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언어를 찾아서: 커먼즈 네트워크 7년의 여정과 성찰
이 인터뷰는 커먼즈 네트워크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함께한 주요 참여자들과 커먼즈 네트워크의 탄생 배경, 핵심 가치, 전개 과정, 주요 사건들, 지속성,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되짚는 시간을 갖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자, 활동가, 시민이 참여한 이 네트워크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고민과 실천을 이어왔으며, 그 안에서 어떤 관계성과 실험이 축적되었는지를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인터뷰는 2024년 12월 13일 금요일 진행되었으며, 윤여일(경상국립대), 정영신(가톨릭대), 엄문희(강정마을 활동가) 세 명의 초기 멤버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커먼즈 네트워크와 ‘나’
1. 선생님의 성함/소속/커먼즈 네트워크에서 활동한 기간을 알려 주세요.
윤여일: 저는 윤여일이고,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에 있습니다. 커먼즈 네트워크가 결성되던 2017년부터 활동했으며, 당시에는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소속이었습니다.
정영신: 예 저는 가톨릭대 사회학과에서 근무하는 정영신이고요. 저도 커먼즈 네트워크 결성 시기부터 같이 활동을 하고 있죠.
엄문희: 네 저는 엄문희라고 하고요. 저는 강정마을에 살고 있고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 기지와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윤여일 정영신 두 친구와 함께 2017년도에 처음 만들어질 당시부터 같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커먼즈 네트워크란?
2. 커먼즈 네트워크는 어떤 단체이며, 핵심 가치는 무엇인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엄문희: 네, 어떤 단체일까? 2017년도에 처음 만들어질 때 가졌던 느낌으로는 ‘커먼즈’라고 하는 구체적인 언어로 모여 있고, 같이 연구를 하고 고민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있는 단체였어요. 커먼즈라는 감각 자체는 어디엔가 계속 있어왔으나 그걸 커먼즈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커먼즈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만나게 만날 수 있었던 계기가 커먼즈 네트워크였어요. 그렇게 제 감각 속에서는 연구자들이 먼저 운을 띄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활동가들이 하고 있는 일의 어떤 이름 중에 하나를 이렇게 건네주고 나누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제 경험은 사실 그렇죠. 그리고 핵심 가치는 뭘까요? 커먼즈 네트워크 처음 참여하게 된 계기가 저는 지금 같이 논의하고 있는 여기 두 친구들이에요. 그때 제주도에 같이 있었고, 구체적으로는 정영신 선생님이 마을을 찾아와서 저에게 같이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건네주셨어요. 그때 저는 커먼즈라는 말을 바람결에 어디선가 듣긴 했을 텐데 어떤 누군가에 의해서 진지하게 처음 제안을 받았고 그때 ‘커먼즈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처럼 “커먼즈가 무엇입니까?” 그랬어요. 그랬더니 한참 고민하시면서 “모두의 것이라고 해두죠.” 이렇게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사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제 나름대로 굉장히 깊게 이해했던 것 같아요. 되게 감명받는 말이었거든요. 강정에서 사실 계속 꺼내고 있는 말인데 계속 외면받고 있는 말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커먼즈 네트워크를 모두의 것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모임이고, 그리고 그런 연구들을 그런 활동들을 하는 서로들을 이렇게 서로 도와주고 힘을 북돋아주는 동지적 관계들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정영신: 사실 여기 네트워크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각자 활동하는 장이나 현장, 문제 의식은 조금씩 좀 다른 부분이 있어서, 커먼즈 네트워크가 나에게 가지는 의미가 뭐냐 이런 건 각자 좀 다른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기대하는 바나 거기에 부여하는 가치 등등. 저에게 있어서는, 제주에 내려와서 커먼즈 연구를 처음 시작하면서, 상당히 재미있는 어떤 사회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잘하면 이 개념을 가지고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어떤 것들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요. 그때 가졌던 생각은 그런 구상들을 좀 실현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세 가지는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연구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연대의 틀로서 네트워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하나 있었고, 그 다음에 어떤 문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치적이거나 정책적인 어떤 의제들을 토론하고 커먼즈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전환할 어떤 구상들을 만들어 나가는 포럼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지막으로는 연구자들이 더 전문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학회 같은 게 조직되면 좋겠다, 이 세 가지 정도가 있으면 커먼즈라는 말을 가지고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던 거죠. 