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소유권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커먼즈의 정치’
이승원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전임연구원)
1. 불평등과 사적 소유권 – 정치의 숙명적 과제
이 글은 ‘커먼즈’의 시각에서 현대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사적 소유권’에 대한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성찰과 이에 기반한 운동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보수 양당 구도의 중도합의에 기반한 ‘탈정치’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을 찾는데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1)
부(그리고 소득)의 불평등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다. 부의 불평등은 그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의 유기적 한계와 위기를 드러내는 심각한 외상이면서, 동시에, 사회경제적 양극화, 약탈식 국제 노동분업 질서, 사회 안전망 붕괴, 차별과 혐오,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 전쟁은 물론, 기후 위기의 원인이자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차단하는 복합적인 전 지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의 불평등은 ‘배타적’ 사적 소유권을 개인의 자유권과 일치시키는 자본주의 법체제와 이를 유지하는 국가기구 및 국제 조약 등에 의해 합법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부의 불평등과 배타적 사적 소유권의 문제가 오늘날 지구적 위기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 된 이후, 국제적 차원에서든 일국적 차원에서든 이 문제를 외과수술식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다루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본질은 피하고, 임시 봉합만 시도해왔으며, 이러한 겉핥기식 처방을 주도하는 것도 대부분 세계은행, IMF, 유럽중앙은행, 각종 신용평가 기관 등 부의 불평등의 가장 위쪽을 차지하고 있는 초국적 금융자본 세력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UN은 지난 2001년 이러한 세계적인 불평등, 특히 글로벌 사우스에 집중된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까지 새천년 개발 목표(MDGs: 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 기간 오히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전 세계 경제 위기 및 여러 나라의 우파 포퓰리즘 확산과 같은 민주주의의 후퇴가 급증하고, 글로벌 사우스에서도 민주주의 문제가 MDGs의 최대 장벽이 되면서, UN의 MDGs는 사실상 FDI, 특허, 지적 재산권 같은 소유권 관련 문제를 다루지 않는 양적 원조 방식의 한계와 실패를 여실히 드러냈다. 결국 UN은 지구가 처한 문제는 단지 글로벌 노스와 사우스 간 경제적 격차가 아니라, 모든 나라가 겪는 부의 불평등, 사회경제적 양극화, 민주주의의 후퇴, 기후 위기 등 복합적인 문제임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모든 UN 회원국을 대상으로 하는 17개 의제를 기본으로 하는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2016년부터 15년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림 1과 2에서 보여지듯이, 피케티와 일군의 불평등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여전히 세계 차원에서는 물론 국가별 부의 불평등 심화 추세는 크게 줄지 않고 있으며, 2020년 이후 팬더믹 상황에서 오히려 이러한 부의 불평등은 전 세계 시민의 보건과 안전의 불평등, 봉쇄 시기 생업과 생존의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호전되지 않는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도 이 불평등은 심각한 변형을 만들어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1, 2] 출처: 토마피케티, 2020, 자본과 이데올로기, 문학동네, 49쪽
