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을 통해, 변화하는 커먼즈로서 미인도 투쟁의 의미 | 이채원 공유성북원탁회의 사무국장, 협동조합고개엔마을 사무국장

1월 31, 2025
공유하기

춘천 커먼즈 포럼 3 <국가를 커머닝하기>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을 통해,
변화하는 커먼즈로서 미인도 투쟁의 의미

이채원 (공유성북원탁회의 사무국장, 협동조합고개엔마을 사무국장)


안녕하세요.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을 통해 변화하는 커먼즈로서 미인도 투쟁의 의미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국가를 커머닝하기라는 제목이 조금 어려웠어요. 저한테 너무 거대한 슬로건처럼 느껴져서 오늘 서울 성북구의 작은 공간인 미인도의 얘기를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가 많이 고민이 됐는데,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면 될 것 같고 미인도 투쟁의 한가운데 있는 당사자를 거쳐 할 수 있는 얘기를 좀 하면 될 것 같아서, 자전적인 얘기가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점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채원입니다. 성북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고, 활동가고 기획자고 예술가이고요. 그리고 대학원생입니다. 학부는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희한하게 디지털문화정책학과라는 곳에 가게 됐어요. 음악을 하다 왜 대학원에 가게 됐냐는 질문들을 가끔 해 주시는데, 커먼즈랑 되게 관련이 있어요. 제가 살아온 삶들을 저는 설명을 해 주고 싶었거든요. 가령 엄마나 저희 큰언니, 작은언니나, ‘너 도대체 뭘 하고 다니니?’ 이런 질문들을 되게 많이 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그 설명이 달라지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언어를 획득하고 싶은 마음들이 있었고, 지금 정기황 선생님도 같이 활동하는 친구인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옆에서 커먼즈, 커먼즈 이렇게 얘기를 하셨지만 그게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상태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 돼서야 내 삶을 설명해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도구, 언어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을 갔고, 올해 졸업은 못하겠지만 커먼즈로 논문을 쓰려고 공부 모임을 시작을 했었어요. 정기황 선생님과 같이 성북에서 활동가들 조금 모아서 커먼즈 신간들, 올해 많이 나왔으니까 그걸 가지고 공부를 했는데 어쨌든 활동가들,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이 가서 모임을 하니까 모든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공통적인 질문들은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 목적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조금 확장시키고 싶은 우리가 하는 것이커먼즈적 실천이라고 본다면 그걸 확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요. 그것은 어쨌든 경험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대중적인 관심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래서 되게 좋은 책들 많이 나왔지만, 주변 사람에게 ‘너 커먼즈란 무엇인가 읽어볼래?’라고 권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일종의 커먼즈라고 생각되는 경험이 있어야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국가를 커머닝하기라는 세션 안에서 미인도 투쟁을 얘기할 때 앞에서도 말한 다양한 사례들에 더불어서 미인도라는 것이 아주 작은 틈새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실천 정도? 그리고 제가 이 투쟁의 당사자로서 어떻게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내면서 이 투쟁의 과정을 의미화시킬 수 있는지, 스스로 의미화시키기 위한 과정 정도로 보고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공간, 미인도

