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의 주거권
그동안 외면 받아온 세입자들의 주거권 문제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방치되어 온 사회적 재난이라고 할 수 있는 깡통전세·전세사기 문제가 전국 곳곳에서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주거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과연 정말로 모두가 각자도생하며 월세→전세→소유라는 주거 사다리에 안전하게 탑승하길 바라고 있는 것일까.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대책위를 조직하고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반면, 국가는 끝까지 모른 척 외면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 사회에서 주거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소유 자체도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는 그런 구조라면, 우리의 집과 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웹진 공유도시 팀은 2024년 8월호에서 주거의 사각지대 속 주거취약계층으로 대두된 청년 세입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달팽이 유니온’의 활동가 동규, 가원, 지수를 만나 이 문제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유 자체도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는 그런 구조라면, 우리의 집과 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까?“
민달팽이유니온과 청년 세입자의 권리
Q. 민달팽이유니온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가원 : 민달팽이유니온은 2011년부터 활동한 청년 세입자 당사자 연대입니다. 한국 사회의 주거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청년 연령대의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상담 및 교육을 진행하고, 현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이슈 파이팅을 진행합니다. 이외에도 주거권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사회 분야와의 연대 활동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Q. 각자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가원 : 민달팽이유니온(이하 민유) 사무국 활동가로는 2021년부터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계속 기숙사에 살다가 졸업 즈음 학교 근처에 집을 알아보니 제가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주변 달팽이집1에 공실이 있어서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민유는 이전에도 캠퍼스 안에서 기숙사 운동을 했던 터라 알고 있던 단체였는데, 이 계기로 민유 회원이 되었고,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하 민쿱)의 입주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건물주가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민쿱과 계약을 해지하면서 운영 종료가 되었고, 급하게 ‘달팽이집 연희’로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달팽이집 연희’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님비(NIMBY)가 있어서, 입주자들이 직접 언론 인터뷰나 기자회견 발언을 하는 등의 조합원 목소리를 모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달팽이집에 사는 것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민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상근활동가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동규 : 저는 2016년에 민유 회원으로 가입하고, 민유 회원으로, 민쿱 조합원으로서 활동하다가 2022년 11월부터 사무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 입학하고 서울에 와서 자취를 한 4-5년 정도 했는데 그때 집과 관련된 문제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예컨대, 전대차계약을 했는데 원계약이 없어지면서 갑자기 퇴실해야 한다거나, 굉장히 좁은 집에 화장실을 5명이 공유해서 쓴다든지 너무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민유를 알게 되었고, 주거 문제를 개인이 돈을 많이 벌어서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같이 힘을 모아서 사회적으로 이야기하고, 해결하고자 여러 활동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선뜻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집과 도시에 대한 문제에 관심가지게 되었고 민유에서 ‘UN-Habitat III 회의’에 다녀온 후기를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자리에도 참여하고, 그동안은 혼자 다녔던 촛불집회도 같이 다니고 하면서 점점 재밌게 활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수 : 2014년 첫 달팽이집이 만들어질 때, 당시 활동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기관의 단장님이 이런 집이 있으니 신청해보라고 건네주신 포스터로 민달팽이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주거분과 활동을 하게 되면서 회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어느 날, 살던 집에서 갑작스러운 퇴거를 겪게 되었을 때,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서 달팽이집 입주를 제안주셨어요. 