사적 소유권 문제, 특히 ‘커먼즈’, 그리고 급진 정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각종 개발 이익, 자산 증식과 관련된 부도덕하고 반서민적인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사적 소유권의 배타성과 부의 불평등 상태를 유지하려는 모든 노동, 복지, 경제 정책과 관련 법을 펼치는 기성 보수정당의 탈정치 수준에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는 그 어떤 헌법 정신과 시민적 가치보다도 더 특권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사적 소유권의 배타성에 대한 전환적이고 급진적인 비판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 투기, 가계 부채, 주거 문제, 영세 상인의 둥지 내몰림에서부터 공적 기반 및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와 사회 안전망 붕괴와 같이 반복되면서도 눈사태처럼 점점 더 심각해져가는 이 문제적 상황에 대한 기성 정치적 대응은은 오히려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 커먼즈의 어깨에서 사적 소유권 바라보기- 공적인 것, 공공적인 것, 공통적인 것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권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소유권 밖에서 바라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적 소유권은 공적인 것과 이분법을 이루는 듯 해서, 이것의 바깥은 곧 공적인 것, 혹은 공공성이 유일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이 공공성은 분명 공동체 구성원 각각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호하기 위한 공동체적 이익과 안전에 관한 것이다. 사이토 준이치에 따르면, 공공성은 공동체를 대변하는 정부나 국가가 구성원을 대상으로 행하는 공적인 것(official)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와 관계된 공통적인 것(commons)을 의미하기도 하며, 공적인 것(public이 아니라 official)과 공통적인 것이 특정 구성원에게만 제한적으로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있었야 한다는 열려 있음(open)을 의미하는데, 이 열려있음은 최후의 안전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권은 공동체적 생존을 위해 사용자가 협력해서 사용해온 자연 커먼즈commons를 부정하고, 금지하는 인클로저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역사적으로 인클로저 운동에서 시작하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정(primitive accumulation of capital)을 통해 제거되고 부정되어온 커먼즈는 지금도 사유 재산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앞세운 자본주의 체제에서 승인받기가 쉽지 않다. 15세기 이후 유럽 역사에서 평민들이 공동체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농작물을 경작해왔던 미개간지, 황무지, 개방경지와 같은 커먼즈는 1차, 2차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강제적인 경계 표시와 함께 사유재로 전환되었다. 또한,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정치권력을 독점·세습한 군주제를 폐지하면서 권력 독점을 해체시킨 근대 민주주의 혁명은 군주제와 봉건제로부터 해방된 개인의 자유와 사적 소유권을 보호하는 근대 민주주의 정부(근대 시민 정부civil government)의 길을 열었다. 또한, 제국주의 출현과 함께 약탈적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전 세계적으로 팽창하면서 전통적인 커먼즈의 영역은 전 지구적으로 점차 사라져 갔다.
분명 사적 소유권의 바깥에는 공적인 것만이 아니라, 커먼즈(공통적인 것)이 있었고, 여기에서 사실상 자본주의 사적 소유권이 시작되었음에도, 오늘날 이 커먼즈라는 제3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다. 그 이유 중 분명한 하나는 이 커먼즈의 부상은 개인의 자유라는 신화를 내세운 자본주의의 금도로 여겨지는 사적 소유권의 약탈성과 배태성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사적 소유권+개인의 자유+국가’를 연결한 현대 대의제 정치체제에서, 사적 소유권과 부정적 관계에 있는 커먼즈를 제기하면, 그 자체가 개인의 자유와 국가, 나아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연쇄반응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이것은 사적 소유권이 특권적이고 배타적으로 보호되는 논리이다. 특히, 냉전의 유산인 국가보안법과 분단 체제라는 제도-이데올로기적 반공주의가 엄청난 중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사적 소유권에 대해 그 외부에서 질문을 던지는 커먼즈의 입장은 자기 검열적으로 금기시되거나, 이를 피하기위해 일종의 틈새-보완 담론으로 변환되기도 한다.
