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커먼즈 포럼 2 <커먼즈는 국가에 대항하는가 – 재정과 금융을 커먼즈로 보기>
한국에서 국가와 자본의 허구적 이분법에 대한 고민
: 재정과 금융의 문제를 경유하여
이태영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안녕하세요. 이태영이라고 합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공부하고 있고,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의 구성원입니다. 앞에서 김상철 선생님이나 김은희 선생님 얘기에서도 계속 등장하는 ‘국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다만 엄청 분석적인 내용은 아니고 가설적인 수준에서 고민을 나열하듯이 말씀드리는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국가가 전통적으로 축적과 정당성이라는 모순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이해하는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 두 가지 모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까, 이걸 유형화해보는 작업을 준비했는데요. 앞선 상철 선생님 발표에도 등장했던 ‘조세국가’라고 하는 키워드, 즉 ‘어떤 조세국가’였을까라는 문제의식은 제 발표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재정이 취약한 발전국가 한국은 어떻게 1기 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나?
국가의 중요한 키워드가 재정이잖아요. 국가는 재정을 활용하는데, 돈을 걷으려면 정당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그래서 재정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면 국가를 이해하는 게 훨씬 다채로워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조세국가를 전제로 한국은 그럼 어떤 조세국가였을까하는 질문도 가능해지는데 한국은 재정이 아주 취약한 국가라고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학자인 이제민 선생님은 “민주화 이후 한국 복지 확대, 특히 노태우 정권의 주택 200만호 건설과 같은 사안을 두고 포퓰리즘이라 볼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그럴 수 없다고 진단하는데요. 이는 단적으로 재정적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 정책의 일반적 패턴은 정치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재정 적자를 내고 이를 통화 증발로 뒷받침하는 것인데, 당시 한국은 주택 건설 정책을 수행하면서 재정의 균형을 유지했던 것이죠. 저는 이게 재밌는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은 적자를 보지 않고도 신도시를 건설하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돈이 없었는데 국가가 적자를 보지 않고 1기 신도시를 짓는 방식이 있었던 거죠.
이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틀이 있지만 제 가설은 한국이 소위 신자유주의적 전환 이전부터 신자유주의적인 태도로 국가를 운영해 왔을 수도 있다 겁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이해할 때 그 분기가 외환위기냐 언제냐 하는 논의들이 있는데요, 어쩌면 관리주의 국가에서 기업주의적인 거버넌스로 전환되는 시기 이전에 한국은 이미 신자유주의적인 태도를 갖고 국가를 운영해 왔을 수도 있는다는 거죠. 그래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더 국가와 잘 붙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다만 신자유주의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습니다.
폴라니 관점에서 볼 때, 상품이 될 수 없는 걸 가장 잘 상품화하는 전략을 취한 대표적 사례는 땅입니다. 강남 개발이 토지 구역 정비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지인데 살펴보면 아주 재밌는 사례잖아요. 삐뚤삐뚤한 구획을 반듯하게 만들고, 주인에게서부터 조금씩 땅이 떨어져 나오면서 체비지가 형성됩니다. 토지 구획 정리 사업을 통해서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원 위치보다 멀리 떨어진 땅이 원주민들에게 분배가 돼도 상관이 없죠. 왜냐하면 집값 올랐으니까. 그리고 새로 생긴 체비지로 국가는 인프라를 건설하고 또는 팔기도 하고요. 이런 점에서 저는 국가가 김선달 같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토지 구역 정비 사업이 문제가 되니 택지 개발 사업으로 전환합니다. 토지 구획 정비 사업을 했더니 원주민들이 개발 이익을 너무 많이 가져가는거죠. 