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귀촌 부부 이야기: 주거의 전환, 삶의 회복 | 서선교 홍성군 장곡면 주민자치회 사무국장

8월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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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촌 부부 이야기: 주거의 전환, 삶의 회복

서선교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주민자치회 사무국장)

홍성군 장곡면 주민자치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계시는 서선교 선생님은 지난 2023년 2월에 친구의 소개로 이곳에 이주하게 되었고, 한동안 원래 살던 서울을 오가며, 이 지역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1년 정도 지난 후 서선교 선생님은 아내와 함께 서울 생활을 접고 장곡에 정착하셨다고 합니다. 결혼한 지 3년이 조금 넘은 아직은 신혼인 두 부부가 장곡에 와서 살게 된 이유, 그리고 ‘집’과 ‘삶’에 대한 서선교 선생님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장곡이라는 농촌에 오기까지 – 높은 주거 비용과 전세 사기

Q. 아직은 신혼인 서선교 선생님 내외가 이곳 장곡에는 작년 2월에 오셨군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장곡으로 오게 되신 건가요?

그림 1 서선교 선생님이 사는 상송리 귀농인의 집_서선교 제공

친구들이 먼저 내려오면서, 홍동과 장곡을 소개해 줘서 친구들이랑 같이 조그맣게 농사를 배워보는 걸 하면서 서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농사를 조금 배우면서 이 지역에 대해서 알게 됐었습니다. 그러면서 1년 동안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내려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사실 도시에서 쭉 살았거든요. 30년 가까이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살았어요. 대학생 때 공동체로 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친구들과 공동체 생활에 대해 책도 읽고, 마을 공동체를 방문하며 경험을 쌓았어요. 그런데 도시에서의 주거 비용이 너무 가파르게 상승하다 보니까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결혼할 때쯤에 공동체로 살아보자고 했던 친구들과 제가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살았었어요. 거기가 그래도 조금 신혼부부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서울에서 빌라가 그렇게 비싸지 않은 동네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그 동네에서 살면서, 결혼하거나 독립하는 친구들이 그 동네에 와서 살도록 해서 동네에서 한 6~7가정 정도가 모여 살았었어요. 걸어서 만날 수 있을 거리에서 6~7가정이 살아서 재미있게 살았는데, 다 전세다 보니까 이걸 지속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 계약 시기가 다 조금씩 다르고, 관련 법들도 조금씩 달라지면서 5%만 올려도 한 번은 살 수 있지만 또 그다음이 또 보장되지 않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살 때도 그 동네에 이제 전세 사기 이슈가 워낙 커졌고, 저희도 아내가 혼자 화곡동 빌라 살았을 때 전세 사기 집을 살았었거든요.

그런 이슈들이 있으면서 뭔가 더 이상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 빌라에 살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커졌었던 것 같아요. 그럼, 현실적으로 같이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했을 때, 사실 같은 아파트를 들어가는 건 사회 초년생으로는 사실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냥 나 혼자 주거를 정해서 어디 지역에 청약이 되고 아파트가 되고는 가능하지만, 같이 살려고 하는 3~4가정이 같은 지역으로 가는 게 도시에서는 조금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제 친구 중에서 그러면 같이 땅을 사고 공동체 주택을 짓는 것들을 알아보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서울은 땅값이 너무 비싼 거예요.

건축비를 제외하고라도 서울은 안 되고, 그러면 경기도로 내려가고, 예를 들어 안양도 정말 조그만 땅인데 가정 당 3억에서 4억 정도씩을 부담해야 공동체 주택으로 지을 수 있는데 우리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나 그런 고민을 하다가, 다행히 보험 들어놓은 게 있어서 반환받긴 했지만, 전세 사기를 직접 겪어 보니, 도시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좀 사라졌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열심히 저축해도, 오르는 전셋값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고, 우리가 2년 동안 2천만 원을 모아도 전세로 올려달라고 하면 집주인의 돈이 그거 이상이니까 계속 이렇게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봐야, 그냥 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계속 자본이 흘러가는 형태가 되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도시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같은 동네에서 살던 친구들이 먼저 귀농했는데, 그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관한 고민 같은 걸 하면은 시골이 당연히 집이 적고 서울의 집보다 당연히 열악한 부분이 있지만, 가격 측면만 봐도 사실 서울에서는 매매한다는 거는 꿈꾸기가 사실 되게 어려운데, 그래도 농촌은 매매한다는 걸 좀 꿈꿀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뭔가 집을 소유할 수 있구나, 농촌에 내려온다면 내가 생각하는 집을 좀 소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춰서 대출을 받고, 그냥 빌라랑 이런 곳을 산다고 생각했지만, 농촌에 내려온다면 집을 소유할 수도 있고 그러면 내가 또 땅을 사고 집을 또 내가 원하는 형태의 집을 좀 지어볼 수도 있겠구나.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이 되니까 내려와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집 계약이 끝나고 그 시기에 맞춰서 그냥 내려오는 선택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도 결혼 전에 전세 사기를 겪었고, 그 후 결혼해서 들어간 집에서도 보증금을 늦게 받는 등의 스트레스를 겪었기 때문에 농촌으로 내려가서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어요.