커먼즈라는 제3 항이 금기시된 상태에서, 사적 소유권의 배타적 힘은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혈관을 통해 빠르게 전 세계 곳곳으로 침투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 방식이었던 인클로저를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것은 데이비드 하비의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개념으로 간략히 묘사될 수 있다(Harvey, 2003). 하비는 이 개념은 ① 새로운 이윤 창출 영역을 만들기 위한 사영화와 상품화 과정, ② 인수합병, 파생금융상품, 주식상장 등 자산가치의 재배분과 잠식을 위한 자본의 금융화 과정, ③ 경제적 부를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이전하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위기관리와 조작과정, ④ 복지국가 시스템을 개혁하고 상위계급에서 하위계급으로의 부의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재분배 과정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축적 방식의 내용으로 담고 있다. 금융자본의 확장은 사영화와 상품화뿐만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만들어진 경제적 부가 그 나라의 시민들에게 분배되는 것을 차단하고 부유한 나라로 집중되는 전 지구적 노동분업 질서와 초국적 독점화를 빠르고 규제 없이 진행하도록 한다. 또한, 복지재정의 축소와 사적 공용수용 과정에서 더는 공공재로 보호받지 못하게 된 물, 에너지, 교육, 교통, 주거, 의료, 공공서비스 등은 민간 금융자본의 인클로저에 의한 고수익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탈규제, 복지재정의 감축 및 공공부문의 사영화, 노동유연화 등을 통해 자본의 자유주의를 극대화하고 시민적 주권과 충돌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는 이러한 인클로저를 공간적으로는 저개발국의 토지에서부터 도시의 마을, 거리, 골목, 재래시장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으로는 물, 숲, 에너지, 교육, 공원, 교통, 주거공간, 의료, 공공서비스, 가사노동, 품앗이 등 상품화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모든 대상을 인클로저 해 나가면서 개인의 생활 동선은 물론 생애주기까지 재설계해 나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커먼즈는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된 개발독재 시기 ‘사적 공용수용’ 과정에서 단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게릿 하딘이 만들어 낸 ‘공유지의 비극’ 이야기처럼, 비위생적이고, 범죄와 탐욕의 온상이고, 흉물스럽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사회 윤리적 가치를 위해서도 사라져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되었다. 커먼즈가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 정권 시기 사적 공용수용과 사영화를 통한 투기적 도시화의 과정에서 비효율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위험하며, 자유(그리고 사적 소유권)를 침해하는 불법적인 것으로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자본주의-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사적 소유권-경제발전-국가안보-반공주의라는 담론적 사슬에 의해, 투기적 도시화 정책을 비판하고, 사유 재산과 국가안보로서의 경제개발이라는 논리에 맞선 새로운 권리 담론을 통해 저항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와 같은 낙인이 찍히면서, 국가폭력에 의한 추방이 정당한 일종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로 취급받다 왔다. 이런 부정적 낙인과 추방이 두려운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소비주의적 도시화에 최적화된 주체가 되기 위해 ‘자기 계발’과 같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생활양식에 빠르게 편입되어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커먼즈가 사라진 경로는 단지 커먼즈가 사적 소유로 전환된 과정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시민권을 내세운 사적 소유권의 확장을 위해 세워진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팽창하는 과정이고,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국가통제 아래에서 재구성되는 과정과 병행한다고 볼 수 있다.
3. ‘커먼즈’에 관하여
자본주의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던 커먼즈, 그리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부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되는 커먼즈란 무엇일까? 커먼즈에 관한 최소정의는 ‘하나의 의사결정이 배타적인 자격을 행사할 수 없는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커먼즈는 이 배타성, 그리고 배타성에 따른 배재성이 적용되지 않는 개방되고 접근 가능한 자원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 개방성과 접근 가능성을 특징으로 하는 커먼즈에 대해 대부분의 커먼즈 연구자들은 커먼즈가 1) 공동자원, 2) 공동자원을 커먼즈 차원에서 관리하는 제도, 3) 공동자원과 제도가 작동하는 공동체라는 세 가지 요소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다고 보고 있다.
