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대, 닫힌 땅 – 캠프 페이지 |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1월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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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커먼즈 포럼 3 <국가를 커머닝하기>

열린 시대, 닫힌 땅 – 캠프 페이지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오늘 8개의 공통 좌표 중의 하나가 ‘평화’였어요. 저는 커먼즈의 주요한 좌표로서 평화와 관련해서 춘천의 미군기지 터인 캠프페이지를 사례로써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분단과 함께 도시의 한복판에 들어선 미군기지가 시민들에게 예외적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개인적 사례들을 열거해 보려고 합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는 미군 기지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 방사능 오염 문제, 헬기 소음 피햄 문제 등에 관련된 춘천 시민들의 활동들도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반환된 이 캠프 페이지를 어떻게 쓸 것인가와 관련하여 춘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들이 충돌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닫힌 땅 캠프 페이지를 구시대의 예외공간으로서 구조화되는 과정을 스케치하고 새로운 시대의 헤게모니적 투쟁이 발생하는 대안적 예외공간 또는 커먼즈 예외공간으로서 전략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Camp Page : 캠페이지의 시작과 끝

캠페이지는, 사실은 캠프 페이지인데 춘천 사람들은 다 캠페이지로 말합니다. 캠페이지는 한국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 중에서 제일 오래된 곳 중에 하나고 1951년 전쟁 중에 조성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연합군이 북진하면서 수송 물자를 다룰 수 있는 활주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 캠페이지라고 하는 기지 터가 생기게 됐습니다. 소설가 안정효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도 바로 이 캠페이지입니다. 그렇게 캠페이지는 1951년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K-47이라고 하는 비행장으로 구축하면서 시작됩니다. 캠페이지라고 하는 이름을 갖게 된 건 58년이고요. 존 페이지라는 미군 군인 장교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필리핀에서 태어났고요. 프린스턴 대학에서 ROTC를 통해서 군인이 된 이력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원래는 육사 가려고 그랬는데 눈이 나빠서 바로 군인이 된 모양입니다. 이분이 한국에 도착한 것은 1951년 11월 말일 거예요. 미군은 장진호까지 밀고 올라갔는데, 중공군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거기서 미군 병사들을 많이 구하고 전사를 하게 되면서 미국에서 제일 큰 훈장을 받게 됩니다. 그 페이지 대령을 기리면서 캠프 페이지라고 하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처음에 켐페이지는 미군 보급창으로 춘천에 들어와서 활주로가 조성되고 그다음에는 어네스트 존 로켓 부대. 그러니까 2차 대전에 독일이 참전하면서부터 로켓에 대한 경쟁이 많아졌는데 실전 배치가 가장 먼저 됐던 곳이 유럽보다도 한국의 춘천입니다. 어네스트 존(Honest John)이라는 로켓이고요. 그리고 실제로 춘천 시가지에서 이렇게 가끔 퍼레이드를 벌이고 학생들이 나가서 쳐다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72년도에 방사능 노출과 관련된 이제 진실 공방들이 있는데 그때 이제 관련된 이슈가 바로 이 어네스트 존이라고 하는 로켓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거의 최초로 폭탄과 핵탄두를 탑재 가능한 그런 로켓으로 개발이 됐다고 하고요. 성능이 더 좋아지면서 어네스트 존 로켓은 퇴역을 하고, 70년대 후반부터는 아파치 헬기 대대, 미군 대대가 주둔하게 됩니다. 그 밖에도 보급대라든지 여러 분야에서 공동으로 기지를 구성하지만 제일 눈에 보이는, 캠페이지에서는 헬기였습니다. 

캠페이지는 2005년에 반환이 되었고요. LLP(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라고 하나요. 그 반환 계획에 의해서 80여 개의 미군기지 중 여섯 번째로 공식 반환된 곳입니다. 국방부가 2009년부터 관리하기 시작하고, 춘천시가 약 한 2천억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으로 매입했습니다. 춘천시는 이 매입을 위해서 발행한 지방채 중에 292억 원을 원금도 상환하지 못한 채무를 더 갚아야 합니다. 반환 이후에는 기름, 아스콘 매립 등 오염 문제 때문에 이걸 누가 정화할 거냐? 국방부가 할 거냐, 춘천시가 할 거냐 많은 논의가 있었고 그게 아직도 깔끔하게 처리된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아주 일부 지역만 안전이 확인되어서 물놀이 장소, 어린이 시설물 이런 게 들어가 있고 나머지 대다수의 땅은 그야말로 이제 비어 있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그런 땅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이제부터 보여드릴 몇 개의 사진과 글들은 춘천에서 오래 살아온 제가 개인적으로 켐페이지를 예외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장면(scene)들을 떠올려 본 것들입니다. 이러한 예외공간은 개인은 물론, 동네와 도시로 까지 확장되어 내면화되어 아주 익숙하고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정상공간이 됩니다.

