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와 공공적 에너지 전환 |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인터뷰

10월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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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와 공공적 에너지 전환

9월 12일, 사회공공 분야의 ‘위장된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 확대를 토론회가 열렸다. 교통, 토지 주택, 에너지 등 사회 공공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위장된 민영화’를 저지하고, 공공성 확대를 위해 다양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함께 모아본 시간이었다. 9월 23일,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9.23 기후정의행진’이 전국에서 진행되었다. 참담한 현실의 기후 재난 속 퇴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함께 모였다. 연대와 공동의 힘 되찾아 정의로운 체제 전환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9월을 뜨겁게 달군 시민사회 두 현장의 이야기. 에너지 공공성 논의와 기후정의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웹진 공유도시 팀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의 구준모 기획실장을 만나보았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경쟁 만능주의 프레임과 철학 속에서 추진되어 온 민영화와 에너지 산업의 재편 문제를 다시 공공성의 문제로 가져와야 합니다. 공공성의 논의에서 ‘소유권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재편할 것인가’, ‘에너지 산업에 속한 여러 가지 하위 경제와 구체적인 목표,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연결지어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구상이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권력관계나 소유권 또는 분배의 문제는 매우 갈등적이기 때문에 계급 투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사회운동, 노동운동의 힘이 커지고, 기득권력의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압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에너지와 관련된 노동 운동과 기후정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두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공공성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Q. 웹진 공유도시 9월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구준모입니다. 기후운동 연대체인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에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9월호 주제는 ‘공공 서비스의 커머닝’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공공 서비스 분야에 이슈들을 함께 다뤄보려고 하는데요, 사실 지난 9월 12일에 ‘민영화 저지 공공성 확보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준모 선생님께서는 에너지 부문의 발제를 맡아주시기도 했었는데요, 당시 토론회의 가장 큰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토론회는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되고 있는 민영화의 문제점들에 대해 이것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맞서는 논리이자 대항 운동인 공공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을 좀 명확히 하기 위한 그런 자리였다고 보는데요. 저는 에너지 분야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만 20년 전에 추진되었던 매각 방식의 민영화, 사유화가 진행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 체제를 도입하거나, 공적 영역을 개방해서 민간 자본이 활동할 수 있도록 산업을 재편한다든지 등의 다양한 방식의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를 ‘우회적인 민영화’나 ‘은밀한 민영화’ 또는 ‘느린 민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민영화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고, 그것의 문제는 무엇이고, 또 대안이라고 했을 때 공공성은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겠느냐 이런 것들이 주로 이야기되었습니다.

Q. 공공성 논의에서 에너지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들 잘 인지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당시 토론회에서 발제해 주셨던 내용을 바탕으로 에너지 분야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현대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가장 중추적인 사회 기반시설이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민들이 살아가는 데도 마찬가지죠. 요즘에 다들 스마트폰을 애용하니까 스마트폰 배터리만 떨어져도 불안해지고, ‘빨리 충전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특히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가 동반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에너지 산업을 재생에너지, 즉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의 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상황에서 에너지 산업을 어떻게 바람직하게 재편할 것인가의 문제와 에너지 산업의 구조에 대한 공공성의 문제 이 두 개가 함께 긴밀하게 엮여있습니다.

에너지도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일반 시민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게 느끼는 것은 전기죠. 그런데 사실 전기는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소비 중에 20%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밖에 되지 습니다. 그래도 전기가 가장 중요한 에너지 산업이자 에너지 전환을 할 때 더 확대될 영역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전력(한전)부터 볼까요. 우리는 전기 공급을 다 한전으로부터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이전까지 한전이 국가 공기업으로서 발전(전력을 생산)하고, 송전하고, 배전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독점적으로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1년도에 김대중 정부하에서 전력 산업 구조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민영화 계획이 추진되고 시행됩니다. 당시에는 발전 부분을 먼저 분할해서 매각하고 나머지 분야도 차츰 시장 개방을 하면서 경쟁을 시키고, 민영화를 하겠다 이런 계획이었는데요. 이런 민영화 정책에 대해서 당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강력히 저항하고 비판했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2002년 2월에 발전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에너지 산업, 특히 전력산업의 민영화가 매우 심각하고 위험하다’는 문제를 장기간 파업으로 국민에게 알렸고, 시민사회도 이 문제에 대해서 동감을 하고 민영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지했습니다. 그 후 정부의 분할 매각 방식의 민영화는 잠정적으로 중단이 됩니다.