달팽이집이 없었다면 원가족에게 돌아가거나 고시원에 가야 했을텐데, 직접 달팽이집에 살면서 함께 집을 리모델링도 하고 공동체도 경험하면서, 회원 활동을 너머 더 깊게 관여하고 엮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모두에게 필요하고, 주거권이라는 건 내가 존재할 자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잖아요. 이것이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고, 내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를 사람들 대신해서 여기저기 말하고 실천하는 이들과 동료가 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입자들이 모여 주거권이 보장되는 집의 가능성을 직접 고민하고 실천하는 달팽이집이라는 실체가 저와 공동체에게 주는 자부심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집은 돈벌이수단이 아니고, 달팽이집 같은 비영리 주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더 힘을 보태며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상근자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1 달팽이집이란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주택을 말한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2014년에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들이 설립하였으며, 달팽이집 입주자, 입주희망자, 지지자가 조합원인 협동조합이다. 현재까지 민달팽이 두 단체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전세사기 문제, 대응과 연대
Q. 전세사기 라는 큰 사회적 문제와 함께 민달팽이 유니온의 활동도 많이 바빠졌을거 같아요. 민달팽이 유니온은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가원 : 2011년부터 민유는 주변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거 상담을 진행해왔는데, 전세사기 상담은 초창기부터 계속 들어왔습니다. 예를 들면 ‘전세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구체적인 표현 외에도, 임대인이 가지각색의 이유를 대며 보증금을 안 돌려주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민유는 크게 두 가지 흐름 속에서 전세사기 문제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택 임대차 관행 안에서 임대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손쉽게 떼 먹을 수 있는 문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2021년 이후 집값이 상승에서 하락 국면으로 들어섰을 때 깡통전세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지면서 발생한 전세사기 문제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 전세사기 문제에 대한 대응을 2022년 여름에 국회 토론회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지역 별로 형성된 피해자 대책위와 시민사회 연대체로 만나서 큰 흐름 안에서 대응하게 되었습니다.
동규 : 2023년 3월에 전세사기 희생자가 발생하고 추모 행진을 할 때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지나가시던 분이 ‘자기도 5년 전에 보증금을 못 돌려받아서 고생을 심하게 했는데 아직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번에는 너무 크게 문제가 발생한 게 정말 마음이 슬프다’라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이처럼 전세사기는 굉장히 오래된 문제라는 것이죠. 2022년 미추홀 사건 이전에도, 2019년 화곡 강서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보도가 많이 되었지만, 사회적으로 논의가 충분히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22년부터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굉장히 커지고, 많은 희생자들이 나타나면서 시민사회 운동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2023년 3월 추모 행동부터는 시민사회단체들과 공동대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응은 기본적으로 피해자 상담 신청이 오면 상황 파악을 먼저하고, 대응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안내해드립니다. 내용증명을 어떻게 보내야 된다던지 아니면 피해 지원 신청을 한다든지 하는데, 그중에는 입주 전 상태에서 피해가 예상되어서 활동가들이 직접 분양대행 사무실을 쫓아가서 계약을 해지시키고 계약금 받아냈던 적도 있습니다. 상담 활동 이외에 시민대책위 활동으로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운동과 예방 관련 입법화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피해상황이 계속 접수되니까 그걸 가지고 캠페인과 함께 정부나 국회 쪽에 질의하면서 의견을 개진해 나가고 있는데요, 다만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1년 넘게 개정을 못하고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해버렸습니다. 제도적 논의와 구제책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는 채로 정부가 지지부진하게 1년 반을 끌어오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해결을 볼 수 있도록 대응을 이어 나가려고 합니다.