귀촌 후 직업과 생계 방식의 변화

Q. 도시에서 농촌으로 오면서 직업과 생계 방식의 변화는 없었나요? 있었다면 이 부분은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사실 서울에서 계속 사는 것도 서울이 당연히 일자리나 여러 인프라가 좋은 건 또 맞지만 근데 또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 사용해야 하는 비용이나 스트레스가 컸었던 것 같고 저희는 주거 관련해서 비용이 드는 게 조금 아깝다고 느껴졌어요. 저희 둘 다 소득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어찌 됐든 주거로 대출 이자가 갑자기 오르는 시기가 있기도 하다 보니까, 계속 집에 거주하면서 사용하는 비용이 너무 많고 이게 조금씩 부담스러워졌고, 계산을 해보니 어느 순간 우리가 이걸 감당하기가 더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집도 우리가 생각했던 거랑 달리 점점 더 열악한 형태의 집으로 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 도시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별로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도시에 살면 당연히 직장을 구하는 건 더 쉽겠지만 버는 돈의 굉장히 높은 비율이 주거와 관련돼서 사용하게 되는데, 그게 만족스럽지 않으면, 굳이 도시에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어서 도시를 조금 떠났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그때가 공교롭게 저희 집 계약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랑 제가 서울에서 일을 하던 곳이 계약이 끝나던 시점이랑 겹쳤어요. 그래서 직장과 집, 두 가지가 다 마무리되는 시점이라서 다음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시골로 내려오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림 2 서선교 선생님_온라인 화상 인터뷰 영상 캡처

지금 살아가는 모습 – 서울과 다른 장곡에서의 집

Q. 그럼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계신가요?

저희는 지금 상송리에 있는 귀농인의 집에서 살고 있어요. 귀농인의 집은 원래 1년 계약하고 들어왔다가, 조금 더 연장해서 올해 9월에 나가야 합니다. 9월에는 도산 1리에 있는 집으로 들어갈 예정이에요. 그 집은 원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시다가 돌아가시고, 그 소유권은 자녀분들이 가지고 계시는데, 관리를 마을에서 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월세도 마을회 통장으로 내고 있습니다.

‘귀농인의 집’은 홍성 군청에서 지원해 주는 건데, 마을이 귀농인의 집으로 빈집을 운영하겠다고 신청하면 수리비 예산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어요. 수리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6~7년 정도 귀농/귀촌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상 혹은 아주 저렴하게 임대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정보와 데이터는 농업기술센터 귀농 귀촌팀이 담당하고 있어서, 처음 저희가 이곳에 내려오려고 했을 때 집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농업기술센터에 전화해서 어디 지역을 가고 싶다고 하니, 현재 비어있는 집 정보를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집주인 분에게 저희가 연락해서 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6~7년이 지나면 월세를 조금 더 올려 받거나 다른 형태로 운영할 수도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지금 사는 집은 서울에서 살 때보다, 사실 평수는 조금 더 넓어진 거 같습니다. 지금 사는 이 집은 10평 조금 넘는 것 같아요. 앞뒤에 마당도 있고 하니까 실제 평수는 더 넓을 거예요. 방도 3개 있어요. 그리고 방 중 하나는 약간 별채나 창고 같은 형태입니다.

물론 집 상태는 당연히 더 안 좋긴 합니다. 예를 들어, 시골 주택 특성상 습기가 약하거나, 난방비가 비싸거나 하는 거요. 하지만 오히려 마당이 좀 생기고, 집과 집 사이 간격이 넓은 것에 꽤 만족스러워요. 서울에서 살던 집은 창문 열면 앞 빌라에 사는 집에서 TV에서 뭘 보고 누가 돌아다니는 것이 다 보였거든요. 그래서, 사실 여름에도 창문을 잘 안 열고 지냈고, 오토바이 소리도 심했어요.