예외공간의 장면 : 담장, 철조망, 초소

“캠페이지에 대한 가장 뚜렷한 최초의 기억은 소양로를 가로질러 한없이 이어지던 벽돌 담장이다. 그때만 해도 가로수는 플라타너스였는데 키 큰 나무 높이까지 담장과 철조망이 올라가 있었다. ‘미 육군의 재산’이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던 담장 위로 드문드문 초소들이 올라와 있었고 보초는 허름한 한국 아저씨들이었다. 정문에 선글라스를 끼고 선 미군 헌병들에 비교할 수 없는 작은 키와 피곤한 얼굴로 구식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펑퍼짐한 작업복과 눈썹까지 내려오는 모자 때문에 더 비루해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 육군의 재산을 지키고 있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캠페이지에 대한, 더 내려가면 뭐가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의식할 수 있는 그리고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첫 장면 같습니다. 우리나라 한복판에 접근하지 말라며 경고문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한국인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은 충분히 의아한 공간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저로서는 의문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예외공간의 장면 : 1983년 어린이날, 불시착

“학교는 안 가도 되는 공일이었다. 늦은 아침 먹고 마루에서 낮잠을 잤다. 느닷없는 사이렌 소리에 깨서 불안하게 두리번 대다가 동네 형 자전거 뒤에 실려 근화동까지 갔다. 미군기지 담장 멀찌기 둔덕에서 자전거 짐칸에 올라서니 ‘중공’비행기가 보였다. ‘자유중국’으로 망명 하는 반공투사들이 캠페이지에 내렸다. 우리나라 장군이 캠페이지에 들어가려다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저긴 미국이구나 했다. 미국 땅에 내린 중공 반공투사들은 한국법에 따라 감옥살이를 하다가 자유중국으로 보내졌다고 나중에 들었다. 검색해 보니 자유를 찾아 대만에 귀순한 하이재커들은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당하기도 하고 노숙자로 험하게 죽기도 한 모양이다.” 

중공민항기가 불시착하자마자 춘천시에 주둔하던 2군단장이 캠페이지에 진입을 하려다가 일개 보초에게 제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미국 재산이니 아무리 한국군 고위 장성이라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후에는 왜 한국법에 따라 납치범들은 감옥에 보내주고 대만으로 이감되는지는 어떤 법적 논리나 근거에 대해서 진행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외공간의 장면 : Rainbow club vs Club Paradise

“캠페이지 정문에서 시청쪽으로 조금 올라오면 대로변에 Rainbow club이 있었다. 소양로 쪽으로 조금 내려가는 길목엔 Club Paradise가 있었다. 토요일 학교에서 놀다 어스름한 오후에 집으로 가다보면 R과 P를 지나쳐야 한다. 아직 해가 있지만 클럽 앞엔 등판에 호랑이나 용이 그려진 유광 잠바를 입은 미국인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P 앞에는 모두 흑인들이었고 조금 떨어진 R 앞에는 전부 백인들이었다. 가죽소파 같이 생긴 극장문 출입구에는 ‘한국인 출입금지, 미군전용업소’라는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흑인 전용이나 백인 전용이라는 표지는 없었지만 이들은 내외하고 있었다.” 

캠페이지는 단순히 군사공간만 들여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휴일을 맞아 쏟아져 나온 미군 병사들을 위한 유흥과 친목에서부터 매매춘과 유사가정에 이르기까지 불안정한 재생산 공간들이 우리 도시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미국의 문화를 담고 수입되었고 어떤 것들은 인종화된 양식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예외공간의 장면 : 근화동, 난초촌

“중3 방학때였다. 자기네 집에서 놀러 오라고 조르던 친구가 있었다. 캠페이지 너머 근화동까지는 기지 담장을 한참 돌아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엄마가 야쿠르트 도매상을 한다는데 동네 구멍가게도 겸했다. 둘이서 삶은 계란과 야쿠르트를 먹으며 낄낄대다 문을 열었다. 디귿자 모양 마당 가운데 수돗가에는 잠옷만 입은 누나 대여섯이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친구는 친척 누나들이 같이 살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캠페이지를 따라 난초촌, 장미촌, 개나리촌이 있었다. 2013년 자진폐쇄하기 전까지 많을 때는 600명 이상의 여성들이 집결지에서 살았다.”

지금 사진에서 보시는 거리가 난초촌입니다. 여기에만 600명의 젊은 여성들이 살았습니다. 수십년 동안 밤에만 수백 명의 남성들이 찾아들었습니다. 

“잘사는 집 아이들이 싸오는 도시락에 들어 있는 소세지는 달랐다. 납작하고 둥그런 사각형인데 햄이라고 했다. 부드럽고 맛있었다. 양키시장에서 사 온거라고 했다. 친구 아버지가 아낀다는 시바스리갈을 들고나와 양키시장에 가면 몇천 원쯤 챙길 수 있었다. 한창 때 춘천에는 맞춤양복점 골목이 있었다. 서울라사, 제일라사… 미군들은 한번에 열 벌씩 맞춰 귀국하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춘천은 공무원 1명이 5명을 먹여 살리고 미군 1명이 50명쯤 먹여 살린다고 했다. 양키시장 물건을 밀수품이라며 나오는 단속도 대부분 형식적이었다.”

