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커먼즈 포럼 2 <커먼즈는 국가에 대항하는가 – 재정과 금융을 커먼즈로 보기>
조세국가로서 재정국가는 유효한가
: 재정커먼즈에 대한 고민
김상철 (시시한 연구소)
조세국가와 커먼즈의 마주침
기본적으로 조세에 의존한 재정국가는 불안정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저의 가설입니다. 왜냐하면 조세라고 하는 것은,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정당성을 근거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세 이론은 크게 2가지가 대립을 하고 있는데 예전 모델은 강탈 국가의 개념이었습니다. 조세는 국가가 시민들로부터 빼앗는 것이었는데 이 주장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존중하기 힘들죠. 따라서 명시적으로 약속하지는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조세를 내고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한 현재의 조세국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취약합니까. 개개인이 다 확증하는 계약이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조세국가로서의 재정국가가 한쪽으로는 파시즘적으로, 다른 한쪽으로는 커먼즈적으로 재편될 수 있는 불안정성의 시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럼 조세국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도 있는데, 저는 이 주장이 현재는 지지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조세국가가 위기인 건 맞는 데, 조세국가로 부터 벗어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러한 입장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조세를 정당성 있게 납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냐에 대해 문제가 발생하겠죠. 그리고 커먼즈라고 하는 부분이 이 문제에서 중요한 이유는 공동자원의 확보라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 결국 이 국가라고 하는 정치체가 필요한 거냐 아니면 우리가 국가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자원으로서 공공 재정을 필요로 하는 거냐라고 하는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해서 ‘국가가 해결해야 돼요.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해요’라고 했을 때 속뜻은 나 말고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는 감각인 건지 아니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는 감각인 건지를 묻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공공재정이 우리가 호명하는 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즉, 공공 재정의 전환이라고 하는 부분, 조세라고 하는 것을 유지하면서도 이 조세 체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갖고 있는 어떤 민주적 맹아 같은 것들을 강화시키는 방식이 결국 커먼즈적 전환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가설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런 가설들에 대한 배경을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다만 국가 이론의 복합적인 내용에서 제가 임의적이고 선택적으로 뽑아온 거라 다소 종합적이지 않다는 걸 전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표(발표자료)는 국가의 수입 중에서 조세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요. 1920년대 이전까지 국가 총수입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주 특수한 계기에 의해서 조세의 비중이 높아지죠. 그게 바로 세계 대전입니다.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그 사회의 인프라 내지 공유자원들이 모두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그것을 누가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답을 재정에서 찾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재정은 바로 광범위한 조세 체계를 통해서 성립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건 조세에 의존하는 재정국가는 기껏해야 1940년대 이후에 존재했고, 그것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이제는 사멸해가는 복지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입니다. 그런데 복지국가의 사멸이라는 의미는 사실 단순히 사회국가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고 조세에 의존했던 재정국가의 한 측면이 사라지는 걸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국가가 조세에 의존하지 않게 될 경우에는 어떤 경로를 가지게 될 것이냐라고 하는 부분이 발생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조세에 의존하지 않는 국가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부채에 의존하는 국가(국가의 부채를 통해서 재정을 확보하는 국가)가 될 거고, 하나는 불로소득에 의존하는 국가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궁극적으로 높은 조세 체계가 만들어지고 나서, 이것을 지렛대로 국가의 공적 부채가 만들어져야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재정국가의 모습을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국가가 더 많은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조세 체계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질문되는 조세의 정당성
다만 이러한 방법은 동시에 굉장히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1980년 이전까지는 국가의 재정 지출하고 조세 수입의 연관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재정 지출을 많이 해서 적자가 생기더라도, 이게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조세 수입을 통해서 흑자 구조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요. 1980년대 이후 깨진 거죠. 그래서 국가의 재정 지출은 그대로 국가의 부채가 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부터는 신자유주의적인 국가 체계의 변형이 발생하는데, 조세 관점에서는 소위 조세 개혁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세 개혁의 핵심은 경제적 부가 개인에게 주어졌을 때, 그 개인의 부를 조세를 통해서 공적인 부로 전환시키는 매커니즘을 깨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조세 개혁의 가장 핵심은 소득, 법인의 이익, 그리고 이와 관련된 것들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는 거죠. 따라서 지금 국가의 재정 지출은 조세 수입과 완전히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21세기 들어서 여러 가지 재정 불만들이 나오고 있으나, 국가가 추가적인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신규 조세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또 확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2000년대 이후 유의미한 증세 사례는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고소득자, 법인에 대한 과세를 추가하는 내용을 담은 반-인플레이션법 정도가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재정의 총량이 늘어나더라도 실제로 가용할 수 있는 재정의 수준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발표자료) 재정 민주주의 지표라고 하는 건데 이 지표를 산출하는 방식은 되게 간단합니다. 