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처리의 비공식 체계와 커먼즈적 전회 가능성에 대하여 | 소준철 전남대학교 역사문화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5월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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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커먼즈 포럼 1 <돌봄으로의 전환에서 돌봄을 위한 전환으로>

세션 2 – 도시커먼즈와 돌봄: 공간, 먹거리, 자원순환

재활용 처리의 비공식 체계와

커먼즈적 전회 가능성에 대하여

소준철 (전남대학교 역사문화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숫자로는 안 보이는 쓰레기와 관리 불가능한 흐름

안녕하세요. 소준철입니다. 저는 사실 커먼즈와는 그렇게 큰 관련 없는 연구들을 주로 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재활용에 관심이 좀 생겼어요. 재활용이라고 하면, 보통은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근데 재활용을 둘러싼 의문들이 자꾸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고물상, 쓰레기 산, 이런 것들이 갑자기 도시 곳곳에 툭툭 튀어나오면,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죠. 또 한편으로는 재활용률은 계속 높아진다고 하는데, 사회는 왜 이렇게 더 힘들어질까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질문은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자원을, 혹은 도시 안에 흘러다니는 쓰레기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통제해야 할까? 아니면 어느 방향으로 유도해야 할까? 그런데 현실은 관리도, 통제도 잘 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플라스틱 컵 쓰지 말자, 종이컵 쓰지 말자 했다가도 순식간에 방향이 바뀝니다. 국가나 산업의 의도에 따라 시장이 움직이는 거죠. 그런 장면들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그 물음에서 커먼즈라는 개념이 도움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고민하게 된 제 나름의 과정을 오늘 말씀드려보려고 합니다.

먼저 생활계 쓰레기 이야기를 할게요. 지금 쓰레기 양은 계속 늘고 있어요. 쓰레기에도 종류가 많죠. 생활계, 건설계, 의료계, 산업계… 그중 우리가 재활용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대부분 생활 쓰레기입니다. 반면 건설폐기물은 이미 98% 이상이 재활용되고 있어요. 왜냐면 철골이나 시멘트는 다시 쓰기 쉽고, 기업들도 손해를 안 보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생활 쓰레기, 바로 여기에 애매함이 있습니다. 이 생활 쓰레기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폐지 줍는 할머니’겠죠. 그 폐지는 결국 우리가 다시 쓰는 택배 박스가 됩니다. 쿠팡에서 오는 그 박스요. 그러니까 재활용이라는 건, 다시 쓰는 순환의 구조인데, 그게 공식적이지 않은 비공식 루트에서 일어난다는 게 중요합니다.

또 하나 봐야 할 건, 재활용 가능 자원은 실은 줄어드는 추세처럼 보인다는 점이에요. 왜 그럴까요? 음식물 쓰레기는 줄었는데, 혼합 배출은 늘고 있어요.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배출량이 확 늘기도 했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 쓰레기라는 게 정확히 얼마나 나오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쓰레기 배출량이라는 건 실제 무게를 다 재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관리사무소에서 업체랑 계약할 때, “1년에 몇 kg 수거하기로 했다”고 하면, 그 계약량이 쓰레기량으로 계산됩니다. 실제로 얼마나 나왔는지는 모릅니다. 즉, 쓰레기량이라는 건 허구적 상상으로 구성된 수치라는 거죠. 우리는 “쓰레기가 많다, 줄었다” 이런 기사들을 보지만, 그 수치는 계약 기반의 추정치입니다.

고물상과 비공식 재활용의 커먼즈 가능성

쓰레기 처리 방식도 한번 봐야죠. 전통적으로는 매립과 소각입니다. 그건 식민지기부터 쭉 이어져 왔죠. 1981년에 국가가 재활용을 전담하려고 공공기관을 만들고 아파트에서 분리배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어요. 안 내놔서요. 연탄재가 섞여서 수거도 안 되고요. 그러다 1995년부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분리배출 체계가 만들어집니다.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어요. 아파트 쓰레기는 계약된 업체가 가져가잖아요. 그게 바로 그 시기의 유산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매립량은 유지되고 있고, 소각률도 크게 줄지 않습니다. 2020년에는 수해 쓰레기 때문에 오히려 소각량이 늘었습니다. 이처럼 재해나 기후위기가 오면 쓰레기 양도 늘고, 소각도 늘어나죠.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2025년부터는 직매립이 금지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걸 통제할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실제로 재활용이 되는 건 어디서부터일까요? 바로 고물상입니다. 1995년에 난지도에서 수도권 매립장으로 옮겨지면서, 고물상에서 공장으로 자원을 재판매하는 비공식 순환망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지금까지도 유지돼요. 난지도에서 이주한 분들이 김포 매립장 근처에 고물상을 열고, 지금도 아파트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수거해요. 그러니까 재활용은 전부 공적 시스템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중상, 대상, 소상—이 구조 안에서 고물상은 도시의 물질 순환을 실제로 굴리는 실천적 커먼즈였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런 고물상을 어떻게 제도화할 거냐 하는 겁니다. 일자리 사업으로 공공화하려고도 했고, 수거자에게 보험을 주거나 DB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잘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가격 결정권이 위로만 올라가고 돈은 밑으로 내려오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국내 가격이 아니라 국외 수입 폐지 가격이 시장 가격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고물상은 산업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커머닝하더라도 결국 시장에 다시 포섭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새로운 커먼즈적 전환을 상상하기

이쯤 되면 자원순환이라는 말 자체가 통계적 상상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국가가 쓰레기 발생량과 처리량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앞서 말했듯이, 그 수치는 계약된 양일 뿐이에요. 그리고 예컨대 “소각해서 에너지를 만들었다” 하면 거기서 나온 재는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잘 몰라요. 쓰레기 수거가 기술적이고 물리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치경제적인 이슈라는 거죠. 이걸 국가의 통제나 산업화 속에서만 보지 않고, ‘물질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감각으로 전환해보면 어떨까요?

예컨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플라스틱은 이미 충분히 생산됐잖아요. 그럼 이제는 총량을 정하고, 그 안에서만 순환시키는 건 어떨까? 생산을 규제하면서 플라스틱을 도시 내부에서 순환 자산으로 계획할 수는 없을까? 공유지 개념으로 가져가면, 협력과 분산, 보상의 논리를 적용해 볼 수도 있겠죠. 고물상의 역할을 대체하면서도 물질의 커먼즈적 돌봄을 실현할 수 있는 방식—그걸 상상해보자는 거죠. 콜롬비아처럼 농산물과 쓰레기를 맞교환하는 구조를 만든다든지, 스코틀랜드의 이데이 섬처럼 쓰레기 자체가 섬을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정책을 실험한다든지, 아니면 주민들이 직접 쓰레기를 선별하고 분류하는 자치적 재활용센터를 운영한다든지.

우리는 수거, 분류, 선별, 처리, 판매라는 전 과정을 단순히 산업이나 국가의 관리로 볼 게 아니라, 전유하고, 전환할 수 있는 시민적 실천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산자의 책임은 이미 많이 논의되었지만, 커뮤니티가 어떻게 재활용 이니셔티브를 실천할 것이냐, 제로웨이스트를 실현할 것이냐, 공동체 분리수거를 구현할 것이냐—이런 과제가 이제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커먼즈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물질을 다시 돌보는 방식, 순환을 다시 구성하는 방식, 무엇보다 도시의 물질 조건을 함께 계획하는 방식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물상이든, 고체의 수송이든, 쓰레기 산이든—그게 다시 관계를 만드는 ‘공유지’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는 거죠.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글 | 소준철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