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권리로서 ‘모빌리티’ 사유하기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터뷰

3월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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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 연대에 ‘커먼즈로서 모빌리티’를 묻다

발 디딜 틈 없는 혜화역 출근길 사이로 피켓이 보인다. 문구 한 줄이 선명하다.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해 주십시오’

지난 12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휠체어를 타고 출근길 지하철을 승하차하는 ‘지하철 탑시다’ 선전전을 시작했다. 선전전은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탑승하는 행위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의 현주소를 보이고 장애인교통약자편의증진법에 따른 권리 예산을 약속받기 위해 시작된 투쟁이다. 

참가자들은 ‘법이 있고 정책이 있어도, 예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외친다. ‘지방자치단체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직접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전전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어느 시민은 ‘장애인들이 평생 불편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출근길 잠깐 불편한 것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열차 지연으로 인해 분노를 표하는 시민은 ‘왜 출근하는 바쁜 사람들을 방해하냐’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이동권 투쟁이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삼고 있다’고 비판한다. 시민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갈라치기 하려는 시도가 녹아있다.

한 인터뷰에서 변재원 활동가는 ‘착한 장애인은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지만 나쁜 장애인은 제도를 바꿀 수 있다. 나는 제도를 바꾸기 위해 나쁜 장애인이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선전전은 다시 시작되었다. <웹진 공유도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김필순 기획실장을 만나 선전전의 배경과 과정을 들었다. 시민 개개인의 삶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모빌리티’를 얼마나 편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커먼즈로서, 보편적 권리로서 ‘모빌리티’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이들은 말한다. ‘지하철 투쟁으로 시민들의 발을 묶지 말라’는 질책은, 20년 이상 발이 묶여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은 시민으로 포함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필순 기획실장

먼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어떤 단체인가요?

전장연은 전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4개의 단체로 이루어진 연대체입니다. 전장연은 자립권, 교육권 등 이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의제를 연대체로써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위해 장애인 이동권쟁취연대를 결성하였습니다. 이후  2007년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장애인 특수교육법 제정 투쟁,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 탈시설 자립생활 투쟁 등 다양한 투쟁을 해왔습니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선전전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선전전을 시작하게 된 구체적인 동기는 무엇인가요? 개정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서 예산 반영이 임의조항으로 구성되어서라고 하는데, 그 외의 다른 동기는 없었나요?

2001년 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되었고, 조금씩 개정되어 왔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년에 법 제정 20주년을 맞이하면서, 두 가지 사안과 관련한 근본적인 개정을 진행하는 데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전국 저상버스 도입이에요. 2019년 기준으로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26.5%였습니다. 서울은 저상버스 도입률이 53.9%인데 반해, 다른 지역은 대부분 보급률 30% 미만을 밑도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지하철은 무료인 반면 버스는 유료이기 때문에, 수급비와 장애인 연금 정도로 자기의 삶을 꾸리는 장애인은 버스 이용을 주저하곤 합니다.

또 지하철 이용에도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서울시 내 모든 지하철 역사에 ‘1역사 1동선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휠체어 리프트 없이 엘리베이터만으로 이동 가능한 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한 바 있지만, 여전히 전체 283개 역사 중 22곳에는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심지어 2022년 서울시 예산안에 해당 예산이 빠져있어 새로운 설계는 물론 어렵고, 기존의 엘리베이터도 방치될 위험이 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에 제약이 많다 보니 장애인 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 또한 문제가 많아요. 일단 노선과 수가 기본적으로 부족합니다. 출퇴근 시간, 학교 등하교 시간에는 기본 1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길면 3~4시간 까지도 대기를 해야 합니다. 밤 9시 이후로는 대기 시간이 더 길고요.

특별교통수단의 경우 지역 간 이동에도 제약이 많습니다. 특별교통수단을 관리하는 이동지원센터가 지자체 별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지역 간 경계를 넘나들기가 어렵습니다. 지자체의 세수와 자율성에 의존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지역 편차가 너무나 크고, 지역 간 이동 제약도 많죠.

그래서 작년에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을 냈습니다. 버스를 대차하거나 폐차할 때 저상버스 도립을 의무화하고 국가가 운영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가 설치 운영비를 지원하는 부분이 ‘의무 조항’이 아닌 ‘임의 조항’으로, ‘지원해야 한다’가 아닌 ‘지원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산이 임의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동권을 기본권의 문제가 아닌 서비스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난 이동권 투쟁이 무력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전전을 계획했습니다.

또한 대선 국면에서 대선 후보자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교육, 그리고 탈시설 등에 대한 장애인 권리 예산을 확대할 것을 약속하라는 뜻에서 지하철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선전전을 “장애인 단체의 불법시위”라고 규정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폭력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감명 역시 받았습니다. 선전전을 함께하신 분들이 그 과정에서 겪은 고민, 생각, 감정 등을 이야기해주신다면요?