그래서 원주인에게 가는 부분을 차단하고, 개발 이익을 환수하는 방법도 고민해본 건데, 그 과정에서 전두환 대통령 시기 택지 개발 사업이 만들어진거죠. 택지개발 사업은 대규모 택지를 모두 사서, 한 번에 분양해버리는 방식입니다. 지금은 LH인, 토지개발공사(토개공)도 관련되어 있죠. 쉽게 말해 공기업인 토개공이 싼 땅을 사서, 비싸게 파는 데, 국가니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로 싼 땅인 ‘농지’를 사서 비싼 ‘택지’로 파는데요. 이건 공기업을 경유해서 국가가 무에서 유를 계속 창출하는 전략입니다. 현재 LH가 문제에 처하는 이유도 이런 기업적 특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싼 땅을 비싸게 파는 게 LH의 성립 조건이었고, LH는 그걸 잘하고 한국 정부도 재정 적자를 안 보고 계속해서 주택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땅 파는 국가, 땅도 팔고 물도 파는 지방정부
그래서 저는 국가가 기업 같다고 생각하는데, 외환위기 이후에 더 기업 같은 국가가 됐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지역화되는 경향이 보이는데요. 성남 도시개발공사(도개공) 사례도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 도전하기 전에는 지방개발공사의 모델처럼 얘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평군 개발공사가 준비하는 용역을 보면 우리도 성남도시개발공사처럼 해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물론 도개공이 재원을 가져올때 고정 이익으로 환수했냐, 왜 유동이익으로 하지 않았냐 관련해서 여러 가지 비리와 부패 문제가 제기가 되고 있는데, 이 기본적인 방식도 지방 공기업이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전략에 뛰어들어서 개발 이익을 환수하는 게 좋다고 생각에 기반하고 있고, 환수하려면 개발이익이 발생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 국가와 시장 간에 개발 이익을 둘러싼 거래가 전제돼 있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지역화 경향이 90년대 이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성남 도개공은 여기에 더해서 금융을 활용한 SPC 같은 걸 만들어서 도입한 겁니다. 민간 금융을 동원해서 리스크를 줄인 상태로 돈을 벌 수 있는 방식을 만든거죠. 국가가 이런 전략을 엄청 잘 짜고 있습니다. 새만큼 개발도 농업 명분으로 개발해서 땅을 팔고 여기에 MICE를 할지 공항을 할지 계속 장사하려고 고민을 갖고 있는 사례입니다. 답이 안보이죠
제주 사례도 살펴보겠습니다. 제주에서도 지방개발공사가 90년대 이후에 만들어졌습니다. 광역자치단체는 사실 세종을 빼고 모든 개발공사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토개공 모델을 하는 지방개발공사들이 만들어졌지만, 지방자치제도가 다시 제도화되면서 재정 문제가 또 발생하는 겁니다. 한국은 원래 국가도 가난하니까 지자체도 당연히 재정 문제에 취약하고, 그러니까 세외 수입을 어떻게 얻을까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 정책을 펼칠때 재원이 없으니 어떻게 그걸 돌릴까하는 고민을 하다가 토개공 모델을 들고 와서 택지개발을 주요 사업모델로 하는거죠. 그런데 90년대 부동산 위기가 오면서 택지 개발 모델이 다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세외 수입을 얻으려고 만든 지방 개발 공사들이 오히려 지방 부채를 늘리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그러니 정부가 지방개발공사는 택지만 팔려고 하지 말고 부존자원을 상품화할 방법을 한번 강구해 보라는 공문을 내려보냅니다. 그때 제주도는 마침 지하수를 개발해서 공수화하자는 논의가 되고 있었으니까 이런 공문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수 있었죠. 그래서 제주개발공사는 부존 자원을 상품화하는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이걸 보존과 개발을 통합한 공수화 담론으로도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시장화된 국가의 어떤 작동 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 경계에 있는 겁니다. 최근에도 제주개발공사의 지하수 증산과 관련된 논의(지하수를 더 많이 출수하는 걸 허용해주는)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하수 증산에 대한 최종 동의는 도의회를 거쳐야 하는데, 관련 논의가 다뤄지는 회의록을 보면 기업 이사회 같은 느낌도 듭니다. 예를 들어 개발공사 사장은 현재 물 시장이 확대되는데, 삼다수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이 정도는 중량을 해야 된다고 얘기하고 이러한 명분에 대해 검토하는거죠. 물론 거기에는 그 정도 뽑아도 된다는 과학적 근거도 같이 제시되죠.
