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호

[2021년 7·8월호] 투기적 도시화와 그 대안들

[2021년 7·8월호] 투기적 도시화와 그 대안들

Commons & Comment | 발행인의 한마디

공유 & Who | 우리가 만난 것도 커뮤니티다!

공유 & How | 투기적 도시화와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

Site & Sight |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

Hot & New |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리뷰

COMMONS & COMMENT

발행인의 한마디

아파트 단지라는 갇히고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투기적 이해에 기초해 도시적 욕망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에 살기를 거부하고,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조우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마을과 도시라는 공유재를 같이 만들고 그 책임과 결과를 나누자는 … 실험들은 ‘강남화’라는 헤게모니적 도시화에 대한 저항 담론과 대안적 도시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경험과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실험들은 도시를 사유재산의 집합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들고 같이 이용하는 공유재로 인식할 수 있는 경험적 기반을 제공해 주어, 궁극적으로는 자산의 사적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시각에 기댄 투기적 도시화에 저항할 수 있는 이념적 기초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배균  2017. ‘자본주의 헤게모니와 대안적 도시 이데올로기’, 서울연구원 편, “희망의 도시”, 한울아카데미. 294

공유 & WHO

우리가 만난 것도 커뮤니티다! _ 콩&요정&도넛 그리고 기선과의 대화

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하는 것에 대한 고민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는 말을요. 가족, 애인, 친구 모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만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로 할 일을 하느라 연락이 뜸하고 독립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적당한 거리가 생길 때. 신기하게도 관계가 더 순탄하게 굴러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대일의 관계가 아닌 다수가 함께 모여 발생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어떻게 해야 ‘적당히’ ‘잘’ 관계 맺을 수 있는 걸까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지만 지독하게 혼자 있고 싶은 마음들이 모인 현대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꿈꾸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하지만 떠올려보면 우리에겐 아무 대가 없이 좋아서 자꾸만 마주치고 싶고 관계 맺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흙을 파며 해가 저물 때까지 놀았던 친구들처럼요. 어쩌면 이런 기억이 훌쩍 커버린 우리에게 또 다른 커뮤니티를 경험하고, 실험하고, 고민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콩, 요정, 도넛은 지금 어떤 ‘커뮤니티’를 꿈꾸고 또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을까요? 커뮤니티 실험자 ‘기선’을 만나기 전, 우리만의 대담이 벌어졌습니다. 


사진설명콩, 요정, 도넛의 대화

콩, 요정, 도넛의 대화

  • _ 커뮤니티는 ‘놀이’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지는걸까? 

청년 주택에서 첫 독립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그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하느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시는 누군가와 같이 방을 공유하면서 살지는 말아야지 다짐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참 양가적인 게, 고등학교 졸업하니 기숙사에서 투닥거리고 살았던 일들이 너무 그리운 거예요. 결국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더 재밌겠다, 대신 기숙사처럼 모든 공간을 공유하기보다는 나만의 공간만 보장이 된다면 살아볼만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입주를 했습니다.

우리 청년 주택의 경우에는 거주자들끼리 관계 맺고 지역 사회에 환원하자는 서로의 약속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거주자들끼리 얼마나,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하는 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특히 저는 본가와 청년 주택을 오고 가기 때문에 완전히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요. 서로 비슷한 가치관과 지향점을 가졌지만 세세하게 보면 생활 패턴, 하는 일 등이 천차만별이거든요. 취업 준비에 학교 과제에 이미 한껏 지쳤는데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게 부담이 될 때도 있고요. 

자연스레 커뮤니티란 무엇일까? 커뮤니티가 되는 데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사실,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 신나게 떠드는 것도 커뮤니티잖아요. 동네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싶었어요. 찬찬히 제 삶을 돌아보니 정말 ‘커뮤니티 중심’적으로 살았더라고요. 주말마다 참석하는 동네 신문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모두 커뮤니티고요. 자발적이고, 재밌고, 능동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게 꼭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놀이’처럼요! 

  • 요정 _ 커뮤니티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하여 

어영부영 10년이 흘렀네요. 2010년 2월 서울에 올라와 집을 구하러 다녔어요. 대학교 앞 원룸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어요. 동아리, 봉사 활동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해체하기를 반복했어요. 이제는 각자의 길로 들어서며 경조사에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어느 순간엔 SNS로만 소통하게 되었죠. ‘친구 관계는 아는 사이로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 인연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흘러가는 인연이 있음에도, 혈연관계로 얽힌 가족과는 붙잡히고 붙들린 채 지내는 거 같아요. 가족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가족 구성원을 만드는 방법이 결혼뿐인 건지. 그러니까, 단지 혈연이나 동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닌 살아가는 방식을 공유하는 관계를 꿈꾸는 게 이상적인 걸까요? 어떻게 대안 가족이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3-4년간 새롭게 만난 동료이자 커뮤니티가 있는데, 재미 삼아 10년 뒤에 같이 사는 공동체를 이야기하곤 해요. 지난 호에 ‘빈집과 빈땅’을 살펴봤지만, 저는 지금 당장 실제로 시도하지 못하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공동투자할 용기도 없고, 누구와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삶의 실천적 지향점은 있는데, 어떻게 되어야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오늘 주어진 일에 할 수 있는 일로, 그때그때를 살고 있어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지금을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지금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방식을 보았을 때, 저는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도시에 왔다 갔다 하면서 살 수 있는 게 필요해요. 그래서 더욱더 다 거점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이번에 전기선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거점 커뮤니티의 경험을 듣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대가 되어요!

  • 도넛 _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지난해 전셋집을 얻으며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 이전에는 여러 곳을 떠돌며 누군가의 공간에 의탁하는 생활을 했고요.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점점 늘어가는 짐들 때문에 내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혼자인 공간이 생기니 처음엔 좋았지만 정리 안되는 짐들로  가득 찬 집을 보며 자괴감이 늘어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기운이 쫙 빠져 축 처진 상태로 있어요. 그러고 또 집을 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오면 다시 방전된 상태가 되고요. 하나 둘 미뤄둔 것들이 널브러진 형태로 거실과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네요.

저에게 생활 공동체(커뮤니티)는 공간을 함께 잘 사용하는 부분이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것 같아요. 누군가와 어울려 산다는 건 부지런해야 가능한 게 아닌가 싶고요. 정리 안 된 집 구석구석을 보며 그걸 잘 할 자신이 점점 없어지고요. 더 넓은 공간이 생기면 정리를 잘 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가도 우선 버리고 비우는 게 선행되어야지 않을까 하고 또 생각하는데 잘 버리지 못하는 몸에 밴 성격이 버리는 일을 자꾸 주저하게 만들고요. 

더 넓은 개인적인 공간을 갖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만한 공간을 마련할 여력은 없고, 2년의 전세 계약은 곧 끝나가는데 이다음은 어떤 공간에서 살 수 있을지 막막해요. 공간을 함께 쓸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내 공간 마련을 위한 종잣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고….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뭐 없을까를 고민하며 커뮤니티가 뭘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공유 & HOW

투기적 도시화와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

모든 것이 사유화, 상품화되는 신자유주의적 도시공간에서 도시를 커먼즈로서 상상하고 실천하는 시도가 있다. 이들 도시 커먼즈는 기존 공간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질적 공간, 즉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8월 공유&How에서는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점과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1. 투기적 도시화

압축적 고도성장 속에서 한국의 도시 공간은 자본과 토건세력, 권위주의 정부의 개발연합에 의해 끊임없이 사유화되었고, 상품화되었다. 바로 한국의 도시가 거쳐온 ‘투기적 도시화’의 길이다. 이러한 투기적 도시에서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시세차익을 노리고 ‘사는 ‘것’에 가깝다.  공간에 대한 권리는 단지 ‘구매력’으로 얻은 사적 소유의 권리로 제한된다. 그리하여 높은 지대를 감당할 수 없는 도시의 빈민, 그리고 공간을 다채롭게 만들어온 기존의 주민, 상인,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축출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는 글로벌 스케일에서도 나타난다. 높은 이윤을 향해 이동하는 글로벌 자본의 흐름은 더욱더 복잡한 투기적 도시화의 지형을 생산한다.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도시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동아프리카의 투기적 도시화에 관한 Goodfellow의 연구에 따르면, 르완다,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낮은 국가들이 최근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급격한 도시화를 이끄는 주요한 추동력 중 하나는 바로 글로벌 자본이다. 부동산과 관련된 엄격한 세금 및 규제가 부재한 제도적 환경과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적 환 경은 이들 국가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본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아디스아바바, 키갈리 등의 도시에는 높은 고층 빌딩과 고급 주택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사진설명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고층 빌딩 및 건축 현장, 사진출처 pixabay

하지만 이러한 도시에서 글로벌 자본이 생산한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인구는 전체 도시민의 약 20%에 불과하다. 동아프리카 인구의 대부분은 새롭게 지어진 고층 빌딩과 고급 주거지를 구입 및 임차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도시에는 아무도 점유하지 않은 빈 껍데기와 같은 공간만이 가득하게 되었고, Goodfellow는 이를 해골 도시(skeleton cityscapes)에 비유하였다. 더불어 부동산 개발의 과정에서 부동산 거품이 형성되었으며, 도시 전반을 점유하였던 기존의 슬럼들은 새로운 공간에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밀려나야만 했다. 즉, 글로벌 자본이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한 빈 공간들이 동아프리카 도시민들의 삶의 공간을 파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뼈대만 남은 공간들은 도시민이 그곳에서 어떠한 사용 가치도 향유하지 못하는 반면, 지구 반대편의 투자자들은 교환가치에 기초하여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산업화를 동반하는 전통적인 도시화의 풍경과는 달리, 동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이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늦게 시작된 국가들은 투기적 자본의 힘이 도시화와 도시 경제의 성장을 이끈다. 이는 투기적 도시화가 비단 공간 불평등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생산 부문으로의 자본 유입을 저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프리카 도시민들은 생산 부문 및 경제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생활 수준의 향상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향유하지 못할 장소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투기적 도시화는 한 국가 내에서의 불균등 발전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케일에서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설명Ndegeya, C., Rwandan Slum Dwellers Forced out for High-rise Project, The EastAfrican, 2018

2. 투기적 도시의 헤테로토피아들

Michel Foucault는 우리에게 이질성과 이소성의 감각을 가져다주는 반공간(contre-spaces)이자,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에 맞서는 장소로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개념을 제시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모든 공간들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그의 비유에서 헤테로토피아가 기존의 공간들과 이질적인 새로운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enry Lefebvre는 자본주의 및 국가가 생산하고 합리화하는 공간 질서, 즉 이소토피(isotopy)에 이질적으로 존재하며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헤테로토피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기존의 공간 질서와 우리의 일상생활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영역이자 운동이며, 전통적인 도시의 중심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중심성을 창조할 가능성을 담지한다.

Torre David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수엘라의 토레 다비드(Torre David)는 투기적 도시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토레 다비드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45층의 오피스 건물이다. 1993년 완공을 앞두고 사업시행자인 David Brillembourg가 사망하며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1994년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로 건설 자금을 제공하던 금융회사들이 파산하면서 완전히 버려지게 되었다. 이 버려진 건물을 찾은 것은 다름 아닌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와 주거지를 잃은 도시 빈민들이었다. 이들은 경제 위기 이후 도시 외곽에서 비공식 주거지를 형성해 살고 있었지만, 2007년 거대한 홍수로 인해 주거지가 파괴되면서 방치된 토레 다비드를 찾았다. 약 750여 가구가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토레 다비드를 점유함에 따라, 토레 다비드는 세계 최고층의 ‘수직형 슬럼(vertical slum)’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토레 다비드의 주민들은 건물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건물을 점차 변형시켜 나갔다. 또한 거주권 확보를 위해 주민 공동체를 결성하고, 2009년에는 점거 2년 만에 ‘Cooperativa de Vivienda Caciques de Venezuela’라는 조합을 설립하였다.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았던 토레 다비드는 점차 하나의 마을로써 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식료품점, 잡화점, 교회, 농구장 등의 시설이 들어섰으며, 주민들은 공용 공간을 함께 관리하고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자율적 규칙들을 수립해나갔다. 많은 건축들과 학자들은 주거지이자 공동체로서 토레 다비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으며, 그곳에서부터 비공식 주거지의 혁신과 실험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2014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토레 다비드를 상업용 건물로 개발하기 위해 중국 투자자들과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약 1,200 가구들을 퇴거시켰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주민들을 사회주택에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헤테로토피아로서 토레 다비드의 의미와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조치라 할 수 있다.

Art Squat

토레 다비드가 시민들의 우연적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라면, 유럽의 ‘아트 스쾃’은 투기적 도시를 예술적으로 전유하려는 보다 의식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스쾃’(squat)은 오스트리아 목동들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으로 양 떼를 몰고 가는 행위에서 탄생한 말이다. 산업혁명 이후 주거공간의 부족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은 비와 추위를 막아줄 수 있을 만한 빈 공간이 발견되면, 그곳에 흘러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스쾃은 “어떠한 허가도 권리도 없는 점유”라는 사회적 의미를 띤 단어로 쓰이게 된다. 삶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시작된 ‘스쾃’이라는 행위는 68혁명 이후 문화적, 사상적인 의미를 담지한 실천으로 발전한다. 70년대에 이르러 반정부, 반문화주의와 함께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몇몇 예술가, 사상가들은 그들의 작업과 전시를 전개할 공간을 물색하며 스쾃이라는 방법론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들은 ‘아트 스쾃’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보수적인 예술 정책과 다소 느슨한 정부의 대응 덕분에 많은 아트 스쾃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트 스쾃들은 이렇게 방치된 빈 공간을 점유하고,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공고한 ‘사적 소유권’의 신화에 맞선다. 

‘리볼리(Rivoli) 가’는 파리의 대표적인 상업가로 중 하나이다. 이 길 한복판에는, 파사드에 젖가슴 모양의 이상한 구조물을 달고 있는 이질적인 건물이 있다. 바로 아트 스쾃으로 시작해, 이제는 유명한 파리의 문화예술공간이 된 ‘59 Rivoli’이다. 정확하게는, 59 Rivoli는 예술가 집단이 창작 및 전시 활동을 하고 있는 ‘로베르네 집-자유로운 전자(Chez Robert – Electron Libre)’가 위치한 건물의 주소이다. 원래 이 건물은 프랑스 은행인 크레디 리오네(Crédit Lyonais)의 소유였으나, 은행이 파산하면서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러나 세 명의 예술가들이 14년간 방치돼 있던 곳을 1999년 11월 1일, 불법 점거함으로써 빈 건물은 새로운 문화적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예술가들이 이 건물을 점거하자 건물주는 예술가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점거한지 5개월이 채 안 돼 법원으로부터 강제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예술가들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철거를 6개월 뒤로 미루고 그동안 언론과 사회단체에 도움을 구했다. 이어 시민들이 철거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면서, 2003년 파리시는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매입해 매우 싼 가격에 이들에게 임대했다. 그렇게 2009년 새롭게 단장된 모습으로 59 Rivoli는 ‘aftersquat’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 문을 열게 된 것이다. Rivoli의 현재 이곳에서 열리는 예술 행사들은 방문객들에게 모두 개방되며, 이들은 개방된 시간에 건물을 드나들며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을 직접 지켜보며 그들과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사진설명La Generale 소개 video

한편  ‘La Generale’은 비교적 현재 진행형인 아트 스쾃이다. 59 Rivoli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 확보를 위해 버려진 교육부 건물의 일부를 점거했다. 라 제네랄은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의 레지던시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요리사, 학자, 배우, 장식가, 감독, 수목 재배자, 양봉가, 사진가, 감독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약 15명의 활동가와 2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컬렉티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이 ‘정치 생태학적 실험실’로서 스스로를 묘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들은 2019년 12월까지 부분적 불법 점유 상태였던 건물 옥상에서 채소를 재배하기도 하고, 발효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실험하며 요리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음식이 경작되고 재배되고, 소비, 유통, 가공되는 매우 일상적인 과정에 내재하는 정치적, 생태학적 화두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La Generale이 분투하는 것은 투기적 도시뿐 아니라 그들 공동체 내부의 문제다. 어느 누구도 독재하지 않고,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소통을 통한 의사 결정을 위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데 매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때로는 갈등도 불사한다. 공간과 그것을 둘러싼 공동체 내부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커먼즈’적인 고민은  무엇보다 본격적인 ‘정치 생태적’인 실험은 ‘공동의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해나가기 위한 그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설명La Generale의 정원, 사진 출처 Giovanni Del Brenna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함께 최근 많은 아트 스쾃들은 제도의 테두리 내로 진입하기도 했다. 건물주와 이용 대차 계약을 맺거나, 관광지화되며 상업적 도시의 스펙터클로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제3의 방향성을 가진 공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대표적인 예로 폐 병원 부지에 예술인 레지던시와 난민 리셉션을 기획한 les grands voisions 프로젝트).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아트 스쾃들이 국지적으로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영리한 자본이 지속해서 매끈하게 만들어가는 도시에 균열을 내는 헤테로토피아적 실천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기존에 예술이 소통되고 향유되는 방식에 있어서의 부르주아적인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이주자, 부랑자 등과 같이 사회와 예술로부터 소외된 계층들과 함께 ‘감각적인 것을 나누는’ 시도를 실천해가고 있다.

3. 헤테로 토피아와 커먼즈 

도시 커먼즈 운동은 자본축적의 논리에 기초하여 형성된 기존 도시의 배열을 바꾸어 커먼즈로서의 도시(city as a commons)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도시 속 헤테로토피아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 생산에 필요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의 움직임, 그리고 사적 소유권의 논리에 지배된 종래의 도시 공간에 대하여 도시 커먼즈 운동은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전통적인 공간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의제, 권리 담론, 그리고 이들이 출현하는 거점들의 연결을 통해 이질적인 장소를 창조하고, 이는 다시 새로운 실천과 결합된다.  토레 다비드와 스쾃 아틀리에의 사례는 도시 커먼즈 운동이 투기적 도시화에 대항하는 헤테로토피아를 형성하며, 이로써 신자유주의적 공간 질서에 사로잡힌 도시를 해방적 공간으로 전유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투기적 도시의 내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SITE & SIGHT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 워크숍

지난 8월 19-20일, 제10회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이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를 주제로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8월 Site & Sight은 워크숍의 현장과 함께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가 제안하는 포스트 COVID-19 시대의 포용도시를 위한 시각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국가의 연구자와 활동가, 공무원과 결성한 글로벌 협력 플랫폼입니다. 이들 도시는 포용도시의 실현을 위해 오랜 기간 실천을 이어왔으며, 각 도시들을 상호 간 끝없는 경쟁에 밀어 넣었던 기존의 관습을 지양하고 도시 간 협력을 바탕으로 포용도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연대합니다. 그리고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삶의 기회와 인권을 보장하고,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규명하는 연구를 지향합니다.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2011년 3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워크숍을 시작으로 매해 국제 워크숍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 포용도시네트워크의 주관으로 제10회 워크숍이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로, COVID-19 위기가 드러낸 도시의 문제들을 되짚어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포용도시를 확장할 수 있는 실천적 수단들을 제안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의 연구자, 활동가, 공무원 등이 모여 총 4개의 세션에 걸쳐 COVID-19시대 동아시아 도시와 사회적 약자들의 현황, 공공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10주년 기념 특별 세션에서는 COVID-19시대 동아시아 도시와 홈리스의 현실, 과제, 그리고 이에 대항한 다양한 도시들의 전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동아시아 도시들의 사례는 사회 경제적 조건에 따라 COVID-19 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은 바로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COVID-19은 도시에 배태된 불평등의 논리와 문제점들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면에 드러냈습니다. 수많은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투기적 도시화와 공간 상품화의 문제입니다. 이윤 추구에 따른 투기적 도시화는 주거비 상승,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문제를 초래해왔으며, 이와 같은 문제들은 COVID-19 이후 더욱 악화되어 사회적 약자들을 도시 공간에서 내몰고 있습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COVID-19 이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시공간의 차별과 배제가 더욱 가혹해지는 현실을 조명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포용도시를 더욱 확장하는 방안을 다루었습니다.