다만 민영화의 1단계로 전력 시스템의 여러 영역 중 발전소들을 분할하고 매각하려는 계획 중에 매각은 안 됐지만, 분할까지는 진행이 됐습니다. 그래서 원자력과 수력 발전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생겨났고, 나머지 당시에는 대부분 석탄화력 발전소였는데, 석탄화력 발전을 담당하는 부분은 또 5개의 발전 자회사로, 공기업이지만 한국전력의 자회사 형태로 분할해서 쪼개졌습니다. 원자력 부분은 위험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매각할 계획은 없었고요.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라면 분할된 5개의 석탄화력 부분을 하나씩 매각하려고 했었지만, 입찰자가 없고 또 시장 상황이나, 국민과 노조의 반대가 심해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만두게 됩니다.

이건 우리나라의 매우 특징적인 점입니다. 대부분의 발전된 산업국가 소위 얘기하는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에너지 민영화 정책들이 많이 진행되었거든요. 유럽 같은 경우에도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전력 산업의 민영화, 사유화가 다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모델을 세계은행이나 IMF 같은 신자유주의 국제기구들이 전 세계에 전파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국은 그게 좌절이 됐었던 것이죠.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 우리나라의 전력 시스템 얘기를 하면 여전히 한국전력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상당히 놀라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 앞서 말씀드렸던 ‘은밀한’ 또는 ‘우회적인 민영화’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발전 부문의 민간 발전회사가 소수이긴 했지만 거의 1% 미만의 아주 적은 수준으로 예외적으로 존재했었는데요. 2001년 이후 이제 우리나라의 보수 정부든 아니면 조금 더 개혁적인 정부든 상관없이 다 발전 부분에 민간 기업의 진입과 이들이 진입했을 때 허가권을 더 용이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특혜를 계속 제공하면서 발전 시장을 개방했습니다. 현재는 민자발전이 꾸준히 늘어나서 최근에는 40% 정도까지 민간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외 영역인 판매 시장이라든가 아니면 다른 부분에까지 지금 민간 기업들이 전력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는 시도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편 에너지 전환에서 재생에너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근데 기존 대부분의 환경 담론이나 에너지 전환 담론에서는 화석연료나 핵발전은 악, 재생에너지는 선 이런 구도를 설정합니다. 그러면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무조건 환영할 일이라고 흔히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역시 다른 에너지원과 마찬가지로 누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라는 단순한 이분법 구조도 있지만, 이걸 공공이 할 것이냐 민간이 할 것이냐를 같이 고려한다면 네 가지 매트릭스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핵과 화석 원료 중심의 발전 산업 구조가 문제가 많긴 했지만, 한국의 경우 공적 영역에 있으면서 민영화된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는 다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거나, 어느 정도의 제어막이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현재 재생에너지는 전부 민간 자본에 열어주면서 이들을 통해서 재생에너지 사업이 펼쳐지고 있고, 풍력발전소나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민간 사업자들이 참여하는 이유는 재생에너지가 친환경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즉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서인 거죠. 이제 재생에너지 사업 자체도 돈벌이 수단이 되는 것인데, 수익성이 좋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지금 에너지 전환이나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것은 그런 변덕성이나, 수익성 메커니즘에 따라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환해야 되는 목표, 그리고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계획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되는데요. 이것이 서로 맞지 않으면서 전환이 지체되거나, 또는 전환되는 과정에서 부정의한 방법으로 (저는 이것을 정의로운 전환의 반대말로 ‘약탈적 전환’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즉 약탈적인 방식으로 전환되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어떻게 정의롭게 그리고 공공적으로 할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전력 산업과 에너지 산업에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에너지 분야의 은밀한 민영화

Q. 언급하신 매트릭스에 따르면 공영화와 민영화가 한 축,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가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 화석연료 중심의 공영화 방식을 유지하고 있던 한국에서 민영화 방식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양상과는 달리 이미 90년대부터 모든 전력 산업의 민영화를 진행했던 소위 선진국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방식은 국내 상황과는 다른가요?

