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 네트워크를 소개하며 | 윤여일

5월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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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 네트워크를 소개하며 | 윤여일


“2017년 10월 28일 오전 11시 무렵, 커먼즈 네트워크 결성.”
기사 한 줄 안 나왔지만, 거사가 있었던 아침. 그런데 장난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전날 밤, 제주 동백동산 인근 펜션 이을락에서는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렸다. 밤새 마당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떠들 사람들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떠들고 큰, 방에서는 쓰러질 때까지 광란의 춤판이었다. 아주 흡족하게 놀았던 이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도 들떠서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 우리 뭔가 모임을 추진해보자”라고 모의를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이 기다릴 것 없이 지금 만들자”로 도약해 ‘커먼즈 네트워크’라고 쓴 큰 종이 곁으로 모여 역사적 결성 사진을 남긴다.

물론 대박적 파티 때문만은 아니다, 이 파티는 ‘2017 커먼즈 워크숍 – 다른 장소, 공통의 질문’의 뒤풀이였다. 참가 그룹의 면면을 보면,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 리서치그룹, 서울대학교 SSK 동아시아 도시연구단, 제주대학교 SSK 공동자원연구센터, 경의선 공유지 그룹, 제주 활동가 그룹, 스페이스 빔이었다.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과 현장 기반 활동가 32명이 함께해 2일간 18시간을 토론하며 커먼즈 패러다임의 검토 및 발전을 위해 앞으로 심화할 118개의 질문들을 건져냈다.

커먼즈라는 공동 화두 아래서 서울, 인천 지역의 참가자들은 제주 선흘리와 강정 이야기에, 제주의 참가자들은 서울 경의선 공유지와 인천 배다리 공유지의 사례에 귀 기울였다. 연구자들은 활동가들의 생생한 고민을 들으며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따라서 고민했으며, 활동가들은 연구자들의 시각을 통해 자신의 현장을 되살폈다. 사실 본업이 다를 뿐 활동 지향형 연구자와 연구 친화적 활동가들의 만남이었다. “서로에게 배울 게 많다”,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감각을 공유했다. 이 회합을 한 번으로 끝내기가 아쉬웠다.

그렇게 결성된 커먼즈 네트워크는 이듬해부터 학술적 논의와 사회적 실천의 접속을 꾀하는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을 개최한다. 연구자와 활동가가 함께해 커먼즈 연구의 관심사를 토의하고 여러 커먼즈 운동 현장의 경험을 나누면서 커먼즈 패러다임을 사회적으로 확산시켰다.

매해 개최지를 옮겼는데, 2018년 5월 제1회 포럼 ‘지금, 여기 커먼즈’는 사흘 간 경의선 공유지에서 열렸다. 경의선 공유지는 커먼즈 실험과 연구의 그야말로 근거지였다. 2019년 5월 제2회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 ‘커먼즈, 공동의 질문’은 닷새 동안 배다리 공유지와 경의선 공유지를 오갔다. 인천 배다리 공유지는 마을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 계획에 맞서 주민들이 건설 예정지를 공유지로 선언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2020년에는 장훈교 선생이 마련한 ‘전환 2050: 커먼즈와 지역계획’ 제주 딥다이브 워크숍과 이승원 선생이 주도한 서울혁신파크에서의 2차 딥다이브 워크숍이 개최되었다. 이후에는 커먼즈데이, 작은 포럼, 도시커먼즈 워크숍, 커먼즈 인문학 콘서트 등의 형태로 홍성, 강릉, 서울 등지로 다니다가 코로나 팬데믹 종료 후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이 재개되어 춘천으로 향한다.

커먼즈 네트워크의 행사는 대학에서 열리는 여느 학술대회와 사뭇 달랐다. 일단 대학 건물에서 한 적이 없다. 불가피하게 선택한 온라인 공간이 아니라면 매번 어떤 실천 현장이었다. 커먼즈 네트워크는 출범 당시부터 서울, 제주, 인천의 운동 현장을 거점으로 삼았으며, 커먼즈 네트워크에 새롭게 접속한 공유지 운동, 협동조합, 중간지원조직의 활동가가 자신의 실천 현장으로 데려가는 식이었다. 그 현장 측에서는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 개최가 사회적 주목과 역량 강화를 기대할 수 있는 활동의 연장이었다. 다른 경험의 활동가, 다른 시각의 연구자들이 그 현장에 모여 상황에 대해 경청하고 함께 고민한다. 매번의 포럼에는 어느새 또 다른 실천 현장에서 활동가가 와 있다.

여러 배경과 영역의 사람들이 뒤섞이다 보니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에서는 커먼즈의 갖가지 용법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어떤 사례를 커먼즈 관련 현상으로 포착하고 설명하는 분석적 용법, 목장이나 숲 같은 자연자원을 커먼즈로 의미 부여해 보존하려는 규제적 용법, 어떤 활동을 커먼즈 운동으로 접근하여 대안적 서사를 마련하는 활성적 용법, 알커먼즈처럼 실제로 공간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실험적 용법, 대안적 제도 설계를 위한 전환적 용법 등등. 2박 3일 이상의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은 이러한 고민과 전망들을 품어내면서 한국 최대의 커먼즈 관련 회합으로 성장하게 된다.


글 | 윤여일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