그런데 구상은 그렇게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걸 만들어냈던 것은 몇몇 사람이 틀을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런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요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말해 사람들이 쉽게 그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모이고, 무언가 같이 해보자라는 결의도 가능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커먼즈 네트워크는 지금은 연구자, 시민, 활동가들이 자기들의 현장에서 느끼는 어떤 고민들과 나아가야 할 어떤 전환의 방향, 이런 것들을 커먼즈라는 말을 매개로 해서 함께 고민하는 어떤 장이에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원리는 저는 커먼즈 자체의 원리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함께 논의해 나가고 연대와 호혜성의 원리에 따라서 이제 공평하게 일을 부담하고, 그렇게 같이 만들어 나가는데 가치를 두고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여일: 커먼즈 네트워크는 여러 맥락의 사람들이 커먼즈를 매개 삼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날 수 있구나 하는 기쁨 속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계획해서 커먼즈 네트워크를 출범시킨 게 아니라, 2017년 가을에 제주에서 모였다가 그 전날 춤출 사람들은 춤추고 술 마실 사람들은 술 마시고, 그러다가 다음 날 아침에 “이 정도로 즐겁다면 무언가를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미래를 도모하려다가 “할 거면 지금 하자”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깃발을 만들어서 단체사진 찍은 게 커먼즈 네트워크의 결성이었거든요. 그때의 사진을 보시면 여러 그룹이 있어요. 당시 장훈교 선생님과 이승원 선생님은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 리서치 그룹 멤버였죠. 거기에 서울대 팀도 제주대 팀도 있고요. 제주의 엄문희, 황용운 선생님 같은 활동가 분들도 계셨어요. 정기황 선생님, 김상철 선생님은 시시한 연구소 멤버이자 경의선 공유지 멤버였고, 민운기 선생님도 배다리 마을에서 오셨습니다. 기본적으로 대학 안팎의 연구 조직들이 기반 역할을 하고, 그 관계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커먼즈를 화두로 모이고 싶었던 사람들이 만나서 시작되었어요. 이후의 전개 과정도 그런 구도였습니다. 커먼즈 네트워크의 주요한 특징은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함께한다는 것이에요. 2017년 제주에서 결성한 다음에 2018년에는 경의선, 2019년에는 배다리와 경의선에서 해마다 포럼을 하며, 현장에서 모여서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논의를 나누고, 그러다가 그런 현장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나중에는 공동체 은행 빈고도 자리를 함께하고 여러 협동조합 이야기도 듣게 되었죠. 커먼즈 네트워크는 여느 학술조직이나 사회단체들과 달리 여러 맥락과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마주침 속에서 사건적으로 발생하고 성장했습니다. 그야말로 네트워크였던 거죠.
정영신: 덧붙이자면 대학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인데, 대학에 있는 연구자들이 대학에서 커먼즈 네트워크 모임을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어떤 현장으로 찾아가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각지에 흩어져 있는 시민들,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항상 노력은 했어요. 물론 항상 잘 됐던 건 아니고, 잘될 때도 있고 좀 안 될 때도 있고. 하여튼 제주에서도 연구자들과 시민 활동가들이 함께 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서울에서도 있었고, 두 지역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가 연결되다 보니 그게 힘이 돼서 사람들이 좀 모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쌓여온 어떤 운동과 연구의 어떤 그런 궤적들이 다 이제 만나면서 이제 좀 뭔가 순간적으로 폭발해서 이제 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커먼즈 네트워크의 탄생 배경, 계기
3. 커먼즈 네트워크에 대해서 답해 주시면서 커먼즈 네트워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계기를 함께 같이 말씀해 주신 것 같은데요. 혹시 그런 구체적인 배경이나 계기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엄문희: 네 처음 만들어진 날은 2017년 10월 28일이었어요. 그 전날 정말 재미있게 놀았어요. 다들 춤추고, 불 꺼놓고 춤추고, 재미있게 놀고 하다가 아침에 (커먼즈 네트워크에 관한) 논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날은 제주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첫 번째로 열린 날이기도 해서, 그날 퀴어 문화 축제 공식 포터였던 저와, 백영경 선생님, 조아희 씨, 강정희, 복희 씨, 그리고 당시 제주 연구소의 대학원생이었던 친구 한 사람까지 5명이서 한 차를 타고 일찍 출발했어요. 그래서 논의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커먼즈 네트워크 같은 걸 만들 거라는 감은 있었어요.
정영신: 끝나고 나서 저희가 (퀴어문화축제에) 가지 않았나요?
엄문희: 맞아요. 합류하셨죠. 그런 기억이 있어요.
윤여일: 거기에 더해서 그날의 맥락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장훈교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준비한 ‘2017 커먼즈 워크숍 – 다른 장소, 공통의 질문’이 사흘 간 이어졌고, 거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가 마지막 날 아침에 커먼즈 네트워크가 결성되었죠. 당시 제주대 팀은 공동체 커먼즈라고 할까요, 마을 단위의 커먼즈 보존과 제주 지역사회 차원의 사회 문제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이나 인천 같은 대도시에서 오신 분들은 퍼블릭 커먼즈라고 할까요, 즉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시민들의 개입도 가능한, 도시공간에서의 권리 문제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해 주셨어요. 사실 주제만 놓고 보면 꽤나 다른 영역의 문제의식들이 마주친 셈인데 커먼즈라는 화두를 통해 “앞으로 이렇게나 할 얘기들이 많겠네”라고 서로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커먼즈 네트워크는 사회운동적 색채가 처음부터 강했어요. 물론 제주와 서울의 사회운동적 맥락은 얼마간 달랐으며, 이후 포럼에 새로운 그룹들이 새로운 문제의식과 함께 합류하며 운동으로부터 제도와 국가 역할에 이르기까지 논의를 전개하는 동안에도 사회운동 지향적 특성은 지속되었던 것 같아요.