사진설명제10회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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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리뷰

사진설명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포스터
  • 악에 대한 분투기를 쓰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인간이 자궁 속에 잉태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각인된 자연스런 본질이 아니다. 존 롤즈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과 ‘원초적 입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이를 차별하거나 혐오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원초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공정과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서 지켜야하는 어떤 지향점일 뿐이다. 다른 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 악한 행위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잘못 투영된 욕망이 그 욕망의 실현을 가로막는 원인을 잘못 찾는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는 자신들의 행위를 악한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 착각한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지난 2020년 3월 개교한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강서지역에 설립되는 과정에서 발달장애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이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향한 정당한 듯 포장된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맞서 싸운 분투기이다. 

이들의 분투기는 투기적 도시화 속에서 일그러진 우리 자신의 모습, 깨어진 거울 조각들 속에서 거침없이 비춰진 도시민의 분열되고 충돌하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 다큐를 보는 내내 어떤 분노와 슬픔과 함께 부끄러움이 마음 한 구석에서 솟구치는 까닭은 아마도 이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한 대응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비춰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 아주 오랫동안 지극히 비정상적인 생활이 평범하게 이어져왔었다.

학교 가는 시간 평균 3-4시간. 몸과 마음이 불편한 강서구 거주 장애 학생들은 구로구에 있는 학교를 가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차에 힘든 몸을 싣고 일찌감치 학교로 향한다. 그때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 학교로 등교하는 또래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동네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몸이 불편할수록 등교길이 더욱 편해야 하지만, 오히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더 먼 곳으로 매일 유배가듯 통학해야 했다. 동네 학교에서는 통합교육을 피했다. ‘정상 학생’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장애학생’이 방해한다는 편견이 동네 학교의 통합교육을 막아버렸고, 장애학생들은 갈 곳을 잃었고, 그렇게 이 비정상이 평범함이 되어버렸다. 원치않는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들의 삶 곳곳에 폭력이 스며들어 있었다.  

  • 희망, 재개발 욕망의 주술로 괴물의 야욕이 되다.

학부모들의 요구와 교육청의 의지로 동네 어느 폐교부지를 활용해서 강서구와 인근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세워질 계획이 마련되었다. 서울에 특수학교가 추가로 새워지는 것이 17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 동안 세워진 쇼핑몰, 문화체육시설의 수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처음엔 순탄해 보였다. 하지만, 이 지역 국회의원 (당시 김성태 의원)이 이 폐교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아닌 공약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애시당초 교육부지에 다른 용도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부지에는 학교를 짓는 것이고, 한방병원을 지으려면 다른 공공부지를 확보해서 지으면 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폐교부지 국립한방병원 유치’ 망언은 지역 주민 사이 재개발 욕망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국립한방병원이 들어서면 건강하고 안전한 돌봄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이제 우리도 다른 강남처럼 잘 살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지역주민들에게 주술을 걸어버렸다. 

‘특수학교 때문이다, 특수학교가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특수학교 학생들때문에 우리가 가난해진다, 얼마나 우리를 무시하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를 지어서 우리를 또 힘들게 하냐’.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재개발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주택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이 지역에 저소득층을 위한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세웠다. 당연히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 주민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 학생수가 줄어들고,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있던 이 학교는 타 지역 주민의 외면 속에서 결국 폐교되었다. 그렇게 이 지역은 점차 다른 지역과 고립되어 갔다. 

특수학교지만, 폐교에 학교가 들어선다니 다행이었다. 지역주민들의 고립감이 해소될 길이 열렸다. 하지만, 자기 지역구에서 표심을 얻어야 했던 국회의원이 뱉어낸 말도 안되는 공약이 결국 방향잃은 기관총이 되어 장애학생과 가족은 물론 지역 주민의 가슴을 향해 총알을 난사해 버리고 말았다. 주민들 사이 파고든 비틀리고 오염된 재개발 욕망은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동네에 있는 학교를 다니겠다는 아주 당연한 소망을 품은  장애 학생과 가족을 동네의 번영을 파괴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 투기적 욕망은 주민들을 서로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 당연한 권리가 거래되었다.

저 투기적 욕망에 맞서 엄마들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통곡과 절규를 했고, 무릎을 꿇었고, 삭발을 했고, 몸을 던져 항의하기도 했다. 혐오와 눈물로 점철된 공청회가 몇차례 지난 후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가 예정대로 세워지기로 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학교가 세워지는 배경 뒤엔 ‘어쩔 수 없이’ 투기적 욕망과 타협하기 위해 특수학교 설립 조건으로 이 동네에 국립한방병원 건립을 위한 협력이 약속된 것이다. 

엄마들은 반대했다. 나쁜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동네에 특수학교가 세워질 때마다 지역 개발에 대한 조건이 뒤따라야 하고, 그 조건없이 특수학교가 세워지기 어렵게 되는 나쁜 사례를 의사결정자들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할 교육에 대한 권리가 거래된 것이다. 타협할 조건이 없으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식만 생각한다면 거래가 뭐든 상관없이 환영하고 끝냈겠지만, 모든 장애학생들이 다 똑같은 자식이었다. 이들이 경험한 연대의 힘이었다. 내 자식을 위해 다른 이의 자식 가슴에 못 박을 순 없었다. 그래서, 엄마들은 다시 싸워야 했고, 결국 2020년 3월에 폐교되었던 공진 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개교했다. 이렇게 이들의 분투기는 잠시 일단락되었다.

  •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장애학생들의 진짜 어려움은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이다. 그래서 특수학교 설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보호받는 미성년자의 시기를 지나 법적 성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엄마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자식 보다 하루 늦게 세상을 뜨는 것이다(그러면서도,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 생에 태어나도 이들의 엄마로 태어나겠다고, 그 땐 더 잘해주겠다고 말한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미래에 겪을 어려움은 이미 서진학교보다 조금 일찍 개원한 ‘서울시 발달장애인 훈련센터’가 만들어진 아픔의 역사에서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엄마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어야했고, 장애인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그리고 엄마들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죄인이고 천형인 것처럼 멸시받아야 했었다. 

그래서,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특수학교만 지어선 안된다. 허울뿐일 수 있다. 이들의 생애주기가 존엄할 수 있는 여러 기반이 함께 해야 한다. 훈련센터, 자립 주거시설, 베리어 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이 당연히 적용된 문화체육시설과 교통 및 이동서비스 등 그냥 사람이 편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함께 있어야 한다.

  • 위선을 걷어낼 소중한 기회

발달장애인은 아니지만 정신장애인의 가족으로서 영상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억한 감정이 솟구쳐 엔딩 크래딧이 오르는 마지막 장면까지 울음을 참으며 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학생들보다, 그 옆에서 자식들의 모든 걸 기억해야 하고, 항상 곁에 있어야 하고, 울지도 화내지도 원망하지도 말아야 하면서 늘 격려해야하는 엄마들의 모습, 그리고 가끔 비쳐지는 가족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며 소리없는 오열을 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어느 순간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저 엄마들이 아니라, 강당 뒤쪽에서 서서 악을 쓰는 주민들 사이에서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였구나.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은 자가 나였구나. 내 몸의 소리없는 오열은 내 의식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구나.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어떻게 아름답게 맞설 수 있을까?”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과 함께, “투기적 도시개발의 욕망은 도대체 우리의 욕망을 얼만큼 비틀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괴물의 주술을 어떻게 피해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이 도시는 과연 누구의 도시이고, 누가 공유하는 공간이자 터전이 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관중에게 위선을 걷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최희진, 송지우, 상덕, 홍지수, 홍다솜, 이혜원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8월 30일

*2017년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SSK)의 지원을 받음(NRF-2017S1A3A2066514)

[2021년 7·8월호] 투기적 도시화와 그 대안들

Commons & Comment | 발행인의 한마디

공유 & Who | 우리가 만난 것도 커뮤니티다!

공유 & How | 투기적 도시화와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

Site & Sight |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

Hot & New |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리뷰

COMMONS & COMMENT

발행인의 한마디

아파트 단지라는 갇히고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투기적 이해에 기초해 도시적 욕망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에 살기를 거부하고,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조우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마을과 도시라는 공유재를 같이 만들고 그 책임과 결과를 나누자는 … 실험들은 ‘강남화’라는 헤게모니적 도시화에 대한 저항 담론과 대안적 도시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경험과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실험들은 도시를 사유재산의 집합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들고 같이 이용하는 공유재로 인식할 수 있는 경험적 기반을 제공해 주어, 궁극적으로는 자산의 사적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시각에 기댄 투기적 도시화에 저항할 수 있는 이념적 기초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배균  2017. ‘자본주의 헤게모니와 대안적 도시 이데올로기’, 서울연구원 편, “희망의 도시”, 한울아카데미.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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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 것도 커뮤니티다! _ 콩&요정&도넛 그리고 기선과의 대화

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하는 것에 대한 고민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는 말을요. 가족, 애인, 친구 모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만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로 할 일을 하느라 연락이 뜸하고 독립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적당한 거리가 생길 때. 신기하게도 관계가 더 순탄하게 굴러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대일의 관계가 아닌 다수가 함께 모여 발생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어떻게 해야 ‘적당히’ ‘잘’ 관계 맺을 수 있는 걸까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지만 지독하게 혼자 있고 싶은 마음들이 모인 현대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꿈꾸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하지만 떠올려보면 우리에겐 아무 대가 없이 좋아서 자꾸만 마주치고 싶고 관계 맺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흙을 파며 해가 저물 때까지 놀았던 친구들처럼요. 어쩌면 이런 기억이 훌쩍 커버린 우리에게 또 다른 커뮤니티를 경험하고, 실험하고, 고민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콩, 요정, 도넛은 지금 어떤 ‘커뮤니티’를 꿈꾸고 또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을까요? 커뮤니티 실험자 ‘기선’을 만나기 전, 우리만의 대담이 벌어졌습니다. 


사진설명콩, 요정, 도넛의 대화

콩, 요정, 도넛의 대화

  • _ 커뮤니티는 ‘놀이’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지는걸까? 

청년 주택에서 첫 독립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그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하느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시는 누군가와 같이 방을 공유하면서 살지는 말아야지 다짐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참 양가적인 게, 고등학교 졸업하니 기숙사에서 투닥거리고 살았던 일들이 너무 그리운 거예요. 결국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더 재밌겠다, 대신 기숙사처럼 모든 공간을 공유하기보다는 나만의 공간만 보장이 된다면 살아볼만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입주를 했습니다.

우리 청년 주택의 경우에는 거주자들끼리 관계 맺고 지역 사회에 환원하자는 서로의 약속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거주자들끼리 얼마나,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하는 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특히 저는 본가와 청년 주택을 오고 가기 때문에 완전히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요. 서로 비슷한 가치관과 지향점을 가졌지만 세세하게 보면 생활 패턴, 하는 일 등이 천차만별이거든요. 취업 준비에 학교 과제에 이미 한껏 지쳤는데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게 부담이 될 때도 있고요. 

자연스레 커뮤니티란 무엇일까? 커뮤니티가 되는 데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사실,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 신나게 떠드는 것도 커뮤니티잖아요. 동네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싶었어요. 찬찬히 제 삶을 돌아보니 정말 ‘커뮤니티 중심’적으로 살았더라고요. 주말마다 참석하는 동네 신문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모두 커뮤니티고요. 자발적이고, 재밌고, 능동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게 꼭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놀이’처럼요! 

  • 요정 _ 커뮤니티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하여 

어영부영 10년이 흘렀네요. 2010년 2월 서울에 올라와 집을 구하러 다녔어요. 대학교 앞 원룸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어요. 동아리, 봉사 활동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해체하기를 반복했어요. 이제는 각자의 길로 들어서며 경조사에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어느 순간엔 SNS로만 소통하게 되었죠. ‘친구 관계는 아는 사이로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 인연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흘러가는 인연이 있음에도, 혈연관계로 얽힌 가족과는 붙잡히고 붙들린 채 지내는 거 같아요. 가족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가족 구성원을 만드는 방법이 결혼뿐인 건지. 그러니까, 단지 혈연이나 동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닌 살아가는 방식을 공유하는 관계를 꿈꾸는 게 이상적인 걸까요? 어떻게 대안 가족이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3-4년간 새롭게 만난 동료이자 커뮤니티가 있는데, 재미 삼아 10년 뒤에 같이 사는 공동체를 이야기하곤 해요. 지난 호에 ‘빈집과 빈땅’을 살펴봤지만, 저는 지금 당장 실제로 시도하지 못하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공동투자할 용기도 없고, 누구와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삶의 실천적 지향점은 있는데, 어떻게 되어야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오늘 주어진 일에 할 수 있는 일로, 그때그때를 살고 있어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지금을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지금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방식을 보았을 때, 저는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도시에 왔다 갔다 하면서 살 수 있는 게 필요해요. 그래서 더욱더 다 거점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이번에 전기선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거점 커뮤니티의 경험을 듣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대가 되어요!

  • 도넛 _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지난해 전셋집을 얻으며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 이전에는 여러 곳을 떠돌며 누군가의 공간에 의탁하는 생활을 했고요.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점점 늘어가는 짐들 때문에 내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혼자인 공간이 생기니 처음엔 좋았지만 정리 안되는 짐들로  가득 찬 집을 보며 자괴감이 늘어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기운이 쫙 빠져 축 처진 상태로 있어요. 그러고 또 집을 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오면 다시 방전된 상태가 되고요. 하나 둘 미뤄둔 것들이 널브러진 형태로 거실과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네요.

저에게 생활 공동체(커뮤니티)는 공간을 함께 잘 사용하는 부분이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것 같아요. 누군가와 어울려 산다는 건 부지런해야 가능한 게 아닌가 싶고요. 정리 안 된 집 구석구석을 보며 그걸 잘 할 자신이 점점 없어지고요. 더 넓은 공간이 생기면 정리를 잘 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가도 우선 버리고 비우는 게 선행되어야지 않을까 하고 또 생각하는데 잘 버리지 못하는 몸에 밴 성격이 버리는 일을 자꾸 주저하게 만들고요. 

더 넓은 개인적인 공간을 갖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만한 공간을 마련할 여력은 없고, 2년의 전세 계약은 곧 끝나가는데 이다음은 어떤 공간에서 살 수 있을지 막막해요. 공간을 함께 쓸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내 공간 마련을 위한 종잣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고….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뭐 없을까를 고민하며 커뮤니티가 뭘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공유 & HOW

투기적 도시화와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

모든 것이 사유화, 상품화되는 신자유주의적 도시공간에서 도시를 커먼즈로서 상상하고 실천하는 시도가 있다. 이들 도시 커먼즈는 기존 공간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질적 공간, 즉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8월 공유&How에서는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점과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1. 투기적 도시화

압축적 고도성장 속에서 한국의 도시 공간은 자본과 토건세력, 권위주의 정부의 개발연합에 의해 끊임없이 사유화되었고, 상품화되었다. 바로 한국의 도시가 거쳐온 ‘투기적 도시화’의 길이다. 이러한 투기적 도시에서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시세차익을 노리고 ‘사는 ‘것’에 가깝다.  공간에 대한 권리는 단지 ‘구매력’으로 얻은 사적 소유의 권리로 제한된다. 그리하여 높은 지대를 감당할 수 없는 도시의 빈민, 그리고 공간을 다채롭게 만들어온 기존의 주민, 상인,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축출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는 글로벌 스케일에서도 나타난다. 높은 이윤을 향해 이동하는 글로벌 자본의 흐름은 더욱더 복잡한 투기적 도시화의 지형을 생산한다.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도시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동아프리카의 투기적 도시화에 관한 Goodfellow의 연구에 따르면, 르완다,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낮은 국가들이 최근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급격한 도시화를 이끄는 주요한 추동력 중 하나는 바로 글로벌 자본이다. 부동산과 관련된 엄격한 세금 및 규제가 부재한 제도적 환경과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적 환 경은 이들 국가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본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아디스아바바, 키갈리 등의 도시에는 높은 고층 빌딩과 고급 주택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사진설명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고층 빌딩 및 건축 현장, 사진출처 pixabay

하지만 이러한 도시에서 글로벌 자본이 생산한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인구는 전체 도시민의 약 20%에 불과하다. 동아프리카 인구의 대부분은 새롭게 지어진 고층 빌딩과 고급 주거지를 구입 및 임차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도시에는 아무도 점유하지 않은 빈 껍데기와 같은 공간만이 가득하게 되었고, Goodfellow는 이를 해골 도시(skeleton cityscapes)에 비유하였다. 더불어 부동산 개발의 과정에서 부동산 거품이 형성되었으며, 도시 전반을 점유하였던 기존의 슬럼들은 새로운 공간에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밀려나야만 했다. 즉, 글로벌 자본이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한 빈 공간들이 동아프리카 도시민들의 삶의 공간을 파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뼈대만 남은 공간들은 도시민이 그곳에서 어떠한 사용 가치도 향유하지 못하는 반면, 지구 반대편의 투자자들은 교환가치에 기초하여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산업화를 동반하는 전통적인 도시화의 풍경과는 달리, 동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이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늦게 시작된 국가들은 투기적 자본의 힘이 도시화와 도시 경제의 성장을 이끈다. 이는 투기적 도시화가 비단 공간 불평등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생산 부문으로의 자본 유입을 저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프리카 도시민들은 생산 부문 및 경제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생활 수준의 향상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향유하지 못할 장소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투기적 도시화는 한 국가 내에서의 불균등 발전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케일에서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설명Ndegeya, C., Rwandan Slum Dwellers Forced out for High-rise Project, The EastAfrican, 2018

2. 투기적 도시의 헤테로토피아들

Michel Foucault는 우리에게 이질성과 이소성의 감각을 가져다주는 반공간(contre-spaces)이자,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에 맞서는 장소로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개념을 제시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모든 공간들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그의 비유에서 헤테로토피아가 기존의 공간들과 이질적인 새로운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enry Lefebvre는 자본주의 및 국가가 생산하고 합리화하는 공간 질서, 즉 이소토피(isotopy)에 이질적으로 존재하며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헤테로토피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기존의 공간 질서와 우리의 일상생활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영역이자 운동이며, 전통적인 도시의 중심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중심성을 창조할 가능성을 담지한다.

Torre David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수엘라의 토레 다비드(Torre David)는 투기적 도시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토레 다비드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45층의 오피스 건물이다. 1993년 완공을 앞두고 사업시행자인 David Brillembourg가 사망하며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1994년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로 건설 자금을 제공하던 금융회사들이 파산하면서 완전히 버려지게 되었다. 이 버려진 건물을 찾은 것은 다름 아닌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와 주거지를 잃은 도시 빈민들이었다. 이들은 경제 위기 이후 도시 외곽에서 비공식 주거지를 형성해 살고 있었지만, 2007년 거대한 홍수로 인해 주거지가 파괴되면서 방치된 토레 다비드를 찾았다. 약 750여 가구가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토레 다비드를 점유함에 따라, 토레 다비드는 세계 최고층의 ‘수직형 슬럼(vertical slum)’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토레 다비드의 주민들은 건물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건물을 점차 변형시켜 나갔다. 또한 거주권 확보를 위해 주민 공동체를 결성하고, 2009년에는 점거 2년 만에 ‘Cooperativa de Vivienda Caciques de Venezuela’라는 조합을 설립하였다.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았던 토레 다비드는 점차 하나의 마을로써 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식료품점, 잡화점, 교회, 농구장 등의 시설이 들어섰으며, 주민들은 공용 공간을 함께 관리하고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자율적 규칙들을 수립해나갔다. 많은 건축들과 학자들은 주거지이자 공동체로서 토레 다비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으며, 그곳에서부터 비공식 주거지의 혁신과 실험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2014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토레 다비드를 상업용 건물로 개발하기 위해 중국 투자자들과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약 1,200 가구들을 퇴거시켰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주민들을 사회주택에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헤테로토피아로서 토레 다비드의 의미와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조치라 할 수 있다.

