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의 신체들 – 폭력 이후의 인간 | 엄문희 아름다운 붉은 선

1월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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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커먼즈 포럼 3 <국가를 커머닝하기>

최전방의 신체들 – 폭력 이후의 인간

엄문희 (아름다운 붉은 선)


안녕하세요. 제주 강정마을에서 왔습니다. 엄문희라고 합니다. “최전방의 신체들” 이라고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저는 ‘폭력 이후의 인간, 구체적으로 그들이 실천하고 있는 피해와 복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지금 표지에 나와 있는 이 사람은 강정마을에 있는 제 친구입니다. 강정마을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소위 원주민이고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함께 한 동무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서귀포 의료원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해군기지 반대투쟁 과정에서 많은 심리적 외상과 신체적 손상을 입었고, 그와 관련해서 다양한 아픔에 노출된 상태였고, 최근에 그 질환이 좀 심해져서 갑자기 중환자실에, 일반 병동도 아닌 중환자실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걸 모른 채로 “내가 표지에 너를 좀 쓰려고 하는데 괜찮아?” 하고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이틀 동안 전화가 안 됐어요. 너무 이상해서 가족들에게 전화 해 보니까 병원에 있다는 겁니다. 다행히 통화를 하고 이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2018년 10월에 국제관함식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에 처음으로 미 해군 항공모함이 왔던 장면입니다. 마을 주민의 몇 배가 되는 군인들이 한꺼번에 마을에 쏟아졌고, 다양한 폭력이 이어졌고, 정말 밤샘 야전 대치 같은 걸 군인들과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 밤, 얼음처럼 파랗게 굳어있는 친구를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최전방의 신체, 강정마을과 월정리

오늘 두 개의 현장에 있는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텐데요, 이것은 시입니다. 제목이 <월정리 불침번>이라고 해요. 월정리 바다를 지키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해녀들은 공사 업체 앞에서 불침번을 서기도 했어요. 그 컨테이너 불침번을 함께 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썼던 시입니다. 부끄러운데요. (웃음)

최근에 우리는 이런 대화를 했어요. 너무 견딜 수 없고, 너무 힘들고, 아픈거에요. 살 방도를 찾아서 여성 활동가들 몇 명이 우리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우리의 감정과 사실을 함께 담아서 시를 쓰면 어떻겠냐 해서 여름부터 시를 쓰고 있어요. 일종의 기록 활동이죠. 그 작업의 하나로 해녀 할머니들과 함께 겪은 어떤 사건을 쓴 건데, 사실은 오늘 발표 주제가 이날 이 사건에서 왔어요. 너무 추워서 전기장판 5번, 6번 켰는데도 진짜 추운 컨테이너 안이었어요. 바깥에 아무것도 없고, 화장실 가려고 그 컴컴한 바깥에 바람이 부는 해안 쪽으로 200m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무섭고 위험하니까 3~4명이 손잡고 가야 하는 거죠. 해녀 불침번 컨테이너는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정문 앞에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만난 해녀들은 세상 무서울 것 없고, 농사면 농사, 자식 기르고, 뭐 너무 씩씩하고 너무 에너지가 있으신 분들인데요. 그 무서울 것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분들인데 제가 놀랐던 것이 남자들을 너무 무서워하는 거예요. 컨테이너 안에서 잠을 자는데 문 앞에서 못 주무시는 거예요. 왜냐면 남자가 문을 열까 봐 못 주무시는 거예요. 놀라운 장면이었어요. 남자 혹은 공사업체 사람이 쳐다볼까 봐 무섭고, 아들이 올까 봐 무섭고, 남편한테 혼날까 봐 무섭고, 이장님이 와서 뭐라 할까 봐 무섭고, 남자가 너무 싫고 남자가 너무 무섭다는 거예요.

이 감각은, 이 감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상태가 어느 날 갑자기, 이번 투쟁 과정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평생 누적됐고, 몸에 쌓인 그런 두려움의 흔적, 바로 심리적 외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결국, 제가 문 앞에서 잤어요. 보통은 저를 늘 환영하면서 막 챙겨주고 살펴주시는데, 저의 불침번의 자리는 문 입구인 거예요. 네가 우리(해녀들)를 좀 지키라고 하는 거예요. 그날 밤에 생각했죠. 이것은 어떤 공포 상황에서 나타나는 정신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좁 다른 손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관련돼서 책을 찾아보니까 제가 궁금해하던 이야기들. 그런 언어가 있기는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 중심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었던 거죠. 바다에 널려야 될 테왁, 물질하는 해녀들의 생명줄이자 부표 같은 거죠. 할머니들이 그 자리에 있다는, 그 밑에 해녀가 있다는 일종의 좌표예요. 그 테왁이 여기 월정리에선 아스팔트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이건 해녀분들이 관청에서 밤을 새며 도지사 면담을 요청하던 밤의 장면입니다. 비닐로 몸을 말고 이렇게 버티면서 주무시기도 했네요.