정영신: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만든 거죠. 실제로 이후에 그렇게 되기도 했고. 그때 제주 선흘리 동백동산에 서울·인천·경기 쪽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쪽 분들은 강정마을이나 선흘리와 같은 제주의 사례를 아주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고, 또 제주 분들은 배다리나 경의선 공유지 같은 이야기들도 흥미롭게 들었어요. 그런 현장에서 하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어떤 고민들을 어떻게 엮어낼까 고민하면서 연구자들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활동가들은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는 연구 역량을 자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기도 하고 같이 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서로가 굉장히 흥미로워하고, 즐거워하고, 또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모임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다 하는 생각들이 강했죠.
엄문희: 저 같은 경우도 정영신 선생님이 와서 커먼즈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사실 되게 많은 생각들이 쭉 전개됐어요. 강정에서는 계속 구럼비의 이름을 부르고 소환하고 있는데, 사실 구럼비는 지금 없거든요. 그래서 왜 이미 진 싸움에 여전히 모여 있느냐, 왜 아직도 남아 있느냐 그런 질문을 받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빼앗긴 것을 물리적으로 복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가 아직까지 형성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로 사고를 펼치고 싶었죠. 그때 마침 이런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때 그 순간에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직접 커먼즈 네트워크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강정에서 이와 관련해서 많이 공유받고 있기도 하고, 이러한 언어들에 대해서 굉장히 동의하고 굉장히 가까운 상태입니다.
초기 커먼즈 개념의 논의와 진화
4. 커먼즈 네트워크 초기 ‘커먼즈’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어떻게 확장/변화되었나요?
정영신: 일단 제주대 팀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제주대는 가장 먼저 2012년부터 SSK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원래 그 제목이 “자연의 공공적 관리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었어요. “자연의 공공적 관리.” 그게 핵심적인 말이었거든요. 당시 오스트롬의 이론을 가지고 출발을 하긴 했는데, 오스트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연구한 바탕 위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그것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공부를 했고, 저도 2012년 말부터 참여를 했는데 그당시에는 커먼즈란 말도 모르고 있었고 가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조금 알게 됐죠. 어쨌든 제주대 팀의 출발점은 오스트롬이에요. 그런데 (연구단장이었던) 최현 선생님과 저 사이에 굉장히 큰 의견의 차이가 있었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를 했었는데 그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채로 그대로 갔던 거죠. 그래서 제주도 팀은 커먼즈(commons)를 공동 자원이라고 번역을 하면서 특정한 사회적 성격을 가진 자원이라고 보는 입장이고요, 반면에 저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는 커먼즈랑 이제 공동 자원 – 오스트롬이 분류했던 커먼풀 리소스(common-pool resource) 혹은 커먼 굿(common good) 이런 것들 – 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커먼즈를 자원·제도·공동체의 어떤 결합된 체계라고 보다가, 최근에는 조금 생각을 바꿔서 또 다른 개념으로 제안을 하긴 했어요. 관계론적인 접근이랄까. 물론 제주대 팀은 제주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공동 목장이라든가 아니면 공동 우물이라든가 마을 숲이라든가 이런 자연 자원들이 연구의 중심이 되면서 커먼즈를 그런 방식으로 정의한 거죠. 그러니까 어떤 현실을 참조하는가가 개념의 규정이나 연구의 방향에 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이 되고요. 서울대 팀의 경우에는 기존에 진행하던 동아시아 도시 연구라는 맥락 그리고 한국 도시 발전의 어떤 특수성과 보편성의 맥락에서 문제를 받아들였고, 그래서 약탈적인 도시화 속에서 도시민들의 권리라고 하는 차원에서 커먼즈를 이해하려고 했던 부분들이 좀 있고요. 때마침 경의선 공유지 운동이 벌어지고 그 직전 시기에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말들이 좀 유행하고 하면서 도시공간이 누구의 것이냐, 어떤 건물에서부터 마을 골목이라든가 아니면 도시의 공원이나 광장 이런 것들에 대한 어떤 문제 제기가 계속해서 커먼즈 개념과 연결이 되면서 각자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좀 이해를 하고 있게 된 거죠. 그게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사회 운동과 결합된 형태로 연구가 진행돼 왔던 것의 효과라고 할까. 그런 측면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윤여일: 커먼즈에 관한 문제의식이 특정한 방향성을 향해 단선적으로 이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보다는 커먼즈에 대한 다양한 용법들이 점차 늘어나고 또렷해졌다는 식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구자에게 커먼즈의 용법이라면 먼저 커먼즈의 분석적 용법이 있겠죠. 어떤 활동이나 무슨 현상을 커먼즈의 시각에서 분석하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사회운동적 지향이 강하잖아요. 그러니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커먼즈의 규제적 혹은 실천적 용법도 있죠. 이를테면 제주에 존재하는 공동 목장, 어장, 그리고 숲을 커먼즈로서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서는 그 용법이 중요해요. 또 한편으로는 커먼즈의 활성화된 용법, 활성적 용법이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도시 운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기존의 운동조차 커먼즈 운동으로 재인식했을 때 대안적인 서사가 생긴다든가, 에너지가 커진다든가, 다른 운동과의 접점이 확보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작동하는 거죠. 더 생각해본다면 커먼즈의 실험적 용법, 도전적 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빈고는 커먼즈적 실험 사례로서 존재하며 커먼즈의 문제의식을 실증하고 있고요, 알(R)커먼즈는 커먼즈적 문제의식에서 관계와 공간과 활동을 실제로 만들어낸 경우죠. 그리고 최근 수년 사이에는 커먼즈의 구성적 용법에 대한 고민들이 커졌던 것 같아요. 커먼즈가 공동체 수준의 사례로 머무는 게 아니라 제도나 거버넌스 변화를 통해 어떻게 사회 전환에 힘을 가하는 계기일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요.