Art Squat

토레 다비드가 시민들의 우연적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라면, 유럽의 ‘아트 스쾃’은 투기적 도시를 예술적으로 전유하려는 보다 의식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스쾃’(squat)은 오스트리아 목동들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으로 양 떼를 몰고 가는 행위에서 탄생한 말이다. 산업혁명 이후 주거공간의 부족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은 비와 추위를 막아줄 수 있을 만한 빈 공간이 발견되면, 그곳에 흘러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스쾃은 “어떠한 허가도 권리도 없는 점유”라는 사회적 의미를 띤 단어로 쓰이게 된다. 삶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시작된 ‘스쾃’이라는 행위는 68혁명 이후 문화적, 사상적인 의미를 담지한 실천으로 발전한다. 70년대에 이르러 반정부, 반문화주의와 함께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몇몇 예술가, 사상가들은 그들의 작업과 전시를 전개할 공간을 물색하며 스쾃이라는 방법론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들은 ‘아트 스쾃’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보수적인 예술 정책과 다소 느슨한 정부의 대응 덕분에 많은 아트 스쾃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트 스쾃들은 이렇게 방치된 빈 공간을 점유하고,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공고한 ‘사적 소유권’의 신화에 맞선다. 

‘리볼리(Rivoli) 가’는 파리의 대표적인 상업가로 중 하나이다. 이 길 한복판에는, 파사드에 젖가슴 모양의 이상한 구조물을 달고 있는 이질적인 건물이 있다. 바로 아트 스쾃으로 시작해, 이제는 유명한 파리의 문화예술공간이 된 ‘59 Rivoli’이다. 정확하게는, 59 Rivoli는 예술가 집단이 창작 및 전시 활동을 하고 있는 ‘로베르네 집-자유로운 전자(Chez Robert – Electron Libre)’가 위치한 건물의 주소이다. 원래 이 건물은 프랑스 은행인 크레디 리오네(Crédit Lyonais)의 소유였으나, 은행이 파산하면서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러나 세 명의 예술가들이 14년간 방치돼 있던 곳을 1999년 11월 1일, 불법 점거함으로써 빈 건물은 새로운 문화적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예술가들이 이 건물을 점거하자 건물주는 예술가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점거한지 5개월이 채 안 돼 법원으로부터 강제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예술가들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철거를 6개월 뒤로 미루고 그동안 언론과 사회단체에 도움을 구했다. 이어 시민들이 철거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면서, 2003년 파리시는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매입해 매우 싼 가격에 이들에게 임대했다. 그렇게 2009년 새롭게 단장된 모습으로 59 Rivoli는 ‘aftersquat’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 문을 열게 된 것이다. Rivoli의 현재 이곳에서 열리는 예술 행사들은 방문객들에게 모두 개방되며, 이들은 개방된 시간에 건물을 드나들며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을 직접 지켜보며 그들과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사진설명La Generale 소개 video

한편  ‘La Generale’은 비교적 현재 진행형인 아트 스쾃이다. 59 Rivoli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 확보를 위해 버려진 교육부 건물의 일부를 점거했다. 라 제네랄은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의 레지던시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요리사, 학자, 배우, 장식가, 감독, 수목 재배자, 양봉가, 사진가, 감독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약 15명의 활동가와 2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컬렉티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이 ‘정치 생태학적 실험실’로서 스스로를 묘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들은 2019년 12월까지 부분적 불법 점유 상태였던 건물 옥상에서 채소를 재배하기도 하고, 발효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실험하며 요리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음식이 경작되고 재배되고, 소비, 유통, 가공되는 매우 일상적인 과정에 내재하는 정치적, 생태학적 화두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La Generale이 분투하는 것은 투기적 도시뿐 아니라 그들 공동체 내부의 문제다. 어느 누구도 독재하지 않고,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소통을 통한 의사 결정을 위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데 매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때로는 갈등도 불사한다. 공간과 그것을 둘러싼 공동체 내부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커먼즈’적인 고민은  무엇보다 본격적인 ‘정치 생태적’인 실험은 ‘공동의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해나가기 위한 그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설명La Generale의 정원, 사진 출처 Giovanni Del Brenna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함께 최근 많은 아트 스쾃들은 제도의 테두리 내로 진입하기도 했다. 건물주와 이용 대차 계약을 맺거나, 관광지화되며 상업적 도시의 스펙터클로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제3의 방향성을 가진 공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대표적인 예로 폐 병원 부지에 예술인 레지던시와 난민 리셉션을 기획한 les grands voisions 프로젝트).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아트 스쾃들이 국지적으로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영리한 자본이 지속해서 매끈하게 만들어가는 도시에 균열을 내는 헤테로토피아적 실천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기존에 예술이 소통되고 향유되는 방식에 있어서의 부르주아적인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이주자, 부랑자 등과 같이 사회와 예술로부터 소외된 계층들과 함께 ‘감각적인 것을 나누는’ 시도를 실천해가고 있다.

3. 헤테로 토피아와 커먼즈 

도시 커먼즈 운동은 자본축적의 논리에 기초하여 형성된 기존 도시의 배열을 바꾸어 커먼즈로서의 도시(city as a commons)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도시 속 헤테로토피아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 생산에 필요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의 움직임, 그리고 사적 소유권의 논리에 지배된 종래의 도시 공간에 대하여 도시 커먼즈 운동은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전통적인 공간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의제, 권리 담론, 그리고 이들이 출현하는 거점들의 연결을 통해 이질적인 장소를 창조하고, 이는 다시 새로운 실천과 결합된다.  토레 다비드와 스쾃 아틀리에의 사례는 도시 커먼즈 운동이 투기적 도시화에 대항하는 헤테로토피아를 형성하며, 이로써 신자유주의적 공간 질서에 사로잡힌 도시를 해방적 공간으로 전유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투기적 도시의 내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SITE & SIGHT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 워크숍

지난 8월 19-20일, 제10회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이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를 주제로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8월 Site & Sight은 워크숍의 현장과 함께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가 제안하는 포스트 COVID-19 시대의 포용도시를 위한 시각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국가의 연구자와 활동가, 공무원과 결성한 글로벌 협력 플랫폼입니다. 이들 도시는 포용도시의 실현을 위해 오랜 기간 실천을 이어왔으며, 각 도시들을 상호 간 끝없는 경쟁에 밀어 넣었던 기존의 관습을 지양하고 도시 간 협력을 바탕으로 포용도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연대합니다. 그리고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삶의 기회와 인권을 보장하고,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규명하는 연구를 지향합니다.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2011년 3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워크숍을 시작으로 매해 국제 워크숍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 포용도시네트워크의 주관으로 제10회 워크숍이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로, COVID-19 위기가 드러낸 도시의 문제들을 되짚어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포용도시를 확장할 수 있는 실천적 수단들을 제안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의 연구자, 활동가, 공무원 등이 모여 총 4개의 세션에 걸쳐 COVID-19시대 동아시아 도시와 사회적 약자들의 현황, 공공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10주년 기념 특별 세션에서는 COVID-19시대 동아시아 도시와 홈리스의 현실, 과제, 그리고 이에 대항한 다양한 도시들의 전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동아시아 도시들의 사례는 사회 경제적 조건에 따라 COVID-19 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은 바로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COVID-19은 도시에 배태된 불평등의 논리와 문제점들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면에 드러냈습니다. 수많은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투기적 도시화와 공간 상품화의 문제입니다. 이윤 추구에 따른 투기적 도시화는 주거비 상승,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문제를 초래해왔으며, 이와 같은 문제들은 COVID-19 이후 더욱 악화되어 사회적 약자들을 도시 공간에서 내몰고 있습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COVID-19 이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시공간의 차별과 배제가 더욱 가혹해지는 현실을 조명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포용도시를 더욱 확장하는 방안을 다루었습니다.


사진설명제10회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 1일차


HOT & NEW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리뷰

사진설명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포스터
  • 악에 대한 분투기를 쓰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인간이 자궁 속에 잉태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각인된 자연스런 본질이 아니다. 존 롤즈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과 ‘원초적 입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이를 차별하거나 혐오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원초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공정과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서 지켜야하는 어떤 지향점일 뿐이다. 다른 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 악한 행위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잘못 투영된 욕망이 그 욕망의 실현을 가로막는 원인을 잘못 찾는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는 자신들의 행위를 악한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 착각한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지난 2020년 3월 개교한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강서지역에 설립되는 과정에서 발달장애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이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향한 정당한 듯 포장된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맞서 싸운 분투기이다. 

이들의 분투기는 투기적 도시화 속에서 일그러진 우리 자신의 모습, 깨어진 거울 조각들 속에서 거침없이 비춰진 도시민의 분열되고 충돌하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 다큐를 보는 내내 어떤 분노와 슬픔과 함께 부끄러움이 마음 한 구석에서 솟구치는 까닭은 아마도 이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한 대응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비춰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 아주 오랫동안 지극히 비정상적인 생활이 평범하게 이어져왔었다.

학교 가는 시간 평균 3-4시간. 몸과 마음이 불편한 강서구 거주 장애 학생들은 구로구에 있는 학교를 가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차에 힘든 몸을 싣고 일찌감치 학교로 향한다. 그때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 학교로 등교하는 또래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동네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몸이 불편할수록 등교길이 더욱 편해야 하지만, 오히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더 먼 곳으로 매일 유배가듯 통학해야 했다. 동네 학교에서는 통합교육을 피했다. ‘정상 학생’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장애학생’이 방해한다는 편견이 동네 학교의 통합교육을 막아버렸고, 장애학생들은 갈 곳을 잃었고, 그렇게 이 비정상이 평범함이 되어버렸다. 원치않는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들의 삶 곳곳에 폭력이 스며들어 있었다.  

  • 희망, 재개발 욕망의 주술로 괴물의 야욕이 되다.

학부모들의 요구와 교육청의 의지로 동네 어느 폐교부지를 활용해서 강서구와 인근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세워질 계획이 마련되었다. 서울에 특수학교가 추가로 새워지는 것이 17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 동안 세워진 쇼핑몰, 문화체육시설의 수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처음엔 순탄해 보였다. 하지만, 이 지역 국회의원 (당시 김성태 의원)이 이 폐교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아닌 공약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애시당초 교육부지에 다른 용도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부지에는 학교를 짓는 것이고, 한방병원을 지으려면 다른 공공부지를 확보해서 지으면 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폐교부지 국립한방병원 유치’ 망언은 지역 주민 사이 재개발 욕망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국립한방병원이 들어서면 건강하고 안전한 돌봄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이제 우리도 다른 강남처럼 잘 살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지역주민들에게 주술을 걸어버렸다. 

‘특수학교 때문이다, 특수학교가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특수학교 학생들때문에 우리가 가난해진다, 얼마나 우리를 무시하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를 지어서 우리를 또 힘들게 하냐’.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재개발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주택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이 지역에 저소득층을 위한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세웠다. 당연히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 주민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 학생수가 줄어들고,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있던 이 학교는 타 지역 주민의 외면 속에서 결국 폐교되었다. 그렇게 이 지역은 점차 다른 지역과 고립되어 갔다. 

특수학교지만, 폐교에 학교가 들어선다니 다행이었다. 지역주민들의 고립감이 해소될 길이 열렸다. 하지만, 자기 지역구에서 표심을 얻어야 했던 국회의원이 뱉어낸 말도 안되는 공약이 결국 방향잃은 기관총이 되어 장애학생과 가족은 물론 지역 주민의 가슴을 향해 총알을 난사해 버리고 말았다. 주민들 사이 파고든 비틀리고 오염된 재개발 욕망은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동네에 있는 학교를 다니겠다는 아주 당연한 소망을 품은  장애 학생과 가족을 동네의 번영을 파괴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 투기적 욕망은 주민들을 서로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 당연한 권리가 거래되었다.

저 투기적 욕망에 맞서 엄마들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통곡과 절규를 했고, 무릎을 꿇었고, 삭발을 했고, 몸을 던져 항의하기도 했다. 혐오와 눈물로 점철된 공청회가 몇차례 지난 후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가 예정대로 세워지기로 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학교가 세워지는 배경 뒤엔 ‘어쩔 수 없이’ 투기적 욕망과 타협하기 위해 특수학교 설립 조건으로 이 동네에 국립한방병원 건립을 위한 협력이 약속된 것이다. 

엄마들은 반대했다. 나쁜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동네에 특수학교가 세워질 때마다 지역 개발에 대한 조건이 뒤따라야 하고, 그 조건없이 특수학교가 세워지기 어렵게 되는 나쁜 사례를 의사결정자들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할 교육에 대한 권리가 거래된 것이다. 타협할 조건이 없으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식만 생각한다면 거래가 뭐든 상관없이 환영하고 끝냈겠지만, 모든 장애학생들이 다 똑같은 자식이었다. 이들이 경험한 연대의 힘이었다. 내 자식을 위해 다른 이의 자식 가슴에 못 박을 순 없었다. 그래서, 엄마들은 다시 싸워야 했고, 결국 2020년 3월에 폐교되었던 공진 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개교했다. 이렇게 이들의 분투기는 잠시 일단락되었다.

  •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장애학생들의 진짜 어려움은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이다. 그래서 특수학교 설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보호받는 미성년자의 시기를 지나 법적 성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엄마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자식 보다 하루 늦게 세상을 뜨는 것이다(그러면서도,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 생에 태어나도 이들의 엄마로 태어나겠다고, 그 땐 더 잘해주겠다고 말한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미래에 겪을 어려움은 이미 서진학교보다 조금 일찍 개원한 ‘서울시 발달장애인 훈련센터’가 만들어진 아픔의 역사에서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엄마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어야했고, 장애인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그리고 엄마들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죄인이고 천형인 것처럼 멸시받아야 했었다. 

그래서,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특수학교만 지어선 안된다. 허울뿐일 수 있다. 이들의 생애주기가 존엄할 수 있는 여러 기반이 함께 해야 한다. 훈련센터, 자립 주거시설, 베리어 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이 당연히 적용된 문화체육시설과 교통 및 이동서비스 등 그냥 사람이 편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함께 있어야 한다.

  • 위선을 걷어낼 소중한 기회

발달장애인은 아니지만 정신장애인의 가족으로서 영상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억한 감정이 솟구쳐 엔딩 크래딧이 오르는 마지막 장면까지 울음을 참으며 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학생들보다, 그 옆에서 자식들의 모든 걸 기억해야 하고, 항상 곁에 있어야 하고, 울지도 화내지도 원망하지도 말아야 하면서 늘 격려해야하는 엄마들의 모습, 그리고 가끔 비쳐지는 가족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며 소리없는 오열을 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어느 순간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저 엄마들이 아니라, 강당 뒤쪽에서 서서 악을 쓰는 주민들 사이에서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였구나.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은 자가 나였구나. 내 몸의 소리없는 오열은 내 의식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구나.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어떻게 아름답게 맞설 수 있을까?”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과 함께, “투기적 도시개발의 욕망은 도대체 우리의 욕망을 얼만큼 비틀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괴물의 주술을 어떻게 피해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이 도시는 과연 누구의 도시이고, 누가 공유하는 공간이자 터전이 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관중에게 위선을 걷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최희진, 송지우, 상덕, 홍지수, 홍다솜, 이혜원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8월 30일

*2017년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SSK)의 지원을 받음(NRF-2017S1A3A2066514)

[2021년 6월호] 빈 공간의 모험

[2021년 6월호] 빈 공간의 모험

Commons & Comment | 발행인의 한마디

공유 & Who | 흥미로운 빈 공간, DRP

공유 & How | 빈집과 빈땅 이야기

Site & Sight | 우린 터무늬 있는 집에 산다

Hot & New | <커먼즈의 도전> 북토크


COMMONS & COMMENT

발행인의 한마디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이나 맨해튼의 공원은 순수하게 구체적인 물리성 때문에 도시적 공공 공간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주침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소이기 때문에 공적인 장소인 것이다… 우리는 그런 곳을 마주침의 공간이라 … 부를 수 있다.

앤리 메리필드 지음, 김병화 옮김. 2015. 마주침의 정치. 이후.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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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빈 공간, 동대문 DRP를 가다

비가 올 것만 같은 어스름한 평일 오후 5시의 동대문. 동대문에는 여러 표준시가 있다. 도매시장인 신발 상가의 영업시간은 새벽부터 다음날 낮까지다.  그래서인지 아직 상가에는 인기척조차 없다. 복도와 계단에는 잠시 후 분주하게 돌아갈 거대한 랠리를 기다리는 선수들 같은, 짐이 한가득 쌓여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몇 층을 더 올라가면, 마침내 ‘낙원’에 도착한다.

동대문옥상낙원(Dongdaemoon Rooftop Paradise, DRP)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지상과는 또 다른 시간대가 존재하는 듯하다. 동대문 도심과 창신동 일대의 풍경을 배경으로 옥상 곳곳에는 화초와 채소, 그리고 양봉장까지 있다. 빽빽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여백’을 자처하는 듯했다. 어떻게 동대문이라는 치열한 공간 사이를 비집고 이런 곳이 생겼을까?

그곳에서 만난 박찬국 작가는 말한다. “동대문은 정말 가게 앞의 자기 땅이라는 것을 구획하고 지키는 게 치열한 곳이다. 월세가 워낙 비싸긴 하지만, 가게 앞에서 얼쩡거리거나 애매한 장소에서 왔다 갔다 하거나, 의자만 놓고 앉아도 앉지 말라고 하고. 굉장히 상인들이 예민하다. 경쟁 속에서 자신의 상업 공간을 최적화, 효율화하려고 한다. 반면에 이곳 옥상 같은 곳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아니고, 상인들은 놀 시간도 없고 하니까 그저 쓰레기를 쌓아두는 곳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마침 쓸만한 옥상을 찾던 우리는 이곳이 흥미로웠고, 한동안 20여 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치우고 들어오게 됐다.”

호기심이 삶을 구한다는 것

그는 호기심이 삶을 구한다고 말한다. “인간 자체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니, 아트는 무목적이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문명을 발생시킨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인간이 그렇게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체가 삶의 목표가 맞나. 오히려 뭔가에 대해서 알려고 하고 관심을 가지는 게 삶에서 필수적인 조건이 아닐까. 물리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욕구야 우리에게 당연히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상업적인 활동에 집중하는데, 그것은 흥미롭거나 세계의 인식에 유리하거나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지 않나. 아트는 호기심을 통해 삶 자체의 다양한 관점의 변화, 관계의 변화로 흥미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DRP에서 이뤄진 다양한 실천들은 ‘노는’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아티스트들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말리는 애가 없다. 벌 키워서 양봉을 할까? 그러면 그거에 대해서 누가 말리는 사람이 없다. 진짜 하자, 이렇게 되니까 거기서 사건이 새끼를 친다.”

