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빈공간, 동대문 DRP를 가다

비가 올 것만 같은 어스름한 평일 오후 5시의 동대문. 동대문에는 여러 표준시가 있다. 도매시장인 신발상가의 영업시간은 새벽부터 다음날 낮까지다.  그래서인지 아직 상가에는 인기척조차 없다. 복도와 계단에는 잠시 후 분주하게 돌아갈 거대한 랠리를 기다리는 선수들 같은, 짐이 한가득 쌓여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몇 층을 더 올라가면, 마침내 ‘낙원’에 도착한다.      

    

동대문옥상낙원(Dongdaemoon Rooftop Paradise, DRP)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지상과는 또 다른 시간대가 존재하는 듯 하다. 동대문 도심과 창신동 일대의 풍경을 배경으로 옥상 곳곳에는 화초와 채소, 그리고 양봉장까지 있다. 빽빽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여백’을 자처하는 듯했다. 어떻게 동대문이라는 치열한 공간 사이를 비집고 이런 곳이 생겼을까? 

그곳에서 만난 박찬국 작가는 말한다. “동대문은 정말 가게 앞의 자기땅이라는 것을 구획하고 지키는 게 치열한 곳이다. 월세가 워낙 비싸긴 하지만, 가게 앞에서 얼쩡거리거나 애매한 장소에서 왔다갔다 하거나, 의자만 놓고 앉아도 앉지말라고 하고. 굉장히 상인들이 예민하다. 경쟁 속에서 자신의 상업 공간을 최적화, 효율화하려고 한다. 반면에 이곳 옥상 같은 곳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아니고, 상인들은 놀 시간도 없고 하니까 그저 쓰레기를 쌓아두는 곳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마침 쓸만한 옥상을 찾던 우리는 이곳이 흥미로웠고, 한동안 20여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치우고 들어오게 됐다.”

   

호기심이 삶을 구한다는 것

그는 호기심이 삶을 구한다고 말한다. “인간 자체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게 아니니, 아트는 무목적이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문명을 발생시킨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인간이 그렇게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체가 삶의 목표가 맞나. 오히려 뭔가에 대해서 알려고 하고 관심을 가지는 게 삶에서 필수적인 조건이 아닐까. 물리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욕구야 우리에게 당연히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상업적인 활동에 집중하는데, 그것은 흥미롭거나 세계의 인식에 유리하거나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지 않나. 아트는 호기심을 통해 삶 자체의 다양한 관점의 변화, 관계의 변화로 흥미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DRP의 양봉장에서 수집한 꿀로 만든 꿀주

DRP에서 이뤄진 다양한 실천들은 ‘노는’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아티스트들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말리는 애가 없다. 벌 키워서 양봉을 할까? 그러면 그거에 대해서 누가 말리는 사람이 없다. 진짜 하자, 이렇게 되니까 거기서 사건이 새끼를 친다.” 

예컨대 ‘홀리데이 팩토리’ 프로젝트는 옥상에서 층간소음 없이 노는 법을 고민하던 중, 춤을 개발하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새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의 춤을 구현하기 위해 커다란 모자를 만들려고 했고, 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다보니 봉제하는 분들과 친분이 생겼다고. 일종의 소사장제처럼 운영되는 생산과정의 특성상 봉제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협력사와 관계를 맺기 위해 마감기한에 매인 일상을 보낸다. ‘홀리데이 팩토리’는 오더메이드에 익숙해져있는 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신의 ‘작업’을 하도록 한 프로젝트였다. “봉제사들은 놀랍게도 이 작은 사건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게 뭘까?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이런 것을 왜 만들까?” 봉제사와 옷감의 관계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변화한 것이다.

그에게 호기심과 재미에의 열망은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세계, ‘잠겨있는 어마어마한 세계’를 인식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탐구와 공유의 궤적 자체가 그에게는 ‘아트’다.