다른 부분도 있고 비슷한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비슷한 부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기후위기에 관한 대응 정책이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대부분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중반에 형성이 됐는데요. 그때가 신자유주의가 가장 극심하게 영향을 미칠 때였습니다. 그래서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전환이나 기후 정책들이 사실상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배출권 거래 제도라든지 아니면 전력이나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라든지 이런 것들이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고, 따라서 오히려 기업의 무소불위 권력을 더 강화시켜주면서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거나 때로는 시장 가격에 신호를 줌으로써 전환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들이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전 세계에서 실패했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기후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고, 에너지 전환이 촉박해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럽 사례를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 유럽 사례는 좀 구체적으로 잘 보아야 합니다. 일단 유럽은 대부분 민영화와 시장 자유화의 흐름 속에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시장 경쟁에 맡기면 재생에너지가 가격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늘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한 지원 정책을 만듭니다. 지원 정책은 결국 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인 것이죠. 그래서 시장 경쟁에 맡기면 전환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해서는 시장 경쟁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보호막을 쳐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문제는 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인센티브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서 민간 사업자가 수익이 늘어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설치하겠지만, 수익이 나질 않거나 아니면 혹은 인센티브 비용이 너무 많아서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으면서, 인센티브가 줄어들게 되면 재생에너지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런 구조 속에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쨌든 이런 구조 속에서 독일이나 덴마크 같은 곳들이 비교적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또 많이 각광 받았습니다. 그러나 매우 독특한 환경 속에서 그랬던 것이죠. 독일 같은 경우에는 민영화되고 자유화된 구조 속에서도 지방분권과 자치의 전통이 엄청 강했기 때문에 틈새 전략으로 공동체 에너지의 확대가 가능했습니다. 독일 전역에는 전력 소매 판매 사업자가 천 개 정도 있는데요, 그런 구조 속에서 새로운 전력 사업자를 지자체 공기업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기존의 20년, 15년 동안의 민영화 계약이 위탁이 끝났을 때 다시 재공영화하는 일들이 2010년대부터 상당히 많이 나타났습니다. 재공영화의 사례 또는 지역 공사 방식의 공영화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독일의 맥락인 것이고, 한국에서는 한전을 완전히 해체한 다음에 독일식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죠. 각 나라의 상황마다 다 다릅니다.

유럽에서 에너지 공동체라든지 지역 에너지 공영화 모델이 각광을 받긴 했는데요. 이것도 유럽 전역이 아니라 독일 모델이 유행하면서 영국 같은 데서도 이식하려고 했었고, 하지만 영국은 완전히 다른 구조였기 때문에 실패하고, 오히려 여러 가지 문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게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기는 좀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역사적 맥락, 에너지 산업의 인프라 구조 이런 것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Q. 그렇다면 구조적인 문제를 사례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에너지 요금 현실화’ 문제는 어떨까요? 이 이슈의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기후정의 위기와 체제 전환까지 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좀 더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에너지 요금 현실화’ 또는 ‘에너지 요금 정상화’의 논리를 비판하고 있는데요. 현 정부와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주로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일각이나, 언론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요금의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가격이 있지만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상황이 문제다’라는 사고와 논리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에너지원 대부분을 수입하고, 최근에는 여러 국제 상황으로 에너지원 가격이 많이 뛰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하고 국내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문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큰 맹목이 하나 있습니다. 연료를 누가 어떻게 수입하고, 국내에서 누가 어떻게 가공해서, 최종적으로 사회 서비스 또는 상품으로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입니다. 이에 따라 국내의 산업과 소비자 요금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요. 하지만 그 과정을 마치 없는 것처럼, 자연적인 과정으로 상정함으로써 잘못된 국내 에너지 산업의 구조와 민영화의 문제를 침묵하게 만들고 은폐하고 있습니다.

