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정민철 선생님께서 대표로 활동하고 계시는 홍성 젊은협업농장은 2011년 홍성군 장곡면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홍성 젋은협업농장 http://collabo-farm.com/이 만들어진 이유 또는 계기, 그리고 젋은 협업농장의 구성원들과 활동 내용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협동조합젊은협업농장은 이름을 풀이하면 내용이 보입니다. 우선 농장이라는 단어가 있으니 당연히 농사를 짓습니다. 현재는 비닐하우스 8동(1동이 대략 200평 정도 됩니다)에서 쌈채소를 그리고 논 2천평에서 벼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장인데 이름대로 협동조합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예전엔 몸뚱이라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자본이 없으면 농사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매스컴에는 농민의 고령화를 자주 이야기하니 혹시 놀고 있는 유휴 농지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령화 속도보다 기계화 속도가 더 빨라 한 사람이 경작할 수 있는 규모가 커지다보니 놀고 있는 경작지는 없습니다. 그러니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땅을 구하고 시설이나 최소한의 기계를 구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이 필요합니다. 무언가 일을 시작할 때 자본이 없으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 즉 출자금을 모아서 시작하는 것이 이 주변에서는 버릇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버릇같이 만들었다는 증거는 협동조합이라는 형식과 농사라는 내용은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농지법 등을 설명해야 하니 통과) 물론, 출자를 받기위해서는 존재의 필요성을 설득할 그럴 듯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이름에 있는 “젊은”이라는 단어가 그것이고 또 다른 특징입니다. 설립 목적이 청년이 농사를 짓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청년 담론이 농업, 농촌까지 확장되었지만 그 시기에 –겨우 10년 전인데- 청년이 농사를 짓게 하자고 제안했더니 “중소기업도 젊은 사람이 모자라는 판에 왜 청년을 농촌에 보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청년이 농촌에 그것도 농사를 지으러 가겠냐?”는 핀찬만 듣는 시기였습니다. 초기에 농장을 방문한 청소년들에게 소감을 물어보면 꼭 나오는 답이 “젊은 사람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군요!”였습니다. 어린 생각에 농사는 노인들이 하는 일로 인식된 것입니다. “6시 내고향”이라는 티비프로의 후유증이고, 젊은 사람이 나오는 삼시세끼 프로그램과 리틀포레스트 영화는 농업과 상관없는 먹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쨋든 청년을 받아서 농사를 같이 짓고 알려주겠다는 목표는 아직 여전합니다.
젊은 뒤에 붙은 “협업”이라는 단어가 또 다른 특징입니다. 원래는 “협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 했습니다. 처음 농장을 시작할 때부터 저 혼자가 아니라 청년 2명과 같이 시작했습니다. 자본도 없고 경험도 없다보니 몇이 모여서 농사를 “함께” 시작한 것입니다. 협동조합을 붙이다보니 “협동”이라는 단어가 중복된다는 점 그리고 뒤에 농장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협동농장이 되어 뭔가 고정관념이 작동하여 “협업”이라는 단어로 대체했습니다. 운영을 같이 한다기 보다 노동(농사 일)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더 적당합니다.