한 해 예산 중에서 의무 지출을 제외한 재량 지출의 비중이 얼마큼 되느냐를 측정하는 건데, 자료는 미국 연방 정부의 재정 민주주의 지표입니다. 2000년대 이후로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의 수준이 20%가 넘지 않죠. 이는 현대 국가가 대부분 과거에 결정된 지출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의무지출 비중이 약 60% 정도 됐습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훨씬 더 높은 비중 의무 지출 비중을 갖고 있죠. 그런데 의무 지출 비중이 높아지면 재정에 대한 탄력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재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지고 그것이 국가 역량 혹은 국가의 기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특히 기후위기와 같은 불확실성의 강화는 세대 문제를 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이 시기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그 뒤에 태어난 사람들인데, 실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기대수명이 충분히 남지 않는 사람도 있는거죠. 과거 안정적인 사회 구조에서는 내가 부모 세대, 할아버지 세대와 비슷하게 살거라는 기대 속에 크게 문제되지 않았으나,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세계에서는 세대 문제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재 재정국가가 갖고 있는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놓고 조세국가가 유효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다음 세대 입장에서는 이전 세대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 내가 왜 조세로 부담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는 겁니다. 왜 그걸 감수해야하는지. 대표적인 게 연금 문제죠. 큰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경제 활동을 통해서 경제적 부를 만들고 그걸 납부하는 사람들은 노동 인력(경제활동인구)에서 벗어난 이전 세대들을 부양하는 구조인거잖아요. 그러면 정당성이 어떻게 확보되냐고 했을 때 기존이론은 ‘너도 그렇게 될 거니까’라고 답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그것을 기대할 수 없으면, 내가 왜 이전 세대에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지 반발이 생길수 있죠. 이런 질문들이 현재의 재정국가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약한 조세국가로서 한국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더 독특한 같습니다. 한 에피소드로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부가가치세와 관련된 쟁점인데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직접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70년대에 부가가치세가 만들어지면서 간접세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아집니다. 이 간접세가 높아질 때 반대급부는 소득에 대한 직접세를 감면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근로소득자 중에서 면세자 비율이 50%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민주화 운동의 주요 주장 중 하나도 근로소득세 감세였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 개인 소득에 대한 과세 체계에 대한 거부감이 이미 내면화되어 있는 상태인거죠. 그래서 조세와 민주적 시민이 단절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논란들이 있었는데요.
결국 저는 취약한 간접세에 의존하는 한국 재정국가가 만들어졌고, 이는 조세를 통해서 국가와 연결되는 시민들, 개개인의 연결성을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국가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점이 뭔가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또는 청원하는 관계를 만들지 않았나라는 가설을 갖고 있는거죠. 이게 한국의 조세 체계가 갖고 있는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보통 선거 참여가 높으면 조세 수준이 높다고 보는게 일반적인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선거 참여가 높으면 그에 대한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조세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데, 한국은 그 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선거 참여 높은데 조세 수준은 낮은 나라인거죠. 그러니까 우리의 정치적 관심이라고 하는 건 사실 국가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겁니다. 약간의 이념적이고 가치적인 또는 약간의 피상성을 갖고 있는 주제로 정치적 공헌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나라 조세 체계가 다양해진 시기는 민주화 이후인데, 만들어졌던 체계가 IMF계기로 다 무너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87년 이후에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되면서 조세국가로서 시민과 국가의 연결성을 강화시키는 여러 가지 조치들을 만들 수 있었으나, 어쨌든 97년 IMF 체계가 그것을 다시 역전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하는 게 또 다른 가설입니다.
재정에 대한 커먼즈적 경로로서 참여예산?
마지막으로 이야기 드리고 싶은 주제는 현재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참여예산제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한국은 참여예산제가 굉장히 신기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나라거든요. 외국의 경우에는 자치단체장 즉 지방정부의 수장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참여예산제를 도입하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은 중앙정부의 법률을 통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를 의무화시키는 방식으로 참여예산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가에 대해 살펴보면, 그 당시 국회에서 지방재정법을 개정하면서 참여예산제를 의무화했던 맥락은 중앙정부가 주민을 통해서 지방 정부의 재정을 통제하고자 하는 재정 통제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국회의 의안들을 보면 ‘주민들이 예산 편성 등의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선심성, 낭비성 예산 편성을 막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참여예산제하고 원리가 완전히 다른 겁니다. 그런데 실제 작동되는 참여예산제는 또 그렇게 작동되지 않죠. 그래서 저는 이 간극이 결국 우리가 참여 예산 제도를 매개로 해서 재정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가설도 갖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재정이라는 것을 일종의 우물로 삼아서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시민들의 필요를 통해서 재정의 우물을 배분하는 이런 구조로 재편해 볼 수 있는 그림을 좀 그려봐야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 | 김상철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