투쟁을 통해서 혐오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어떤 시민들은 ‘난 너희들을 반대한 적 없다. 그런데 너희들이 나한테 피해를 주면 난 너희들을 반대할 거다’, ‘너희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혐오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협박을 하거나, 선전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언론에서도 특정 자극적인 발언만 편집해서 내보면서 정말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욕을 정말 많이 먹다보니 정말 많은 관심들도 쏟아지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편파 보도, 혐오 발언들을 마주하면서 내부에서도 시민들의 불만이 역풍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어요. 그래서 대선 후보자 중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을 하는 후보자가 있으면 선전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심상정 의원과 이재명 후보가 장애인 이동권 논의에 동의를 하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이제 선거가 끝나서 대통령 당선인께 다시 장애인 이동권을 다시 요구한 상황이에요. 3월 23일까지 답변을 하지 않으면, 3월 24일부터 다시 출근 투쟁을 하겠다고 선포를 해놨습니다.

사람들이 왜 출근 시간에 선전전을 하냐는 얘기를 많이 해요. ‘사람 많은데 왜 너희가 다니냐, 우리 출근 늦데 왜 너희가 출근을 하냐’라는 말을 해요. 그런데 장애인도 출근을 하거든요.  고병권 선생님이 ‘죄 없는 시민은 정말 죄가 없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셨어요. ‘과연 장애인들이 죄 없는 시민의 발목을 잡았는가. 오히려 시민들 이야말로 장애인들의 발목을 잡아온 건 아닌가’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여전히 장애인 이동은 비장애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동권을 넘어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을 얘기하면 ‘지하철을 타는데 왜 그 권리까지 얘기하냐, 너희는 끝도 없이 요구하는 단체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동권이 기본이 되어야 지역사회에서 교육도 받고, 활동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러한 것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전장연이 지속해온 이동권 투쟁은 어떤 결실을 맺었나요?

우선 장애인들이 훨씬 더 많이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놀러갈 수도 있고, 교육도 받으러올 수 있었죠. 그리고 지하철의 엘리베이터가 생기면서 비단 장애인 뿐만 아니라, 노인, 무거운 짐을 든 여행객 등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상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전에 서울역에서 저상버스 투쟁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할머님께서 무엇을 하는건지 여쭤보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상버스를 만들어달라고 투쟁하고 있는 장애인들이라 말씀드렸더니, 할머님께서 너무 잘했다고 당신께서도 장 본 후에는 버스 몇 대를 보내더라도 저상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처럼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은 비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특별교통수단의 경우에도, 선생님께서 갑자기 깁스를 하게 되었다면 출퇴근이 힘들잖아요? 택시를 타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그런데 만약 이 특별 교통수단이 더욱 큰 범위에서 일시적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사용할 수 있다면, 일반 택시 요금의 10분의 1정도 수준에서 이동의 편의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이동권의 증진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결국 예산일 것 같습니다. 공공의 교통이 된다는 것은 결국 예산을 책임지는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예산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복지는 없거든요. 화성시 등에서 무상교통을 할 수 있는 것은 화성시가 경기도에서 가장 큰 지자체이며, 예산이 제일 많기 때문이겠죠. 그렇기에 지자체마다의 격차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에를 들어 서울시에서는 500대의 장애인 콜택시가 존재하고, 휴무자를 제외해도 300대 가까이 되는 장애인 콜택시가 실질적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교통수단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같은 거리를 이동함에 있어서도  3~4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죠. 그렇기에 장애인들도 서울이 훨씬 살기 편하고, 서울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빌리티, 이동권의 문제를 커먼즈로써 상상해볼 수 있을까요? 공유도시에서 모빌리티와 이동권의 문제를 어떻게 사유하고, 어떠한 대안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요?

과연 같이 산다는 게 무엇인가, 과연 공유라는 개념에 장애인은 포함되어 있는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희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해요. 장애인 뿐만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교통 환경 정도라면 모든 교통 약자가 사용할 수 있고,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교육 환경 정도라면 비장애인 학생도 소외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학교라는 전제를 품고 있어요.

누구나 편하게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을 만든다는 건 장애인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에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저상버스는 장애인 뿐만 아니라 아동, 노인 등 비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모빌리티의 장벽은 교통수단에서도, 지역 간 이동에서도 존재한다. 모빌리티의 문제는 단순한 교통과 이동의 문제를 넘어 교육, 노동,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삶의 문제와 연관된다. 그렇기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커먼즈로서의 모빌리티가 달성될 때, 우리는 이동과 삶의 보편적 자유를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홍지수, 홍다솜, 송지우, 심여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2년 03월 30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