미인도라는 공간을 들어보신 분도 있고 안 들어보신 분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공간이냐면, 서울 성북구에 동선동과 돈암동을 가로지르는 미아리고개가 있습니다. 그 고가도로 밑에 있는 공간인데, 도시재생 공간이에요. 보시다시피 원래 이렇게 온 동네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들을 모아서 청소 노동자분들이 분류하시고, 정리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던 공간이었는데 그 고가도로가 꽤 길어서 동선에서 돈암으로 넘어가려면 토끼굴로 건너가야해요. 거기가 너무 어둡고 주변에 여대도 있고 한데 되게 다니기 어려운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그 공간을 이제 바꿔내고 빛 한 점이라도 들어오게끔 바꿔내자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도시재생 프로젝트였고요. 시작은 이제 공유성북원탁회의라는 네트워크부터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유성북원탁회의는 2014년에 만들어진 네트워크고, 우리가 일터로서, 놀이터로서 성북이라는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고 예술하고 살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연결되고 더 호혜적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어서 만들어진 정말 느슨한 네트워크고요. 성북문화재단, 성북구청과 거버넌스를 기본 원리로 해서 구성된 네트워크입니다. 누구 협회, 누구 단체장 이런 식으로 불려지지 않고, 개개인으로 호명되고 닉네임을 부르는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고 있고 열린 네트워크를 위해서 노력했어요. ‘성북구 주민만 참여할 수 있어요?’ 이런 질문 많이 하시는데 그런 거 아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그냥 노는 데예요. 놀고, 동네에 같이 연대할 구석이 있다라고 하면 연대하는 네트워크입니다. 초반에 이게 만들어질 때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이라는 곳에 모여서 계속 6개월 동안 인사만 계속 나눴다고 해요. 사람들 다 자기 얘기 하고 싶어 하잖아요. 한 100명, 200명 모여가지고 그런 과정을 6개월 동안 계속하다가 사람들이 언제까지 이제 인사만 할 거냐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제 개개인의 니즈에 따라서 워킹 그룹으로 나눠져서 활동을 해보자! 라고 해서 이런 워킹 그룹들이 생겼고요. 

미아리고개 예술 마을 만들기, 줄여서 미예마라는 워킹그룹이 이제 미인도라는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기 계신 정기황 건축가님과 주변 예술가들, 당시에 이제 저는 대학생이었고,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논의하고, 주민들 설득하고, 청소행정과 가서 설득하고 이런 과정들을 되게 많이 거쳤어요. 그래서 성북구청의 땅 위에 도로 점용 허가를 받아서 어떤 공간, 한 공간 같지 않은 공간인데, 행정적으로 보면. 공간 천장은 이제 바로 도로, 시멘트가 바로 천장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가보면 되게 그렇게 좋은 공간은 아니에요. 먼지도 엄청 많고 소음도 많고 근데 잘 쓰고 있습니다. 이게 미인도 데크 위에 새겨진 이름들인데 그 공간에 실제로 물리적인 것들을 만드는 거를 이제 주민분들이랑 다 같이 이렇게 막 뚝딱뚝딱하면서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들이 지금도 새겨져 있습니다. 어쨌든 주민들이 실제로 아르코의 공모사업을 성북문화재단과 같이 내고, 예산 따오고 해서 만들었던 공간, 그리고 주민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에서 저는 되게 의미가 큰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이 미예마가 처음에 이제 같이 운영을 하기 시작을 했는데 재단과 함께 미예마가 이제 조금 더 안정적인 토대에서 이거를 운영을 하고자 해서 협동조합 고개엔마음이라는 단체로 조직화를 했고, 재단과 고개엔마을이 같이 공동 운영 협약을 해서 2017년부터 계속해서 운영해 오고 있었습니다. 근데 운영을 하는 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가치는 이런 거였던 것 같아요. 이 공간이 버려지거나 방치되지 않고, 누군가가 계속 실제로 사용하고, 또 누군가가 독점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운영위원회가 사용자를 심의하지 않으면서 그냥 선착순으로 사용 신청을 받는 공간이거든요. 이런 가치들에 기반한 어떤 대관 규정 같은 것도 재단과 협의해서 같이 만들어 냈고요.