양키시장 물건은 밀수품으로 나오는 것이었어요.

예외공간의 장면 : 달라스 스넬, 양심선언

“1972년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날이다. 어니스트 존 핵미사일 보관소에서 핵탄두가 장착된 어니스트 존 미사일을 등지고 디펜스 자세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중에 미사일 탄두에 문제가 생겨서 헬기가 수송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은 알 수 없는 드럼통을 부대 내 공터에 묻었다. 취급주의 표시가 뚜렷한 고엽제와 제초제였다. 그때 오염된 물이 춘천시내로 흘러 들어갔다.”. “그 땅에 끔찍한 물질을 마구 버렸다. 그러면서 밭에서 인분 냄새가 나고 한국 사람들이 더럽다고 욕했다. 더 더러운 존재는 우리였다.”

실제로 미국 캠페이지에서 근무했던 달라스 스넬이라고 하는 퇴역군인의 증언입니다. 시사인에 2011년에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분은 전역 이후에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이후에야 본인이 캠페이지에서 목격한 사실과 경험을 제보할 수 있었습니다.

“캠페이지 높은 담장도 소음을 막지는 못했다. 캠페이지 인근 지역 주민들은 미군 헬기 운항으로 인한 소음, 진동, 바람, 분진 등으로 입은 청력이상, 불면증, 고혈압, 호흡기질환 등의 신체적 피해와 불안감, 스트레스 등 정신적 피 해를 수십 년 동안 계속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2003년 춘천시민 42인은 캠프페이지 소음피해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미군의 점유, 소유 또는 관리하는 시설과 물건으로 인한 피해는 한국이 그 손해를 배상한다는 한미행정 협정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였으며, 승소하였다.” 

실제로 대한민국이 42명의 춘천 시민들에게 200만 원씩 배상을 합니다. 이후에 또 천 명 이상의 시민들이 피해에 대한 소송을 진행했는데 그때는 승소하지 못했습니다.

대안적 예외공간을 향하여 : 커먼즈 전략

제가 이렇게 개인적 기억속의 장면들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때 보았던 기억들이나 느낌들이 이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앞서서 말씀드렸던 예외공간으로서 캠페이지의 성격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왜 한국인 노동자가 저 담장 위에 서서 우리 땅에서 미군의 망을 봐야 되는지. 다른 나라의 비행기가 내려도 주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공간, 매춘과 밀수라는 불법이 용인되고 도리어 지역경제의 중축이라는 아이러니의 공간이었습니다. 최근에 캠페이지를 반환받은 이후 예외 공간이었던 이곳을 정상공간으로 돌리겠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요. 핵심적인 얘기는 경제 거점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안보 중심에서 경제 중심의 또 다른 예외 공간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예외공간은, 정치 또는 안보의 비상 상태 때문에 통상적인 법의 적용이 면제되거나 통치적 지배력이 규제 없이 실현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관타나모 수용소처럼요. 이게 외국인들에게는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일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인인 저에게는 수시로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공간과 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이런 예외 공간들이 단순히 구획된 공간 안에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보셨던 것처럼 저라는 개인이나 동네나 도시로 헤게모니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전략적으로, 안보나 경제에 근거한 구획하는 공간에서 커먼즈적 상상력에 기반한 새로운 예외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을 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기에 K-문화타운을 짓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해서 정상공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실제로 여기에 있는 이 사진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템펠호퍼(Tempelhofer) 공원의 일부 지역입니다. 여기도 똑같이 비행장과 미군 기지를 거쳐서 베를린시로 거쳐 왔고, 개발과 관련된 싸움들을 관련 시민들이 충분히 해 나가면서 거의 죽지 않는 방식의, 우리의 방식의 문화들을 남겨줬습니다. 근데 문화들만 남겨진다고 해서 그게 큰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플로팅 유니버시티라고 하는 실험공간들을 예외 공간으로 만들어서, 물이나 토양, 그 다음에 공동체, 그다음에 수상 건축까지 자연적인 삶에 대한 전략들이 집약된 그런 예외 공간을 좀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예외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정치적 에너지가 엄청나게 들어가죠. 예외성의 정당성과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의견들과 비판을 담보해야 학 때문입니다. 때로는 국가 권력으로 다른 의견과 비판을 제압하며 자유도를 낮춰버리는 경우도 있고 도리어 최대한 소통을 확장하고 참여와 긴장을 최대화하여 자유도와 자율성를 확 올리는 그런 방식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우선 후자에 대한 것들을 고민을 하고 있고 춘천에서 이제 시작이 될 것 같아요. 오늘도 이제 공론장과 관련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고 다음 주에는 시민들의 캠페이지 관련 공론장이 진행이 될 텐데 저희도 좀 참여하면서 새로운 전략들을 같이 고민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 박정환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김세환,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윤형준,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1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