엄문희: 저는 그냥 제 경험에 미루어서 제가 지난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어떻게 관심이 변화되어 왔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처음 2017년도에 제주도에서 모였을 때 저의 발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어요. 장소는 강정마을로 동일한데요, 하나는 결국 투쟁 끝에 해군 기지가 들어서서 이제는 끝난 싸움과 그 환멸 가득함 속에서 매일매일 낯설면서도 계속 낯익어가는 일상의 공간에 놓여 있는 상태, 그래서 투쟁의 힘도 없고 기록도 없고 명분도 사라지는 것 같은 그런 시기에 그런 곳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제가 어떤 공간을 하나 만들었고, 미술관이면서 여러 가지 공부도 같이 하고 작당도 하고 놀기도 하고 포럼 같은 것도 여는 그런 공간이었어요.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살롱 공간이었는데 그 공간을 만든 지가 채 얼마 되지 않을 때였어요. 그래서 그 공간에 대해서, 이것의 쓰임에 대해서 친구들과 논의해 볼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좋은 생각들을 좀 얻어볼 수 있을까 해서 그 공간에 대한 소개를 했어요. 또 다른 하나는 강정이라는 곳이 유독 한국 사회에서 마을이라고 불리고, 그래서 저 역시도 도시에서 살고 도시적 감각만 가지고 있다가 그런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향약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부녀회가 존재하고 마을에서 어떤 공동의 행사들을 치러내는, 그러면서 인사는 안 나눠도 대강 얼굴들을 다 아는 그런 긴밀한 공동체 속에 놓이면서 굉장히 새로운 감각이 싹 터올랐고 그래서 마을 안에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용천수를 소개했어요. 그런데 그때 그 용천수들은 전부 기능을 상실하여 물이 나오지 않은 용천수였는데요, 용천수가 안 나오면서 마을 전체가 완전히 환경이 완전히 바뀐 거예요. 그러니까 용천수가 나오면 – 수도가 보급되면서 물을 각자 집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미 그런 모습들은 많이 줄어든 상태이긴 하지만 – 용천수 규모에 따라서 아이들이 여름에 놀기도 하고 여전히 손빨래 등을 하거나 동물들을 먹이거나 하는 용도로 쓰여요. 물을 중심으로 마을에서 사람들이 거기서 옹기종기 어떤 식으로든 모이거든요. 특히 통물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수영할 수 있는 정도로 큰 물은 청년회가 와서 천막을 쳐주고, 저녁이면 애들을 찾으러 가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하면서 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하는 무언가, 즉 커먼즈라고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어떤 모습들이 있었죠. 그런데 당시는 그런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을 때였어요. 그래서 그런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 어떻게 마을의 감각을 빼앗고 그래서 어떻게 우리 모두의 것을 고민하는 감각을 무기력하게 하는지, 그러니까 같이 싸울 수 없게 하고 모이지 못하게 하고 해군 기지 투쟁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열악한 조건으로 가게 되는지. 그런 생각들을 계속 하면서 발표를 했었는데, 동시에 저는 학문적 혹은 사고적 깊이가 없었기 때문에 커먼즈를 여전히 공동 자원 혹은 공공성 영역에서 상상하는 그 정도 수준이었는데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그것을 해내려고 하는 것으로 점점 관심이 이행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커뮤니티, 그러니까 공동체라는 단어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 아파하고 실감어린 기억들이 되게 많아요. 그러면서 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인간 개개인의 역량, 능력, 한계, 좌절, 꿈들 이런 것들을 되게 많이 봤고요. 지난 춘천 커먼즈 포럼에서 우리 자신도 사실은 어떤 커머닝된 어떤 결과물일 수 있다는 그런 말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커머너들의 상태 그리고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저의 관심은 지금 거기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커머닝의 좌절, 꿈과 좌절과 관련한 것들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중요한 사건들
5. 커먼즈 네트워크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행사 등)은 무엇이 있었나요?
