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대한 분투기를 쓰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인간이 자궁 속에 잉태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각인된 자연스런 본질이 아니다. 존 롤즈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과 ‘원초적 입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이를 차별하거나 혐오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원초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공정과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서 지켜야하는 어떤 지향점일 뿐이다. 다른 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 악한 행위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잘못 투영된 욕망이 그 욕망의 실현을 가로막는 원인을 잘못 찾는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는 자신들의 행위를 악한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 착각한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지난 2020년 3월 개교한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강서지역에 설립되는 과정에서 발달장애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이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향한 정당한 듯 포장된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맞서 싸운 분투기이다.
이들의 분투기는 투기적 도시화 속에서 일그러진 우리 자신의 모습, 깨어진 거울 조각들 속에서 거침없이 비춰진 도시민의 분열되고 충돌하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 다큐를 보는 내내 어떤 분노와 슬픔과 함께 부끄러움이 마음 한 구석에서 솟구치는 까닭은 아마도 이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한 대응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비춰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주 오랫동안 지극히 비정상적인 생활이 평범하게 이어져왔었다.
학교 가는 시간 평균 3-4시간. 몸과 마음이 불편한 강서구 거주 장애 학생들은 구로구에 있는 학교를 가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차에 힘든 몸을 싣고 일찌감치 학교로 향한다. 그때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 학교로 등교하는 또래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동네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몸이 불편할수록 등교길이 더욱 편해야 하지만, 오히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더 먼 곳으로 매일 유배가듯 통학해야 했다. 동네 학교에서는 통합교육을 피했다. ‘정상 학생’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장애학생’이 방해한다는 편견이 동네 학교의 통합교육을 막아버렸고, 장애학생들은 갈 곳을 잃었고, 그렇게 이 비정상이 평범함이 되어버렸다. 원치않는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들의 삶 곳곳에 폭력이 스며들어 있었다.
희망, 재개발 욕망의 주술로 괴물의 야욕이 되다.
학부모들의 요구와 교육청의 의지로 동네 어느 폐교부지를 활용해서 강서구와 인근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세워질 계획이 마련되었다. 서울에 특수학교가 추가로 새워지는 것이 17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 동안 세워진 쇼핑몰, 문화체육시설의 수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처음엔 순탄해 보였다. 하지만, 이 지역 국회의원 (당시 김성태 의원)이 이 폐교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아닌 공약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애시당초 교육부지에 다른 용도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부지에는 학교를 짓는 것이고, 한방병원을 지으려면 다른 공공부지를 확보해서 지으면 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폐교부지 국립한방병원 유치’ 망언은 지역 주민 사이 재개발 욕망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국립한방병원이 들어서면 건강하고 안전한 돌봄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이제 우리도 다른 강남처럼 잘 살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지역주민들에게 주술을 걸어버렸다.
‘특수학교 때문이다, 특수학교가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특수학교 학생들때문에 우리가 가난해진다, 얼마나 우리를 무시하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를 지어서 우리를 또 힘들게 하냐’.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재개발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주택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이 지역에 저소득층을 위한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세웠다. 당연히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 주민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 학생수가 줄어들고,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있던 이 학교는 타 지역 주민의 외면 속에서 결국 폐교되었다. 그렇게 이 지역은 점차 다른 지역과 고립되어 갔다.
특수학교지만, 폐교에 학교가 들어선다니 다행이었다. 지역주민들의 고립감이 해소될 길이 열렸다. 하지만, 자기 지역구에서 표심을 얻어야 했던 국회의원이 뱉어낸 말도 안되는 공약이 결국 방향잃은 기관총이 되어 장애학생과 가족은 물론 지역 주민의 가슴을 향해 총알을 난사해 버리고 말았다. 주민들 사이 파고든 비틀리고 오염된 재개발 욕망은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동네에 있는 학교를 다니겠다는 아주 당연한 소망을 품은 장애 학생과 가족을 동네의 번영을 파괴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 투기적 욕망은 주민들을 서로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연한 권리가 거래되었다.
저 투기적 욕망에 맞서 엄마들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통곡과 절규를 했고, 무릎을 꿇었고, 삭발을 했고, 몸을 던져 항의하기도 했다. 혐오와 눈물로 점철된 공청회가 몇차례 지난 후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가 예정대로 세워지기로 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학교가 세워지는 배경 뒤엔 ‘어쩔 수 없이’ 투기적 욕망과 타협하기 위해 특수학교 설립 조건으로 이 동네에 국립한방병원 건립을 위한 협력이 약속된 것이다.
엄마들은 반대했다. 나쁜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동네에 특수학교가 세워질 때마다 지역 개발에 대한 조건이 뒤따라야 하고, 그 조건없이 특수학교가 세워지기 어렵게 되는 나쁜 사례를 의사결정자들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할 교육에 대한 권리가 거래된 것이다. 타협할 조건이 없으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식만 생각한다면 거래가 뭐든 상관없이 환영하고 끝냈겠지만, 모든 장애학생들이 다 똑같은 자식이었다. 이들이 경험한 연대의 힘이었다. 내 자식을 위해 다른 이의 자식 가슴에 못 박을 순 없었다. 그래서, 엄마들은 다시 싸워야 했고, 결국 2020년 3월에 폐교되었던 공진 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개교했다. 이렇게 이들의 분투기는 잠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장애학생들의 진짜 어려움은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이다. 그래서 특수학교 설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보호받는 미성년자의 시기를 지나 법적 성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엄마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자식 보다 하루 늦게 세상을 뜨는 것이다(그러면서도,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 생에 태어나도 이들의 엄마로 태어나겠다고, 그 땐 더 잘해주겠다고 말한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미래에 겪을 어려움은 이미 서진학교보다 조금 일찍 개원한 ‘서울시 발달장애인 훈련센터’가 만들어진 아픔의 역사에서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엄마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어야했고, 장애인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그리고 엄마들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죄인이고 천형인 것처럼 멸시받아야 했었다.
그래서,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특수학교만 지어선 안된다. 허울뿐일 수 있다. 이들의 생애주기가 존엄할 수 있는 여러 기반이 함께 해야 한다. 훈련센터, 자립 주거시설, 베리어 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이 당연히 적용된 문화체육시설과 교통 및 이동서비스 등 그냥 사람이 편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함께 있어야 한다.
위선을 걷어낼 소중한 기회
발달장애인은 아니지만 정신장애인의 가족으로서 영상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억한 감정이 솟구쳐 엔딩 크래딧이 오르는 마지막 장면까지 울음을 참으며 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학생들보다, 그 옆에서 자식들의 모든 걸 기억해야 하고, 항상 곁에 있어야 하고, 울지도 화내지도 원망하지도 말아야 하면서 늘 격려해야하는 엄마들의 모습, 그리고 가끔 비쳐지는 가족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며 소리없는 오열을 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어느 순간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저 엄마들이 아니라, 강당 뒤쪽에서 서서 악을 쓰는 주민들 사이에서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였구나.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은 자가 나였구나. 내 몸의 소리없는 오열은 내 의식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구나.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어떻게 아름답게 맞설 수 있을까?”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과 함께, “투기적 도시개발의 욕망은 도대체 우리의 욕망을 얼만큼 비틀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괴물의 주술을 어떻게 피해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이 도시는 과연 누구의 도시이고, 누가 공유하는 공간이자 터전이 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관중에게 위선을 걷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최희진, 송지우, 상덕, 홍지수, 홍다솜, 이혜원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8월 30일
*2017년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SSK)의 지원을 받음(NRF-2017S1A3A2066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