예컨대 ‘홀리데이 팩토리’ 프로젝트는 옥상에서 층간 소음 없이 노는 법을 고민하던 중, 춤을 개발하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새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의 춤을 구현하기 위해 커다란 모자를 만들려고 했고, 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다 보니 봉제하는 분들과 친분이 생겼다고. 일종의 소사장제처럼 운영되는 생산과정의 특성상 봉제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협력사와 관계를 맺기 위해 마감기한에 매인 일상을 보낸다. ‘홀리데이 팩토리’는 오더메이드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신의 ‘작업’을 하도록 한 프로젝트였다. “봉제사들은 놀랍게도 이 작은 사건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게 뭘까?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이런 것을 왜 만들까?” 봉제사와 옷감의 관계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변화한 것이다. 그에게 호기심과 재미에의 열망은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세계, ‘잠겨있는 어마어마한 세계’를 인식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탐구와 공유의 궤적 자체가 그에게는 ‘아트’다.


흥미로운 빈 공간

여러 지방 도시들에 빈집이나 버려진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쇠퇴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지자체에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부담과 흥미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그는 말한다. 늘어가는 ‘빈 공간’은 부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때 이러한 빈 공간에 개입하는 물질은 “부를 이루는 물질이 아니라 삶의 흥미로운 작동을 하는 물질”이다. 한 예로, 2011년  ‘nonartbutart(논아트밭아트)’ 프로젝트 는 시유지이지만 토호가 몇 대째 점유하고 있는 남양주의 한 논에서 오리 농법을 활용해 벼농사를 지으며 벌인 놀이였다. 그는 ‘진지한’ 노동의 장소인 논을 일명 ‘꼬르뷔제 오붕지’로 탈바꿈시켰다. 르꼬르뷔제의 사보아 주택을 모방한 오리집을 지은 것이다. 오리들은 이 구조물에 올라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본의 아닌 퍼포먼스를 수행했고, 이 흥미로운 광경에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은 하루 종일 논에서 오리만 보고 있었다고. 오리가 생산성 향상의 도구에서, 함께 노는 친구의 관계로 변화한 것이다.

사진설명동대문 옥상낙원(DRP) 전경, 직접 촬영

“문제는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 공간들을 “움켜쥐고” 산다. 그는 이러한 소유를 ‘헛소유’라고 부른다. 얼마든지 재밌게 쓸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사유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헛소유가 아닌 빈소유를 제안한다.

그것은 공간을 소유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쓰면서 흥미를 공유하고, 관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발전하지 말자’가 아니라, 발전한다는 게 뭘까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유하자는 것”이 그의 자세다. “DRP 역시도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빈 공간’에 가까운데, 왜 여기 오면 흥미로울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DRP는 현재 DRP+로 활동을 준비 중이다. 그들의 새로운 놀이가 기대된다.


공유 & HOW

유·자치·환대의 공간, 빈집과 빈땅 이야기

2008년 해방촌에서는 공유에 기초한 새로운 주거 공동체가 등장하였다. 손님들이 주인이 된다는 의미의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를 표방하는 빈집 공동체가 시작된 것이다. 기존의 ‘게스트하우스(guesthouse)’가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상업적 공간이었다면, 빈집은 누구나 손님이자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주인/손님들은 주거비를 함께 부담할 뿐만 아니라, 살림 살이도 함께 공유하였다.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주거와는 달리, 빈집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극단적 개방성과 환대의 윤리를 특징으로 한다. 처음 온 사람도 빈집의 공간과 자본을 공유하며, 빈집에 머무는 사람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

이처럼 공유, 자치, 환대의 가치에 기초한 빈집은 방 세 개 짜리의 가정집에서 출발하여, 곧 여러 개의 빈집으로 이루어진 빈 마을로 확장되었다. 2009년 빈 마을 회의를 시작하였으며, 2010년에는 빈 가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확장의 과정에서 재정, 마을 운영 등에 있어서의 복잡한 이슈들이 제기되었다. 특히 집의 보증금과 소유권은 주요한 논의 주제로 부상하였고, 빈집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 6월 ‘빈마을 금고’인 ‘우주(宇宙)살림협동조합 빈고’를 설립한다. 빈고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아 각 집의 보증금을 대출해 주었으며, 이로써 구성원의 변동과 집들의 계약 및 해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빈고의 출자자들은 출자금액과 상관없이 모두 주인으로서 같은 권리를 갖는다. 이처럼 자발적인 출자를 통해 형성된 공동의 자본은 공동의 공간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이 공간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빈고는 한 발 더 나아가 빈집과 공동체에 돌아오는 수익을 만인과 전면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공동체 은행’으로 발전하였다. 2014년 빈고는 우주살림협동조합에서 공동체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출자와 출자금을 이용하는 활동을 통해 형성된 수입을 다른 공동체와의 연대와 공유지 확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공유지를 확장하기 위해 빈고는 2015년 빈땅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2017년 빈땅 사회적 협동조합을 창립하였다. 빈땅 협동조합은 출자금을 이용해 공유지를 조성 및 확장하며, 출자자들은 해당 공유지를 자유롭게 활용한다. 2017년 홍성에 첫 빈땅이 조성되었으며,  2018년 홍성 빈땅에는 홍성 빈집 키키가 들어섰다. 2021년 현재 빈땅 협동조합은 빈집, 빈 마을과 마찬가지로 공유, 자치, 환대의 가치를 바탕으로 빈땅의 확장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SITE & SIGHT

터무늬 없는 집값! 그래서, 우린 ‘터무늬 있는 집’에 산다

성북구 정릉동. 뽀송뽀송한 섬유 유연제 향기가 나는 빨래방을 지나, 아기와 할머니가 눈 맞추며 ‘곤지곤지’ 하고 있는 대문을 거쳐 오래된 계량기와 녹슨 자전거가 세워진 골목길을 굽이굽이 지나오면 ‘성북청년시민회’라고 적혀있는 큰 문패가 보인다. 이 집은 성북청년시민회가 운영하고 있는 ‘터무늬 있는 집’이다.

사진설명성북청년시민회, 직접 촬영

터무니없는 집세! 열악한 주거 현실!

터무늬 있는 집은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은, 색다른 시도로 만들어진 청년 주택이다. ‘보증금 없음, 월세 10만 원(+@)’이라는 조건만 들어도 ‘헉’소리가 난다.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한 것일까. 나는 성북청년시민회 사무국장이자 내게 터무늬 5호 집 거주 ‘바통’을  넘겨줬던 이혜민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터무늬 있는 집’ 사업은 청년 주거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사회투자지원재단에서 시작된 사업이에요. 이후 SH공사와 북서울 신협이 가담한 거고요. SH에서도 ‘빈집 활용 도시재생 프로젝트’라는 걸 하고 있었어요. 그 사업의 일환으로 터무늬 있는 희망 아지트에 빈집 활용 주택을 제공하고 리모델링을 지원하게 됐어요. 북서울신협에서는 ‘터무늬있는소셜예금’ 상품을 운영해요. 시민출자자들이 북서울 신협을 통해 출자를 하는 거죠. 3년 동안 8억에 가까운 금액이 출자됐어요. 이 출자금은 모두 터무늬 있는 집 보증금으로 사용돼요. 현재 서울, 경기에 걸쳐 열한 채가 운영되고 있고 제각각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 사회적으로 이바지 하는 청년. 미래의 출자자

“사실상 청년들은 시민출자자들의 도움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고 거주할 수 있다는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죠. 터무늬 있는 집에는 청년 단체로만 입주가 가능한데, 청년들이 이곳에 살면서 청년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역 사회와 교류하고 환원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해요. 장기적으로 보면 이 청년들이 나중에 또 다른 청년들을 위해 출자를 하게 될 수도 있고요.”

  • 나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줄 수 있는 든든한 시니어 그룹이 있다는 것

“이 집의 가치 중에 가장 공감을 했던 건 청년의 문제를 진심으로 고민해 주는 시니어 그룹 이라고 생각했어요. 성과 공유회에 가면 다양한 시니어 그룹을 만날 수 있거든요. 끊임없이 질문하고 소통하려고 해요. 덕분에 외롭지 않다, 고립되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투자 지원재단에서도 말해요. 아직 이건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금 서울 청년이 300만 명이잖아요. 앞으로 터무니 있는 집을 비롯해서 다양한 모델의 청년 주택이 더 많이 생겨야겠죠.”


터무늬 있는 집 5호 집에는 현재 세 명의 청년(모경, 주니, 콩)들이 거주하고 있다. 각자 방을 하나씩 사용하고 거실과 부엌을 공유한다. 나는 ‘혜민’의 뒤를 이어 이 집에 들어온 지 6개월, 두 명의 하우스메이트는 1년이 됐다. 바빴던 하루를 정리하며 부엌에 앉아 ‘터무늬 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갑작스러운 ‘인터뷰 톤’에 쑥스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나눈 대화를 재구성했다.

CHAPTER1. 첫인상

  • #성북구 정릉동

모경 : 저는 어렸을 때 정릉이랑 되게 비슷한 동네에서 자랐어요. 정릉은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동네예요. 골목길이 많으니까 차가 안 들어와서 좋더라고요. 이런 보행자 친화 도시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주니 : 여기 골목 구조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신도시는 좌회전, 우회전, 직진, 차가 들어가기 편리한 길로 되어 있잖아요. 이곳은 골목골목에서 현관에 방충망 내려놓고 혹은 집 앞 의자에 앉아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야기하며 계시는 모습을 봤어요. 신도시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되게 새롭게 느껴지는 경험이었어요.

모경 : 초등학교가 되게 많은 것도 특이한 지점이었어요. 그만큼 ‘정상가족’이 많이 살고 있다는 뜻이겠죠. 

주니 : 아이들이 있으면 좀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바로 앞이고 어린이 공원도 뒤에 있고. 원래 여기 초등학교가 있다는 거 알고 아이들 웃음소리 들을 생각에 좀 설렜는데 등교를 안 할 때가 더 많았으니.. 아쉬웠어요.

  • #골목길 끝, 청년 주택

콩 : 이 집이 골목길 끝에 있어서 처음엔 되게 무서웠어요. 올라올 때 괜히 뒤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요즘 골목길 범죄도 많이 일어나잖아요. 사실 빈집을 재생했다는 말 그 자체는 너무 아름다운데 한 편으로는 얼마나 외졌으면 빈집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주니 : 고양시에도 사회적 주택이 생겼는데 되게 열받았던 게..(웃음) 그 집 옆에 쓰레기장이 있더라고요. 외지고 확실히 안 쓰고,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그런 곳에 주택을 지은 거예요. 물론 대안으로 역세권 청년 주택이 있긴 하지만 너무 비싸고 ‘원룸 쪼개기’잖아요. 그러면서 ‘공동체 성’까지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 집은 정말 살 만하다. 이런 생각이. (웃음) 어쨌든 성북이라는 지역은 청년에게 열려 있잖아요. 청년 관련 정책을 만들려고 하는 단체가 있고. 그런 게 이 집에 사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사업’으로 청년 주택을 만드니까. 중심이 청년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CHAPTER2. 느슨한 연대 새로운 가족

모경 : 이런 집에 살지 않았다가 이 집에 오니까 이것도 해보고 싶다 저것도 해보고 싶다 생각해요. 주니에게 듣는 정보도 많고 콩이 얘기해 주는 것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한테 얻는 시너지가 되게 많거든요. 그게 제 일에도 도움이 돼요. 셰어하우스의 진짜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걸 해 보고 싶어요. 계속 재밌는 상상을 해 보게 돼요. 

주니 : 작년에는 플리마켓을 계획했잖아요. 결국 코로나 때문에 못했지만. 

콩 : 사실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게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져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땐 서로의 사생활이 전혀 없었거든요. 작은방에 다섯 명이서 자고. 지금은 서로 더 많이 존중하고, 캘린더에 일정을 공유하는 규칙도 있고요. 사실 우리끼리도 같이 사는 건 처음이다 보니까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게 단숨에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이 첫 독립의 시간이 나 스스로에 대한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가족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모경 : 우리는 같이 사니 언제든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고 또 문제가 생기면 같이 해결할 수 있잖아요. 거실이든 부엌이든 자유롭게 회의하고 소통하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자유로워서 그동안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싶은 것도 이야기하고요. (웃음)


CHAPTER3. 아쉬움

  • #쓰레기 에너지 문제

콩 : 나는 자취를 하면 요리를 엄청 잘 해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처참히 안 해 먹더라고요. 내가 해먹으면 생각보다 맛이 너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고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같이 밥해 먹는 문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주니 : 맞아요. 차라리 돈을 더 주고 맛있고 제대로 된 음식을 사 먹자. 들이는 에너지는 큰데 맛은 별로니까 잘 안 해먹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플라스틱 용기가 되게 많아지고. 우리가 그래도 다 기후변화에 대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웃음) 이 부분에 대해서 같이 조율을 해봐요. 

모경 : 지난겨울에 난방비도 꽤 많이 나왔는데 처음이라서 우리가 좀 실수를 했던 것 같아요. 중앙난방 체제다 보니까. 이번 겨울은 줄일 수 있는 건 줄이면서 집 관리를 해보고 싶어요. 

  • #주거랑 일터랑 한 공간?

주니 : 원래 SH에서 이 사업을 하면서 내건 조건이 이 집을 ‘주거+사무실’ 두 가지 기능으로 사용하자는 건데 그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저는 주거와 일터를 분리하고 싶거든요. 층간 분리가 된다거나 공간 분리가 되면 괜찮은데 우리 집은 단층이고. 청년 단체라도 사실 싸울 수 있잖아. (웃음) “왜 청년들을 지원해 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청년 문제, 주거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하죠. 

모경 : 청년 주택에 예산을 많이 들이고 있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자기 집’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관에서 실사를 자주 나오고 민관 단체와 협의를 해서 문제를 좁혀 나가야 하는 거죠. 이 집에 살아야 하는 청년 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점들이 좀 안타까운 것 같아요.


CHAPTER4. 터무니있는 내일을 위하여

콩 : 사실 신문이나 언론에서 보는 ‘주거 난민’ 수준으로 주거난을 겪고 있진 않았거든요. 계속 부모님 집에서 학교에 다녔고. 물론 4시간이나 통학했지만. 그런 기사들을 보면 무서워서 독립을 못하겠더라고요. 여기 들어오니까 오히려 우리나라 청년의 주거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됐고 공감했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아닌 그들이 여기서 살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어요. 내가 ‘당사자성’을 느껴도 되나? 하는 거죠. 주거난을 겪는 청년임에도 불구하고요.

주니 : 공감하지만 조금 의견이 달라요. 그러니까 부모님의 소득, 내 소득이라는 표면적인 수치 안에 다양한 맥락들이 있다는 거죠. 모든 사람들의 가정사가 다 다르잖아요. 당장 먹고산다고 해서 주거 빈곤에서 벗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거 빈곤 청년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함부로 재단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모경 : 저도 비슷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혜택을 받는 이상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질문하고 계속 답하려고 노력하게 돼요. 

  • #thanks to… 

주니 : 공동체 생활이나 단독주택 사는 것, 터무늬 라는 특이한 케이스, 성북 이런 것들 사이에서 되게 많은 걸 발견하게 돼요. 이 기회가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증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서울에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값진 경험이죠.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지만! 그건 작은 부분이고요. (웃음) 사회 지향적인 것들, 공동체 지향적인 것들을 받았을 때 내가 당장 베풀 순 없더라도 어떻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 같아요. 모경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고 우리가 지역에서의 소비를 하려고 한다거나. 

모경 : 기회가 된다면 직접 시니어 그룹을 만나보고도 싶어요. 저는 마을에 좋은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세대 차이를 무시할 순 없지만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인사이트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청년 상황에 공감을 하고 자기 재산을 출자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터무늬가 시니어 세대와 많이 대화하고 교류하는 장이 되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반대할 수도 있지만. (웃음) 그리고 집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청년들이 이렇게 서로 교류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자신의 살 곳, 새로운 고향을 결정하고, 집의 크기와 모양을 고르고, 자기의 편리에 맞는 가구를 선택하는 과정은 유튜브와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꿈의 한 장면일 뿐이다. 대신, 청년을 기다리는 건 ‘닭장’ 같은 방이다. 보통의 ‘살 궁리’ ‘먹을 궁리’ ‘놀 궁리’ 들이 가능한 세상을 꿈꿔본다. 언젠가 청년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 곳을 고를 수 있는 그날까지. 터무니 있는 집값과 터무니 있는 일상을 만나게 될 때까지. 


HOT & NEW

니은서점 하이엔드 북토크: 커먼즈의 도전

  • 니은서점 하이엔드 북토크: 커먼즈의 도전 | 7.20(화) 오후 7시 30분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최희진, 송지우, 상덕, 홍지수, 홍다솜, 이혜원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6월 25일

*2017년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SSK)의 지원을 받음(NRF-2017S1A3A2066514)

[2021년 5월호] 경의선 공유지를 걷다

[2021년 5월호] 경의선 공유지를 걷다

Commons & Comment | 발행인의 한마디

공유 & Who |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

공유 & How | 경의선 공유지 연대기

Site & Sight | 경의선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문

Hot & New | 책 <커먼즈의 도전> 출간


COMMONS & COMMENT

발행인의 한마디

2010년대 중반부터 5년여 동안 경의선 공덕역 1번 출구 옆, 경의선 철길이 있던 넓은 공터에는 한국 도시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 기이하며, 색다른 느낌의 공간이 고급 고층 아파트 숲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서울의 26번째 자치구”란 도발적 팻말로 자신을 규정하던 ‘경의선 공유지’다.

2015년부터 2020년 5월 초 ‘강제적인’ 자진 철거가 이루어지지 전까지 경의선 공유지에는 예술가, 상인, 문화활동가, 빈민, 연구자 등 여러 시민이 각자 나름의 이유로 모여 벼룩시장, 문화공연, 세미나, 독서 토론회, 어린이 놀이터, 체육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공간, 자원, 지식, 이익, 가치를 같이 만들고 공유하는 ‘커먼즈(COMMONS)’ 실험을 펼쳐왔다.

비록 이 실험은 국가 권력의 압력에 의해 2020년 5월 초에 끝났지만, 경의선 공유지에서 펼쳐진 실험과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상상이 한국 사회와 도시에 던진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의미는 매우 크다.

<커먼즈의 도전> 서문 중. 박배균, 이승원, 김상철, 정기황 편. 2021. 빨간소금


공유 & WHO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

서울 마포 공덕역 1번 출구로 나와 빌딩 숲 사이를 걷다 보면 한적한 공터가 나타난다. 경의선 철도 지상부지다. 현재는 모두 펜스로 둘러싸여 있지만 이곳을 한때나마 ‘모두의 공간’으로 만들어간 이들이 있다. 바로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이다. 이들은 경의선 공유지를 26번째 자치구로 선언하고 이 공간을 함께 가꾸고 다양한 공유 활동과 실험을 진행하였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난 도시 난민, 시민, 예술가, 연구자를 비롯해 이 공간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이들이 오고 갔다.

지난해 봄, 경의선 공유지를 둘러싼 개발 갈등과 정부와의 소송 분쟁으로 인해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은 자진 퇴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공유지의 무분별한 개발과 사유화에 대한 이들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국공유지는 누구의 것인가? 국공유지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이 우리 사회에 던진 중요한 화두다.

사진설명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The Gyeongui Line Commons Movement

경의선 공유지 팟캐스트 ‘커먼커먼커먼즈’

  • 대안적인 삶을 찾기 위한 여행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은 <커먼커먼커먼즈>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로 ‘커먼즈 운동’을 쉽고 재밌게 풀어내기도 했다. 경의선 공유지 활동가인 새롬, 미어캣이 진행했으며 시즌 2에는 활동가 알파도 함께했다. 이들은 2018년 7월 13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시즌 1에서는 커먼즈의 가치에 기반한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는 이들을 초대하여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었다. 2019년에는 <커먼커먼커먼즈> 시즌 2로 개편되었고 ‘도시’, ‘돈’, ‘온라인 플랫폼’ 등 커먼즈의 여러 주제별 전문가를 초청하여 ‘커먼즈’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를 했다.