사실 전세사기·깡통전세 이렇게 병기해서 쓰고 있기도 하지만, 초기에 시민사회에서 요구했던 특별법 제목에는 ‘전세사기’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사기’는 정부 측에서 기입한 단어이고, 의도적으로 세입자를 속여서 그 돈을 떼먹는 행위 외에 본질적인 문제인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문제, 즉 피해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셈 입니다. 세입자의 지위가 굉장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국가는 소위 주거사다리를 이야기하면서 ‘월세 사시나요? 대출해서 전세 사시죠’ 하고, 또 ‘대출을 해줄 테니까 이제 자가를 사시죠’하는 방식을 펼쳐온 것입니다. 그러면 대출을 많이 해주니 전세금이 높아지고, 전세금이 높아지니까 집값이 올라가고 결국 주거 부담 비용이 올라가는 악순환이 지난 십수년간 계속되어온 것입니다. 전세대출 제도가 2008년에 생긴 이후로 악순환이 이어져 온 가운데 세입자의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킬 방법 혹은 임대인-소유주의 금융적인 리스크가 세입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들은 전혀 없었고, 임대인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규제도 받지 않고 그냥 국가가 지원해주는 보증금을 가지고 갭 투기를 하고, 사업에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Q. 그렇다면 민달팽이 유니온과 같은 시민사회 영역 이외에 정부-국가 영역에서는 전세 사기에 대해서 적극적인 액션 이런 게 없었던 건가요? 그리고 그 대응 모습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가원 : 특별법 전에는 경찰 신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피해자분들 증언이 있습니다. 오늘(6월 10일) 아침에 있었던 국회 기자회견 발언문에서도 피해자 한 분이 비슷한 발언을 하셨는데요. ‘대출 받아서 전세를 갔는데, 전세금을 못 돌려받으면 나의 신용에 문제가 생기니까 은행에 갔더니 은행에서는 모른다고 국토부 가서 의견을 들어오라고 하는데, 국토부 관련 부서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시더라고요. 특별법이 만들어진 이후에 관련 센터가 생기긴 했습니다만, 저희처럼 직접 대응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잘 없습니다. 저희도 소규모로 활동하는지라 모든 사례를 감당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동규 : 전체 가구 중에서 절반 정도는 세입자로 살고 있는 상황에서, 세입자의 주택 임대차에 관한 정부의 행정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서울에는 전체 자치구의 하나씩 그리고 중앙에 하나, 주거복지센터가 있지만 주된 기능이 일반적인 임대차 관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개입한다기보다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복지 정책을 전달하고 상담하는데에 더욱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적으로 주택 임대차 신고제가 들어선 지 거의 5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과태료 부과가 계속 유예되어서 신고율이 30% 정도인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민간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어떻게 계약을 하고 있는지’, ‘계약의 보증금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 상황을 고용과 노동 관련해서 비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주택 임대차에서는 분쟁 조정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아직도 세입자에게는 먼 이야기고, 임대인은 그냥 쉽게 거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근로감독관이 있고, 문제 상황이 있으면 경찰 권한을 가진 사람이 현장에 나와서 어떤 행정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주택 임대차에는 그런 보호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행정의 도시나 주택 관련 부서들의 업무 내용을 보면 대부분 정비 사업 혹은 그나마 있는 게 등록 임대주택 관리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임대차행정을 담당하는 주거 관련 부서가 없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으로 세입자들을 살피는 행정 체계가 거의 없는 상황이고, 전세사기 관련 상담 센터는 정말 예외적인 상황에 긴급하게 만들어져서 한 1~2년 대응하면 사라지는 조직처럼 지금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마저도 특별법이나 정부 조치에 따른 정책을 안내하는 정도이지, 제대로 대응하는 기구는 아닌 상황입니다. 그래서 민유는 계속해서 주거감독관 만들어야 된다라는 요구를 창립 때부터 요구하고 있는 바입니다.
Q. 그렇다면 전세사기는 근원적으로 없어질 수 없는 것인가요?
가원 : 저희는 진지하게 전세라는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앞서 전세사기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냐는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해보면, 몇몇의 악성 임대인, 악성 공인중개사 등 때문만이 아니라 주거 사다리라는 허상 때문에 높아지는 집값 대부분을 세입자들이 부담하게끔 만들어진 구조적인 문제가 전세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깡통 전세도 매매가율의 90%, 100%에 육박하게끔 전세 보증금을 받아왔는데, 그렇다면 그 집은 과연 누구의 집일까, 소유권이 임대인한테 있다고 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죠.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집으로 큰 돈을 벌고 싶었던 사회적인 욕망이 지금의 현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상품처럼 사고 파는 것으로 여겼던 인식들이 굉장히 위험한 투기로 이어져 온 것이잖아요. 은행이 임대인한테 빌려주는 돈에 대한 규제는 있는데,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빌려주는 돈에 대해서는 규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보증금도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똑같은 빚인데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입자의 돈으로 임대인이 어딘가에 융통하고 있지만, 채권자가 을인 상황이 문제가 있는 것이죠.