생태계를 뒤흔드는 권위주의의 등장

근데 이제 세게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올해 여러 가지, 안에 되게 많은 정치적 맥락들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작년에 오신 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님이라고 있어요. 행정가이시고 30년 동안 이제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시다가 이제 퇴직하고 다시 재단 대표로 오신 분인데, 2024년 5월에 예술검열을 하셨습니다. 동네예술광부전은 미인도 공동 기획전이에요. 성북문화재단이랑 함께 준비하는 전시고, 1년에 한 번씩 하고 2021년부터 매년 하던 공동기획 전시인데 미인도라는 공간이 어쨌든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공간이니까 그 장소성에 기반을 해서 쓰레기를 주제로 하는 그 전시를 계속 진행을 해왔어요. 이게 원래는 6월 8일에 예정이 되어 있었는데 2월부터 계속 재단 담당자와 논의를 해왔고, 작가들 다 세팅했고, 창작 다 들어간 상황에서 재단은 어떻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계약을 할지만 결정해 주시면 되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를 불러가지고 거기 담당부장님이 3년 동안 연속으로 참여했던 작가 두 분은 계획을 못하겠다 라고 하십니다. 

그게 어떤 정치적인 그런 작품을 해서라기보다는 그 대표의 지시라고 말씀하셨고, 대표가 생각하는 본인의 공정성이란 그런 것이었어요. 어떤 한 예술가가 독점해서 이 창작의 기회를 가져가서는 안 된다라는 공정성이에요. 많은 문제가 있죠. 사실은 이게 창작 지원 사업도 아니고, 기획전시고, 두 분의 작가 중에 한 분은 실제로 이것의 기획자이기도 했고 그분이 다 세팅해놓은 전시이고, 이미 창작은 시작됐고. 이게 되게 많은 문제가 있는데요. 여기 블로그에 제가 정리를 해놨는데, 블로그에 많은 부분을 설명해 두었으니 시간제약 상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검열이 있어서 공문으로 물어봤죠. 법적, 행정적 근거가 뭐냐? 없대요. 없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냥 나의 판단이다, 이런 거죠. 이걸로 인해서 갈등을 빚었고, 협동조합 고개엔마을이 5월 21일에 공개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이제 강력하게 비판을 하기 시작하고요. 28일에 바로 토론회 하면서 계속 이걸 공론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걸 하자마자 갑자기 미인도 공동 운영 협약 파기라는 행정적인 보복을 받았습니다. 세게 뒤통수를 맞았어요.

커먼즈라고 자부하던 미인도는 어떤 공간이었나?

그래서 다시, 미인도는 어떤 공간이었냐? 라고 돌아가 보면 저는 어떤 일종의 실험 공간이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여러 가지 실험을 했겠죠. 거버넌스의 실험으로서 공간을 평가하면 캄캄해요. 사실 우리가 반성해야 될 부분이죠. 우리가 이걸 예견하지 않았던 게 아닌데, 예감하고 있었는데 그냥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정치적인 맥락이 2018년부터 쌓여 있던 상태였어요. 그런데 재단 안에 있는 역량있는 중재인의 개인기로 그것을 계속해서 막아내고 있던 상태였고요. 실제로 성북문화재단이랑 성북 거버넌스가 되게 좋은 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부에서 우리끼리 진단을 할 때는 우리가 정말 성북문화재단과 거버넌스를 하고 있는 게 맞냐? 그냥 일부의 거버넌스 전문가와 거버넌스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라는 그런 진단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때까지 해답을 찾지 못한 거겠죠. 실패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협약파기까지 터지고 나서 7월 22일이 협약이 완전히 종료되는 날이었어요. 근데 저희는 점거를 선택하고 그래서 그날 이제 성북문화재단 대표 서노원을 예술인 권리 보장 행위에 신고하면서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이제 행진하고 와서 미인도에서 토론회를 진행을 했어요.