공유 & HOW

경의선 공유지 연대기

아래 실린 경의선 공유지 연표는 경의선 공유지를 배경으로 발생한 수많은 사건 중 일부를 ‘월간 공유도시’ 편집 동료들의 시선에서 취합, 배열한 것이다. 우리 시선이 가장 강렬히 주목한 것은 경의선 공유지에 담긴 생명의 움직임과 역동성이었다. 그것은 생명과 자유의 마주침이다. 이 마주침이 만든 생성적 힘을 통해 경의선 공유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event)이 되었다. 그것은 ‘도시’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함께, 관료제와 맞선 시민 불복종, 공유를 위한 점유, 대안을 위한 연대라는 새로운 도시 공유 운동의 장을 연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 연표의 마지막 부분이 경의선 공유지 운동의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의 본격적 출현을 위한 서막이길 바란다.

1. 늘장에서 경의선 공유지로의 전환

#시민 불복종 # 비합법적 점거 (2016년 2월 19일 – )

공덕역 부근 철도 유휴부지에 있던 시민들의 장터 늘장(2013~2015 운영)은 구청 및 철도시설관리공단의 일방적 퇴거 요청을 통보받는다. 대기업 중심의 국공유지 활용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이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모여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을 구성해 활동을 시작한다.

  • 2016.2.19.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 시작 파티_경의선 부지를 공존, 공공, 공유의 공간으로!
  • 2016.3.26. 공유지 난장_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 지지 마켓
  • 2016.4.3. 경의선 110년, 어제와 오늘을 걷다_경의선 공유지 시민걷기
  • 2016.4.30. 경의선 공유지 파종 프로젝트_공유지 텃밭 시농제
  • 2016.7.12. 경의선 책의 거리에 대한 질문들_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 연속토론
  • 2016.10.28. 2016 문화활동가대회_공유지를 탈환하라
  • 2016.11.2~5. 경의선공유지 영화제 CGV(Commons Gentrification Variation)


2. 경의선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도시 불평등 문제 #일시적 점유 (2016년 11월 27일 – )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쫓겨나고 소외된 이들이 스스로 딛고 일어설 거점공간으로서 경의선 공유지를 활용하는 안이 구상된다. 서울 25개 자치구들에서 대책 없이 쫓겨난 도시 난민들이 경의선 공유지를 연대와 공유의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의미를 담아 ’26번째 자치구 선언’을 한다.

  • 2016.11.27. 경의선 공유지 자치구 선언_공유지를 탈환하라
  • 2017.5.20. 도시를 묻는다 공유지를 묻는다_우리의 도시를 향한 질문들 좌담회
  • 2017.6.10. 혼자만잘살믄무슨재민겨_경의선공유대잔치
  • 2018.2.8. 협치 서울 정책토론회_대안 공유지 계획, 가능성과 한계
  • 2018.3.24. 경의선 공유지 두 돌잔치 _16년생 공유지


3. 경의선 공유지 추진위원회

#커먼즈 # 대안적 도시재생 (2018년 5월 3일 ~ )

여러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커먼즈의 실천적 사례로 경의선 공유지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이에 경의선 공유지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경의선 공유지 추진 위원회가 발족된다. 이후 추진위는 범대위(경의선 공유지 문제 해결과 철도 부지 공유화를 위한 범시민 공동대책 위원회)로 확장된다.

  • 2018.5.2~4. 커먼즈 네트워크 워크숍_지금, 여기 커먼즈
  • 2018.5.3. 대안적 도시재생 모델을 만들기 위한_경의선 공유지 추진위 발족
  • 2019.4.23. 기자회견_철도시설공단은 공덕역 경의선 공유지에 대기업 중심의 개발을 중단하라
  • 2019.4.26. 연구자의 집 상량식
  • 2019.5.18. 경의선 공유지 문제 해결과 철도 부지 공유화를 위한 범시민 공동대책 위원회 발족
  • 2019.5.27~31. 2019 커먼즈 네트워크 포럼_커먼즈, 공동의 질문
  • 2019.7.15. 긴급 성명_마포구청은 시민을 가두려는가? 철도시설공단은 경의선 공유지 개발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라

4. 안녕, 경의선 공유지

#법적 소송 #자진 철거 #커먼즈 운동의 확장 (2020년 초)

2019년 말, 정부와 공단이 주도한 법적 소송 절차가 진행된다. 사실상 패소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은 ‘일시적 사용의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자진 철거의 방식으로 활동을 갈무리한다.

  • 2020.2.29. 26번째 자치구 자치 구민 총회
  • 2020.3.14. 경의선 공유지 시설 자진철거 시작
  • 2020.3.25. 1차 자진철거 집중의 날
  • 2020.4.1. 안녕 경의선 공유지_현수막 게시 및 바닥 레터링
  • 2020.4.11. / 4.18. 경의선 공유지, 다시 시작 포럼
  • 2020.4.23. 2차 자진철거 집중의 날_안녕 아현 포차
  • 2020.4.24. 자진철거 종료
  • 2020.4.27. 경의선 공유지 폐쇄_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 입장문 발표

SITE & SIGHT

경의선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

우리는 쫓겨났다.
그들은 우리의 오랜 가게가, 집이, 거리가, 세상이
자신들의 것이라 말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쫓겨난 가게에서는 새로운 간판이 오르고
망가진 집 위엔 낯선 아파트가 세워지고
파괴된 포장마차 위에는 화분이 들어섰다.
그렇게 흔적을 지워버리면 우리의 아픈 삶도
지워질 것이라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은 착각했다.

우리는 우리를 지우려 하는
이 도시에 지워지지 않는 화인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모이고 살아가고, 투쟁하며 웃을 것이다.
이 곳에 더 많은 시민들을 초대한다.
도처에 뿌리 뽑힌 이들은 이 곳으로 오라
우리는 웃으면서 분노할 것이고
우리의 삶을 걸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26번째 자치구는 그들이 포기한 자치와 연대,
그리고 희망을 말하는 진짜 자치구가 될 것이다.
오늘부터 명령하고 빼앗던 어제의 서울과 작별한다.
26번째 자치구 만세!

2016. 11. 27 경의선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


HOT & NEW

책 <커먼즈의 도전> 출간

커먼즈의 도전
박배균·이승원·김상철·정기황 편. 2021. 서울대학교아시아도시사회센터기획. 빨간소금

국유지는 국가 소유의 소유지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커먼즈 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경의선 공유지 운동의 탄생, 전환, 상상 이야기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최희진, 송지우, 상덕, 홍지수, 홍다솜, 이혜원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6월 25일

*2017년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SSK)의 지원을 받음(NRF-2017S1A3A2066514)

[2021년 7·8월호]

[2021년 7·8월호]

Commons & Comment | 발행인의 한마디

공유 & Who | 우리가 만난 것도 커뮤니티다!

공유 & How | 투기적 도시화와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

Site & Sight |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

Hot & New |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리뷰

COMMONS & COMMENT

발행인의 한마디

아파트 단지라는 갇히고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투기적 이해에 기초해 도시적 욕망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에 살기를 거부하고,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조우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마을과 도시라는 공유재를 같이 만들고 그 책임과 결과를 나누자는 … 실험들은 ‘강남화’라는 헤게모니적 도시화에 대한 저항 담론과 대안적 도시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경험과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실험들은 도시를 사유재산의 집합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들고 같이 이용하는 공유재로 인식할 수 있는 경험적 기반을 제공해 주어, 궁극적으로는 자산의 사적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시각에 기댄 투기적 도시화에 저항할 수 있는 이념적 기초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배균  2017. ‘자본주의 헤게모니와 대안적 도시 이데올로기’, 서울연구원 편, “희망의 도시”, 한울아카데미. 294

공유 & WHO

우리가 만난 것도 커뮤니티다! _ 콩&요정&도넛 그리고 기선과의 대화

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하는 것에 대한 고민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는 말을요. 가족, 애인, 친구 모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만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로 할 일을 하느라 연락이 뜸하고 독립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적당한 거리가 생길 때. 신기하게도 관계가 더 순탄하게 굴러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대일의 관계가 아닌 다수가 함께 모여 발생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어떻게 해야 ‘적당히’ ‘잘’ 관계 맺을 수 있는 걸까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지만 지독하게 혼자 있고 싶은 마음들이 모인 현대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꿈꾸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하지만 떠올려보면 우리에겐 아무 대가 없이 좋아서 자꾸만 마주치고 싶고 관계 맺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흙을 파며 해가 저물 때까지 놀았던 친구들처럼요. 어쩌면 이런 기억이 훌쩍 커버린 우리에게 또 다른 커뮤니티를 경험하고, 실험하고, 고민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콩, 요정, 도넛은 지금 어떤 ‘커뮤니티’를 꿈꾸고 또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을까요? 커뮤니티 실험자 ‘기선’을 만나기 전, 우리만의 대담이 벌어졌습니다. 


사진설명콩, 요정, 도넛의 대화

콩, 요정, 도넛의 대화

_ 커뮤니티는 ‘놀이’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지는걸까? 

청년 주택에서 첫 독립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그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하느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시는 누군가와 같이 방을 공유하면서 살지는 말아야지 다짐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참 양가적인 게, 고등학교 졸업하니 기숙사에서 투닥거리고 살았던 일들이 너무 그리운 거예요. 결국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더 재밌겠다, 대신 기숙사처럼 모든 공간을 공유하기보다는 나만의 공간만 보장이 된다면 살아볼만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입주를 했습니다.

우리 청년 주택의 경우에는 거주자들끼리 관계 맺고 지역 사회에 환원하자는 서로의 약속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거주자들끼리 얼마나,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하는 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특히 저는 본가와 청년 주택을 오고 가기 때문에 완전히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요. 서로 비슷한 가치관과 지향점을 가졌지만 세세하게 보면 생활 패턴, 하는 일 등이 천차만별이거든요. 취업 준비에 학교 과제에 이미 한껏 지쳤는데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게 부담이 될 때도 있고요. 

자연스레 커뮤니티란 무엇일까? 커뮤니티가 되는 데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사실,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 신나게 떠드는 것도 커뮤니티잖아요. 동네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싶었어요. 찬찬히 제 삶을 돌아보니 정말 ‘커뮤니티 중심’적으로 살았더라고요. 주말마다 참석하는 동네 신문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모두 커뮤니티고요. 자발적이고, 재밌고, 능동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게 꼭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놀이’처럼요! 

요정 _ 커뮤니티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하여 

어영부영 10년이 흘렀네요. 2010년 2월 서울에 올라와 집을 구하러 다녔어요. 대학교 앞 원룸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어요. 동아리, 봉사 활동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해체하기를 반복했어요. 이제는 각자의 길로 들어서며 경조사에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어느 순간엔 SNS로만 소통하게 되었죠. ‘친구 관계는 아는 사이로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 인연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흘러가는 인연이 있음에도, 혈연관계로 얽힌 가족과는 붙잡히고 붙들린 채 지내는 거 같아요. 가족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가족 구성원을 만드는 방법이 결혼뿐인 건지. 그러니까, 단지 혈연이나 동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닌 살아가는 방식을 공유하는 관계를 꿈꾸는 게 이상적인 걸까요? 어떻게 대안 가족이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3-4년간 새롭게 만난 동료이자 커뮤니티가 있는데, 재미 삼아 10년 뒤에 같이 사는 공동체를 이야기하곤 해요. 지난 호에 ‘빈집과 빈땅’을 살펴봤지만, 저는 지금 당장 실제로 시도하지 못하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공동투자할 용기도 없고, 누구와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삶의 실천적 지향점은 있는데, 어떻게 되어야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오늘 주어진 일에 할 수 있는 일로, 그때그때를 살고 있어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지금을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지금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방식을 보았을 때, 저는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도시에 왔다 갔다 하면서 살 수 있는 게 필요해요. 그래서 더욱더 다 거점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이번에 전기선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거점 커뮤니티의 경험을 듣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대가 되어요!

도넛 _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지난해 전셋집을 얻으며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 이전에는 여러 곳을 떠돌며 누군가의 공간에 의탁하는 생활을 했고요.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점점 늘어가는 짐들 때문에 내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혼자인 공간이 생기니 처음엔 좋았지만 정리 안되는 짐들로  가득 찬 집을 보며 자괴감이 늘어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기운이 쫙 빠져 축 처진 상태로 있어요. 그러고 또 집을 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오면 다시 방전된 상태가 되고요. 하나 둘 미뤄둔 것들이 널브러진 형태로 거실과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네요.

저에게 생활 공동체(커뮤니티)는 공간을 함께 잘 사용하는 부분이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것 같아요. 누군가와 어울려 산다는 건 부지런해야 가능한 게 아닌가 싶고요. 정리 안 된 집 구석구석을 보며 그걸 잘 할 자신이 점점 없어지고요. 더 넓은 공간이 생기면 정리를 잘 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가도 우선 버리고 비우는 게 선행되어야지 않을까 하고 또 생각하는데 잘 버리지 못하는 몸에 밴 성격이 버리는 일을 자꾸 주저하게 만들고요. 

더 넓은 개인적인 공간을 갖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만한 공간을 마련할 여력은 없고, 2년의 전세 계약은 곧 끝나가는데 이다음은 어떤 공간에서 살 수 있을지 막막해요. 공간을 함께 쓸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내 공간 마련을 위한 종잣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고..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뭐 없을까를 고민하며 커뮤니티가 뭘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기선과의 대화


Kison キソン
Culture Interpreter / Builder 
Based in Kumamoto,Fukuoka,Tsushima,Kyoto

Q.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 <왔다갔다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세요!

이 프로젝트는 7년 전부터 제가 일본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 친구들이랑 같이 왔다갔다하면서 한국 친구들도 일본 왔을 때 코디네이터도 하고 안내도 하고 그랬어요. 

공동체마다 사람마다 관심이 있는 부분이나, 가는 장소나 만나는 사람도 코디네이터를 하고 기획을 계속 해왔습니다. 

단체마다 요구하는 부분들이 달라서, 예를 들면 퍼머컬처 커뮤니티에서 일본의 공동체 생활이나 퍼머컬처 하는 모습 보고싶다던지, 아니면 자연농이나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다니고 싶다든가. 아니면 음악이나 아트 쪽에서 표현하는 부분에서 한국에서도 해보고 싶다 일본에서도 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이쪽에서 코디네이터도 하고. 다양하게 생활이나 문화 쪽에서 다양하게 배웠었어요.

제가 지금 다섯 개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데 그 커뮤니티를 왔다갔다 하면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마다 색깔이 달라요. 하나는 산속에서 30년 정도 같이 살고 있는 퍼머컬처 기반으로 디자인을 하는 공동체이고, 도쿄나 교토나 도시 안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나 미래나 그런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지는 커뮤니티에도 속하면서. 저 자신도 시골과 도시를 계속 왔다갔다 하고 있어요. 

Q.생활자 커뮤니티가 어떤 계기로 생겨났나요?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하나는 일본 대지진이 있었잖아요 후쿠시마에. 그 이후에 일본에서 공동체 시골쪽에 공동체가 많아졌고 그 이후 2-3년 도시에서 커뮤니티가 많이 생겼는데 하나 큰 공통점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의존을 하고 있는 부분들을 작은 부분들을 볼 수 있는 생활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어떤 것인지를 실험하고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장소를 만들어 나가자 하는 공통점이 있어요. 

도시에서 혼자 살거나 가족끼리 살고 이 커뮤니티 감각이라는 것들의 중요성이 많이 나와있어서, 아마 도쿄나 교토 같은 경우에는 확장 가족이라는 의식이나 컨셉트를 내놓고 이제 사람들이 모여왔거든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되는지 실험하고 있고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의식이나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커뮤니티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같이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어떤 커뮤니티든 여러 가지 문제는 있는데 고민도 있고. 그래도 작년에 그 대마도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어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저 자신은 뭐 도시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도시에서 지역으로 가는 친구들 다 똑같아요. 사람이니까. 생겨나는 고민이나 문제들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부분도 비슷하긴 한데 아무래도 도시 생활이랑 지역생활이랑 방식이 많이 달라서 사람이랑 이렇게 같이 살아가고 있다라던지 같은 산을 올라가고 있다는 감각, 커뮤니티 감각을 같이 실험을 하면서 느끼는 단계에서 도시에서 그런 커뮤니티 감각을 키울 때에 어떤 음식으로 살아가자 하는 말이 필요하거든요. 

일부러 만들어 가려는 노력들이 필요해서. 지역이나 시골쪽에서는 그런 컨셉이나 말이 없어도 같이 체감을 하는 시간들이 너무 많아서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은 금방 나온달까. 그걸 어떻게 사회로 연결을 해야 될지. 이런 고민을 하는 지역 시골 커뮤니티들이 많고 

도시 커뮤니티는 컨셉이나 의식이나 말 언어 이런 것들이 다 있는 상태에서 의식을 하면서 체감으로 이렇게 같은 선을 올라가는데 완전히 프로세스가 다르죠. 저도 그런 기반으로 지역이나 환경이나 사람들이나 그런 부분을 관찰 하면서 그런식으로 커뮤니티 디자인을 생각 하면서 장소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대마도에 커뮤니티를 만들 때 다른 커뮤니티도 비슷한데.. 저는 일단 계절 여름 가을 겨울 이런 계절을 1년을 보내고 디자인을 해야지 그냥 그 사람들이 경험을 해온 것들이나 그 사람이 보고 있는 세계나 시선들이 그냥 그 안에서의 해결 방식 밖에 못만드니까. 거기에 있는 계절이나 환경이나 사람들이나 거기에 모여 오는 사람들 이런 부분을 계속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이제 이건 사업이 아니니까, 라이프 워크 같은 거라서. 뭐 죽을 때까지 하는 직업이기도 하고 작업이기도 하고 그래서 시간 감각이 1년 2년이 아니라 5년 10년 30년. 이런 축에서 발동하다 보니까. 

처음은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이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에 다 똑같이 생각하는 부분이나 모든 사람들이 가치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맛있게 밥을 먹고 잘 자야 된다. 결국에는 이 산의 끝에는 사람들의 의욕은 거기 밖에 없어서. 그래서 대마도에서도 제가 시도한 것은 커뮤니티 빌딩에 있어서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철학이나 사고 이런 얘기를 안 하고 하루하루 맛있게 밥을 같이 먹는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같이 살아가고 있다든지 연결되어 있다든지 이런 마인드가 형성이 되는 것 같아요. 

Q.커뮤니티를 굴러가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개인들이 모여와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데. 개인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런 생각으로 모여오잖아요. 개인이 어떤 생활을 하고 싶고 이런 부분에서 모여 오는데,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하고 싶었던 내가 생각하고있는 부분들이 전체적으로 개인이 아니라 전체라는 부분을 깨닫는 프로세스가 있어서 전체 속에 개인이 있다는 식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는 사례가 많아서. 그렇게 되면 그냥 그 개인이 결국 하고 싶은 것들을 그 안에서 하는 것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응원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그런 관계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개인이기도 하고 전체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공동체로서는 같이 가고 있고. 그런 감각들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이야기이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아도 괜찮죠. 물론 지속가능한 사회를 얘기하고는 있는데.. ‘모든 것들이 지속가능하면 좋다’라는 가치관 자체가 어떤 시대적으로 만들어진 감각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가치라고 생각해야 되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지속 가능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Q.공통의 감각을 만들어 내고 경험하고 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셨는데, 저도 그런 경험을 많이는 못해본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면 좋을까요?