우선 천연가스를 누가 어떻게 수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천연가스 가격이 매우 폭등했는데요. 한국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주체는 크게 공기업(한국가스공사, 이하 가스공사)과 민자 발전회사(SK. GS, 포스코 등) 입니다. 과거에는 가스공사가 전적으로 LNG(액화천연가스)를 수입했습니다만, 2005년부터 민간기업이 스스로 사용할 천연가스를 ‘직수입’하고 그 양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판매용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연가스의 국제 가격 변동이 매우 심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민자 발전회사들은 변동이 심한 시장에서 가격이 쌀 때는 가스를 수입하지만, 비쌀 때는 가스공사로부터 공급받습니다. 가스공사는 공기업으로서 공급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민자 회사들이 수입해오는 천연가스 가격과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가격을 비교해보면 가스공사가 더 비싸죠. 이걸 가지고 ‘민간 기업이 더 경쟁력 있다’, ‘가스공사는 더 비싸게 사 온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선택적인 계약 기회의 차이 때문에 구조적으로 가격 차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가스공사는 한국 전체의 수급을 책임져야하기 때문에 장기 계약을 맺습니다. 반면 민자 발전회사들은 가격이 쌀 때 단기 물량을 가져오면서, 점점 직수입 비중을 늘려왔습니다. 2020년에는 직수입 비중이 22%까지 증가합니다. 문제는 재작년과 작년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높았을 때 민간 기업들이 직수입하는 물량을 줄이면서 가스공사가 추가적으로 단기 물량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 국제 천연가스의 장기 계약 비용은 약 2배 정도 오른 반면, 단기 물량 가격은 약 9배, 10배 올랐습니다. 결국 추가 수입해야 하는 단기 물량이 많아지면서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평균적인 비용이 늘어난 것이죠. 이게 일반 시민들과 직수입하지 않는 기업들의 가스 요금에 반영되면서 국내 가격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온 100 이라는 충격이 잘못된 구조를 통해 한국에서는 150 정도로 더 크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다음은 전력시장에서의 문제입니다. 한국은 천연가스 발전소들이 전력 도매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전력도매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 발전소에서 한전으로 파는 가격) 방식은 동시간대에 돌아가는 가장 비싼 발전소의 가격으로 모든 발전소의 전력 판매 비용을 동일하게 정산하는 구조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국내 여러 종류의 발전소들은 전력 생산비용이 싼 것부터 가동됩니다. 즉, 전력 수요에 따라 생산 비용이 적게 드는 핵발전소부터, 석탄발전소, 천연가스 발전소가 순서대로 가동됩니다. 그중에서 천연가스 발전소는 세부적으로 직수입이 가능한 민자 발전소와 가스공사로부터 공급받는 발전소들(대부분의 공기업 발전소)이 순서대로 가동됩니다. 하지만 핵, 석탄발전소의 경우 전력 생산비가 매우 낮아서 (또한 모두 공기업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율이 많이 나지 않도록 정산 조정계수(1.0 미만)를 적용합니다. 하지만 천연가스 발전소는 다릅니다. 민자 발전소의 경우 전력 생산비용의 차액을 그대로 가져가게 해줍니다. 즉, 가스공사가 공급하는 가스 요금이 비쌀수록 정상 가격의 차액이 커지는 거죠. 특히 작년 같은 경우 이 차액이 상당히 커지면서 3대 민자 발전회사(SK, GS, 포스코)의 영업이익이 약 2조 3천억 원 정도 발생했습니다. 2020년에는 영업이익이 한 6천억 원 정도였는데, 2년 만에 4배 가까이 뛰면서 엄청난 초과 이윤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차액은 다시 한전의 적자부담으로 반영되면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됩니다. 전력과 에너지 산업의 공공성 문제, 민영화된 구조의 폐해가 어떻게 에너지 요금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드렸는데요. 이처럼 에너지 요금은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 혹은 산업 정책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전환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역시 생각해야 합니다. 요금 문제에 관해 앞서 말씀드린 주류적인 접근은 대부분 “요금 결정을 탈정치화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개입해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경제학적인 자연가격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요금 결정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의 논리입니다. 정치적 개입을 없애고,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소위 기술 관료와 전문가들, 경제학자들이 검증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로 귀결됩니다. 저는 잘못된 정치적 결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탈정치적 대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적 결정, 민주적인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민들에게 필수재로써 에너지 요금은 공공성이 강하잖아요.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부문에서도 전환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라는 매우 정치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는 독립성 강화가 아니라 민주성 강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후위기나 에너지 전환과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통제와 재공유화의 실천