데이비드 볼리어는 커먼즈란 자원, 공동체, 일련의 사회적 규약이 ‘상호의존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통합된 전체를 이룬 결과라 본다. 또한, 마시모 데 안젤리스는 공동관리자원(common pool resources)으로 구체화되는 이 공동자원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데 사용되면서,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수단이며, 공동체란 공동자원을 분배하고 스스로 이 자원에 대한 접근과 사용에 관한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commoners)의 집합이라고 본다. 그는 커먼즈는 명사형만이 아닌 동사형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공동자원을 커먼즈로 창조하고 재생산시키는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커먼즈 실천to common/commoning’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데 안젤리스에게 이 ‘커먼즈 실천’은 형식적으로는 ‘제도의 제도화’와 같은 의미라 할 수 있고, 내용적으로는 인클로저 과정, 그리고 공공재와 사유재의 이중 구조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학자들은 엘리노 오스트롬이 제시하는 공동관리자원을 위한 ‘8개 디자인 원리’도 사실상 이 세 가지 요소로 범주화될 수 있다고 본다2). 제1원칙인 ‘분명하게 규정된 경계’는 공동자원과 이 공동자원을 사용하는 공동체의 경계를 설정하고, 그 속성을 규정하는 것이며, 나머지 7개 디자인 원리들은 커먼즈의 제도들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서구 사회에서 ‘커먼즈’에 대한 연구는 도로, 예산, 라디오 주파수, 의료 서비스, 대기권 등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어업, 산림, 목초지, 야생동물, 토지권, 관개수로, 마을 조직 등 대부분 자원으로 여겨지는 자연상태의 어떤 것이나 이에 대한 인간 행위에 주목했었다. 이후 커먼즈 연구는 이런 전통적 커먼즈에서 새로운 커먼즈 영역으로 연구 대상의 폭이 확장되었다. 새로운 커먼즈는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지적 재산권 영역에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마을 공동체 활동이나 환경운동, 스마트 몹(smart mob)처럼 전위 조직의 계획이 아닌 SNS 등을 활용한 소통을 통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집단행동, 온라인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 개방형 디지털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물질․비물질적 제품을 함께 생산하는 P2P 생산 활동으로3)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또한, 새로운 커먼즈는 인터넷, 유전자 정보, 우주, 심해, 전자기파와 같이 과거 인간이 접근하거나 개발할 수 없었던 것들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에 주목해 나갔다.
문화 커먼즈 | 기반 커먼즈 | 글로벌 커먼즈 |
패션·토착문화, 음악, NPO, 공공미술, 영성·종교적 커머즈, 스포츠(스노우 모빌, 파도타기, 수상 스포츠), 관광업(풍경, 생태 관광) | 전자기 스팩트럼, 공공 무선, 무선 통신, 인터넷 기반, 교통(길-교통체증, 자발적 제공, 감속, 주차, 항공, 항만), 예산 | 남극대륙, 대기권, 생물 다양성, 해양심층부, 전자기 스펙트럼, 식량 안보, 지구 온난화, 우주공간, 오염, 유독성 폐기물과 쓰레기, 월경 하천, 물 부족, 지식, 공중 보건, 시장, 기반, 사회적 커먼즈, 문화적 커먼즈 |
보건의료 커먼즈 | 지식 커먼즈 | 전통적 커먼즈 |
항균 저항성, 의료 예산, 공중 보건의료, 병원 | 디지털 격차, 교육(대학, 시민교육), 지적 재산권(反커먼즈, 저작권·판권, 크리에이티브·과학적 커먼즈, 프리 소프트웨어, 특허, 半커먼즈) | 농업, 어업, 산림, 목초지, 토지 보유와 사용, 마을과 사회 조직, 물과 관개, 야생 동물 |
근린 커먼즈 | 시장 공유/커먼즈 | |
홈리스, 주거(주택 소유자 연합, 아파트 공동체), 공동체 정원, 치안, 인도, 거리, 고요·소음 | 자본주의, 교환, 선물 경제 | |
※출처: Charlotte Hess, 2008, Mapping of the New Commons, W08-21, July 2008, https://papers.ssrn.com/sol3/Delivery.cfm/SSRN_ID1356835_code842516.pdf?abstractid=1356835&mirid=1, p. 13 |
4. 비판에서 대안으로
사적 소유권의 영역 바깥에서, 공적인 것과 다른 제3의 항으로 존재하는 커먼즈는 대안 세계에 대한 우리의 구상을 좀 더 풍부하게 해줄 수 있다. 공동 자원, 공동 규약과 제도, 공동체 구성원이 ‘공통적인 것’의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얽혀진 커먼즈의 논리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공유’라는 단어를 차용해보자(여기서 공유는 유휴 자원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외피로 사용되는 공유경제의 ‘공유’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커먼즈 실천은 범주적으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자원 공유이다. 이것은 지역 또는 정체성 기반 공동체에 필요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협력하고 공동 생산하는 활동이다. 두 번째 활동은 이익 공유이다. 자원 공유 활동은 그 과정에서 유무형의 특정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생태적 가치와 환경의 복원, 지역 상권 활성화, 좋은 일자리, 질 좋은 돌봄 및 복지서비스 등을 예로 들을 수 있다. 자원 공유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이익 또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재투자 또는 공유될 수 있도록 해야, 특정한 커먼즈 실천이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더욱 보편적인 가치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활동은 가치 순환이다. 이 가치 순환은 자원과 이익이 더 폭넓고 급진적으로 공유되는 과정에서 이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커먼즈에 기반한 윤리와 생활양식을 체득하고, 나아가 불평등, 민주주의의 후퇴, 기후 위기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림 3] 출처: 「서울시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안 수립을 위한 학술용역」 최종보고서, 47쪽