여러 특징 중에 가장 특이한 것이 학교의 역할을 하는 농장이라는 점입니다. 청년이 매년 들어오면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 그러면 농장의 규모나 사업의 범위(가공, 유통 등)를 확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조직이 커지게 되어 관리 체계를 만들어하고, 인건비나 운영비를 만들기 위해 본격적인 경영을 해야 하고… 등등.. 농사를 짓자고 시작했는데 전문경영인이 되어버립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워서 독립해서 나가는 방식을 선택하였습니다. 선택하였다기보다 선택되어졌습니다. 학교의 역할을 했다기 보다 되어짐을 당했다고 말하는게 맞습니다. 농사가 맞지 않아서, 운영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이가 안 좋아서, 군 입대하기 위해서, 다른 진로를 찾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로 젊은협업농장에 들어온 청년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농장을 나갑니다. (3년 이상 젊은협업농장에서 일하는 청년은 1명인데 이젠 중년이 되어갑니다.) 들어오지만 나간다고 하면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학교의 구조입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보통의 학교는 들어오는 날, 나가는 날, 머물러야하는 기간이 딱 정해져 있다면 저희 농장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도 아니고 청년(19~39세를 청년이라는 한 단어로 묶기엔 한계가 있다.)이기 때문에 앞선 경험도 다르니 들어오는 시기가 다르고, 시작 때의 배움의 정도와 속도가 각자 다르니 머무는(배움의) 기간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러니 나가는 시기가 다른게 당연합니다. 나간다고 했지만 저는 독립한다고 말합니다. 나가서 농장을 만들거나 지역 사회에서 단체를 만들거나 취업하거나. 멀리 가지 않고 농장 주변에 거의 배치됩니다. (도시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관계는 지속됩니다.) 그러니 밖에서 보기엔 협업농장 출신이라는 말을 하게 되고 이들은 젊은협업농장(학교)이 아니라 마을이나 지역사회 일에서 연대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매년 농장에 새로 사람이 오고 올해는 또 누가 올 것인지가 주변 사람들에겐 관심거리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년간 생활하는 20대초 청년 3명,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 6개월동안 농장 생활하는 20대 중반 청년 1명 그리고 2주간 생활하는 30대 초반 청년 1명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들이 농장에서 머물다보니 온갖 새로운 일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나가서 독립하다보니 또 다시 계속 일은 만들어집니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장임에도 학교의 기능을 한다고 말합니다. 젊은협업농장에 머물렀다고 말할때는 최소 6개월 이상을 말하는 것이고 어짜피 청년이 머물고 배우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으니 단기로 머무는 청(소)년은 더 많습니다. 짧게는 2주에서 몇 개월까지.
현재는 이를 확장시켜 마을에 있는 몇개의 농장(실습교과)과 세미나 등의 강의를 기획하는 단체(학습 교과)와 건물을 운영하는 기관(교실)을 연계한 학교 그러니까 마을 자체를 학교화(평민마을학교) 시키는 연습을 해 보고 있습니다. 마을 속에서 농사를 열심히 짓고 있다보니 10여년의 과정이 이전 존재형식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만드는 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Q. 홍성 젊은 협동농장이 다른 곳이 아닌 이곳 홍성군 장곡면에서 시작하게 된 주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와 관련해서, 젊은 협동농장이 위치한 곳이 ‘오미 마을’로도 불리고 ‘오누이 마을’로도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장곡면 오누이 마을에는 오누이 커뮤니티 센터, 행복부엌, 예절교육관 등을 운영하는 ‘오누이 친환경 마을협동조합’, 그리고 농업과 돌봄을 연결하는 ‘행복농장 협동조합’ http://happyhada.com/ , 장곡 마을학교 등이 함께 모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젊은 협업농장이 오누이 마을에 오게된 이유와 함께, 이곳 오누이 마을에 여러 협동조합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도 함께 간단히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심이 된다는 것은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지켜야 할 것이 많으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주저하게 되고 지키기 위해 구심력이 강해집니다. 반면에 가장자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표현할 정도이니 지켜야 할 것은 당연히 없고 시작이 어렵지 하는 것은 수월합니다. 준비가 된 것이 없으니 일을 하기 위해서 원심력을 필요로 합니다. 저의 입장에선 장곡면은 가장자리였고, 농지는 구해지지 않고, 비닐하우스 1동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곳 –마을의 거주지와는 떨어진 곳- 이 도산2리였습니다. (집은 8km 떨어진 홍동면에 있습니다.) 도산 2리 마을 주거지 내로 들어가기 위해 현재 경작하는 시설하우스와 농지를 다시 임대하여 현재까지 사용 중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필요한 것이 생기고 필요한 것을 만들고 운영하기 위해서 또 사람이 모이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특히,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저밀도의 인구 구조이니 필요성은 더 많아집니다. 소비보다 생산이 더 익숙한 곳이니 필요하면 만들고, 시장성은 없다보니 시작할 때는 타의적 가난+운영의 묘안을 찾다보면 독특한 방식이 나옵니다. 점심 먹을 마땅한 식당이 없다보니 공동 식당을 만들고 (생미식당->행복부엌), 청년들이 머물 곳이 없으니 숙소(신축한 청년여성주택과 빈집을 리모델링한 청년남성주택)를 만들고, 단기로 오는 청년이 있으니 마을에 있는 숙소(한옥 예절교유관)가 활발히 활용됩니다. 숙식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일은 벌어집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청년이 있으니 정신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협동조합행복농장이 만들어지고, 기획 능력이 뛰어난 청년이 있으니 주민자치회에서 일하면서 지역의 노인 복지 체계를 고민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책을 좋아하는 청년이 있으니 마을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책을 만드는 일(웹진으로 격월간 사이통신, 일소공도가 있고 계간지로 마을독본이 있고 1년에 두번 마을 이라는 책을 발간한다.)이 벌어지고, 생물다양성 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 곤충을 좋아하는 청년이 또 회사를 만들고. 농촌에 이들이 사무실로 사용할 공간이 없다보니 오누이친환경마을협동조합이 관리하는 사무실을 공동으로 활용하게 되고..
