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배다리
신영수 (아시아연구소 연구연수생 18기, 서울대 동양사학과)
ABOUT 민운기/스페이스 빔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애정이 넘치는 실천가. 소박함과 진솔함이 매력이다.
민운기 선생님과 스페이스 빔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유회에 대한 PPT에 진행 장소가 ‘스페이스 빔’이 아니라, ‘인천 문화 양조장’이라 적혀 있었다. 민운기 선생님께 왜 스페이스 빔이라 하지 않고 인천 문화 양조장이라고 했는지 여쭤봤더니, 이 장소는 양조장의 성격을 갖고 있으니 양조장이라 하는 것이 적합하고 스페이스 빔은 이곳을 관리하는 것 뿐이라고 답하셨다. 즉, 스페이스 빔은 장소성을 유지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단체인 것이다. 장소를 존중하는 민운기 선생님의 철학이 그를 베니스로 이끌었다.
인천과 베니스
인천과 베니스는 물의 도시이자 바다 위에 세워진 문명이다. 향후 해수면 상승과 침수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미래의 실험장(The Labotory of Future)>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2023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에 인천의 배다리 마을이 전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베니스에 인천과 배다리 마을의 문제 의식을 공유한 민운기 선생님과 나눈 대담을 글로 정리해본다.
<2086 : Together How?>[1] [2]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2086 : Together How?> 라는 주제로 미래 지구를 상상한다.세계화가 인류를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립’시키며, 진보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적으로 답습하면서 살아갈 경우, 우리는 완전함이 아니라 멸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관은 게임과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를 통해 방문자에게 질문하고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책임을 인식하도록 기획되었다. 특히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로 한국의 세 도시 – 인천, 안산, 군산 – 가 소개되었으며, 그 중 인천의 사례로서 배다리 마을의 저항과 투쟁 운동사가 그려진다.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Future as Ruin, Ruin as Future)
인천 전시의 주제는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이다. 이 전시의 핵심 메세지는 인천시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 성장 중심의 도시 개발 계획을 밀어붙일 경우, 인천의 미래는 폐허가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통계와 감각적인 이미지, 과거에 대한 기록과 미래에 대한 상상을 통해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에 대해 다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전시의 모체는 이소자키 아리타의 <전자 미로>(Electric Labyrinth)로,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형 벽면에 내부에 그려진 ‘극락정토’는 철거되어 가는 인천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외부의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은 인천의 스토리를 스케치하면서 이러한 역사가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내부 기둥에는 배다리 마을 관통 도로 반대 투쟁과 공동체 회복 운동을 사진으로 나타냈다. 팽창의 욕망 끝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성장의 욕망으로 침식되어 가는 인천이 겹쳐진다.
한쪽 벽면에는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 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인천 경제 성장의 역사를 통계적으로 그려내면서,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시나리오는 성장을 위한 ‘인간 – 결속’과 공생을 위한 ‘지구 – 결속’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지만,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지구-결속’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각 국의 미래 실험장
이제 시선을 다른 나라의 국가관으로 돌려본다. 민운기 선생님은 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한국관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국가관과 본 전시를 관람하면서 많은 사진을 찍어왔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배다리 마을 주민들과 공유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 다른 나라의 전시도 살펴보자.
- CANADA: NOT FOR SALE!!
캐나다의 전시는 주택 소외를 조장하는 부동산 투기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인천 배다리 마을과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공유한다. 토지의 금융화를 식민지식 토지 강탈과 다름 없다고 비판한다. 대지를 갖고 있는 캐나다조차 부동산 투기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 NETHANLAND : WATERWORKS
네덜란드 역시 물의 도시답게, 물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물과 파이프라인을 은유로 하여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파헤치고, 사회적, 생태적으로 재생가능한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로드맵을 그린다. Kingma의 디테일한 드로잉이 인상적이다.
- NORDIC COUNTRIES(Sweden, Norway, Finland) : Joar Nango – GIRJEGUMPI : Sami Architecture Library
사미 도서관은 전통 건축 지식 및 디자인 등의 자료를 갖고 있는 아카이브이자, 주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열람실 및 모임 공간으로 활용된다.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조아르 난고(Joar Nango)가 15년 이상 토착 건축과 관련된 책을 모아 놓은 아카이브이자, 토착 문화와 기후조건을 고려하고 협력을 통해 구축한 건축물인 것이다. 세계와 자연에 대해 접근하는 개방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지구 – 결속’의 배다리를 위하여
민운기 선생님께 인천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를 그려줄 수 있냐고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이상향을 추구하기 보다,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셨다. 즉 성장에 치우친 개발이나 과거 경관을 보존하는데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주민들의 주체성과 단합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의 적절하게 변한다는 개념을 이미지로 포착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지구 – 결속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실천이 있다면,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민운기 선생님이 자연 – 인간 친화적으로 유지하고자 한 배다리 공유지에 대한 그림을 담아본다.
배다리 마을은 도로 건설과 같이 다양한 개발 시도로부터 살아남았지만, 지금도 아파트 재개발이나 관광 경관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주민들의 커먼즈 (COMMONS)인 배다리 마을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은 활동가들의 진정성과 이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작은 관심이지 않을까 싶다. 2023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배다리 마을과 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길 바란다.
[1] 202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홈페이지. https://korean-pavilion.or.kr/ko/exhibition/
[2] 민운기, [특별기고] 인천, 성장의 욕망으로 침수되고 있는 도시, 한국해양신문, 2023.07.03, https://www.incheon-ocea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5&fbclid=IwAR049-rAXhZbjvIwNFSizW86FpLGs7-MjfwJT1aR11S8LCK6C7Cw5egB9JE_aem_ATcVd6U6MaDj89Vo0bU5bFKGa1xOHI9qppy0PU3MWPxshMdQQp8aKvoKQS3hBmSSxkw
글 | 신영수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심여은, 신영수, 송민석, 이희라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4년 1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