엄문희: 제 기억엔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역시나 제주에서 만나서 커먼즈 네트워크라고 해서 이렇게 큰 종이에다가 들고 사진 찍었던 그 순간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좌표에 있었던 사람들이 들락날락 할 수 있었으니까요. 또 하나는 우리가 모이면서 커머너들의 태도, 즉 우리가 커머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저지르게 되는 가부장적 습성이라든지 커먼즈의 가치에 위배되는 우리 몸에 익숙한 어떤 태도들이 사실은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에 대해서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사건들이 있었고요. 2018년 경의선 공유지에서 있었던 커먼즈 포럼의 마지막 날 그런 게 문제 제기가 됐어요. 저희가 커먼즈 포럼을 하는데 있어서 함께 활동했던 활동가들 중에서 젊은 여성분들이 저희들을 스태프처럼 돕는 모습들이 있었고, 참가했던 여성들이 그것에 대해서 좀 항의했던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마지막에 되게 안 좋게 끝났고, 저 같은 경우는 벌떡 일어나서 지금 가방 들고 나와버리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고 막 나가고는 전화로 막 싸우기도 했었는데, 저는 그 지점이 되게 기억에 남고 그 이후 다음 해까지 굉장히 고민이 많았었는데 그것을 계속 이야기하고 지금은 여성에 대한 것, 그리고 사회적 면역에 대한 것처럼 커머닝 과정에서의 우리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되게 고무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 한 개인의 특정한 소양의 부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고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실수였는데 그것들에 대해서 우리도 성찰할 수 있었고, 그 성찰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하려고 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점점 안전한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것. 저는 그것에 굉장한 기쁨을 느낍니다.
윤여일: 저는 우선 단일 사건이라고 한다면 역시 경의선 공유지 운동이 커먼즈 네트워크에 미친 영향이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실제 커먼즈 네트워크의 첫 번째 포럼을 경의선에서 했을 뿐만 아니라, 경의선은 커먼즈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이 의식적으로 다양한 커먼즈 실험들을 한 장소였어요. 이후 나온 커먼즈 관련 문헌들도 경의선 운동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죠. 또 1년에 한 번씩 하는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이 있습니다. 보통 2박 3일 정도 하는 개방형 포럼이죠. 활동가, 연구자, 여러 현장의 분들, 중간지원조직 분들 등 연인원 100명 이상 모이는 큰 회합으로 성장했죠. 커먼즈 네트워크의 대표적인 활동입니다. 그 밖에도 커먼즈 네트워크 멤버들이 대학 기관이나 서울시 같은 지자체 등과 함께 벌이는 커먼즈 맥락의 활동, 혹은 지역의 여러 현장에서 하는 연계 행사들도 크게 봤을 때는 커먼즈 네트워크의 활동들일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들 중 ‘딥 다이브 워크숍’을 강조하고 싶어요. 2020년에 커먼즈와 지역 전환이라는 주제로 두 차례 했어요. 한번은 장훈교 선생님, 한번은 이승원 선생님께서 준비하셨죠. 몇 년 동안 다양한 갈래의 문제의식으로 여러 사람들이 커먼즈를 말하다 보니 실체가 모호해지기도 했고 논점들이 쌓이기도 해서 개방형이 아니라 우리 그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며칠 동안 깊이 있게 고민해 보자는 취지였죠. 거기서 지역에서 커먼즈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국가를 자원으로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펼쳐졌죠. 또 2022년에는 이승원 선생님께서 주로 준비하셨던 ‘커먼즈로의 초대’라는 자리가 마련되었어요. 이 자리에는 오히려 외부에서 여러 분들을 모셔 난상토론을 벌이며 커먼즈의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점검했습니다. 이번 춘천에서 있었던 ‘커먼즈의 균열들’도 그 연장선상의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커먼즈 네트워크는 들숨과 날숨처럼 바깥에 있던 것들이 들어오고 다시 뻗어나가며 활동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논점들이 뒤섞여 있고 논의가 어수선하기도 합니다. 이는 문제의식이 풍부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텐데, 여기서 생산성을 끌어내려는 시도였겠죠.