이렇게 일이나 사람에 의해 조직이 분화되어가는데, 이들이 모여 있으면 또 다른 핵융합이 일어납니다. 장곡초등학교 학생이 너무 감소하니 대책을 세우자고 해서 장곡마을학교가 시작되고, 청년들에게 너무 일을 시키니 강의도 듣게 하자고 해서 여러 단체가 모여서 평민강좌를 만들고, 연구자가 자주 찾아오니 아예 마을에 연구자와 활동가 그리고 농민이 함께 마을학회를 만들어졌습니다. 마을학회를 만드니 또 연구분과는 매달 세미나를, 편집기획분과는 강학회를, 교류분과는 온갖 외부 단체와의 교류 활동을 하게 되었다. 활동이 활발해지니 연구분과는 마을연구소일소공도협동조합을 만들었고, 편집기획분과는 시골문화사라는 출판사를 열었고, 이제 교류분과는 여행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사업비가 조금 남길래 사무실이 모자랄 것 같아서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았더니 장학 사업을 하는 단체(삼선배움과나눔), 설계사무소(오우서), 또 다른 연구소(시시한 연구소)가 입주를 하였습니다. 이는 되돌이표 같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고, 견학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게 커지면 다시 단체가 필요할 것이고, 그럼 또 사람이 필요해지고… 일을 그만 좀 벌이라는 지청구를 듣고 있지만 내가 벌이는 것이 아니라 벌어지는 것이라 말합니다. 단체간의 합종연횡에 의해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나조차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경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과정이 농촌다움을 헤치는 것이 아니어야 하고, 농민이나 주민의 감수성에 맞추어야 하고, 농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도시의 것을 농촌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청년에게 농촌의 어르신 문화를 익숙하게 만들자는 것도 아닙디다. 청년에게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즉, 서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고 서로 침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외줄 위에서 좌우로 흔들거리며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어정쩡하게, 간신히 버티고 있는 위태롭고 우스꽝스럽고 불편한 모습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Q. 전통적으로 공동체적인 관계망이 깊은 곳이 농촌이기에, 농촌은 ‘협동조합’이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쉬울 수도 있지만, 반면 농촌은 전통적으로 토지 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위계적 관계망 또한 농촌 활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수평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활동에 어려움이 많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혹시 농촌에서 ‘농업 협동조합’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 활동 속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협동조합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협동”이라고 말하겠지만 저는 거창하게 말하면 “창의성”, 문학적으로 말하면 “시적 허용”, 전문가의 입을 빌리면 “제임스 스캇의 은닉대본, 플루흐의 아이러니와 더불어 잘 위장된 사보타지(2019)”에 가깝고, 일상적 단어로는 “잔머리”라 부를 수 있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본이 부족하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출자금을 모은다고 했는데 그 정도로 토지를 구입할 정도는 안됩니다. 그래서 현재 젊은협업농장도 모든 농지는 임차를 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임대차 관계에서 어떻게 수평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경자유전이라는 헌법에 적시된 원칙에 의해 토지개혁이 되었지만 현재, 소작이라 할 수 있는 임차농지는 60%를 넘어가니 60년 전으로 되돌아 간 것이니 당연한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기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회원 중 한명이 소유한 농지에 함께 농사를 짓고 시설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다면 협동적 생산 방식이 지속될 수 있을까? 아니면 협동조합법인이 토지를 소유해야 가능한가? 임대차 한 농지에서 평생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까?(보통 농지나 농업시설을 개인간 임대차할 때 길면 5년입니다. 뭐 계약서 자체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투자해 놓고 쫒겨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초기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가장 좋은 방안은 또 무엇일까?