제가 두 개의 마을을 소개한다 했는데, 이건 강정입니다. 신기하게도 두 개의 마을은 전부 다 물 ‘정’자로 끝납니다. 물이 굉장히 중요한 곳이긴 한데요. 이것도 제가 지은 시입니다.

두 개의 마주 보는 점빵 사이로
버스를 기다리는 까만 밤 우산
잃어버린 마을 큰길에 사람이 없다
계절 끝에 부서진 강정 귤 상자
그 위에 비 맞고 물 먹어 터진 깃발의 이름
이게 다 뭐라고 코가 팽 시다

우산을 깊이 눌러 쓴 친구가
진동 없는 걸음으로 돌아가는 집
타는 숲 빨간 하늘에도 비가 왔을까
그때는 고작 밤 9시, 평화로운 담벼락
이 시골에도 막차는 아직 멀었는데
울다가 지친 마을인가 사람이 없다
긍지를 잃은 목소리는 비를 부르고
흔들리는 반가움을 속이느라
삼촌은 고양이보다 빠르게 간다.

어느 날 제가 9시 경에 버스를 타고 잠깐 어딜 나갔다 오려고 하는데, 마을에 와서 버스에서 내리는데 어떤 삼촌이 빠르게 길을 건너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삼촌이 인사도 안 받고 제 눈을 안 쳐다보고 걸어가셨어요. 원래는 되게 친하게 지냈던 삼촌인데 최근에 이제 소위 말하면 해군기지 반대하시다가 찬성 쪽으로 가셨거든요. 그런 이유인지, 저를 정말 못 보고 가시는 건지 알 수 없으면서도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훅 오는거예요. 어떤 부끄러움 같은 게 느껴졌어요. 저의 감정일 수도 있죠.

기지촌이란 무엇인가? 강정이 기지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어요. 해군 기지가 문 여는 날부터 계속 그 과정을 목격하면서 그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요. 저는 기지촌이 된다는 건 온 동네가, 온 사람들이 다 긍지를 잃어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해군도 부끄럽고요. 사실 해군도 당당하지 못해요. 부끄럽고, 해군 기지 반대 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너무 그 와중에 손상됐고, 다 졌고, 다 잃었고, 빼앗겼고, 그렇게 너덜너덜해졌고요. 해군 기지를 찬성했던 분들도 모종의 부끄러움을 방어 기제로 막기 위해서 더욱 과도한, 어떤 국가주의적 행동들을. 국가를 대리하는 행위를 하면서 자기를 계속 설명하려고, 하면서도 제 눈을 피하고. 그러니까 모두가 다, 아무도 여기는 어떤 긍지를 가진 사람이, 이긴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이긴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이거는, 무언가 소위 트라우마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최전방의 신체들이라고, 약간 용어를 정리할 필요를 느껴서. 최전방은 우리가 아는 대로 사실은 국가의 국경선일까? 이렇게 생각하지만 제가 쓰고 있는 최전방이란 말은 물론 적과 맞서는 물리적인 맨 앞 이긴 합니다. 국가 폭력의 현장이자 공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사건, 그런 종류의 사고가 일상화되는 장소, 그러니까 투쟁 현장을 둘러싼 역동 전반인데, 그것들이 가장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고, 오늘 즈음에 드는 마음은 국가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국가와 직접 만나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러 단계를 거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된 국가가 아니라 실제 국가랑 직접 만나고 있는 곳이구나. 강정은 정말 최전방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신체들은 말 그대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 투쟁자들, 저, 여러분들, 이런 폭력을 경험하고.

폭력의 양상은 되게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 내가 존재하는 현장에서 다양한 억압과 폭력들을 분명히 다 경험하고 있을 거고, 좌절을 경험하고 있을 거고, 그게 수치심과 모멸과 실망과 절망과 우울, 여러 가지 다 나타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우리들, 저에 대한 거예요. 그 ‘신체’라는 말은요.