정영신: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물론 네트워크가 현재까지 오게 된 계기를 따지면 엄문희 선생님 말씀하셨던 첫 모임도 굉장히 중요했고 윤 박사가 이야기했던 어떤 기획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장이나 사고를 진전시키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도 굉장히 중요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중요했던 것은 계속해서 어떤 현장과, 현장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 제기들과, 사람들이 만나는 그 순간들이 다 어떻게 생각하 굉장히 흥미롭고 사람들에게 어떤 자극을 주는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문영 선생님이 강정 이야기 하고, 그다음에 고재량 선생님이 선흘리 이야기 하고, 그다음에 또 김상철 선생이나 또 다른 분들이 경의선 공유지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내고, 민운기 선생님이 배다리로 초대해서 배다리에 가서 먹고 자고 하면서 이제 배다리 마을을 실제로 둘러보고, 이런 이런 과정들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살아 있는 감각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사람들한테 주는 효과가 있었고 서로가 계속해서 연대할 필요성들을 좀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물론 커먼즈 네트워크 행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라든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있기는 한데, 엄문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남성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중심이 됐던 부분도 있고 그 다음에 아무래도 대학들이 주로 자금을 제공하고 하다 보니까 서울대와 제주대 연구자들이 좀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활동가들이 조금 주변화되는 경향도 있죠. 그러면서 초기에 활동했던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 중에서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속해서 나가거나 좀 주변화 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런 한편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계속 있으면서 어떤 순환이 일어나는 과정들이 문제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감각을 깨우고 연결시키는 그런 활동들이 계속 이제 이어졌다는 것, 콕 집어서 어떤 사건이라기보다는 이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고 활동할 것인가에 관해서 감각을 가지고 사람들이 함께 뭔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그 점이 그 점이 어떻게 보면 기억에 남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커먼즈 네트워크의 유지 비결
6. 커먼즈 네트워크가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엄문희: 제가 느끼기에는 기본적으로 우애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너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그러니까 활동가들끼리만 모여 있다면 처음에는 비록 너무도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가족이 가장 치명적인 존재가 되기도 하듯이 너무 힘들 때도 있는데요. 여기는 굉장히 활동하는 장소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고 그러니까 좌표가 다른 거죠. 그리고 연구자 혹은 활동가 그 밖의 어떤 이름으로 묶을 수 없는 많은 다양한 친구들이 있고, 이름 자체가 사실 네트워크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다들 다른 모두와 약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굉장히 편안하고 우애가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이렇게 좌표의 다양함 때문에 서로의 것들을 신기해하고 그렇게 매번 봐도 얼핏 아는 것 같지만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항상 듣고 오고요.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에 저는 제주에 있다 보니 매번 참여하지는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럼에 갔다 오면 어떤 충전도 느끼고 사실 그런 경험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전의 질문에서 제가 조금 덧붙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저는 되게 혜택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주대와 서울대 팀이 오랫동안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채로 그것을 원활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굉장히 많이 제공하셨고, 노력들도 굉장히 많이 하셨으니까요. 저는 상대적으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굉장히 수혜를 많이 받아서, 그 점에 대해서 되게 감사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운동에 참조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고맙다고 느껴요.
윤여일: 커먼즈 네트워크는 우선 활동의 이름이잖아요. 이 활동은 할 수 있으면 하고 말 거면 말지라는 식이 애초 불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시작될 때부터 구체적인 싸움의 현장들에 기반하고 있었거든요. 경의선 공유지, 강정마을, 배다리마을, 그리고 이윽고 솔방울 커먼즈의 송현동. 그 현장에서의 운동들은 계속 지속되고 있으며, 커먼즈의 문제의식이 그들과 만났기 때문에 운동을 위해서라도 커먼즈의 문제의식은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야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느 학술 회합들과는 많이 다르죠. 이렇게 커먼즈 네트워크를 이어가게끔 하는 정황이 있었음을 먼저 짚어두고 싶어요. 그리고 포럼 등에서 사람들이 모이는데 연구자들에게는 활동가와 현장을 만날 기회였고(사실 이 연구자분들도 되게 현장 지향적인 분들이신데요), 활동가분들도 힘이 생기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그게 일종의 매력이었겠죠. 그리고 포럼을 하면서 옮겨다녔던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정영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대학을 개최 장소로 삼은 적이 거의 없죠. 매번마다 지역을 달리했는데 제주도 가고 춘천도 가고 강릉도 가고. 그것 자체도 좋았지만 어딘가에 가면 그곳에 있는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어요. 서울 혁신파크에 가보고 나서야 거기에 이런 분들이 계시고 이런 고민들이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죠. 또한 오래 가는 이유라고 한다면 학문 영역이라든가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봐도 굉장히 여러 영역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층이 두텁고 다리가 많죠. 갈 데도 많고 튼실한 거죠. 그리고 인적 구성으로 본다면 제일 연장자이신 분이라면 민운기 선생님, 박배균 선생님이실 것 같고, 커먼센스 팀이나 지금 인터뷰를 해주시는 김세환 님이 젊은 세대이시잖아요. 이처럼 민주화운동 세대부터 2020년대에 고민 중인 청년세대가 공존한다는 것도 다양한 논점들이 만들어지는 이유겠요. 그리고 학술 운동으로 봤을 때도 우리 안에 이론가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하는 활동을 스스로 연구로서 옮겨내는 연구자들이 있다는 것도 큰 힘인 것 같아요. 여기 계신 정영신 선생님도 그렇고, 박배균, 민운기, 이승원, 김윤철, 장훈교, 정기황, 김상철, 한디디, 심한별, 백일순, 김지혜, 최희진, 안새롬, 홍지은, 현우식, 이태영, 권범철, 정정훈, 윤영광, 김자경, 박서현 선생님 등이 논문이나 책을 써내셨죠. 