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지역 소멸 등의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는 상황은 미묘한 변화를 끌어낼 ‘여지’를 만듭니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에서는 항시 긴장감이 유지되고 균형을 맞추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쟁과 협상 그리고 타협이 이루어집니다. 그 협상의 근원이 되는 것이 “마을”이라는 공유지대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젊은협업농장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있음으로 해서 마을이 지속가능하고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끊임없는 확인은 토지 소유자에게는 계약서 없이도 그냥 계속 농사 짓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는 다시 여러 단체들이 마을 관련 활동을 가속화 시키는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약하게 남아있는 농촌의 마을공동체적 관계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토지소유자인 대부분의 선주민 리더의 입장에선 마을의 지속 불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공공성과 더불어 무언가를 성공시켜야 명망성이 지속되다는 성과욕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물론, 토지 소유자는 지역 사회내의 고루한 명예 욕구와 토지 가격 상승이라는 현실적 욕망에서 줄타기를 하고, 젊은협업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키는 지역사회 활동과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하는 경제적 필요 간에 줄타기를 합니다. 상호간 조금의 자만심과 과욕으로도 균형을 잃어버리는 백천간두이다보니 긴장의 끈은 항상 팽팽합니다. 팽팽하다고 하면 웬지 저항적이고 멋있게 보이지만 실은 다시 플르흐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발을 질질 끌면서 지연하기”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협동하자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와 양보를 통해 상호부조해야 하는 동력원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여러 활동이 있겠지만 농촌이 농촌다울 수 있는 것은 농업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길어지겠지만, 지금은 농업은 살아도 농촌은 사라질 상황입니다. 오랫동안 떠밀어 온 경제성 추구의 농업은 경쟁력이 있을지는 –이 경쟁력도 국가 내 농가간의 경쟁력에 불과- 몰라도 주변을 고려하는, 즉 농촌마을을 돌보던 농업의 역할은 소멸시켰습니다. 농업과 농촌이 분리된 것입니다. 마을과 생존을 같이 하는, 성장을 같이 하는 농업의 형태, 그러한 농업을 행하는 농민이 등장함으로써 농촌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협동조합을 통해 마을 속의 농업을 경험하고, 비록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업과 농민을 이해하고 농촌에서 활동함으로써 –비록 고리타분하고 고집스럽고 촌스러운- 고유성과 폐쇄성이라는 농촌마을공동체성의 긍정성은 확대하고 부정성은 최소화하여 새롭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농촌의 도시화가 아니라 촌스러움을 새롭게 해석하여 다른 형태의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도시라는 형태의 사회를 건강하게 전환시키는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후진성을 채 벗어나지 못한 천덕꾸러기로 보이는 농촌을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로 ‘번영’시키는 것이 아니고, 또 고유한 전통문화인 ‘우리것’만을 보전하는 민속촌이나 재봉건화하는 것도 아닌 -중심이 아닌 변방이기 때문에- 새롭게 ‘삶에 대처하는 방식을 고안(Long and Long, 1992)’해보는 것입니다.
Q. 젊은 협동조합 또는 오누이 친환경 마을협동조합에서 새로운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고, 어떻게 문의하면 되는지, 그리고 사전에 어떤 것들을 준비하면 좋은지에 대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몇 시간, 길어야 하루 정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을 농촌 체험, 농업 체험이라 합니다. 이런 이벤트성 체험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하지만, 농촌이나 농업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합니다.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이벤트 행사가 아니라 일상이어야 하고 일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소 2주이상… 이 정도면 사용함으로 인해 처음으로 그 존재를 확인한 근육의 통증도 사라지고, 초기의 긴장도 풀리고, 막연한 낭만이나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성도 사라지는 상태가 됩니다. 새벽에 눈이 자연스럽게 떠지고 거울을 안보니 씻지 않은 상태로 그리고 모르는 사람을 만날 일도 없으니 어제 입었던 옷을 그냥 걸치고 농장으로 나오는 상태가 됩니다. 별도의 프로그램은 없고 말씀대로 마을과 농장의 일상을 같이 살아보는 겁니다. 젊은협업농장은 40세 이하에게만 기회를 제공합니다. 문의는 젊은협업농장이나 평민마을학교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되고, 상호 협의를 충분히 거친 후에 진행됩니다.