사실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보증금을 안 돌려주는 임대인은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이 문제에 어떻게 개입할 것이고, 사회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말그대로 손을 놓고 있어요. 이러한 구조에서 큰 규모의 보증금은 말그대로 임대인이 쥐고 흔드는 무기가 됩니다. 세입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죠. 예를 들어 집에 하자가 발생해도 제때 조치하지 않으면서, 세입자는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걱정까지 해야 합니다. 또 계약 종료 시점에 임대인은 다음 세입자를 구해줘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하면서 그에 따른 수고도 세입자에게 전가해 버립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 문제를 사인 간의 내용으로 취급하려는 것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죠.
Q. 특별법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사기 문제는 국가가 해결하지 않았는데, 왜 전세사기는 해야 되냐’라는 반론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규 : 굉장히 화가 나는 얘기입니다. 이 문제는 세입자들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공인한 자격을 가지고 공인중개사가 중개를 하고, 감정평가사가 주택에 대한 가격을 감정하고, 그에 따라서 금융기관에서 심사를 해서 대출을 내주는데, 이를 바탕으로 계약서를 쓰고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이 나머지 사람들의 책임은 싹 사라지고 세입자만 책임을 져야 하나요? 전세대출이라는 제도를 만든 국가가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이 당신이니까, 당신만 책임져라’라는 게 과연 납득이 되는 상황인가요? 최소한 합리적인 사회라면 그만큼의 대출을 내준 은행도 책임을 져야하고, 임대차 계약을 맺도록 제도적이고 법적인 토대를 만들어 놓은 국가의 책임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세입자들이 돈 벌려고 전세 살고, 월세 사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있어야 할 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계약을 해서 살아가는 상황에서 집과 관련되어서 재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시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되는 국가의 책임은 어디로 가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저희는 특별법 안의 ‘선구제 후회수’ 때문에 거부권이 행사되었지만, 국회에서 이를 다시 포함해서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부 측 대안도 나왔으니 최대한 빨리 논의를 시작해서 최대한 많은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빨리 통과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특별법에는 피해자들이 경매 유예를 1년까지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특별법을 시행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경매가 다시 시작되고, 경매가 넘어가서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굉장히 시급한 문제라서 최대한 빨리 개정해야 되는 문제고, 세입자에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것이죠.
주거권 운동의 현실과 어려움
Q. 사실 이번 전세사기 문제에 청년, 사회초년생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로 처음 임대차 시장에 진입하는 단계에서 정보와 교육의 부재가 꼽히기도 하잖아요. 민달팽이유니온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거권 교육을 진행해온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민유에서 진행하는 주거 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홍보도 같이 해주시고, 현장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나 우리들이 쉽게 놓치고 있었던 지점들이 있다면 공유도 부탁드립니다.
가원 : 저희의 주거 교육은 민간임대차시장에서의 집구하기 과정을 따라가면서 세입자들이 알아야 할 점들을 전달하고, 다양한 주거 상담 사례를 전하면서 주거 정책과 주거권의 개념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하려고 해요. 그렇지만 저는 전세사기의 원인으로 정보와 교육의 부재를 꼽는 것에는 의문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서 ‘노동법을 잘 몰랐구나’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서 ‘교육이 없어서, 정보를 알지 못해서 이런 일을 당한 거야’라고 보는 시선은 너무 이상합니다. 오히려 어떠한 것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불합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환경이 갖춰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당연히 저희도 상담과 교육을 통해서 어떤 팁이나, 의심해 볼 만한 상황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전달해드리지만, 그러한 시선은 쉽게 세입자 탓을 할 수 있다는데에도 우려가 됩니다.