성북구 문화현장 퇴행 저지를 위한 연속 토론회 첫 회에 여기 계신 선생님들도 많이 와서 도와주셨는데, 거기서 이제 공동 운영 협약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었거든요. 이게 재밌었어요. 어떤 분은 이 공동 운영 협약이라는 게 좀 전례 없는 되게 기이한 구조였고, 성북만의 특징이라는 거는 그것의 구성하는 주체가 공익과 사익이 절묘하게 교차하고 있어서 그 차별화된 주체들이 그 안에는 어떤 새로운 규범과 관습으로 해석하는데 행정 역량 부족으로 그걸 못 받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또 반대로 아니, 왜 성북문화재단이랑 협약을 했냐? 땅은 구청 건데. 그런 의문이 있을 수 있죠. 그래서 구청이랑 협약을 했으면 어쨌든 이렇게 손쉽게 협약을 포기하지는 못했을 텐데, 미인도 주체들에 대한 그런 의문. 그렇다 하더라도 왜 그간의 안전장치를 만들지 못하였느냐 이러한 비판이었겠죠.

약간 변명 같은 걸 해보자면, 사실 구청과 손을 잡았으면 우리가 이렇게 손쉽게 협약을 파기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7~8년이라는 운영 기간 동안 그 안에서 만들어낸 힘들을 구청이 함께 만들어 줄 수는 있었을까? 애초에 그게 가능했을까? 라는 좀 의문이 있기는 했어요. 제가 오늘 발표를 위해 그 토론회를 다시 돌아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왜’가 다음까지 이어지는 질문이에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인도를 둘러싼 커머닝의 리듬

저는 그 토론회가 되게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을 했고 되게 감동적이었어요. 선생님들끼리 이렇게 막 미인도 가지고 엄청 이렇고, 저렇고, 막 싸우고 하는 게 이 죽어가고 있던 미인도를 살리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판들이 진짜 타당한 비판이었어요. 되게 반성을 많이 했고, 저는 왜 이렇게 뒤통수를 맞기 전에 우리가 이 미인도에 대해서, 좀 여기 있는 사람들 불러다 이렇게 치열하게 미리 고민하지 못했을까. 이걸 이제야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까 어쩌면 좀 유치한 상상일 수도 있지만 미인도라는 공간이 저희한테 이렇게 신호를 보낸 것 같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제가 미인도 바로 앞에 2분 30초 거리에 살고 있는데, 지나갈 때마다 미인도가 말 걸고 있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나 구해 줘. 나는 죽어가고 있어. 그래서 이렇게 뭉칠 수 있는 빌런을 하나 던져 준 걸까?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토론회였어요. 

저는 미인도라는 공간이 나의 삶을 구성하는 되게 중요하고, 엄청 지탱해 주는 큰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때 그 순간이 어떤 커먼즈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의미를 다시 돌이켜보면 그 순간을 그의 주체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라는 생각이 또 들기도 했어요. 미인도라는 커먼즈가 그간에는 이제 저를 비롯해서 어떤 사람들의 삶을 구성해 내고, 그 삶의 터가 되어주고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그 밑바탕이 되어주는 것으로서의 커먼즈라고 볼 수 있다면, 그 순간 이것은 그 시민력을 증명하고 그 권위주의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커먼즈로 조금 더 조금 전환되는 그런 국면이 아니었을까, 라고 스스로 좀 의미화를 하고 있는 지점이 있어요. 조금 납작하게 얘기하면 그날 토론회가 있기 전에는 느리게 흘러가고 있던 그런 리듬들, 미인도가 되게 소강 상태에 있었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지루했겠죠. 혼자 계속 거기에 있는 게. 그런 리듬들이 좀 다시 살아나고, 빨라지고, 그게 되게 생동감있게 움직이고 있다라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판단할 수 있는 미인도 투쟁의 의미가 언제나 좀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나서야 판단을 할 수 있을 텐데, 그 끝이 정말 물질적으로 미인도를 뺏기는 날인지, 아니면 그 후가 되더라도 더 큰 게 우리에게 남아 있을 수도 있겠죠. 