Q. 이제 정민철 선생님 개인에 대해 한발 더 가까이 가보고자 합니다. 현재 젊은 협업농장 대표를 맡고 계시는 정민철 선생님께서는 대학에서 미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고, 생협 활동과의 인연 속에서 홍성 풀무학교에서 10여 년간 교사로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생물학 박사에서 풀무학교 교사로, 그리고 이후 농민이자 협동조합 대표로서의 삶으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오셨는데요. 이러한 도전과 전환의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또, 이러한 도전과 전환의 계기 속에서 정민철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셨고, 그리고 여전히 품고 계신 삶의 철학과 가치는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나마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제일 어려운 질문이 너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알았지만 저는 목표를 정해 놓고 일을 추진하지 않고, 눈 앞에 닥치는 일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방식을 선택하다보니 목표가 무엇인지 답을 내 놓지 못합니다.
학교 만드는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해서 농촌으로 왔고 –일을 보고 왔기 때문에 농촌으로 왔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 알았음- 학교에서 여러 일을 하다보니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여러 선생님과 교우하다보니 또 여러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전환은 시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결과가 보이고 활동이 매우 활발해지기 바로 직전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앞다퉈 나타나고 여러 논쟁도 벌어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환의 시점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일은, 즉 관리가 필요한 일은 멈추고 –나 말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전환의 방향을 고민합니다. 봉착했던 한계를 부여잡고 더 가장자리로 갈 것인가 아니면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더 중심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능력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와 만들어진 곳에서 누리는 것보다 없는 곳에서 만들어가는 것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자를 선택하게 됩니다. 저만의 대단한 삶의 철학은 없습니다. 멋있는 말로 철학이나 사상을 말해보면 다 책에서 읽은 것이고 다른 분에게 들은 것이고 주변 사람들의 행위를 모방한 것에 불과합니다. 어려운 유기농업을 왜하냐는 질문에 생태와 지속가능성, 우주의 기운과 생명의 가치 그리고 농민의 노고와 농업의 중요성을 엮어서 멋있게 말할 수 있겠지만 실은, 농약과 비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처음 해본 것이 유기농업이다보니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답입니다. 독립과 협동, 분화와 연대 등의 통합적 진행 방식도 다 앞선 경험에서 배운 것입니다. 아마, 저하고 맞으니 더 빨리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대적 화두를 말하는 것은 훌륭하신 분들에게 맡겨두고 현재의 화두에 매달리는 것, 즉 “일상생활의 존엄성 안에서 숨 쉬는”(Holloway, 2002) 수준에서 세상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Q. 산업화 이후 도시의 소비적 삶은 농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농촌은 도시의 희생양으로 전락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농촌은 점차 자율성을 잃거나 소멸해 나가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후 도시의 소비적 삶은 농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농촌은 도시의 희생양으로 전락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농촌은 점차 자율성을 잃거나 소멸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이 도시의 희생양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도시는 지역으로서의 농촌이 없어지거나, 농촌의 삶을 도시적 삶에 품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농촌의 자율적인 변화와 전환은 농촌 스스로는 물론 현재의 반생태적이고 투기적인 도시의 삶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농촌의 변화는 (앞으로 그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든) 단지 농촌 지역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거주민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아가 농촌과 도시 사이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종합적인 정책, 정치, 운동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농촌이 어떤 방향으로, 그리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나아가 이를 위해 농촌과 도시의 실천가와 연구자들이 어떤 협력을 해나가야하는지에 대한 정민철 선생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답이야 “잘 협력하자”겠죠? 농촌이 도시의 희생양이 된 농촌의 모습은 산업화 를 거친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농촌의 변화가 도시의 반생태적이고 투기적인 삶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반만 맞습니다. 근대화, 산업화를 통해 도시화를 극단적으로 밀고 온 현 상황에서 이젠, 농촌까지 산업화, 도시화의 큰 흐름으로 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중앙정부와 연구자들에 의해 그렇게 이식시키려한 경쟁력 있는 농업이라는 수십년간의 정책 기조는 이제 현장에서는 자기주도적으로 경쟁주의가 접속되어 버렸습니다. 