그러니까 이론을 외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문제들을 스스로 설명하고, 나아가 이론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죠. 근데 그런 분들의 연구가 또한 담론을 생산해내는 민운기, 김상철, 정기황, 김성은, 이원재, 지음, 살구, 신효근, 엄문희, 황용운 선생님처럼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활동하는 분들과 만나서 논의로 펼쳐질 수 있는 구조야말로 우리의 특별한 자산이라고 봐요. 당연히 현장에서도 중요한 입론이 등장해 그것들이 마주치죠. 끝으로 지속성과 관련해서는 역시 기관의 역할이 크겠죠. 서울대와 제주대 팀에 대해선 이미 말씀드렸고, 대학 기관으로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단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대학 바깥에서는 시시한 연구소, 알커먼즈, 연구자의 집, 솔방울 커먼즈 같은 단체와 모임들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죠. 그 바깥에도 스페이스빔, 빈고 그리고 최근에는 커먼즈필드 춘천처럼 참여와 지원의 층이 있는데, 이렇게 복층적인 구성도 우리가 내구성을 갖는 이유인 것 같아요.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커먼즈 네트워크
7. 커먼즈 네트워크가 현재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활동이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윤여일: 이번에 ‘커먼즈의 균열들’ 세션을 보면서 커먼즈 네트워크가 스스로를 위한 책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안에 다양한 논자들이 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논쟁적으로 말을 걸기 위한 글들을 한번 제대로 모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커먼즈 네트워크에 대한 지금의 이 기록 자체를 책의 앞 부분에 담고 이어서 20명 정도 되는 필자들이 짧지만 명료하게 자신의 입론들을 펼치는 책을 이참에 내면 어떨까요, 우리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 같고 커먼즈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 및 연구자들을 위해서도 개론서를 넘어선 책으로서 유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정영신: 제가 지금 당장 기획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조금 전에 윤 박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정리하고, 기록하고, 논의들을 모으는 이런 작업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저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책을 좀 써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못 쓰고 있는 부분도 있고요. 그 다음에는 최근에 커먼즈 네트워크를 보면 야전의 느낌이 좀 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커먼즈 네트워크를 준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야전 속에 있었던 시기가 있었던 반면 – 가령 경의선 공유지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죠 – 지금은 조금 달라진 국면을 맞은 것 같기는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새로운 현장이나 새로운 의제들, 그런 것들을 만들고 단순히 모으는 게 아니라 공동의 힘을 통해서 어떤 부분을 같이 돌파해 나간다는 어떤 감각, 그런 것들을 같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실제로 그래서 뭘 할 거냐 하면, 제주나 제주대에서도 각자 했던 노력들이 있고 서울이나 다른 여러 지역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번 춘천 모임은 약간 그런 것들을 조금 모아보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가령 체제 전환이라든가 아니면 기후위기라든가 아니면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어떤 탄핵과 정치에 대한 어떤 고민이랄까 이런 점들, 그러니까 좀 격렬한 어떤 현장이나 야전과 들판, 이런 것들 속에서 커먼즈 논의들을 좀 계속해 나가는 기획들이 앞으로 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이번처럼 아까 윤 박사가 제안했던 것처럼 기존의 논의들이나 그런 것들을 축적하고 모으고 거기서 또 새로운 것들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나가는 이런 것도 필요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것을 현장의 투쟁과 연결 지으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고민들과 연결하고, 새로운 언어를 또 만들고 그걸 커먼즈 논의와 연결시키고. 이런 과정들을 힘 있게 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윤여일: 엄문희 선생님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만 보태자면, 방금 말씀하신 것 진짜 공감해요. 그러니까 오늘 탄핵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인터뷰 당시가 탄핵소추 통과 하루 전이었음) 이런 시기에 왜 우리가 논의를 안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 시기가 우리가 시도했던 지식들이 시험되는 상황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식의 힘쓸 곳을 찾지 못하면 우리도 고여버리고 이 활력도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말씀하신 거 진짜 공감합니다.
엄문희: 제가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었는데 윤여일 쌤이 먼저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셨어요. 저는 이렇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분수를 보면 분모와 분자가 있는데, 제가 분자는 알겠는데 분모를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우리의 다양함과 각각의 면면들은 내가 다 알고 느끼고 재미있어하고 호기심이 있는데, 우리 모두를 모으게 한 것은 무엇이었고 우리의 우리를 공동이라고 말할 수 있고 공통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들이 도대체 어떤 성격인지를 갑자기 모르겠는 거예요. 그게 이제 이번 계엄령의 밤에 그걸 좀 많이 느꼈는데요. 우리가 정말로 모두의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되는, 모두의 것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거에 척결한다는 말이 있었을 때 우리 내부 커먼즈 네트워크 안에서도 그가 지목하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수 있고, 영역을 넓히면 넓힐수록 사실은 거의 다 포함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항상 국가나 혹은 일거에 타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권력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이 갑자기 현실의 어마어마한 상황으로 닥쳤을 때 논의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걸 이번에 좀 느꼈어요. 물론 너무 신중해서 그럴 수도 있고, 사람마다 속도는 다를 수가 있긴 한데 그래도 다음 밤이 지나고 그다음 밤이 지나서 이제 오늘이 왔는데 그런 점에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사실은 있어요. 