저는 어쨌든 후자에 희망을 걸고 있어요. 저 스스로를 비롯해서 누군가는 이 투쟁으로 인해서 계속 변화하고 있고 어떤 전환의 국면들을 맞이하고 있다. 왜냐면 점거를 결심했을 때 가장 컸던 이유는, 미인도는 정말 작은. 서울의 지자체의 아주 작은 공간이잖아요. 되게 앞서서 국가, DMZ부터 시작해서 되게 큰 얘기도 해 주셨는데 이게 진짜 내 코앞까지 왔다라는 감각이 들었어요. 여기 이 전선에서 물러나면 우리에게는 더 발 디딜 곳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 꼭 버텨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저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미인도가 사라지고 나서도 나에게 남은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미인도는 아직 투쟁 중이에요. 아주 계속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구청 앞에서 1인 시위하고 있고.

멈추지 않기 위해 지켜내야 하는 것들

근데 오늘 미인도 중심으로만 얘기했지만 이 뒤에 더 엄청난 일들이 많이 벌어졌죠. 아시는 분들 잘 아시겠지만 7월달에 기자회견을 하고 곧바로 감사를 지시하셨고요. 8월달에는 이제 그만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하겠다고 이제 그때부터 내용증명을 보내기 시작하셨고, 9월에는 갑자기 옆 동네에 거버넌스로 한 축제에 가서 갑자기 꼬투리를 잡으면서 주민 대표를 불러서 문책하고 사과문을 제출하라고 하고. 제출하지 않으면 담당 직원이 징계하겠다라고 협박까지 하시는 그런 일들이 계속 벌어져서, 제가 이제 10월달에 1인 시위를 구청 행사, 이제는 구청장의 책임인 거잖아요. 그래서 구청행사로 1인시위를 갔어요. 여성 친구 한 명 데리고 1인시위를 갔더니 행사장에서 이게 뭐냐면서 대표가 직접 저를 밀치고, 또 구청 직원들이랑 저를 둘러싸고 막 밀고 잡아당기고, 피켓을 강제로 뺏어가고 그런 폭력도 있었습니다. 공유성북원탁회의라고 유튜브에 치면 영상이 나오니까 공유해 주시고요. 이런 일들이 정말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주민을 데려다가 협박을 하고, 둘러싸고, 폭력을 스스로 직접 저지르는 그런 기관장이 있다는 게.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에 처해 있는데,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릴 겸해서 여기에 오게 된 것 같고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영화를 봤어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고 마지막 장면인데, 보는 내내 되게 가슴이 답답했어요. 왜냐면 이게 세상이 다 뒤집어진 거잖아요. 다 뒤집어졌는데 콘크리트 아파트의 권위주의만은 진짜 견고하게 살더라고요. 그 안에서 또 답답한 건, 대책 없이 계속 인간답게 살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기서 어떡하자는 거지? 이러면서 계속 보게 됐었는데, 그 답답한 인간이 어쨌든 그 콘크리트를 깨고 나와서 겨우 아파트를 찾았어요. 이게 90도로 기울어져 있던 수평 아파트를 만나는 장면인데 이 아파트가 결국 인간답게 사는 아파트예요.

인간답다라는 게 뭔지 우리 각자가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고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그런 어떤 광각으로 넓어지면서 이미 끝났는데 여기가 아까 수평아파트가 있고 나머지는 결국 폐허예요. 다 절망적인 거죠. 이건 그냥 보면서 제가 생각을 좀 적어놓은 건데, 내가 국가를 진짜 커머닝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진짜 다 절망이고, 여기 앉아 있는 이 정도 소수만이 남아 있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하지는 않아도 우리가 콘크리트만큼 견고하게, 또 콘크리트와는 다르게 유연하게 손을 잡고 있을 수 있으니까. 또 지금까지 키워온 힘으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내면, 내가 그동안 미인도의 양분을 먹고 힘을 키워온 만큼만 버텨내면 적어도 이제 자본이나 국가에게 다 뺏기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미인도라는 커먼즈의 작은 틈새만은 남겨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버티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그 틈을 통해 세상이 뒤집어질 수 있는 날이 좀 오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제가 앞으로 계속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스스로 의미화를 해보는 발제를 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이채원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김세환,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윤형준,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1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