페러다임을 바꾸자고 구호를 외치더라도 가속화된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고 농촌 역시 그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번영’이라 부릅니다. 페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바꾸자고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 자체가 예전 페러다임이 편안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구호만 바뀌지 내용은 유사합니다. 농촌에 살고 싶다고 온 도시에서 평생을 살다 온 청년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가 편안하거나 익숙하다면 그건 도시화된 것이고, 내가 불편하거나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농촌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도시의 삶이 싫다고 농촌으로 와서 불편하고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모두 없애고, 내가 익숙하고 편안한 무엇을 농촌에 이식시킨다면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도시로 다시 나를 가두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불편함을 무작정 없애려 하지 말고 한참을 응시하라. 그것이 부당한 것이라면 변화시켜야겠지만, 아마 너가 변화,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너가 바랬던 –비록 착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농촌의 삶일 가능성이 높다.” 농업, 농촌에 대해 여전히 약간의 부채의식이라도 가진 세대가 있습니다. 김홍중교수의 세대 구분으로는 ‘진성성의 세대’입니다. ‘생존주의’ 세대에겐 그런 부채의식이 없습니다. 부채의식을 조금이라도 가진 마지막 세대들이 –그들은 농촌 출생이 많고 농촌을 떠나 도시에 안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구와 활동과 정책의 결정 단위에 있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에서 농촌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선생님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말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농촌은 봉사를 당하는 곳이 아닙니다. 꼭 필요하다면 봉사를 당하는 희생을 –봉사의 경험을 통해 학생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봉사- 할 수는 있습니다. 농업의 힘듦과 농민의 수고를 알게 할 수도 있겠지만, 더 좋은 것은 학생들에게 이 마을 공간을 이 마을 농민과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지금 도시 청소년들이 앞으로 60년은 넘게 살아갈 건데 그 기간동안 한번은 무릎이 꺾이는 상황을 맞이할 것입니다. 손에 일이만원만 쥔 상태로 역 앞에 홀로서서 멍하니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스치면 떠오르는 한 공간을 지금 만들어주면 어떨까. 그런 곳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업는 사람은 삶의 경로가 달라질 수도 있다.”
식량위기와 기후위기라는 생존 공포 때문에 농촌을 지켜야하는 것이 아니고,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에게 힐링과 여유를 주는 곳이기 때문에 가꾸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단한 노동과 궁핍과 긍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농민의 도덕 경제라는 책은 농민을 ‘물 속에서 물이 턱까지 찬 상태로 계속 서 있기 때문에 물결이 조금만 일어도 익사하게 되는’ 상태로 묘사한 토니의 은유로 시작한다.- 살아감에도 자율적으로 사회적 경험을 쌓아가며 삶을 구성하는 사회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농촌으로 –식량생산기지라는 농촌, 공단지대가 아니라 농단지대라는 생각에서- 전환해야 실패의 가능성을 여유롭게 받아 들일 수 있는 국가나 사회의 안전망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농촌의 전환은 농촌주민이 아니라 도시 시민에게 더 중요해진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농촌과 연결된 대안적 삶을 꿈꾸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는 도시민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말이 너무 많이 한것 같습니다.
많이 안다고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수록 더 두려울 뿐입니다. 준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야 준비를 하는데 농촌을 모르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는게 불가능합니다. 대안이라 하지만 실은 현재의 반대에 불과합니다. 수만키로 떨어진 미국과 호주는 쉽게 다녀오는데 수백키로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한국농촌을 가는 것이 더 두렵고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냥 가서 한달 산다고 속살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어쨋든 연결을 시키고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가서 내가 배우고 알고 있는 것을 이식하거나 배풀려고 하지 말고, 그곳에서 우선 배우고 또 익혀야 합니다. 농촌에서 새롭게 배우고 익힌 것과 이전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융합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가 혁신이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대안적인 삶은 –책에 있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혁신의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송지우, 심여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2년 07월 30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