그래서 저는 분명히 연구자들과 대학에 속해 있는 전임 교원들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 이 모임이 어떤 학문의, 어떤 논조를 세우기 위해서 있기보다는 흔들리고 질문되고 있는 어떤 것, 다시 말해 있었지만 빼앗겼다가 다시 드러나고 있는 어떤 이름들을 계속 사회에서 발견해내고 실험하고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운동하고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하고, 커먼즈 네트워크에 있는 연구자들에게 당신들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혹은 당신들도 운동가들이라고 말을 한 적이 되게 많은데 그것은 커먼즈 운동을 하려는 것이라고 좀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거대한 도전이 왔을 때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모두를 서로가 믿고, 앞에서 우애라고 했던 것처럼 믿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이번에는 우리는 누구인가 새롭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8. 커먼즈 네트워크와 관련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윤여일: 매력적인 분들이 너무 많이 계세요. 어디서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커먼즈 네트워크의 회합에 가면 인간 세상에서 거르고 걸러서 오신 분들이다, 그런 느낌을 받아요. 아마 엄문희 선생님도 강정마을에서 다른 지킴이들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으실 수 있겠죠. 커먼즈 네트워크도 여러 곡절도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데서 만나기 어려운 진짜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엄문희: 저는 커먼즈 네트워크가 제가 속한 어떤 단체나 운동의 지향을 함께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생각도 있지만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저는 처음엔 그러지 않았거든요. 굉장히 사람을 만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낯설어 하는 시간이 굉장히 긴데 그 시간이 지났는지 이번에 춘천 커먼즈 포럼에서 사람들이 너무 다 새롭게 보였어요. 그래서 예전에 못 느꼈던 새로운 감정을 느꼈거든요. 내가 이 사람들 진짜 좋아하는구나, 사랑하는구나 하고요. 아깝다, 안타깝다 이런 식으로 건강과 안부와 이런 것들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궁금해지고 마음속으로 되게 따뜻한 것이 저에게 있다는 걸 느꼈어요. 뜨거운 게 아니라. 그래서 저는 이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잘 활동하고 연구했으면 좋겠고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그래서 건강하게 함께 잘 살자, 그런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그럴 때가 됐죠. 꽤 됐습니다. 만난 지가.
정영신: 저는 아까 윤여일 박사도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이게 연구자한테는 하나의 연구 과정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어떤 사회운동 과정이기도 하고 운동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이 자체가 또 하나의 운동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운동을 해 나간다는 것은 운동에서 내세우는 어떤 목표나 가치, 신념 이런 것들이 있으면 이제 그것을 자기 안에서 스스로 실현하는 것, 그런 신념과 가치의 정당성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커먼즈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어떤 매력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커먼즈 네트워크라고 하는 이 조직 또는 사람들의 모임 속에서 스스로 구현해 가는 것들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요. 그래서 그런 점에서 보면 여기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잘 아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도 있고, 그냥 텔레그램 방에 들어와서 계속 눈팅만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주 활동 무대는 다른 쪽에 계시는 분들도 계시고, 각자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지만 또 나누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몫인 것 같고 함께 만들어가는 역할들도 같이 조금씩 노력해서 해야 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어떤 인간으로 만나서 서로에 대한 어떤 배려와 자극을 계속 줄 수 있는 어떤 모임을 계속 유지해 나간다는 게 굉장히 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조금 소극적으로 여기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이 언제나 한 발 내딛어서 뭔가 같이 할 수 있는 어떤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기회를 잘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 여기에 참여하신 분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어떤 바람이나 욕구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이 장에서 좀 실현해 나가는 그런 적극성이랄까 손을 내미는 말을 하는 것도 이 안에서 계속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윤여일: 하나만 덧붙이자면 사실 여기 있는 저희 3명은 커먼즈 네트워크에서 안쪽에 있는 사람들에 가까워요. 첫 번째 회합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함께하는 사람들. 그런 분들이 여러 분 계시죠. 그 분들이 건강하니까 오래 가고 개방적이니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커먼즈 네트워크와 관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텔레그램방에도 인원이 늘었는데, 새롭게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는 포럼의 발표자 선정, 진행 방식, 토의 양상 그리고 텔레그램방에서의 의사 교환도 어떨 때는 폐쇄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수년 동안 함께해온 분들은 공통 기억이 있기 때문에 논의를 할 때 전제하고 있는 것들도 은연 중에 많을 텐데, 그 대목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새로운 참가자 분들에게는 문턱처럼 느껴질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대목이 무엇일지 제가 알아차리리가 어려워요. 그래서 그걸 돌파하려면 청중으로만 오신 게 아니라 다들 사연이 있고 활동이 있고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으 실 테니 그런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필요한데, 1년에 한 번 하는 포럼에서는 다 소화하기 어렵죠. 2022년에 커먼즈 네트워크 작은 포럼이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달에 한 번 이야기를 듣는 시간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떤 사람이 왔다는 건 어떤 사건이나 현장, 이야기가 왔다는 뜻이니까요.
정영신: 그다음에 같이 한번 얘기해 보지 뭐.
엄문희: 윤여일 선생님이 진행도 하고 애쓰시다가 갑자기 저도 발표 한 번 한 적 있고 그랬었는데 디디 선생님이랑 등등.
윤여일: 저는 다섯 번만 맡아서 진행하겠다고 했거든요. 그 다음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끝났네요.
엄문희: 끝났어. 그러네.
윤여일: 김세환 선생님이 질문해주신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기억해내는 것도 있고 새로운 생각도 나고 저희 간에 대화도 가능했어요. 기록이 만만치 않으실 텐데,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 김세환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송민석, 심여은, 윤수진, 한승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5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