집이 뭔가 쉼을 위한 공간이고, 때로는 누구를 초대하기도 하는데, 서울에서는 누구를 초대할 때 약간 뭐랄까 옆집에 시끄러우면 어떡하지? 밑에 집에 시끄러우면 어떡하지?”라는 게 늘 조마조마했었어요. 하지만, 시골에 살면서도 똑같이 친구들을 많이 초대해도 이제 그런 게 조금 자유롭다 보니까,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장점인 거 같아요.

그리고, 서울에서의 주거 비용은 굉장히 높았어요. 저희가 살던 서울의 전세는 1억 9천이었고, 그에 비해 농촌에서는 월세가 훨씬 저렴해요. 현재 살고 있는 귀농인의 집은 월세가 10만 원이고, 다음에 이사 갈 집도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이에요. 보증금을 은행에 넣어서 이자로 관리할 수도 있고, 농촌에서의 월세는 서울에서의 주거 비용과 비교하면 훨씬 부담이 적어요.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사실 연세로 따져도 120만 원밖에 안 되는데 그렇죠. 저희 최근에 또 서울에서 왔었던 친구들이 그러니까 신혼부부면 그나마 그래도 서울시에서 신혼부부 관련된 정책들이 있어서 조금 저렴한데 신혼부부가 아니면 대출 이자가 이제 6개월마다 변동금리고 하면 갑자기 엄청 비싸고 이런 경우들이 있어서 저희 친구 중에도 대출 이자가 너무 비싸져서 원래도 한 60~70 냈다가 지금 한 달에 125만 원인가 낸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둘이 같이 사는데, 친구들 얘기 듣고 저희 집 1년 월세보다 한 달 이자 대출 이자가 비싸니까 그렇게 하면 사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면서 월급을 받는다고 한들 월급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그냥 대출 이자로 써야 하는데, 그래도 농촌에 오면은 당연히 직장이나 이런 게 어렵겠지만, 그래도 대출 이자 120만 원 내는 것보다는 월급 한 60~70만 원 덜 받는 직장 구하고 농촌에서 좀 더 좋은 집에 살면 더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우스갯소리로 최근 했던 거 같아요.

현재는 서울로 돌아갈 마음도 별로 없기도 하고, 이젠 돌아갈 수도 없지 않나 싶기도 해요. 서울 집값은 더 많이 올라 있을텐데, 거기로 다시 진입하는 것이 어려울거라, 이곳으로 내려올 때는 서울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참고로, 서울에서 집을 구할 때 중요한 것은 집의 가격이었어요. 예산을 세우고, 부동산에서 예산에 맞는 집을 보러 다녔어요. 출퇴근이 용이한지 등도 고려했지만, 집 주변 환경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어요. 농촌에서는 집이 있는 마을의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봐요. 농촌에서 집을 산다는 건 마을 구성원이 되는 거잖아요. 마을 구성원이 된다는 건 무척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지 도시 기준으로 좋은 땅이 나왔다고 해서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 마을과 마을 주민을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축사가 있는지, 이장님의 성향 등도 중요해요. 환경보다는 그 마을의 분위기 특히 외지인과 원주민이 잘 융합해서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인가가 가장 큰 고려사항이에요.

그림 3 홍성군 장곡면을 내려다 본 사진_서선교 제공

장곡, 농촌에서 살아가기 위한 희망 사항

Q. 앞으로 여기에서 계속 살게 된다면, 무엇이 더 마련되면 좋겠어요?

다양한 형태의 주거 시설들이 생기면 좋겠어요.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은 친구들이 잠시 지낼 수 있는 집들이 부족해요. 농촌에서는 실제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집을 구하지 못해서 옆 마을로 가거나 임시로 주거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양한 형태의 주거 시설들이 생기면, 싱글도 내려와서 잠깐 지내볼 수 있고, 아이가 있는 학부모들도 아이와 함께 농촌에서의 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거예요. 농사를 배우고 싶으면 바쁜 농사철에 내려와서 경험할 수도 있고요.

저도 살면서 만났던 학생들이나 사회초년생들을 지금 사는 집에 많이 초대했는데, 실제로 살아보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 친구들이 잠시 지내볼 수 있는 주거 형태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민간 차원에서 어렵다면, 행정적으로라도 이런 시설들이 생기면 좋겠어요.


인터뷰 | 이승원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윤수진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4년 8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