동규 : 물론 세입자의 권리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교육도 받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젊은 사람들이 계약을 덜렁덜렁한 측면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최저임금을 어기면 바로 형사처벌이고, 식당에서 식중독에 걸렸다면 행정지도 혹은 영업정지를 받거나 과태료를 물어야 하죠. 하지만 유독 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을 받고 사람에게 빌려주는 건데 위생과 상태에 대한 기준도 없습니다. 그리고 임대 수익을 영유하는 사람에게도 어떠한 제재도 없고, 심지어는 등록도 의무가 아닌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세입자는 각자 알아보고 해결해야 되는 상황인 거죠. 실제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변호사고, 경찰이고,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 등 오만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권리를 알 필요가 있고, 교육도 받아야 하지만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거죠. 그래서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결국에는 각자도생하면서 집을 사야 해결되는 문제로 귀결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을 같이 바꿔나가는 동료로서 시민들을 만나고 싶은 활동가로서의 바램이 있는거죠.
가원 : 그래서 중요한 건 ‘세입자도 권리가 있다.’ ‘세입자도 당연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임대인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준비해서 싸울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교육에 담고 싶은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임대인과 세입자가 동등한, 점유권이 소유권에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하고 싶은 게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이를 적절히 생활적인 팁들과 잘 섞어서 전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그 외에도 주거권 운동 활동을 하시면서(특히나 살림을 책임지고 사무국 운영을 하시고 계시기에)조직 운영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주거권 운동, 세입자 권리 운동의 어려움이나, 고민 같은 것들이 있으실까요?
지수 : 최근 전세사기 이슈가 많이 논의되고 있지만, 실제로 보증금 떼였을 때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으려면 하나하나 구차한 경우도 많고, 호소해야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부분이 피해자분들께도 어렵고, 활동가들에게도 부침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한 건, 한 건 모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어느 시점에는 시스템으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실감하고 있습니다. 민달팽이 유니온이 이렇게 한 분, 한 분 찾아다니기에는 규모도 작아서 현장에 갈 때 가장 힘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제도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원 : ‘집은 상품이 아니다’, ‘세입자도 권리가 있다’, ‘집을 사지 않아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어떻게 들으면 너무 당연한데 그걸 자기 삶에 치환하면 당장의 안전함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공감을 얻거나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게 저희가 겪는 어려움이지 않을까 합니다. 교육권이나 노동권 등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주거권에 대한 인식이 잘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과는 전혀 딴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딜레마를 해결하고,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저희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쉽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동규 : 저는 세입자들이 어떻게 모일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피해를 입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전세사기 뿐만 아니라 관리비 이슈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것이 정치적인 목소리로 만들어지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심지어 ‘세입자로 계속 살 것이다’라는 감각과 인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세입자로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라는 그 욕망으로는 잘 대변되지 않는 현상에 아쉬움이 많습니다. 좀 더 실체가 있는 조직으로 잘 엮어내서 어떻게 하면 사회적인 목소리로 나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고, 민달팽이유니온이 그 씨앗이 되어야 되고, 그걸 지금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국의 인구의 1%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내는 종부세를 폐지한다는 정치인의 발언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는 반면, 인구의 절반이 세입자로 살고, 청년 중에는 85%가 세입자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입자 문제는 좀처럼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입자들의 권리를 주장해온 주거권 운동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어 왔고, 그것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다른 시민사회 단체들이나 전세사기피해대책위, 반빈곤 운동 단체, 노동조합과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청년특별위원회, 주거권네트워크와 같이 청년 노동자 주거 실태 증언대회를 열기도 했거든요. 그렇게라도 조금씩 세입자들, 즉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금씩 키워나가려고 하고, 또 지역 어디서든 목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부분 더 얘기 부탁드립니다.
가원 : 앞서 이야기한 고민과 관련하여, 그러면 어떤 질문을 시민들에게 던지고, 설득하고 싶은가를 생각해봤을 때, 이윤을 위해 도시를 끊임없이 부수고 다시 짓는 문제에서는 소유만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재개발 조합의 분담금을 부담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리 소유자라고 해도 내 집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잖아요. 소유 자체도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는 그런 구조라면, 우리의 집과 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될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일자 | 2024.06.10. (월) 오후 5시
장소 | 민달팽이 유니온&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사무실
인터뷰 |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동규, 가원, 지수
진행 | 웹진 공유도시 팀 문지석, 송민석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윤수진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4년 8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