기초 지자체도 지방공기업들을 만드는 흐름이 있습니다. 기초 지자체도 공기업들을 만들려면 뭘 팔아서 남길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주로 기초지자체 지방공기업은 수도권에 많습니다. 광역지자체 개발공기업은 만들어놨더니 돈이 안 벌려서 어려워지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나마 제주는 물을 팔 수 있어서 성립하고 있는거죠. 그런데 기초지자체 지방공기업이 만들어질 때 이례적인 사례는 비수도권에서 만들어진 가장 최초의 기초 지자체 개발공기업인 함안개발 지방공사입니다. 함안지방공사가 뭘 팔 수 있었을 것 같으세요? 함안지방공사는 골재를 팔려고 만든 겁니다. 4대강 개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강 밑에서 골재를 채취하는 거죠. 그런데 골재를 공영 개발하자는 논의는 제주개발공사에서도 등장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를 팔려고 하는 국가라는 게, 한국이라는 국가의 작동 방식에 깊이 연관돼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그냥 국가를 하나의 명사로 이해하기보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사실 ‘조세국가’, ‘부채국가’, ‘재정 건전성’ 논의의 경로에서 좀처럼 얘기되지 않는 ‘기업’ 같았고 ‘더 기업’ 같아진 특성이 있는 겁니다. 따라서 국가와 자본을 과연 이분법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어떤 시도가 굉장히 시장주의적이라고 비판하기에는 국가 자체가 이미 갖고 있는 시장주의적 특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새마을금고의 최근 위기가 보여주는 것
최근에는 그럼 외환위기 이후에 어떤 영향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아주 개인적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주택 담보 대출(주담대)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새마을금고가 중도금을 대출하는 게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그리고 새마을금고가 PF로 굉장히 힘들다는 얘기도 뉴스에서 엄청 보이고요. 그런데 사실 신협이나 새마을금고는 생각해 보면 1960년대에 시작한 한국의 공동체 금융이거든요. 제도화된 건 신협법이 1972년, 새마을금고법이 1980년인가 그럴 겁니다. 그전 10년간은 진짜 공동체 금융하듯이, 사람들이 협동조합 그룹을 만든 사례였습니다. 이게 60~70년 지나오면서 올해, 그리고 작년에 가장 많이 뉴스에 등장한 건 PF 대출로 위험하다 무너졌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런 점도 국가의 특성과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경로가 아닐까 생각해보는 겁니다.
사실 신협이 처음 제도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가 금융을 전부 동원하려고 한건데요. 왜냐하면 국가는 조세도 없고, 외자 유치도 다 실패하니깐 저축을 동원하고, 신협도 동원할 수 있는 2차 금융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사금융을 억제해야 될 필요도 있었고요. 그러면서 제도화된 게 신협인거죠. 신협은 한국이 한창 고도 성장을 할 때 ‘고부채 저이윤’ 모델이라고 하는 기업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윤은 적게 남기지만 부채를 많이 받아서 계속 규모를 키워가는 성장 모델이었는데, 외환위기 때 IMF가 이 모델을 문제라고 지적하니 이걸 못하게 된 거죠. 1금융권이 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하고,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같은 2금융권들은 개인 대출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1금융권이 기업 대출을 공격적으로 못하니까 개인 대출로 많이 넘어오게 되었고(개인 대출을 증가시킨 가장 큰 항목이 주택담보대출입니다) 그러니 2금융권은 개인 대출, 주담대에서도 밀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국가가 2금융권에서의 주택담보대출을 보증해 주지 않기 때문에 2금융권은 사실상 주담대 시장에서 퇴출됐다고 인지합니다. 그러던 중 2010년대 중반에 2금융권에게 온 한 가지 빛이 부동산 PF 대출이었고, 이걸을 노리게 된겁니다. 그래서 2015년부터 시작된 2금융권의 기업 대출 증가가 올해-작년에 터진 겁니다. 그게 새마을금고와 신협이 맞이한 지금의 위기입니다. 새마을금고, 신협 관계자분들하고 얘기해 보면 외환위기 이후에 올해가 위기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연체율 같은 게 감당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2금융권들은 공동체 금융이라서 일정비율을 지역 내 여신을 해야 됩니다. 여신이 사업에서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런데 지역 경제가 별로 돌아가는게 없으니, 다른 여신할 거리가 없는 겁니다.
이 과정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이라는 돈이 없는 국가가 어떻게 뭔가를 주도한다고 할 때 보통 권위로 주도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 돈이 없는 국가가 어떻게 국가 주도 전략이라는 걸 성립시켰는가 살펴봐야 한다는 거죠. 즉, 국가가 열심히 뭔가를 팔아서 성립했다는 가설을 제안하는 것이고, 이건 재정이 취약한 국가의 전제된 흐름이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후의 변화라고 하는 것도, 단순히 외환위기 이후에 한국이 저절로 신자유주의로 전환됐다고 이해하기보다 이런 맥락에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라는 것, 그리고 금융과의 관계에서도 어떤 다른 접점들을 만들어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는게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입니다. 이 정도로 발표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이태영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