폭력, 그리고 도덕적 손상

트라우마라고 말합니다. 이거는 정신과적 용어로서 심리적 외상을 뜻하죠. 그런데 사이코시스하고 뉴로시스는 좀 다르거든요. 트라우마는 사이코시스예요. 그래서 완전히 뇌의 기전 자체가 사실은 변화하는 일입니다. 어떤 비슷한 상황이거나 촉발되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갑자기 상태 자체가 변화되는, 그리고 공포에 기반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 트라우마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 사회가 트라우마들로 구성되어서 이전과는 다른 사회, 그리고 다른 가능성을 가질 수 없는 사회, 혹은 이상하게 왜곡된 사회. 말하기는 어렵지만 4.3을 겪은 이후에 제주에 어떤 모습이 있는 것처럼요.

도덕적 손상.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이거는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들 연구한 연구에서부터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PTSD와는 다른, 보통 이제 트라우마가 문제로 삼는 것하고 또 다른 기전이 분명히 보이는데, 그것이 그들 참전 용사들에게서 비윤리적인 일을 경험했거나 자기가 했거나, 당했거나, 반인류적인 일을 막지 못한 데서 오는 지극한 슬픔에서 오는 도덕적 손상이 생겨났고, 이 발표에서 이 개념은 국가와 대립하는 커머너들이 갖게 되는 외상을 단순히 정신병리학적으로 분류하는 것에 부동의하고요. 사회 질서를 재배치하거나 되찾기 위한 커머닝 실천 과정에서 좌절 가운데 공포 감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도덕적 상처에 대한, 그 절망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 하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는 그것을 개별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폭력을 지휘한 주체를 가려내는 것에 집중해 왔었어요. 하지만 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폭력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거나, 폭력 상태를 외면하거나, 방임한 사람들에 대한 앎과 이해까지, 그러니까 전체 사회에 대한 이해가 같이 있어야 하는. 내러티브가 완전히 좀 다양해지고 더 높아져야 되는 그런 상태가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두 개의 마을, 강정마을과 월정마을의 여성 투쟁, 둘 다 대표적인 사진으로 여성 투쟁자들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강정마을입니다.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에는 이런 식으로 미군함이 입항을 하고 있고, 맨몸으로 카약에 저항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데 신기하게 이들이 군함 앞에서 외치는 구호는요. 사실은 미국 물러나라, 반대한다, 가 아니에요. 굉장히 뜨거운 경험이었는데, “여기에 멸치가 있다!”, “여기 내가 있다!”, “여기 누가 있다!” 하면서 자기 자신을 불러요. 그러니까 이게 너무 무섭고 두렵고 그런 상황에서 다음 구호 이전에 처음에 몸을 덜덜 떨면서 나온 구호가 여기 “내가 있다”예요. 그리고 이렇게 중문농협 강정지점 앞으로 해군기지 진입도로 등을 두고, 신설된 도로를 두고 마을 안으로 차들이 아무 때나 들어오고, 군인들이 아무 때나 입장하고, 사주 경계를 하면서 총 든 군인들이 막 그냥 무작위로 들어오고. 때로는 국가도 필요에 따라서 마을 전체를 봉쇄하는 힘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강정마을에 이런 일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왔어요. 저 뒤쪽으로 그러니까 마을 전체를 다 봉쇄해 버렸습니다. 길을 저렇게 경찰력을 세워서 사람들이, 당시에는 저 경찰들 등 뒤로 우리 집이 있었는데요. 저희 애가 있었는데, 집에 못 갔습니다.

제주도와 월정리 남성 권력은 월정리 해녀들의 투쟁을 함께 방해했습니다. 월정리뿐 아니라 마을이라는 규모와 형태의 공동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인데요. 마을에 있는 남성분들, 그러니까 자기 남편, 아들들이 해녀들의 투쟁을 같이 방해했죠. 관찰 결과 해녀들은 아까 말한 것처럼 남자들을 매우 무서워했고, 모욕과 무력감을 자주 호소했고, 오로지 해녀 공동체 안에서만 안전을 느끼셨어요. 그런데 결국 월정 해녀들 곁에 머물면서 불침번을 서고, 연대를 조직한 이들은 가까운 그들의 가족들이 아니라, 제주도내 혹은 육지에 있는 전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여성들이었습니다. 강정과 월정리의 사례에서 도덕적 손상의 개념으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어떤 개인의 상처, 트라우마는 보통 개인에 집중하는 형태고, 그것을 어떤 약물이나 맥락이 소거된 채로 그 사람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의를 가져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구조적으로 사실은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힘에는 굉장히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법칙들, 구조적 폭력을 감지하는 인간들의 어떤 좌표들을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손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시도들이 그래서 더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상징적인 언어로 모닥불 정치라고 했는데요. 이거는 이미 멕시코 ‘체란’이라는 곳에서 있었던 일이고, 무자비하게 벌채하고 있는 벌목꾼들을 지역 여성들이 잡아다가 몽둥이로 쫓아낸 사건이죠. 사실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인근에 있는 폭력 카르텔에 의해서 굉장히 온 마을이 전부 다 위험해질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그날부터 모닥불을 펴고 불침번을 서면서 새로운 회의를 하게 돼요. 여성이 그 회의를 주도하게 됐고, 벌목꾼을 쫓아내는 것을 문제 삼아서 시작된 논의가 사실은 이 마을의 질서를 찾기 위해서 새로운 질서를 꾸미는 일. 여성과 남성, 노인 모두가 평등해지는 방법, 그리고 낙오자 없이 이 마을에서 서로가 다 공존하는 것에 대한 고민처럼, 거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식의 토론의 장이 열리거든요. 근데 강정과 월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데요. 이게 반드시 모닥불이라고 하는 게, 불을 피운다는 게 아니라 우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중심에 놓이는 모멘트가 생겨난다는 뜻이기도 하죠.