공동체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 모르니까 그래서 만들고 있는 것이죠. 알고 있다면.. 안 만들어도 되는거라서. 공동체 생활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제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장소를 어떤 친구들이 같이 모여서 같이 실험을 하면 더 재밌게 실험을 할 수 있는지 상상을 하면서, 그래서 떠오르는 친구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이나 생각이나 어떤 일상에서 생활 하는지에서 그 공간의 설계나 공간의 크기나 그리고 공간이 어떤 장소 였으면 하는지 그 사람들의 반응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해서 공동체 생활 경험한 게 필요한건 없고 라이프 워크로 죽을 때 까지 실험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니까. 

생활자 형태의 커뮤니티도 있고 회사나 이런 직업의 커뮤니티 같은 것이 당연히 있고, 모든 영역의 커뮤니티가 있으니까.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각도에서. 누가 잘 알고 모르고 그런 얘기는 아니니까.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커뮤니티이지 않을까요.

Q.최근 고민하는 지점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활동을 하면 할수록 내가 인간으로서 밖에 살아갈 수 없구나 하는 고민이 있어요.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어디까지 가더라도 뭔가 사람의 영역에서 밖에 활동을 못 한달까. 그런 고민이 있어요. 내년에 전시 준비를 하고 있어요. 홍콩에서 하는데, 그 부분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밖에 살아갈 수 없고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형태랄까. 인간으로 벗어나는 그냥 존재로서의 존재가 무엇인지. 인간만이 아닌 존재하는 존재가 어떤 부분에 있는 건지 이런 걸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런 고민들을 풀어갈 수 있는 환경, 리듬이 생겨서 되게 고민이었는데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어요. 


공유 & HOW

투기적 도시화와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

모든 것이 사유화, 상품화되는 신자유주의적 도시공간에서 도시를 커먼즈로서 상상하고 실천하는 시도가 있다. 이들 도시 커먼즈는 기존 공간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질적 공간, 즉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8월 공유&How에서는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점과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1. 투기적 도시화

압축적 고도성장 속에서 한국의 도시 공간은 자본과 토건세력, 권위주의 정부의 개발연합에 의해 끊임없이 사유화되었고, 상품화되었다. 바로 한국의 도시가 거쳐온 ‘투기적 도시화’의 길이다. 이러한 투기적 도시에서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시세차익을 노리고 ‘사는 ‘것’에 가깝다.  공간에 대한 권리는 단지 ‘구매력’으로 얻은 사적 소유의 권리로 제한된다. 그리하여 높은 지대를 감당할 수 없는 도시의 빈민, 그리고 공간을 다채롭게 만들어온 기존의 주민, 상인,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축출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는 글로벌 스케일에서도 나타난다. 높은 이윤을 향해 이동하는 글로벌 자본의 흐름은 더욱더 복잡한 투기적 도시화의 지형을 생산한다.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도시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동아프리카의 투기적 도시화에 관한 Goodfellow의 연구에 따르면, 르완다,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낮은 국가들이 최근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급격한 도시화를 이끄는 주요한 추동력 중 하나는 바로 글로벌 자본이다. 부동산과 관련된 엄격한 세금 및 규제가 부재한 제도적 환경과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적 환 경은 이들 국가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본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아디스아바바, 키갈리 등의 도시에는 높은 고층 빌딩과 고급 주택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사진설명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고층 빌딩 및 건축 현장, 사진출처 pixabay

하지만 이러한 도시에서 글로벌 자본이 생산한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인구는 전체 도시민의 약 20%에 불과하다. 동아프리카 인구의 대부분은 새롭게 지어진 고층 빌딩과 고급 주거지를 구입 및 임차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도시에는 아무도 점유하지 않은 빈 껍데기와 같은 공간만이 가득하게 되었고, Goodfellow는 이를 해골 도시(skeleton cityscapes)에 비유하였다. 더불어 부동산 개발의 과정에서 부동산 거품이 형성되었으며, 도시 전반을 점유하였던 기존의 슬럼들은 새로운 공간에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밀려나야만 했다. 즉, 글로벌 자본이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한 빈 공간들이 동아프리카 도시민들의 삶의 공간을 파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뼈대만 남은 공간들은 도시민이 그곳에서 어떠한 사용 가치도 향유하지 못하는 반면, 지구 반대편의 투자자들은 교환가치에 기초하여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산업화를 동반하는 전통적인 도시화의 풍경과는 달리, 동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이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늦게 시작된 국가들은 투기적 자본의 힘이 도시화와 도시 경제의 성장을 이끈다. 이는 투기적 도시화가 비단 공간 불평등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생산 부문으로의 자본 유입을 저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프리카 도시민들은 생산 부문 및 경제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생활 수준의 향상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향유하지 못할 장소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투기적 도시화는 한 국가 내에서의 불균등 발전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케일에서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설명Ndegeya, C., Rwandan Slum Dwellers Forced out for High-rise Project, The EastAfrican, 2018

2. 투기적 도시의 헤테로토피아들

Michel Foucault는 우리에게 이질성과 이소성의 감각을 가져다주는 반공간(contre-spaces)이자,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에 맞서는 장소로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개념을 제시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모든 공간들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그의 비유에서 헤테로토피아가 기존의 공간들과 이질적인 새로운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enry Lefebvre는 자본주의 및 국가가 생산하고 합리화하는 공간 질서, 즉 이소토피(isotopy)에 이질적으로 존재하며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헤테로토피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기존의 공간 질서와 우리의 일상생활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영역이자 운동이며, 전통적인 도시의 중심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중심성을 창조할 가능성을 담지한다.

Torre David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수엘라의 토레 다비드(Torre David)는 투기적 도시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토레 다비드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45층의 오피스 건물이다. 1993년 완공을 앞두고 사업시행자인 David Brillembourg가 사망하며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1994년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로 건설 자금을 제공하던 금융회사들이 파산하면서 완전히 버려지게 되었다. 이 버려진 건물을 찾은 것은 다름 아닌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와 주거지를 잃은 도시 빈민들이었다. 이들은 경제 위기 이후 도시 외곽에서 비공식 주거지를 형성해 살고 있었지만, 2007년 거대한 홍수로 인해 주거지가 파괴되면서 방치된 토레 다비드를 찾았다. 약 750여 가구가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토레 다비드를 점유함에 따라, 토레 다비드는 세계 최고층의 ‘수직형 슬럼(vertical slum)’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토레 다비드의 주민들은 건물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건물을 점차 변형시켜 나갔다. 또한 거주권 확보를 위해 주민 공동체를 결성하고, 2009년에는 점거 2년 만에 ‘Cooperativa de Vivienda Caciques de Venezuela’라는 조합을 설립하였다.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았던 토레 다비드는 점차 하나의 마을로써 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식료품점, 잡화점, 교회, 농구장 등의 시설이 들어섰으며, 주민들은 공용 공간을 함께 관리하고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자율적 규칙들을 수립해나갔다. 많은 건축들과 학자들은 주거지이자 공동체로서 토레 다비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으며, 그곳에서부터 비공식 주거지의 혁신과 실험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2014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토레 다비드를 상업용 건물로 개발하기 위해 중국 투자자들과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약 1,200 가구들을 퇴거시켰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주민들을 사회주택에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헤테로토피아로서 토레 다비드의 의미와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조치라 할 수 있다.

Art Squat

토레 다비드가 시민들의 우연적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라면, 유럽의 ‘아트 스쾃’은 투기적 도시를 예술적으로 전유하려는 보다 의식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스쾃’(squat)은 오스트리아 목동들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으로 양 떼를 몰고 가는 행위에서 탄생한 말이다. 산업혁명 이후 주거공간의 부족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은 비와 추위를 막아줄 수 있을 만한 빈 공간이 발견되면, 그곳에 흘러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스쾃은 “어떠한 허가도 권리도 없는 점유”라는 사회적 의미를 띤 단어로 쓰이게 된다. 삶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시작된 ‘스쾃’이라는 행위는 68혁명 이후 문화적, 사상적인 의미를 담지한 실천으로 발전한다. 70년대에 이르러 반정부, 반문화주의와 함께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몇몇 예술가, 사상가들은 그들의 작업과 전시를 전개할 공간을 물색하며 스쾃이라는 방법론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들은 ‘아트 스쾃’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보수적인 예술 정책과 다소 느슨한 정부의 대응 덕분에 많은 아트 스쾃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트 스쾃들은 이렇게 방치된 빈 공간을 점유하고,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공고한 ‘사적 소유권’의 신화에 맞선다. 

‘리볼리(Rivoli) 가’는 파리의 대표적인 상업가로 중 하나이다. 이 길 한복판에는, 파사드에 젖가슴 모양의 이상한 구조물을 달고 있는 이질적인 건물이 있다. 바로 아트 스쾃으로 시작해, 이제는 유명한 파리의 문화예술공간이 된 ‘59 Rivoli’이다. 정확하게는, 59 Rivoli는 예술가 집단이 창작 및 전시 활동을 하고 있는 ‘로베르네 집-자유로운 전자(Chez Robert – Electron Libre)’가 위치한 건물의 주소이다. 원래 이 건물은 프랑스 은행인 크레디 리오네(Crédit Lyonais)의 소유였으나, 은행이 파산하면서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러나 세 명의 예술가들이 14년간 방치돼 있던 곳을 1999년 11월 1일, 불법 점거함으로써 빈 건물은 새로운 문화적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예술가들이 이 건물을 점거하자 건물주는 예술가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점거한지 5개월이 채 안 돼 법원으로부터 강제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예술가들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철거를 6개월 뒤로 미루고 그동안 언론과 사회단체에 도움을 구했다. 이어 시민들이 철거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면서, 2003년 파리시는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매입해 매우 싼 가격에 이들에게 임대했다. 그렇게 2009년 새롭게 단장된 모습으로 59 Rivoli는 ‘aftersquat’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 문을 열게 된 것이다. Rivoli의 현재 이곳에서 열리는 예술 행사들은 방문객들에게 모두 개방되며, 이들은 개방된 시간에 건물을 드나들며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을 직접 지켜보며 그들과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사진설명La Generale 소개 video

한편  ‘La Generale’은 비교적 현재 진행형인 아트 스쾃이다. 59 Rivoli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 확보를 위해 버려진 교육부 건물의 일부를 점거했다. 라 제네랄은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의 레지던시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요리사, 학자, 배우, 장식가, 감독, 수목 재배자, 양봉가, 사진가, 감독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약 15명의 활동가와 2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컬렉티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이 ‘정치 생태학적 실험실’로서 스스로를 묘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들은 2019년 12월까지 부분적 불법 점유 상태였던 건물 옥상에서 채소를 재배하기도 하고, 발효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실험하며 요리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음식이 경작되고 재배되고, 소비, 유통, 가공되는 매우 일상적인 과정에 내재하는 정치적, 생태학적 화두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La Generale이 분투하는 것은 투기적 도시뿐 아니라 그들 공동체 내부의 문제다. 어느 누구도 독재하지 않고,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소통을 통한 의사 결정을 위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데 매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때로는 갈등도 불사한다. 공간과 그것을 둘러싼 공동체 내부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커먼즈’적인 고민은  무엇보다 본격적인 ‘정치 생태적’인 실험은 ‘공동의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해나가기 위한 그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설명La Generale의 정원, 사진 출처 Giovanni Del Brenna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함께 최근 많은 아트 스쾃들은 제도의 테두리 내로 진입하기도 했다. 건물주와 이용 대차 계약을 맺거나, 관광지화되며 상업적 도시의 스펙터클로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제3의 방향성을 가진 공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대표적인 예로 폐 병원 부지에 예술인 레지던시와 난민 리셉션을 기획한 les grands voisions 프로젝트).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아트 스쾃들이 국지적으로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영리한 자본이 지속해서 매끈하게 만들어가는 도시에 균열을 내는 헤테로토피아적 실천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기존에 예술이 소통되고 향유되는 방식에 있어서의 부르주아적인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이주자, 부랑자 등과 같이 사회와 예술로부터 소외된 계층들과 함께 ‘감각적인 것을 나누는’ 시도를 실천해가고 있다.

3. 헤테로 토피아와 커먼즈 

도시 커먼즈 운동은 자본축적의 논리에 기초하여 형성된 기존 도시의 배열을 바꾸어 커먼즈로서의 도시(city as a commons)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도시 속 헤테로토피아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 생산에 필요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의 움직임, 그리고 사적 소유권의 논리에 지배된 종래의 도시 공간에 대하여 도시 커먼즈 운동은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전통적인 공간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의제, 권리 담론, 그리고 이들이 출현하는 거점들의 연결을 통해 이질적인 장소를 창조하고, 이는 다시 새로운 실천과 결합된다.  토레 다비드와 스쾃 아틀리에의 사례는 도시 커먼즈 운동이 투기적 도시화에 대항하는 헤테로토피아를 형성하며, 이로써 신자유주의적 공간 질서에 사로잡힌 도시를 해방적 공간으로 전유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투기적 도시의 내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역. 문학과지성사. 2014. p. 14.

민진영. 프랑스 예술 스쾃 운동 연구. 한국프랑스학논집, 81, 2013. pp. 243-278.

신현방. 발전주의 도시화와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저항의 연대. 공간과 사회, 57,2016. pp. 5–14.

이승원. 도시 커먼즈와 민주주의 도시 커먼즈 운동의 특징과 동학에 관한 이론적 재고찰. 공간과 사회. 68. 2019. pp. 134-174.

Goodfellow, Tom. Urban fortunes and skeleton cityscapes: real estate and late urbanization in Kigali and Addis Ababa. International Journal of Urban and Regional Research, 41(5), 2017, pp. 786-803.

Gómez, Manuel A. The Tower of David: Social order in a vertical community. FIU L. Rev., 10, 2014. pp. 214-238.

Ndegeya, C., Rwandan Slum Dwellers Forced out for High-rise Project, The EastAfrican, 2018, URL: https://www.theeastafrican.co.ke/tea/rwanda-today/news/rwandan-slum-dwellers-forced-out-for-high-rise-project–1384688.

Santos Junior. Orlando Alves dos. “Urban common space, heterotopia and the right to the city: reflections on the ideas of Henri Lefebvre and David Harvey.” urbe. Revista Brasileira de Gestão Urbana, 6, 2014, pp. 146-157.

Torre David. INTERLAB. 2008. URL: http://interlab.kr/archives/4571   


SITE & SIGHT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 워크숍

지난 8월 19-20일, 제10회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이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를 주제로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8월 Site & Sight은 워크숍의 현장과 함께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가 제안하는 포스트 COVID-19 시대의 포용도시를 위한 시각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국가의 연구자와 활동가, 공무원과 결성한 글로벌 협력 플랫폼입니다. 이들 도시는 포용도시의 실현을 위해 오랜 기간 실천을 이어왔으며, 각 도시들을 상호 간 끝없는 경쟁에 밀어 넣었던 기존의 관습을 지양하고 도시 간 협력을 바탕으로 포용도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연대합니다. 그리고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삶의 기회와 인권을 보장하고,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규명하는 연구를 지향합니다.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2011년 3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워크숍을 시작으로 매해 국제 워크숍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 포용도시네트워크의 주관으로 제10회 워크숍이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로, COVID-19 위기가 드러낸 도시의 문제들을 되짚어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포용도시를 확장할 수 있는 실천적 수단들을 제안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의 연구자, 활동가, 공무원 등이 모여 총 4개의 세션에 걸쳐 COVID-19시대 동아시아 도시와 사회적 약자들의 현황, 공공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10주년 기념 특별 세션에서는 COVID-19시대 동아시아 도시와 홈리스의 현실, 과제, 그리고 이에 대항한 다양한 도시들의 전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동아시아 도시들의 사례는 사회 경제적 조건에 따라 COVID-19 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은 바로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COVID-19은 도시에 배태된 불평등의 논리와 문제점들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면에 드러냈습니다. 수많은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투기적 도시화와 공간 상품화의 문제입니다. 이윤 추구에 따른 투기적 도시화는 주거비 상승,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문제를 초래해왔으며, 이와 같은 문제들은 COVID-19 이후 더욱 악화되어 사회적 약자들을 도시 공간에서 내몰고 있습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COVID-19 이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시공간의 차별과 배제가 더욱 가혹해지는 현실을 조명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포용도시를 더욱 확장하는 방안을 다루었습니다.


사진설명제10회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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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리뷰

사진설명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포스터

악에 대한 분투기를 쓰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인간이 자궁 속에 잉태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각인된 자연스런 본질이 아니다. 존 롤즈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과 ‘원초적 입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이를 차별하거나 혐오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원초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공정과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서 지켜야하는 어떤 지향점일 뿐이다. 다른 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 악한 행위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잘못 투영된 욕망이 그 욕망의 실현을 가로막는 원인을 잘못 찾는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는 자신들의 행위를 악한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 착각한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지난 2020년 3월 개교한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강서지역에 설립되는 과정에서 발달장애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이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향한 정당한 듯 포장된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맞서 싸운 분투기이다. 

이들의 분투기는 투기적 도시화 속에서 일그러진 우리 자신의 모습, 깨어진 거울 조각들 속에서 거침없이 비춰진 도시민의 분열되고 충돌하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 다큐를 보는 내내 어떤 분노와 슬픔과 함께 부끄러움이 마음 한 구석에서 솟구치는 까닭은 아마도 이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한 대응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비춰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주 오랫동안 지극히 비정상적인 생활이 평범하게 이어져왔었다.

학교 가는 시간 평균 3-4시간. 몸과 마음이 불편한 강서구 거주 장애 학생들은 구로구에 있는 학교를 가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차에 힘든 몸을 싣고 일찌감치 학교로 향한다. 그때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 학교로 등교하는 또래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동네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몸이 불편할수록 등교길이 더욱 편해야 하지만, 오히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더 먼 곳으로 매일 유배가듯 통학해야 했다. 동네 학교에서는 통합교육을 피했다. ‘정상 학생’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장애학생’이 방해한다는 편견이 동네 학교의 통합교육을 막아버렸고, 장애학생들은 갈 곳을 잃었고, 그렇게 이 비정상이 평범함이 되어버렸다. 원치않는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들의 삶 곳곳에 폭력이 스며들어 있었다.  

희망, 재개발 욕망의 주술로 괴물의 야욕이 되다.

학부모들의 요구와 교육청의 의지로 동네 어느 폐교부지를 활용해서 강서구와 인근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세워질 계획이 마련되었다. 서울에 특수학교가 추가로 새워지는 것이 17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 동안 세워진 쇼핑몰, 문화체육시설의 수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처음엔 순탄해 보였다. 하지만, 이 지역 국회의원 (당시 김성태 의원)이 이 폐교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아닌 공약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애시당초 교육부지에 다른 용도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부지에는 학교를 짓는 것이고, 한방병원을 지으려면 다른 공공부지를 확보해서 지으면 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폐교부지 국립한방병원 유치’ 망언은 지역 주민 사이 재개발 욕망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국립한방병원이 들어서면 건강하고 안전한 돌봄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이제 우리도 다른 강남처럼 잘 살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지역주민들에게 주술을 걸어버렸다. 

‘특수학교 때문이다, 특수학교가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특수학교 학생들때문에 우리가 가난해진다, 얼마나 우리를 무시하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를 지어서 우리를 또 힘들게 하냐’.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재개발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주택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이 지역에 저소득층을 위한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세웠다. 당연히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 주민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 학생수가 줄어들고,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있던 이 학교는 타 지역 주민의 외면 속에서 결국 폐교되었다. 그렇게 이 지역은 점차 다른 지역과 고립되어 갔다. 