사적 소유권의 배타성을 흐릿하게 만들어 가는 이러한 복합적인 커먼즈 실천은 전략적으로 단계별로 진행되면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커먼즈 실천의 확장은 사실상 정의당이 진보정치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실천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커먼즈 확장 전략의 첫 번째 단계는 ‘공동자원의 확보와 커먼즈 기반의 조성’이다. 신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자본이 개입할 시장의 영역을 극대화하기 위해 재정감축과 재원확보라는 명분으로 정부의 공적 책임을 줄이고, 공공재와 공공 서비스를 사영화(민영화 또는 상품화)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서구 사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공공재의 상품화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자원으로써의 공공재,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접근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공공재가 상품으로 변질되면서, 이에 대한 접근과 사용이 개인의 필요가 아니라 자산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되고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임금노동(이마저도 비정규직 확대와 저임금, 위험노동의 증가 등으로 인해 노동환경이 더욱 나빠졌다)으로 인해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공동자원의 확보와 커먼즈 기반의 조성이란 사영화되고 상품화된 공공재를 다시 ‘공공재의 위치’로 회복시켜서 모든 사람이 자산규모와 소득수준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기본권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공공재의 공동자원화이다. 이것은 두 축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 한 축에서는 사적 상품에서 회복된 공공재가 다시 행정관료제의 소유로 되돌아가지 않고, 실제 필요한 사용자들의 공동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시민주도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관리하고 시민이 책임지는 기형적인 민간위탁구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마을에 주차장을 확장하거나, 국공유지를 상업용으로 개발하거나, 공원을 조성하려고 할 때, 하려고 할 때, 이것을 세우고 유지․보수하는 일은 사용자인 시민이 직접 관리할 수 없다. 이것은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며, 이 기반들을 세우려는 이유와 기획 및 운영 방식을 정하는 과정에 이해 당사자인 주민이 어떻게 민주적이고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문제이다. 다른 한 축에서는 지역 내 여러 공동자원이 상호보완적으로 순환하는 연결을 통해 개인의 새로운 일상의 동선과 커먼즈 생태계 원형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파리의 15분 도시, 볼로냐와 겐트의 커먼즈 기반 도시,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커먼즈 기반 플랫폼 경제를 중심으로 한 커먼즈의 정치가 만들어낸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이 두 번째 단계는 개방성이 중요하다. 커먼즈 실천이 특정 집단의 폐쇄적 이익 분배 활동이 아니라 개방적일 때, 민관 거버넌스는 다양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 사이의 다중심적이고 수평적인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각각의 공유 활동과 공유자원은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resilience)과 시민 개인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자유롭게 역동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사회주택과 분산형 에너지 생산 및 공유 체계, 먹거리 공유 및 지역 자원순환 시스템, 공공임대상가와 지역 화폐, 그리고 학교와 예술 공간, 마을 놀이터 등이 연결되고 그 활동이 순환될 때 새로운 일상을 위한 조건이 창조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공동자원의 선순환을 통한 새로운 일상의 확산과 지역과 도시의 커먼즈적 전환이다. 이것은 한 지역에서 사람이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적․사회적 기반이 권리 차원에서 공유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거 공간은 돌봄, 의료, 교육, 노동, 생산, 놀이, 문화예술, 건강, 참여, 교통, 교류와 교환 등 다양한 자원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자원들은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다양한 정체성과 신체적 조건에 맞게 변형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연결된 자원들이 공동자원으로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출 때,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단지 저렴한 주거공간에 고립되지 않고, 지역의 공유 생태계 속에서 자신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켜나갈 기회를 얻게 될 수 있다.