기록은 상처를 치유한다

강정에서 사용한 방법은 아카이빙입니다. 해군 기지로 인해서 파괴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물과 관련된, 그런 자연과 관련된 것. 묻혀버린, 파괴된 그 물길을 찾아서 복원하면서 계속 그 기록을 하고 있거든요. 기록 자체가 사실 공동체를 만들고요. 이 기록이 사실 말하기에 힘을 주기도 하고요. 저는 이제 도덕적 손상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는데, 앞에서 쓸데없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다가 사실 그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다음에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는데, 도덕적 손상을 통해서 바라보는 커머너들의 좌절, 혹은 새로운 가능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보자면 하나는 아까 말했던 모닥불처럼 우리 하나라도 모먼트, 우리의 이야기. 그러니까 저는 이야기 자체가 사실 커먼즈라고도 생각을 하고요. 역사를 만드는 것, 그 서사를 우리가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수처리장 증설 공사가 시작되는 날 아침에 해녀 할머니들이 전부 다 모여서 공사장을 막고 있었는데, 한 할머니가 마이크를 들고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노래는 예상 못 했던 거였어요. 해녀 항일 투쟁가를 부르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이전에 여러 가지 항일 투쟁이라든지, 해방이나 혁명에 관한 노래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서, 찬란한 세상이 열려서 다시 한번 그 희망이 도래하는. 이런 단어들이 나오는데, 할머니들의 노래에는 사실 그런 게 전혀 없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지금의 이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현장이 사실은 어떤 맥락에서 비롯되었고, 우리가 지금 어디에 놓여 있는가? 사실은 그걸 이야기하고 있어요. 해녀 항일 투쟁가는 찬란한 단어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담담하게 그들이 처한 상태를 그냥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하려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 가사가 어떻게 되냐면,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은날 무더운날 비가오는 날에도

저 바다 물결위에 시달리는 몸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해야 하고, 멀리서 시집 와 가지고 집에도 못 가고, 온 가족의 생명줄을 다 등에다 지고 하고 있는데. 이렇게 싸우는데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핍박과 모멸과 두려움이고, 남편한테 혼나고, 아들한테 혼나고, 마을 이장한테 혼나고, 계장한테 혼나고, 사실 이런 사람들. 가엾은 우리 해녀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 이런 단어들인 거죠.

마지막 화면입니다. 기메라고 합니다. 기록에 관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시로도 기록할 수 있고, 노래도 기록할 수 있고 한데 기메는 굿 할 때요. 특히 제주에서 이제 신의 형상, 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얀 종이에 오려서 붙이는 것인데요. 지전이라고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제주에서는 지전과는 조금 더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 기메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지만 우리의 사연, 우리가 하고 싶은 말,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을 표현한 것이고. 이건 새로운 방식의 기록이기도 하고 싸우는 사람들,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 가지기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손상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어떤 되게 중요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왜냐면, 이 기메에 굉장히 오랜 역사가 있는 것 같지만 4·3 이후에 생겨났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어요. 4.3 이후에 4.3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 자신들의 손상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데 그것들을 대리해서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고 그 이야기가 굉장히 추상화되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기어이 전승하기 위해서. 새로운 삶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했던 방법의 하나가 상처를 형상화해서 오려서 붙이고 전시하는 행위였던 거죠.

도덕적 손상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손상이라는 것이 맥락 없이, 좌표나 입장과 상관없이 우리가 단번에 어떤 상처를 치유하는 몸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연고 바르는 것처럼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 서사를 만들어내고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글 | 엄문희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김세환,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윤형준,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1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