폐교의 상황이 2030년대까지 계속될 가능성도 높다 봅니다.
그래서 아마 단기적으로 한국 대학은 새로운 존재 방식을 택할 것입니다. (제대로 된) 인문 사회과학 강의, 대학원 그리고 연구자 ‘없는’ 대학이 ‘대세’가 되겠죠.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미 지역 대학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학술 운동과 교수ㆍ연구자 조직에서 연구자문화와 대학사회의 변화를 10년 이상 나름대로 관찰해왔는데, 많은 대안이 고민되었으나 정권과 기득권에 막히고 연구자 자신들의 무기력 때문에 백약이 무효였고, 향후의 전망도 어둡습니다. 대학에도 필요한 것은 ‘전환’이며 또 이를 아래로부터 가능하게 할 연대와 강력한 반불평등 운동 외에 답은 없습니다.
Q. 오픈 엑세스 운동과 대학 개혁 이회에도 지식공유 연대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문제, 집중하는 의제와 사업은 무엇인가요? 디지털 정보기술과 플랫폼이 ‘공유’의 중요한 인프라 중 하나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지식공유연대는 이러한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을 활용하는 운동 형태에 대해 현재 추진하거나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함께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연구자 중심의 오픈액세스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계속 모색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인문 사회 연구자들이 모이고 의견을 교환할 장이 너무 적습니다. 그리고 23년에는 학회 개혁 문제를 모색해 보려 합니다. 인문 사회 학술 생태계가 망가져 학회들이 많이 위축된 상태입니다. 회원도 잘 충원되지 않는데 학술지 발간과 원고 모집 관행이 바뀌지 않고 있고 학회 운영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학회 편집자ㆍ대표자 회의를 만들어서 토의하려 합니다.
Q. 지식공유 연대 활동이 신자유주의적 이윤 추구와 경쟁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시도로 여겨지는 만큼,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점들이 가장 어려운지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식공유 운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셨던 일들의 일부를 나눠주실 수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인문 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무기력과 여전한 각자도생 상황이 가장 어렵습니다. 물론 보람도 많지요. 어려운 상황에도 함께 하는 동료들과 학회들의 분투가 가장 보람 있는 일입니다. 오픈 액세스 운동의 대의가 비교적 널리 알려져 국가기관도 동조하고 있다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오픈 액세스를 위한 논문 데이터베이스 작업은 국립중앙도서관이 지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은 논문 공개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한국연구재단 등은 ‘국가 오픈 액세스 정책 포럼’도 열었습니다. 물론 교육부, 과학기술부, 문화부 등 부처별로 나뉜 각 기관이 분산적으로 찔끔찔끔 지원책을 내놓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요.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심여은, 김석준, 이희라, 송지우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2년 12월 0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