Q. 그럼 현재의 국면에서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압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1990년을 기점으로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적인 틀 내에서 정치적인 조정 또는 높은 목표 설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있었잖아요. 이것이 국제 기후 레짐 혹은 에너지 전환 정책의 세계적인 형성과 각국의 실천과 연결되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결국 ‘경쟁 만능주의’의 프레임과 철학 속에서 추진되어 온 민영화와 에너지 산업의 재편 문제를 다시 공공성의 문제로 가져와야 합니다. 공공성의 논의에서 ‘소유권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재편할 것인가’, ‘에너지 산업에 속한 여러 가지 하위 시스템과 구체적인 목표,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연결지어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구상이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권력관계나 소유권 또는 분배의 문제는 매우 갈등적이기 때문에 (고전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계급 투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사회운동, 노동운동의 힘이 커지고, 기득권력의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압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에너지와 관련된 노동 운동과 기후정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두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선생님께서는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과 올해 진행된 4.14 기후정의파업에 대한 칼럼을 작성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써 하나의 또 기점인 9.23 기후정의행진에 독자분들도 많이 주목하고 있으실 것 같은데요. 곧 다가올 9.23 기후정의행진에서 담아내고픈 메시지와 기대하시는 바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기후 위기가 세계적인 이슈였지만 한국에서 대중적인 기후 운동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중심으로 이슈화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매우 단속적이었고, 일반 시민들에겐 크게 와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과 2019년을 기점으로 기후 운동이 세계적으로 다시 부상하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요. 2018년에는 그레타 툰베리가 등교 거부 시위를 시작했고, 영국에서는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이 직접행동을 개시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린뉴딜과 샌더스 열풍이 함께 부상했었죠. 그런 열풍이 한국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서 2019년에 처음으로 5천명 규모의 대중적인 집회가 성사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대중적인 기후 집회였는데요.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응축되어 있다가, 다시 폭발한 게 작년 9.24 기후정의행진 그리고 올해 4.14 기후정의파업 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기후 위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공감하시거나, 혹은 ‘원래 가끔씩 태풍도 오고, 피해도 발생하는 거 아니야?’하던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북극곰이 위험에 처했어요’, 또는 ‘호주나 캘리포니아에 산불이 났어요’와 같은 먼 외국 얘기가 아니라 이제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피해자도 일반적인 시민, 노동자들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실제로 기후 위기와 연관되어 있음을 모두들 체감하면서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문제는 어떻게 바꿀 것이냐 인데요. 이에 대해서는 답답함이나 막연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각한 상황이고, 빨리 개선해야 하는데, 현실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온 이후로 개선되지는 못하고 더 엉망이고, 더 악화되고 있으니까요.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 체제 자체를 전환해야 하는 거대한 과제와 연결됩니다.