특수학교지만, 폐교에 학교가 들어선다니 다행이었다. 지역주민들의 고립감이 해소될 길이 열렸다. 하지만, 자기 지역구에서 표심을 얻어야 했던 국회의원이 뱉어낸 말도 안되는 공약이 결국 방향잃은 기관총이 되어 장애학생과 가족은 물론 지역 주민의 가슴을 향해 총알을 난사해 버리고 말았다. 주민들 사이 파고든 비틀리고 오염된 재개발 욕망은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동네에 있는 학교를 다니겠다는 아주 당연한 소망을 품은  장애 학생과 가족을 동네의 번영을 파괴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 투기적 욕망은 주민들을 서로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연한 권리가 거래되었다.

저 투기적 욕망에 맞서 엄마들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통곡과 절규를 했고, 무릎을 꿇었고, 삭발을 했고, 몸을 던져 항의하기도 했다. 혐오와 눈물로 점철된 공청회가 몇차례 지난 후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가 예정대로 세워지기로 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학교가 세워지는 배경 뒤엔 ‘어쩔 수 없이’ 투기적 욕망과 타협하기 위해 특수학교 설립 조건으로 이 동네에 국립한방병원 건립을 위한 협력이 약속된 것이다. 

엄마들은 반대했다. 나쁜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동네에 특수학교가 세워질 때마다 지역 개발에 대한 조건이 뒤따라야 하고, 그 조건없이 특수학교가 세워지기 어렵게 되는 나쁜 사례를 의사결정자들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할 교육에 대한 권리가 거래된 것이다. 타협할 조건이 없으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식만 생각한다면 거래가 뭐든 상관없이 환영하고 끝냈겠지만, 모든 장애학생들이 다 똑같은 자식이었다. 이들이 경험한 연대의 힘이었다. 내 자식을 위해 다른 이의 자식 가슴에 못 박을 순 없었다. 그래서, 엄마들은 다시 싸워야 했고, 결국 2020년 3월에 폐교되었던 공진 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개교했다. 이렇게 이들의 분투기는 잠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장애학생들의 진짜 어려움은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이다. 그래서 특수학교 설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보호받는 미성년자의 시기를 지나 법적 성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엄마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자식 보다 하루 늦게 세상을 뜨는 것이다(그러면서도,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 생에 태어나도 이들의 엄마로 태어나겠다고, 그 땐 더 잘해주겠다고 말한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미래에 겪을 어려움은 이미 서진학교보다 조금 일찍 개원한 ‘서울시 발달장애인 훈련센터’가 만들어진 아픔의 역사에서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엄마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어야했고, 장애인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그리고 엄마들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죄인이고 천형인 것처럼 멸시받아야 했었다. 

그래서,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특수학교만 지어선 안된다. 허울뿐일 수 있다. 이들의 생애주기가 존엄할 수 있는 여러 기반이 함께 해야 한다. 훈련센터, 자립 주거시설, 베리어 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이 당연히 적용된 문화체육시설과 교통 및 이동서비스 등 그냥 사람이 편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함께 있어야 한다.

위선을 걷어낼 소중한 기회

발달장애인은 아니지만 정신장애인의 가족으로서 영상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억한 감정이 솟구쳐 엔딩 크래딧이 오르는 마지막 장면까지 울음을 참으며 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학생들보다, 그 옆에서 자식들의 모든 걸 기억해야 하고, 항상 곁에 있어야 하고, 울지도 화내지도 원망하지도 말아야 하면서 늘 격려해야하는 엄마들의 모습, 그리고 가끔 비쳐지는 가족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며 소리없는 오열을 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어느 순간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저 엄마들이 아니라, 강당 뒤쪽에서 서서 악을 쓰는 주민들 사이에서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였구나.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은 자가 나였구나. 내 몸의 소리없는 오열은 내 의식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구나.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어떻게 아름답게 맞설 수 있을까?”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과 함께, “투기적 도시개발의 욕망은 도대체 우리의 욕망을 얼만큼 비틀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괴물의 주술을 어떻게 피해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이 도시는 과연 누구의 도시이고, 누가 공유하는 공간이자 터전이 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관중에게 위선을 걷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최희진, 송지우, 상덕, 홍지수, 홍다솜, 이혜원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8월 30일

*2017년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SSK)의 지원을 받음(NRF-2017S1A3A2066514)

터무니없는 집값! 그래서 우린 ‘터무늬 있는 집’에 산다.

성북구 정릉동. 뽀송뽀송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는 빨래방을 지나, 아기와 할머니가 눈 맞추며 ‘곤지곤지’ 하고 있는 대문을 거쳐 오래된 계량기와 녹슨 자전거가 세워진 골목길을 굽이굽이 지나오면 ‘성북청년시민회’라고 적혀있는 큰 문패가 보인다. 

이 집은 성북청년시민회가 운영하고 있는 ‘터무늬 있는 집’이다. 

터무니없는 집세! 열악한 주거 현실! 

터무늬 있는 집은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은, 색다른 시도로 만들어진 청년 주택이다. ‘보증금 없음, 월세 10만원(+@)’이라는 조건만 들어도 ‘헉’소리가 난다.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한 것일까. 나는 성북청년시민회 사무국장이자 내게 터무늬 5호집 거주 ‘바톤’을  넘겨줬던 이혜민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터무늬 있는 집’ 사업은 청년 주거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했던 사회투자지원재단에서 시작된 사업이에요. 이후 SH공사와 북서울신협이 가담한 거고요. SH에서도 ‘빈집활용도시재생프로젝트’라는 걸 하고 있었어요. 그 사업의 일환으로 터무늬 있는 희망아지트에 빈집활용 주택을 제공하고 리모델링을 지원하게 됐어요. 북서울신협에서는 ‘터무늬있는소셜예금’ 상품을 운영해요. 시민출자자들이 북서울신협을 통해 출자를 하는 거죠. 3년 동안 8억에 가까운 금액이 출자됐어요. 이 출자금은 모두 터무늬 있는 집 보증금으로 사용돼요. 현재 서울, 경기에 걸쳐 열 한 채가 운영되고 있고 제각각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사회적으로 이바지 하는 청년. 미래의 출자자

“사실상 청년들은 시민출자자들의 도움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고 거주할 수 있다는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죠. 터무늬 있는 집에는 청년 단체로만 입주가 가능한데, 청년들이 이곳에 살면서 청년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역 사회와 교류하고 환원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해요. 장기적으로 보면 이 청년들이 나중에 또 다른 청년들을 위해 출자를 하게 될 수도 있고요.”

나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줄 수 있는 든든한 시니어그룹이 있다는 것

“이 집의 가치 중에 가장 공감을 했던 건 청년의 문제를 진심으로 고민해주는 시니어그룹 이라고 생각했어요. 성과 공유회에 가면 다양한 시니어그룹을 만날 수 있거든요. 끊임없이 질문하고 소통하려고 해요. 덕분에 외롭지 않다, 고립되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투자지원재단에서도 말해요. 아직 이건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금 서울 청년이 300만명이잖아요. 앞으로 터무니 있는 집을 비롯해서 다양한 모델의 청년 주택이 더 많이 생겨야 겠죠.” 

터무늬 있는 집 5호집에는 현재 세 명의 청년(모경, 주니, 콩)들이 거주 하고 있다. 각자 방을 하나씩 사용하고 거실과 부엌을 공유한다. 나는 ‘혜민’의 뒤를 이어 이 집에 들어온 지 6개월, 두 명의 하우스메이트는 1년이 됐다. 바빴던 하루를 정리하며 부엌에 앉아 ‘터무늬 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갑작스러운 ‘인터뷰 톤’에 쑥쓰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나눈 대화를 재구성했다. 

CHAPTER1. 첫인상 

#성북구 정릉동

모경 저는 어렸을 때 정릉이랑 되게 비슷한 동네에서 자랐어요. 정릉은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동네예요. 골목길이 많으니까 차가 안 들어와서 좋더라고요. 이런 보행자 친화 도시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주니 : 여기 골목 구조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신도시는 좌회전, 우회전, 직진, 차가 들어가기 편리한 길로 되어 있잖아요. 이곳은 골목골목에서 현관에 방충망 내려놓고 혹은 집 앞 의자에 앉아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야기하며 계시는 모습을 봤어요. 신도시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되게 새롭게 느껴지는 경험이었어요.

모경 : 초등학교가 되게 많은 것도 특이한 지점이었어요. 그만큼 ‘정상가족’이 많이 살고 있다는 뜻이겠죠. 

주니 : 아이들이 있으면 좀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바로 앞이고 어린이 공원도 뒤에 있고. 원래 여기 초등학교가 있다는 거 알고 아이들 웃음소리 들을 생각에 좀 설렜는데 등교를 안 할 때가 더 많았으니.. 아쉬웠어요. 

#골목길 끝, 청년 주택

: 이 집이 골목길 끝에 있어서 처음엔 되게 무서웠어요. 올라올 때 괜히 뒤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요즘 골목길 범죄도 많이 일어나잖아요. 사실 빈집을 재생했다는 말 그 자체는 너무 아름다운데 한 편으로는 얼마나 외졌으면 빈집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주니 : 고양시에도 사회적 주택이 생겼는데 되게 열 받았던 게..(웃음) 그 집 옆에 쓰레기장이 있더라고요. 외지고 확실히 안 쓰고,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그런 곳에 주택을 지은 거예요. 물론 대안으로 역세권 청년 주택이 있긴 하지만 너무 비싸고 ‘원룸 쪼개기’ 잖아요. 그러면서 ‘공동체 성’까지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 집은 정말 살 만 하다. 이런 생각이. (웃음) 어쨌든 성북이라는 지역은 청년에게 열려 있잖아요. 청년 관련 정책을 만들려고 하는 단체가 있고. 그런 게 이 집에 사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사업’으로 청년 주택을 만드니까. 중심이 청년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CHAPTER2. 느슨한 연대 새로운 가족

모경 : 이런 집에 살지 않았다가 이 집에 오니까 이것도 해보고 싶다 저것도 해보고 싶다 생각해요. 주니에게 듣는 정보도 많고 콩이 얘기해주는 것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한테 얻는 시너지가 되게 많거든요. 그게 제 일에도 도움이 돼요. 쉐어하우스의 진짜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걸 해 보고 싶어요. 계속 재밌는 상상을 해 보게 돼요. 

주니 : 작년에는 플리마켓을 계획했잖아요. 결국 코로나 때문에 못했지만. 

: 사실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게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져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 땐 서로의 사생활이 전혀 없었거든요. 작은 방에 다섯 명이서 자고. 지금은 서로 더 많이 존중하고, 캘린더에 일정을 공유하는 규칙도 있고요. 사실 우리끼리도 같이 사는 건 처음이다 보니까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게 단숨에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이 첫 독립의 시간이 나 스스로에 대한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가족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모경 : 우리는 같이 사니 언제든 만나고 이야기 할 수 있고 또 문제가 생기면 같이 해결할 수 있잖아요. 거실이든 부엌이든 자유롭게 회의 하고 소통하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자유로워서 그동안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없다 싶은 것도 이야기 하고요. (웃음) 

CHAPTER3. 아쉬움 

#쓰레기 에너지 문제

: 나는 자취를 하면 요리를 엄청 잘 해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처참히 안 해 먹더라고요. 내가 해먹으면 생각보다 맛이 너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고요. 한달에 한번이라도 같이 밥 해먹는 문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주니 : 맞아요. 차라리 돈을 더 주고 맛있고 제대로 된 음식을 사 먹자. 들이는 에너지는 큰데 맛은 별로니까 잘 안 해먹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플라스틱 용기가 되게 많아지고. 우리가 그래도 다 기후변화에 대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웃음) 이 부분에 대해서 같이 조율을 해봐요. 

모경 : 지난겨울에 난방비도 꽤 많이 나왔는데 처음이라서 우리가 좀 실수를 했던 것 같아요. 중앙난방 체제다 보니까. 이번 겨울은 줄일 수 있는 건 줄이면서 집 관리를 해보고 싶어요. 

#주거랑 일터랑 한 공간? 

주니 : 원래 SH에서 이 사업을 하면서 내건 조건이 이 집을 ‘주거+사무실’ 두 가지 기능으로 사용하자는 건데 그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저는 주거와 일터를 분리 하고 싶거든요. 층간 분리가 된다거나 공간 분리가 되면 괜찮은데 우리 집은 단층이고. 청년단체라도 사실 싸울 수 있잖아. (웃음) “왜 청년들을 지원해줘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청년 문제, 주거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하죠. 

모경 : 청년 주택에 예산을 많이 들이고 있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자기 집’ 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관에서 실사를 자주 나오고 민관 단체와 협의를 해서 문제를 좁혀 나가야 하는 거죠. 이 집에 살아야 하는 청년 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점들이 좀 안타까운 것 같아요. 

CHAPTER4. 터무니있는 내일을 위하여

: 사실 신문이나 언론에서 보는 ‘주거 난민’ 수준으로 주거 난을 겪고 있진 않았거든요. 계속 부모님 집에서 학교에 다녔고. 물론 4시간이나 통학했지만. 그런 기사들을 보면 무서워서 독립을 못하겠더라고요. 여기 들어오니까 오히려 우리나라 청년의 주거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됐고 공감했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아닌 그들이 여기서 살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어요. 내가 ‘당사자성’을 느껴도 되나? 하는 거죠. 주거 난을 겪는 청년임에도 불구하고요.

주니 : 공감하지만 조금 의견이 달라요. 그러니까 부모님의 소득, 내 소득이라는 표면적인 수치 안에 다양한 맥락들이 있다는 거죠. 모든 사람들의 가정사가 다 다르잖아요. 당장 먹고 산다고 해서 주거 빈곤에서 벗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거 빈곤 청년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함부로 재단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모경 : 저도 비슷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혜택을 받는 이상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질문하고 계속 답하려고 노력하게 돼요. 

#thanks to… 

주니 : 공동체 생활이나 단독주택 사는 것, 터무늬 라는 특이한 케이스, 성북 이런 것들 사이에서 되게 많은 걸 발견하게 돼요. 이 기회가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증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서울에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값진 경험이죠.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지만! 그건 작은 부분이고요. (웃음) 사회 지향적인 것들, 공동체 지향적인 것들을 받았을 때 내가 당장 베풀 순 없더라도 어떻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 같아요. 모경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고 우리가 지역에서의 소비를 하려고 한다거나. 

모경 : 기회가 된다면 직접 시니어 그룹을 만나보고도 싶어요. 저는 마을에 좋은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세대 차이를 무시할 순 없지만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인사이트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청년 상황에 공감을 하고 자기 재산을 출자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터무늬가 시니어 세대와 많이 대화하고 교류하는 장이 되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반대할 수도 있지만. (웃음) 그리고 집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청년들이 이렇게 서로 교류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자신의 살 곳, 새로운 고향을 결정하고, 집의 크기와 모양을 고르고, 자기의 편리에 맞는 가구를 선택하는 과정은 유튜브와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꿈의 한 장면일 뿐이다. 대신, 청년을 기다리는 건 ‘닭장’ 같은 방이다. 보통의 ‘살궁리’ ‘먹을궁리’ ‘놀궁리’ 들이 가능한 세상을 꿈꿔본다. 언젠가 청년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 곳을 고를 수 있는 그 날까지. 터무니있는 집값과 터무니있는 일상을 만나게 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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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빈공간, 동대문 DRP를 가다

비가 올 것만 같은 어스름한 평일 오후 5시의 동대문. 동대문에는 여러 표준시가 있다. 도매시장인 신발상가의 영업시간은 새벽부터 다음날 낮까지다.  그래서인지 아직 상가에는 인기척조차 없다. 복도와 계단에는 잠시 후 분주하게 돌아갈 거대한 랠리를 기다리는 선수들 같은, 짐이 한가득 쌓여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몇 층을 더 올라가면, 마침내 ‘낙원’에 도착한다.      

    

동대문옥상낙원(Dongdaemoon Rooftop Paradise, DRP)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지상과는 또 다른 시간대가 존재하는 듯 하다. 동대문 도심과 창신동 일대의 풍경을 배경으로 옥상 곳곳에는 화초와 채소, 그리고 양봉장까지 있다. 빽빽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여백’을 자처하는 듯했다. 어떻게 동대문이라는 치열한 공간 사이를 비집고 이런 곳이 생겼을까? 

그곳에서 만난 박찬국 작가는 말한다. “동대문은 정말 가게 앞의 자기땅이라는 것을 구획하고 지키는 게 치열한 곳이다. 월세가 워낙 비싸긴 하지만, 가게 앞에서 얼쩡거리거나 애매한 장소에서 왔다갔다 하거나, 의자만 놓고 앉아도 앉지말라고 하고. 굉장히 상인들이 예민하다. 경쟁 속에서 자신의 상업 공간을 최적화, 효율화하려고 한다. 반면에 이곳 옥상 같은 곳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아니고, 상인들은 놀 시간도 없고 하니까 그저 쓰레기를 쌓아두는 곳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마침 쓸만한 옥상을 찾던 우리는 이곳이 흥미로웠고, 한동안 20여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치우고 들어오게 됐다.”

   

호기심이 삶을 구한다는 것

그는 호기심이 삶을 구한다고 말한다. “인간 자체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게 아니니, 아트는 무목적이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문명을 발생시킨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인간이 그렇게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체가 삶의 목표가 맞나. 오히려 뭔가에 대해서 알려고 하고 관심을 가지는 게 삶에서 필수적인 조건이 아닐까. 물리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욕구야 우리에게 당연히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상업적인 활동에 집중하는데, 그것은 흥미롭거나 세계의 인식에 유리하거나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지 않나. 아트는 호기심을 통해 삶 자체의 다양한 관점의 변화, 관계의 변화로 흥미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DRP의 양봉장에서 수집한 꿀로 만든 꿀주

DRP에서 이뤄진 다양한 실천들은 ‘노는’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아티스트들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말리는 애가 없다. 벌 키워서 양봉을 할까? 그러면 그거에 대해서 누가 말리는 사람이 없다. 진짜 하자, 이렇게 되니까 거기서 사건이 새끼를 친다.” 

예컨대 ‘홀리데이 팩토리’ 프로젝트는 옥상에서 층간소음 없이 노는 법을 고민하던 중, 춤을 개발하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새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의 춤을 구현하기 위해 커다란 모자를 만들려고 했고, 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다보니 봉제하는 분들과 친분이 생겼다고. 일종의 소사장제처럼 운영되는 생산과정의 특성상 봉제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협력사와 관계를 맺기 위해 마감기한에 매인 일상을 보낸다. ‘홀리데이 팩토리’는 오더메이드에 익숙해져있는 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신의 ‘작업’을 하도록 한 프로젝트였다. “봉제사들은 놀랍게도 이 작은 사건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게 뭘까?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이런 것을 왜 만들까?” 봉제사와 옷감의 관계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변화한 것이다.

그에게 호기심과 재미에의 열망은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세계, ‘잠겨있는 어마어마한 세계’를 인식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탐구와 공유의 궤적 자체가 그에게는 ‘아트’다.

흥미로운 빈 공간

여러 지방도시들에 빈집이나 버려진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쇠퇴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지자체에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부담과 흥미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그는 말한다. 늘어가는 ‘빈 공간’은 부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때 이러한 빈 공간에 개입하는 물질은 “부를 이루는 물질이 아니라 삶의 흥미로운 작동을 하는 물질”이다. 한 예로, 2011년  ‘nonartbutart(논아트밭아트)’ 프로젝트 는 시유지이지만 토호가 몇 대째 점유하고 있는 남양주의 한 논에서 오리 농법을 활용해 벼농사를 지으며 벌인 놀이였다. 그는 ‘진지한’ 노동의 장소인 논을 일명 ‘꼬르뷔제 오붕지’로 탈바꿈시켰다. 르꼬르뷔제의 사보아 주택을 모방한 오리집을 지은 것이다. 오리들은 이 구조물에 올라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본의아닌 퍼포먼스를 수행했고, 이 흥미로운 광경에 동네사람들과 아이들은 하루종일 논에서 오리만 보고 있었다고. 오리가 생산성 향상의 도구에서, 함께 노는 친구의 관계로 변화한 것이다.