흥미로운 빈 공간

여러 지방도시들에 빈집이나 버려진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쇠퇴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지자체에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부담과 흥미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그는 말한다. 늘어가는 ‘빈 공간’은 부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때 이러한 빈 공간에 개입하는 물질은 “부를 이루는 물질이 아니라 삶의 흥미로운 작동을 하는 물질”이다. 한 예로, 2011년  ‘nonartbutart(논아트밭아트)’ 프로젝트 는 시유지이지만 토호가 몇 대째 점유하고 있는 남양주의 한 논에서 오리 농법을 활용해 벼농사를 지으며 벌인 놀이였다. 그는 ‘진지한’ 노동의 장소인 논을 일명 ‘꼬르뷔제 오붕지’로 탈바꿈시켰다. 르꼬르뷔제의 사보아 주택을 모방한 오리집을 지은 것이다. 오리들은 이 구조물에 올라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본의아닌 퍼포먼스를 수행했고, 이 흥미로운 광경에 동네사람들과 아이들은 하루종일 논에서 오리만 보고 있었다고. 오리가 생산성 향상의 도구에서, 함께 노는 친구의 관계로 변화한 것이다.

“문제는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 공간들을 “움켜쥐고” 산다. 그는 이러한 소유를 ‘헛소유’라고 부른다. 얼마든지 재밌게 쓸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사유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헛소유가 아닌 빈소유를 제안한다. 

 

그것은 공간을 소유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쓰면서 흥미를 공유하고, 관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발전하지 말자’가 아니라, 발전한다는 게 뭘까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유하자는 것”이 그의 자세다. “DRP 역시도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빈 공간’에 가까운데, 왜 여기 오면 흥미로울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DRP는 현재 DRP+로 활동을 준비 중이다. 그들의 새로운 놀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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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방울 커먼즈 pinecone commons

송현(松峴)은 소나무가 있는 고개, 소나무 언덕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다. 여느 지방 도시에 송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이 있을 테지만,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곳은 서울 종로에 있는 송현동뿐이다. 이 돌담을 함께 걸으며 새로운 상상을 하는 모임이 있다. 송현동을 공동의 것(commons) 내지 공유지로 상상하고 예술과 연구하는 모임인 ‘솔방울커먼즈’이다.

2019년 여름 우연한 대화를 통해 조직한 솔방울커먼즈는 페이스북에의 등장을 시작으로, 활동가, 예술가,연구자 등이 모여 문화 예술 활동과 사회적인 참여를 통해 대안적 도시 공간을 생성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솔방울-하다

동사(2019년 11월 17일 신조어)
1. 공동이 만들어낸 것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다
2. 공동이 만들어낸 것을 특정한
이들이 독점하지 않도록 부대끼다
3. 공동이 만들어낸 것을 공유하기
위해 치대다
4. 공동이 위아래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다

솔방울커먼즈는 송현동 전체를 조망하려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닌, 돌담 주위를 배회하며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전술을 수행한다. 송현동 돌담의 틈새를 찾아보고, 투기적 도시를 꼬집는 부동산 광고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공유 도시와 커먼즈 관련 세미나 및 포럼에 참여하는 등 부단히 움직인다.

솔방울러는 걷는다 영상 바로가기

첫 만남부터 현재까지, 끊임없는 대화와 성찰을 통한 창발적 과정, 그 자체가 곧 솔방울커먼즈이다. 솔방울커먼즈로 모인 사람들은 커먼즈를 공부하면서 그 용어가 주는 낯섦과 어려움을 동시에 겪으며 각자 생각하는 공동의 것과 그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솔방울하다’라는 새로운 언어가 등장한다. ‘솔방울하는’ 행동은 송현동을 공동이 만들어낸 것으로 간주해 공동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소수가 독점하지 않도록 부대끼고, 공유하기 위해 치대고, 위계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송현동은 벌어진다”

| Open, Happen, Rupture, Crack… or Arise

솔방울커먼즈가 그동안 고민해 온 질문들을 펼쳐 보이는 전시의 장이었다. 송현동을 “리-얼 자치동”, 즉 진정한 자치동으로 상정하고 송현주민을 모아 주민센터를 개관했다. 기존의 공론장에선 시민으로 초청되어야 그 지위를 부여 받았지만, 전시장에 방문한 모두가 ‘송현 주민’이 되어 도시공간의미래를그려보았다. 이번호를 통해 솔방울커먼즈와 함께 송현동을 걸으며 이야기 나눠보자.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솔방울커먼즈 인터뷰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