기후 운동도 과거에는 환경 단체의 이슈로만 여겨졌지만, 이제는 노동자들의 문제이고, 농민들의 문제이고, 다양한 시민운동을 하는 시민 자신들의 문제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회운동의 주제와 주체들이 함께 엮여서 거대한 변화를 향해서 이제 한 발 떼었다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물론 거대한 변화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달성되거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지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계기가 되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9.23 기후정의행진도 많은 사람이 모여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우리가 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음을 자각하고, 공감하는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Q. 이 부분은 민주적 전환의 해법으로서 다 같이 나아가야 할 노력과 과제로 볼 수 있겠네요. 그러면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였던 구조적인 해법의 사례에 대해서도 어떤 대안이 있는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에너지 산업에 있어서 ‘공공협력 모델’을 제안해주시고 있는데요, 재공유화의 사례로서 ‘공공협력 모델’의 운영방식은 어떤 구조인지, 그리고 국내나 국외 사례도 있다면 같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민영화의 지배적인 추진 방식으로 ‘민관 협력방식’, 소위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이 있는데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민영화의 지배적인 추진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자사업이 대표적이죠. 민자사업 문제의 핵심은 민간 자본의 리스크를 줄이거나 수익성 보장을 위해서 공적 자본과 공공 영역이 뒷받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민자 발전소 중에는 대기업이 직접 투자하는 민자 발전소도 있지만, 많은 경우 대기업과 발전 공기업이 공동 투자자인 방식입니다. SPC(특수목적 법인)라고 해서 여러 자본과 금융기관들이 같이 투자하는데, 거기에 공기업이 일부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민자 사업이 많이 진행됩니다. 해상풍력은 앞으로 많이 확대되어야 하는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인데요. 태양광이나 육상풍력보다 투자 규모가 훨씬 더 커서(수천억 원~수십조 원 규모) 대부분 민관 협력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업의 주도권이 모두 해외자본이나 맥쿼리 같은 금융 자본에게 주어지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PPP에 대한 대안으로서 ‘공공 협력모델’, ‘퍼블릭-퍼블릭 파트너십(Public-Public Partnership, PUP)’ 혹은 ‘퍼블릭-커먼즈 파트너십(Public-Commons Partnership, PCP)’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에너지보다 상수도 같은 수자원 영역에서 제안되었습니다. 상수도의 경우 기술과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책임 권한이 기초 지자체 단위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물론 서울시와 같이 광역 단위로 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 군 단위입니다. 규모가 작은 지자체의 경우 공무원들의 의지도 약하고, 역량도 부족하다 보니 민간 위탁 혹은 민영화의 사례가 많습니다. 반면 서울시 광역상수도사업본부는 세계 최고의 공공 상수도 역량을 가지고 있는데요. 따라서 민영화 혹은 민간 위탁 방식이 아닌 공공 영역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생에너지는 핵이나 화석연료와 달리 지역적으로 편재돼 있고, 빛과 바람을 이용하기 때문에 지역 내의 지식과 입지가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기존의 발전 공기업, 지자체 또는 오히려 더 낮은 단위로서 주민 협동조합 같은 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입니다.

국가적 규모의 공영화 사례로는 남미에서 국가 공기업이 역할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코스타리카나 우루과이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국가 공기업이 전력 대부분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 중심으로(80%이상) 에너지 전환에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미국 뉴욕주의 에너지 전환 계획도 참고해볼 만한 사례가 될 수 있는데요. 뉴욕주는 상당히 땅도 넓고 자원도 풍부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태양광과 풍력)가 4%밖에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5월에 뉴욕 전력청(New York Power Agency, 뉴욕주 전력 공기업)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공공 재생에너지 건설법(Build Public Renewables Act)’안이 통과됐습니다. 물론 제도와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미국의 진보적인 노동조합, 시민단체,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등이 함께 운동으로 제기하고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영감을 주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있으시면 자유롭게 추가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앞서 ‘약탈적 전환’과 ‘정의로운 전환’을 언급했는데요. 정의로운 전환이나 기후정의 같은 용어가 마냥 좋은 말처럼 생각되면 여기저기 갖다 붙이면서 오용되고, 무색무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은 현실에서 ‘약탈적 전환’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으로서 뚜렷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만약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탈적 전환’이 계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30년 뒤에는 국가 공기업이 운영하는 핵발전소와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재생에너지가 지배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잘못된 구조를 그대로 두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에너지 부분의 공공성과 정의로운 전환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환에 같이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 긴 시간 인터뷰 참여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일자 | 2023.09.20. (수) 오후 3시

장소 |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사무실

인터뷰 | 구준모 기획실장 (구), 웹진 공유도시 팀 문지석 (Q)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3년 10월 12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