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자온길 프로젝트
웹진 공유도시 팀은 이번 2024년 1월호에서 지역의 문화유산과 도시재생이 연결된 현장이 주는 힘에 다시 주목하고자 한다. 충청남도 부여에 위치한 규암마을은 자온길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의 장면과 현재의 숨결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들어내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이에 웹진 공유도시 팀은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와 함께 직접 부여로 찾아가보았고, 현장에서 마주한 자온길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박경아 (주)세간 대표를 만나보았다.
“시골에는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아예 없고 전시도 자주 없으며 공연을 보려면 멀리 도시로 나가야 해요. 이런 것들이 문화적 혜택이 중요한 세대가 시골에서의 삶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자연 만으로 지방에서의 삶을 지속하기에는 어렵더라고요. 문화를 누리는 삶은 지금의 세대에게 취미가 아닌 생활이에요. 그러한 것들이 자온길에 충만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Q. 웹진 공유도시 2024년 1월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구독자 분들을 위해 선생님(혹은 세간)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부여에서 진행 중인 ‘자온길 프로젝트’ 대한 소개도 같이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세간 대표 박경아입니다. 저희 세간은 일상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게 만들고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면 전통공예 기술을 기반한 기물을 만들고 전통 건축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리빙라이프 회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Q.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와 웹진 공유도시 팀이 함께한 이번 답사에서 ‘자온길 프로젝트’만의 뚜렷한 개성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부여의 작은 마을에서 처음 프로젝트를 구상하시면서 전반적인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화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부여로 다시 대학원을 오게 되었고 부여는 자연도 아름답고 문화유산도 풍부한데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어요. 서울에서 사업을 하면서 높은 월세에 지쳐 사라져 가는 아티스트들을 보면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문화거리를 조성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새로 만드는 건물들이 아닌 버려진 공간들을 활용해서 하고자 했습니다.
그때부터 서울 부여를 반복해서 오가며 지주 작업을 거쳐 공간을 확보하고 하나하나 자온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서점을 만들고 카페를 만들고 숙박을 만들고 펍&레스토랑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지자체 도움 없이 민간의 힘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는 진행형 프로젝트입니다.
Q. 낯선 타향, 소도시 부여에 자리 잡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흥미로운 점은 처음부터 여러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셨다는 점이었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으로 도시재생이 지속되지 못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시면서 부동산 문제도 적극적으로 고려하셨기 때문일까요?
도시 재생을 설명하기에 제가 도시재생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전문가라도 아니어서 뭐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자온길은 버려진 마을, 버려진 공간을 선택해서 그 안에서 문화적 쓰임을 넣고 자연스럽게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지역을 살려야지.’ 하는 거창한 마음, 포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버려진 건축물들이 아름다워 보였고, 지켜내고 싶었고, 활용하고 싶었던 겁니다. 하고 보니 이 일들이 도시 재생의 결과가 됐죠.
이 일들을 하기 위해 부동산, 건축, 디자인, 자영업(자기 전문 분야), 홍보 이것들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5가지 분야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마을을 도시 흉내 내려고 하드웨어에만 옷을 입히고, 오래된 건축물을 새것처럼 덧씌우고, 쓸모없는 조형물을 만들고, 아름답지 않은 억지스러운 벽화를 그리고 도로를 깔고 이런 일들을 재생이란 이름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시 살리는 일이 아니라 재생이란 이름의 파괴이고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Q. ‘자온길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여러 문화 공간과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애정이 가는 사례에 대해서 웹진 구독자 분들에게 몇가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공간이 애착이 있습니다. 자식이 하나 같이 다 소중한 것처럼 모든 공간 하나하나 소중하죠.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가장 먼저 만든 책방세간이에요. 자온길의 앵커스토어 역할을 해주고 있는 곳이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공간, 관광객에게는 안내소 같은 공간이어서 애정을 갖고 있어요. 독서모임이나 줍깅을 책방지기가 지역주민과 하는데, 이런 모습도 아름답고 이 지역에 필요한 문화공간이 되어가고 있는듯하여 뿌듯합니다. 블로그 리뷰도 200건이 넘고요. 너무 감사한 리뷰가 많은 공간이에요.
Q. 이제는 정착 이후에 이제 전국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현재 단계에서 세간 팀에서 주목하고 있는 관심사나 고민하는 문제는 어떤 점이 있을까요?
자온길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공간이 많이 남아있어요. 가장 긴박한 오픈을 앞둔 곳이 고미술 갤러리입니다. 세간이 서울에서 샵을 할 때도 고미술(고가구중심)을 취급했었고 저는 집에서 100년이 넘은 가구들을 쓰고 있어요. 제가 100년이 넘은 가구들을 쓰다 보면서 느끼는 건데 이것들은 쓸모(쓰임)를 갖고 있으면서도 너무 아름다운 오브제의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오랜 세월 사람의 옆에서 사랑받고 버려지지 않는 기물이야말로 명품이라는 생각이 들고 장인이 만들어내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는 너무 많은 기물을 쉽게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려요. 그런 것들을 그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오래된 것들의 가치. 손으로 만든 것들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들을 계속해 나가고 싶어요.
고미술 갤러리 후에 옛 극장 자리를 리모델링하여 공연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상설 전시도 하고 독립영화도 보고 공연도 상시로 이루어지는 문화 공간을 만들려고 해요. 저는 문화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시골에는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아예 없고 전시도 자주 없으며 공연을 보려면 멀리 도시로 나가야 해요. 이런 것들이 문화적 혜택이 중요한 세대가 시골에서의 삶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자연 만으로 지방에서의 삶을 지속하기에는 어렵더라고요. 문화를 누리는 삶은 지금의 세대에게 취미가 아닌 생활이에요. 그러한 것들이 자온길에 충만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지역민들에게는 문화적 혜택을 줄 것이며 관광객에게는 새로운 경험과 쉼을 선사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숙박 공간도 마을에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고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베이커리와 술을 빚는 양조장도 조성계획에 있습니다. 향후 3년간 자온길은 또 다른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자온길 파트2 책을 쓸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Q.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추가로 부탁드립니다
자온길 프로젝트는 사실 늘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좌절했다가 또 극복하고를 반복하며 살고 있어요. 모든 사업이 어렵지만 이 일들은 여러 분야의 일들이 혼재되어 있고 또 그걸 같이 해내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들이어서 굉장히 복잡해요. 또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한 번에 다 바뀔 수 없기에 인내가 필요한 일이고요. 너무너무 힘들다가도 공간을 즐겨주시는 고객님들이 좋아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 또 힘을 얻고 동네에 새로운 공간이 하나 둘 생길 때 많이 기쁘더라고요.
자온길의 사례를 통해 전국의 많은 지역들이 버려진 공간들의 가치를 좀 더 생각했으면 좋겠고 특히 빈집 한옥의 가치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지켜야 할 자원임을 인식하고 많이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사진 | (주)세간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심여은, 신영수, 송민석, 이희라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4년 2월 6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