커먼즈적 전환은 경제와 복지 서비스 기반만 아니라, 윤리․문화․사회경제적 전환과 도덕 철학 차원에서의 지적 성찰을 포함하는 총체적 패러다임 이동을 지향한다. 즉, 이것은 GDP 중심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양적 성장, 경쟁, 추격형 모델, 효율성이라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서 우정, 환대, 다양성과 차이, 집단지성, 분산적이고 협력적인 공동생산, 개방성, 탈성장과 생태적 공생공락, 민주주의의 가치와 실천을 구현하는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위기는 새롭게 다뤄질 것이고, 위기의 징후에 대한 관리만이 아니라 그 원인을 본질적으로 제거하면서 팬데믹 이후 새로운 일상의 시대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5. 커먼즈의 정치를 향하여
배타적 사적 소유권의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설정한 ‘커먼즈 실천’은 단지 법이나 경제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양적 성장과 생산력에 기반한 발전주의의 성과를 전제로 하는 전통적 복지국가 구상이 탈성장과 생태적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부딪히면서 더 이상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소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커먼즈 실천은 새로운 복지국가 체제의 중요한 구성 요인으로 결합될 수 있다. 전통적 복지국가의 특징은 국가가 모든 공적 자원을 중앙집중 방식으로 수집하고 관리·배분하기 때문에, 복지국가는 민주적일 수도 있지만, 비스마르크의 원형에서 보여지듯 권위주의적 통치로 귀결될 수 있고, 정치는 중앙 행정관료제와 대의제 의회로 일방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커먼즈 실천과 그 공동자원이 결합된 복지국가는 공동자원을 중요한 자기 자원으로 관리하는 다양한 영역과 지역의 시민사회를 수동적 수혜자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국가가 끊임없이 협의하고 의지해야할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즉, 국가와 정부는 시민사회의 커먼즈 실천 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파트너 국가’로서 그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커먼즈 실천은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이 촉발하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서,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을 중심으로, 개인의 자유와 함께 공동체의 공생공락을 위해 필요한 사회경제적 권리의 유무형적 기반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정치적 실천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모든 커먼즈 실천은 민주적이고 아름답고 윤리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커먼즈 실천은 대단히 어렵고,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다. 커먼즈 실천의 주체인 우리가 이미 젠더, 권위주의, 능력주의, 소비주의, 반공주의 등 여러 관습과 이념에 오염되어 있고, 소유권에 기반한 욕망으로부터 쉽게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커먼즈 실천이 때로는 집단 이기주의적으로, 때로는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이나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민주주의로부터 질문을 받고, 결합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커먼즈라는 낯선 이름과 달리, 여러 사회적 경제 현장에서,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연결된 지역순환경제 운동에서, 대안 금융 운동에서, 이동권과 공공 교통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사회주택과 공공임대 주택 정책의 진화 과정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여러 생태적 전환 운동에서, 위태롭고 취약한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자립과 안전을 위한 투쟁에서 이미 커먼즈 실천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운동들은 지난 십여 년 이상 ‘관 주도 민간 위탁’과 ‘인증제’ 방식으로 제도적으로 흡수되고 관리되면서, 시민운동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나아가, 자원 공유와 이익 공유를 전개하는 다양한 커먼즈 실천이 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제도정치적 변화에 따라 그 가치와 결과가 훼손되는 경험을 해왔다. 