“문제는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 공간들을 “움켜쥐고” 산다. 그는 이러한 소유를 ‘헛소유’라고 부른다. 얼마든지 재밌게 쓸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사유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헛소유가 아닌 빈소유를 제안한다. 

 

그것은 공간을 소유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쓰면서 흥미를 공유하고, 관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발전하지 말자’가 아니라, 발전한다는 게 뭘까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유하자는 것”이 그의 자세다. “DRP 역시도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빈 공간’에 가까운데, 왜 여기 오면 흥미로울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DRP는 현재 DRP+로 활동을 준비 중이다. 그들의 새로운 놀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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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자치, 환대의 공간, 빈집과 빈땅 이야기

  2008년 해방촌에서는 공유에 기초한 새로운 주거 공동체가 등장하였다. 손님들이 주인이 된다는 의미의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를 표방하는 빈집 공동체가 시작된 것이다. 기존의 ‘게스트하우스(guesthouse)’가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상업적 공간이었다면, 빈집은 누구나 손님이자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주인/손님들은 주거비를 함께 부담할뿐만 아니라, 살림 살이도 함께 공유하였다.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주거와는 달리, 빈집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극단적 개방성과 환대의 윤리를 특징으로 한다. 처음 온 사람도 빈집의 공간과 자본을 공유하며, 빈집에 머무는 사람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

 이처럼 공유, 자치, 환대의 가치에 기초한 빈집은 방 세개 짜리의 가정집에서 출발하여, 곧 여러 개의 빈집으로 이루어진 빈마을로 확장되었다. 2009년 빈마을 회의를 시작하였으며, 2010년에는 빈가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확장의 과정에서 재정, 마을 운영 등에 있어서의 복잡한 이슈들이 제기되었다. 특히 집의 보증금과 소유권은 주요한 논의 주제로 부상하였고, 빈집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 6월 ‘빈마을 금고’인 ‘우주(宇宙)살림협동조합 빈고’를 설립한다. 빈고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아 각 집의 보증금을 대출해주었으며, 이로써 구성원의 변동과 집들의 계약 및 해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빈고의 출자자들은 출자금액과 상관 없이 모두 주인으로서 같은 권리를 갖는다. 이처럼 자발적인 출자를 통해 형성된 공동의 자본은 공동의 공간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이 공간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빈고는 한 발 더 나아가 빈집과 공동체에 돌아오는 수익을 만인과 전면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공동체은행’으로 발전하였다. 2014년 빈고는 우주살림협동조합에서 공동체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출자와 출자금을 이용하는 활동을 통해 형성된 수입을 다른 공동체와의 연대와 공유지 확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공유, 자치, 환대를 실천하는 공동체들의 공동체

 공유지를 확장하기 위해 빈고는 2015년 빈땅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2017년 빈땅 사회적협동조합을 창립하였다. 빈땅 협동조합은 출자금을 이용해 공유지를 조성 및 확장하며, 출자자들은 해당 공유지를 자유롭게 활용한다. 2017년 홍성에 첫 빈땅이 조성되었으며,  2018년 홍성 빈땅에는 홍성 빈집 키키가 들어섰다. 2021년 현재 빈땅 협동조합은 빈집, 빈마을과 마찬가지로 공유, 자치, 환대의 가치를 바탕으로 빈땅의 확장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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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강내영. (2012). 주거실험 공동체 ‘빈집’에 대한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지음. (2013). 공유, 자치, 환대를 실천하는 공동체들의 공동체: 빈집, 빈가게, 빈고 -빈마을 이야기. 도시와 빈곤, 102, pp. 62-76.

공동체은행 빈고. https://bingobank.org/ (최종접속일: 202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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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공유정책 비교

2021 보궐선거.

2021년의 서울. 투기적 사유화로 인한 공간적 불평등, 팬데믹으로 생태적·사회경제적 위기가 여실히 드러난 시공간이다. 다가오는 4월 7일 치러질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의 각 후보들은 ‘공유도시’에 대한 문제의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어떤 구체적 방안들을 내놓았을까. ‘공유 도시’에 대한 후보 15명의 의지와 정책적 입장을 알아보았다. 정책 비교 및 분석은 각 후보의 공약 자료집과 질의서 답변(질의서 원문보기)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후보명1.박영선2.오세훈6.신지혜7.허경영
답변여부XXOO
후보명8.오태양9.이수봉10.배영규11.김진아
답변여부XXXO
후보명12.송명숙13.정동희14.이도엽15.신지예
답변여부XXXX

연금술.

금이 아닌 것에서 금을 만들겠다는 맹랑한 발상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들의 이 맹랑한 상상, 그리고 끈기 있는 실험은 결국 근대 화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다. 2021, 현재 우리에게도 천만 도시 서울의 공유적·포용적 전환을 상상하고, 탐색하고, 실험하는 연금술사가 필요하다. 

서울시는 도시문제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공유’를 주목해왔다. 2012년 9월 공유도시 선언을 기점으로 ‘공유도시 1,2기 기본계획’을 추진했고, 공간, 교통, 물건, 정보 등의 공유 정책을 시행해왔다. 그리고 최근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시행될 ‘공유도시 3기 계획’을 수립했다.(서울시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pdf) 그렇다면 ‘공유’란 무엇일까. 이때 공유는 “필요한 자원을 정부와 시민이 함께 협력하여 공동으로 생산하고, 이러한 유무형의 공동 생산물(재화, 지식, 정보, 관계, 가치, 자연의 보존 등)을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정하게 분배하고, 바람직하게 활용할 수 있는” 모든 활동(생산, 분배, 활용)을 포함한다.

<월간 공유도시>는 서울시 시장 후보들이 내놓은 재료들을 ‘공유’의 프리즘으로 관찰하고 검토하고자 한다. 정책 분류를 위한 틀로서 Hess(2008)의 도시 공유자원 분류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 활용했다. 이에 따르면 공유 정책은 문화, 보건 의료, 지식 정보 등의 분야뿐 아니라 근린, 도시, 글로벌 차원 등 다양한 층위에서 실행될 수 있다. 즉 공유 정책의 핵심은 그 대상이 되는 자원의 종류가 무엇인지 보다도 지속 가능성, 공공성, 협력, 연대, 호혜와 같은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에 있다.

문화적 커먼즈기반 커먼즈
공공미술, 비영리 민간단체, 거버넌스교통, 인터넷 기반,                   무선 통신, 주차
지식 커먼즈보건의료 커먼즈
디지털 격차, 교육, 지적재산권공중보건의료, 병원
주거·도시 커먼즈글로벌·환경 커먼즈
주택, 주거 공동체, 생활환경대기, 탄소 배출, 오염
(*출처: C. Hess, 2008;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2020)에서 재구성

후보별 공약

편집진은 생태·공유적 발전과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각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을 평가하고 정책적 입장을 확인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간 2파전으로 진행 중이지만, ‘공유’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군소 후보들의 공약들이 눈에 띄었다. 공공임대주택 확대, 디지털 취약 계층 지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유 정책은 주로 소수정당 후보의 공약집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박영선 “기후·환경 위주의 공유 정책”= 박영선 후보의 세 번째 공약인 ‘기후와 환경, 교통 대전환’ 부분을 보면 △에너지 제로 건물 확대 △학교 절반을 그린 스마트 스쿨로 전환 △녹색길 조성 △수직정원 도시, 미세먼지 차단 숲, 바람길 숲, 한강 숲 조성 확대 등이 명기됐다. 기후 위기에 대응해 탄소중립도시로서의 서울을 실현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작은 도서관 확대’, ‘학교 및 체육시설의 공유’ 등 공유 거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도 제시했다. 그러나 “공공 주택 30만 호 공급한다”는 것 외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유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오세훈 “개발지향 공유 정책”= 오세훈 후보의 선거 공약집을 보면, 공유 관련 정책을 찾기 어렵다. ‘서울 시내에 저이용되고 있는 민간 소유 토지를 임차하여 SH공사 등 공공에서 주택을 건설해 공급하는 민간토지임차형 공공 주택 정책을 도입한다’는 내용이 있다. 다만  “서울시 도시계획 규제 혁파를 통해 재개발·재건축 정상화하겠다”라는 공약을 최우선으로 내세워, 사회적 배제와 불평등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정책안을 제시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지혜 “주거 공유부터 지식 공유까지”= 기본소득당의 신지혜 후보는 공유 정책에 대한 의지가 단연 돋보였다. 주택 및 주거 공유 정책에 있어서는 △현행 주택에 한정되어 있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확장 △토지세와 연계된 기본소득 실시 △공공토지임대제 기반 토지임대부 주택, 상가 건설 △공공임대주택 확대 △최저주거기준 상향 및 순환형 임대주택 공급 등을 내놓았다. 거대 정당 후보들의  개발 중심의 공약에 비해 주거 불안 해소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포용성이 높은 정책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약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대한항공으로부터 서울시가 매입하기로 한 송현동 부지 48-9 번지 일대(37,141㎡)의 사용계획에 대해서는 “공유 마을의 시범지구로 선정하겠다”라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환경 커먼즈를 위한 정책도 눈에 띄었다. 신 후보의 공약과 답변서를 종합해볼 때, △탄소중립을 위해 여의도 국회 부지를 녹색미래 클러스터로 활용 △그린 모빌리티 지원 △태양광 발전 설비 확보 및 태양광 협동조합 모델 육성 △나눔카 전기차 확대 △1인 가구 밀집 지역에 재활용 정거장 설치 △ 재생 용기 보급 및 세척사업 등이 있었다.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편집진의 질의에 대해 △저상버스 확대 및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를 통한 장애인 이동권 개선 등을 통해 도시의 공유 기반 시설을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사회적 경제 기업 활성화와 사회적 금융 활성화 △공유 활동 가치 평가 및 측정 가이드 마련을 통해 사회적 경제와 공유 생태계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외에도 △무상 생리대 △여성전문 공공병원 등의 ‘보건 의료 공유 정책’과 △저소득층 무료 와이파이 이용에 대한 찾아가는 교육 실시와 같은 ‘정보 공유 정책’도 제시했다. 

허경영 “배리어 프리 교통 환경”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는 공유의 방법으로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 △이동 구간별 장애물 제거 작업 △서울시 공유 촉진 조례 개정을 제시했다.

오태양 “환경·정보 공유 정책”= 미래당의 오태양 후보의 공약은 ‘청년특별청’, ’여성청’, ’탄소제로청’, ‘행복시민청’ 등, 다양한 의제별로 ‘청’을 설립하겠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오 후보의 의제 중 공유 정책으로 주목해볼 수 있는 것은  △수도권 통합 녹색교통카드제 도입 △탄소제로청 신설 △2030 서울 녹지율 50% 추진 △도시 텃밭 쿼터 의무화 △재생에너지 녹색건축 인센티브제 도입 등의 글로벌·환경 공약이다. 

오 후보는 청년정책의 일환으로 △ 청년 참여 거버넌스를 확대 및 강화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를 본격적인 공유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민과 관의 협력과 소통이 중요한 공유 활동에 있어 의미 있는 공약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시립대를 무상 서울시민대학으로 전환해 무상 공유 대학으로 운영한다는 지식 정보 공유 정책 역시 눈에 띄는 공약 중 하나이다. 

그밖에 주 4일 제 근무, 기본소득, 공유 공간 확대를 연계해 ‘일-소득-생활공간’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오 후보의 ‘공유 공간’과 노동, 복지 의제를 결합시킨 공약은 독특하지만 구체성이 부족했고, 주거 불안정 해소를 위한 주거·주택 공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수봉 “데이터 가치 공유”= 이수봉 민생당 후보는 세 번째 공약으로 ‘서울형 기본소득 실현’을 제시했다.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기업으로만 흘러가는 것을 막고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데이터 주권 조례’를 제정하고, 이를 통한 △데이터 기금을 마련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혀다.  또한 △생애 기본소득 청구권을 통해 “진정한 기본소득의 취지와 정신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서울의 쓰레기를 50% 감축”해 서울의 활력을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배영규 “문화공원 조성”= 배영규 신자유민주연합 후보자는 △에덴동산 문화예술공원 조성을 공약했다.

김진아 “여성 정책 중심”=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자는 △친환경 전기차 택시 보급 △여성 노인 건강 클리닉 조성 △여성 노인대학 지원 확대를 약속했다.

송명숙 “집의 개념을 투기에서 주거로”= 송명숙 진보당 후보는 “집을 소유와 투기의 대상이 아닌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양도, 증여, 매매가 불가한 공공임대주택을 무주택자에게 공급 △재개발·재건축 공공임대주택 공급 의무 비율 상향을 제시했다.

송 후보는 “2030년까지 탄소제로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탄소 배출 제로 구역 설정 △배출 제로 교 통인프라 확대 등 글로벌·환경 커먼즈의 정책을 제안했다.

그 외 △도시 미관 재구성 위주의 전시행정사업 폐기 △노점 생존권 보장 등의 공약을 내놨다.

정동희 “?”= 정동희 무소속 후보의 5대 공약에서는 공유 관련 정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도엽 “탄소중립 정책 제시” 이도엽 무소속 후보는 △수소차·전기차 보조금 증액 △건물 태양열 발전 설비 설치 등 글로벌 커먼즈 관련 정책을 제시했다.

신지예 “임대주택 비중 확대”= 신지예 무소속 후보는 △상업건물 재생에너지 비율 상향 △기존주택 활용한 임대주택 확보 △재개발·재건축 총량제 실시를 약속했다.

공유도시를 위하여

‘공유도시’가 세계적으로 생태위기, 불평등, 투기적 도시화와 지역 불균등 발전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서울 시민의 삶이 공유에 익숙해 가는 것에 비해, 서울시장 후보들의 이에 대한 인식은 편차가 심해
아쉬움이 컸다.

‘공유도시’ 운동이 공공재의 회복과 민주적 공동관리로 사회적 약자 보호, 젠더평등, 환경 및 건강권을 위한 종합적 도시전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향후 어느 후보가 시장이 되든, 서울시 모든 정책을 공유의 가치로 연결해야 할 것이다.


*전체 후보별 공유·커먼즈 공약에 대한 비교 정리공유/커먼즈 공약 비교 스프레드를 클릭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4·7 재보선 후보자들의 5대 공약과 선거공약서 전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 알리미 사이트(policy.nec.g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 공유정책 :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을 수립하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 간 시행될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예산 편성을 완료했다.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은 ‘시민자치에 기반한 생태적ᆞ포용적 공유도시 서울’이라는 정책 비전을 내걸고, ‘시민이 자발적으로 자원순환 및 활용에 적극 나서고, 호혜적인 교환을 통해 도시문제 해결에 기여’ 하도록 하는 제반 정책 및 제도적 지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3기 기본계획은 공유가 단순히 유휴자원과 공간을 나누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 자원을 정부와 시민이 공동체적 가치와 호혜적 관계를 통해 공동 생산하고 공유하는 커먼즈(commons)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 자세히보기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은 공유(sharing)가 도시 문제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이될수있도록 ‘생태’,’포용’,’협력’을핵심가치로내세운다.

생태 가치는 소비와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하는 도시 자원의 순환을, 포용 가치는 사회적 약자와 복지 사각지대를 우선 고려하는 호혜적 자원 교환을, 협력 가치는 도시와 공동체에 필요한 자원의 협력적 공동 생산ᆞ관리를 의미한다.

이 세 가치를 공유정책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3기 기본계획은기존 서울시 공유촉진 조례 개정과 서울시 다른 주요 사업 및 주민 활동과의 융합 및 연결을 위한 R&D활동추진 등을 이번에 새롭게 포함시켰다.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이번 3기 기본계획의 주요 정책들이
마을에서 주민들이 일상의 동선에서 공유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공유의 서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1단계는 시민들의 생활형 공유공간과 공유활동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공유 서비스 개선을 강조한다.

2단계는 지역 공유자산 활용모델을 개발하고, 지역에서 공유자원이 생산ᆞ소비ᆞ관리되는 환경 조성이 핵심이며

3단계는 앞 단계를 종합한 공유마을 조성을 목표로 한다.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은 기존 공공자전거 따릉이, 나눔카, 공유주차장 및 공공시설 개방, 장난감.공구 대여, 공공데이터와 와이파이 지원, 공유기업.단체 분야별 육성, 공유허브 활성화 사업을 이어가면서, 민관협력형 O2O 공유서비스, 생활형 공유공간 조성, 공동체 공유자산 활용 모델 개발, 시민 공유활동 발굴, 공유 일자리 창출, 공유마을 조성, 공유활동 R&D 추진, 공유활동 촉진자 양성, 공유가치 지표 수립 등의신규 사업을 종합적으로 배치했다.


    Links

    서울시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2021.2.5.행정1부시장방침 제29호) 바로가기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서울시, 『서울시 공유서울 3기 기본계획안 수립을 위한 학술 용역』 최종보고서 바로가기

    솔방울 커먼즈 pinecone commons

    송현(松峴)은 소나무가 있는 고개, 소나무 언덕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다. 여느 지방 도시에 송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이 있을 테지만,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곳은 서울 종로에 있는 송현동뿐이다. 이 돌담을 함께 걸으며 새로운 상상을 하는 모임이 있다. 송현동을 공동의 것(commons) 내지 공유지로 상상하고 예술과 연구하는 모임인 ‘솔방울커먼즈’이다.

    2019년 여름 우연한 대화를 통해 조직한 솔방울커먼즈는 페이스북에의 등장을 시작으로, 활동가, 예술가,연구자 등이 모여 문화 예술 활동과 사회적인 참여를 통해 대안적 도시 공간을 생성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솔방울-하다

    동사(2019년 11월 17일 신조어)
    1. 공동이 만들어낸 것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다
    2. 공동이 만들어낸 것을 특정한
    이들이 독점하지 않도록 부대끼다
    3. 공동이 만들어낸 것을 공유하기
    위해 치대다
    4. 공동이 위아래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다

    솔방울커먼즈는 송현동 전체를 조망하려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닌, 돌담 주위를 배회하며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전술을 수행한다. 송현동 돌담의 틈새를 찾아보고, 투기적 도시를 꼬집는 부동산 광고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공유 도시와 커먼즈 관련 세미나 및 포럼에 참여하는 등 부단히 움직인다.

    솔방울러는 걷는다 영상 바로가기

    첫 만남부터 현재까지, 끊임없는 대화와 성찰을 통한 창발적 과정, 그 자체가 곧 솔방울커먼즈이다. 솔방울커먼즈로 모인 사람들은 커먼즈를 공부하면서 그 용어가 주는 낯섦과 어려움을 동시에 겪으며 각자 생각하는 공동의 것과 그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솔방울하다’라는 새로운 언어가 등장한다. ‘솔방울하는’ 행동은 송현동을 공동이 만들어낸 것으로 간주해 공동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소수가 독점하지 않도록 부대끼고, 공유하기 위해 치대고, 위계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송현동은 벌어진다”

    | Open, Happen, Rupture, Crack… or Arise

    솔방울커먼즈가 그동안 고민해 온 질문들을 펼쳐 보이는 전시의 장이었다. 송현동을 “리-얼 자치동”, 즉 진정한 자치동으로 상정하고 송현주민을 모아 주민센터를 개관했다. 기존의 공론장에선 시민으로 초청되어야 그 지위를 부여 받았지만, 전시장에 방문한 모두가 ‘송현 주민’이 되어 도시공간의미래를그려보았다. 이번호를 통해 솔방울커먼즈와 함께 송현동을 걸으며 이야기 나눠보자.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솔방울커먼즈 인터뷰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