이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커먼즈 실천이 정치 수준으로 상승하지 못한 채, 국가와 기업이 책임지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펼쳐지는 소박한 경제적 자립 운동으로 강제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여러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도시재생지원센터, NPO지원센터, 서울혁신파크와 같은 커먼즈 실천 지원을 위한 민관협치(사실상 관료주의적 민간위탁) 활동과 제도가 자율성과 자립성의 싹을 틔우기도 전에, 정권 교체와 함께 무기력하게 폐쇄되고,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펼쳐진 수많은 커먼즈 실천들이 사라지는 모습은 커먼즈 실천이 왜 정치 수준으로 상승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커먼즈 실천은 ‘탈정치’를 넘어서 대안 세계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보다 급진적으로 확장된 커먼즈 정치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상승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주목할만한 참조점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시가 보여주고 있는 ‘협동조합 도시’이다. 협동조합 도시로서의 바르셀로나는 여러 혁신적인 사례들(바르셀로나 악티바, 디지털 플랫폼 데시딤, 팬데믹 시기 비상 식량 및 돌봄 시스템 등)를 분산과 연결의 참여 민주주의에 기반한 ‘바르셀로나 엔 코무’라는 커먼즈 실천 정치 네트워크를 통해 전개하고 있으며, 비록 최근 또 다른 정치적 도전에 부딪히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지역의 정치적 실험과 연결하여 스페인 중앙 정치의 오래된 보수적 양당 구조를 깨고 새로운 정치 공간을 확장한 중요한 정치적 실천으로 평가되고 있다. 커먼즈 실천이 진보정치의 새로운 발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또 다른 협동조합 도시이자 커먼즈 도시로서의 런던 램버스Lambeth 자치구와 이탈리아 볼로냐시 모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현대 대의제 기반 민주주의 정치사회에서 집권과 의회 진출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정치 전략/기획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커먼즈의 정치는 이러한 대의제 정치라는 제한된 공간과 실천을 넘어서 개인적 시민이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대중이 스스로 필요한 자원과 관계를 함께 만들어가고,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자기 결정권을 실현해 나가는 정치이며, 사적 소유권의 중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커먼즈의 영역, 윤리, 실천, 공통 정념을 새롭게 경험하고 체득하고, 지식을 쌓아 가도록 이들의 일상과 생애주기의 다양하고 미시적인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적극적인 활동일 것이다. 여전히 커먼즈에 대해 주저하거나 배타적인 대의제 정치의 헤게모니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사적 소유권의 중력을 이겨내려는 커먼즈의 정치, 이미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정치는 여전히 희망의 언어일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글은 필자의 졸고, “도시 커먼즈와 민주주의: 도시 커먼즈 운동의 특징과 동학에 관힌 이론적 재고찰”, 2019, 공간과 사회 제29권 2호, 134-174와 “총론-공유의 가치: 위기의 시대, 새로운 일상을 위한 공유의 힘”, 2021, 도서관, 통권 제395호, 10-29를 본 호의 주제에 맞게 일부 재편집한 것이며, 이 글의 초고는 정의정책연구소 발행 <보다 정의> 제8호에 실렸으며, 웹진에 맞게 재구성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 보수양당의 중도 합의에 기반한 ‘탈정치’ 현상에 대해서는 콜린 클라우치의 저서 <포스트 민주주의: 민주주의 시대의 종말> (2008, 이한 옮김, 미지북스)와 샹탈 무페의 저서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2019, 이승원 옮김, 문학세계사)를 참조하라.
2) Ostrom이 제시한 8가지 디자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명확한 경계(clearly defined boundaries), 2. 규칙의 부합성(congruence between appropriation and provision rules and local condition, 3. 집합적 선택장치(collective-choice arrangements), 4. 감시 활동(monitoring), 5. 점층적 제재(graduated sanctions), 6. 갈등 해결 장치(conflict-resolution mechanisms), 7. 규칙 제정 권리(minimal recognition of rights to organize), 8. 중층적 주체 (Nested enterprise). Elinor Ostrom, 1990,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for Collective Action(Political Economy of Institutions and Decisions) 참고.
3) P2P는 ‘peer to peer’, ‘people to people’ 또는 ‘person to person’의 의미하는데, 컴퓨터와 인터넷 등 디지털 수단을 통한 ‘커먼즈 기반 P2P 생산방식(commons based P2P production)’을 주장하는 Michel Bauwens와 Vasilis Kostakis에게 이것은 동료(peer)의 의미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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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심여은, 이희라, 송지우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3년 7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