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8월호]

Commons & Comment | 발행인의 한마디

공유 & Who | 우리가 만난 것도 커뮤니티다!

공유 & How | 투기적 도시화와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

Site & Sight |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

Hot & New |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리뷰

COMMONS & COMMENT

발행인의 한마디

아파트 단지라는 갇히고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투기적 이해에 기초해 도시적 욕망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에 살기를 거부하고,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조우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마을과 도시라는 공유재를 같이 만들고 그 책임과 결과를 나누자는 … 실험들은 ‘강남화’라는 헤게모니적 도시화에 대한 저항 담론과 대안적 도시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경험과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실험들은 도시를 사유재산의 집합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들고 같이 이용하는 공유재로 인식할 수 있는 경험적 기반을 제공해 주어, 궁극적으로는 자산의 사적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시각에 기댄 투기적 도시화에 저항할 수 있는 이념적 기초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배균  2017. ‘자본주의 헤게모니와 대안적 도시 이데올로기’, 서울연구원 편, “희망의 도시”, 한울아카데미. 294

공유 & WHO

우리가 만난 것도 커뮤니티다! _ 콩&요정&도넛 그리고 기선과의 대화

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하는 것에 대한 고민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는 말을요. 가족, 애인, 친구 모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만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로 할 일을 하느라 연락이 뜸하고 독립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적당한 거리가 생길 때. 신기하게도 관계가 더 순탄하게 굴러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대일의 관계가 아닌 다수가 함께 모여 발생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어떻게 해야 ‘적당히’ ‘잘’ 관계 맺을 수 있는 걸까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지만 지독하게 혼자 있고 싶은 마음들이 모인 현대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꿈꾸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하지만 떠올려보면 우리에겐 아무 대가 없이 좋아서 자꾸만 마주치고 싶고 관계 맺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흙을 파며 해가 저물 때까지 놀았던 친구들처럼요. 어쩌면 이런 기억이 훌쩍 커버린 우리에게 또 다른 커뮤니티를 경험하고, 실험하고, 고민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콩, 요정, 도넛은 지금 어떤 ‘커뮤니티’를 꿈꾸고 또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을까요? 커뮤니티 실험자 ‘기선’을 만나기 전, 우리만의 대담이 벌어졌습니다. 


사진설명콩, 요정, 도넛의 대화

콩, 요정, 도넛의 대화

_ 커뮤니티는 ‘놀이’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지는걸까? 

청년 주택에서 첫 독립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그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하느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시는 누군가와 같이 방을 공유하면서 살지는 말아야지 다짐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참 양가적인 게, 고등학교 졸업하니 기숙사에서 투닥거리고 살았던 일들이 너무 그리운 거예요. 결국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더 재밌겠다, 대신 기숙사처럼 모든 공간을 공유하기보다는 나만의 공간만 보장이 된다면 살아볼만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입주를 했습니다.

우리 청년 주택의 경우에는 거주자들끼리 관계 맺고 지역 사회에 환원하자는 서로의 약속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거주자들끼리 얼마나,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하는 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특히 저는 본가와 청년 주택을 오고 가기 때문에 완전히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요. 서로 비슷한 가치관과 지향점을 가졌지만 세세하게 보면 생활 패턴, 하는 일 등이 천차만별이거든요. 취업 준비에 학교 과제에 이미 한껏 지쳤는데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게 부담이 될 때도 있고요. 

자연스레 커뮤니티란 무엇일까? 커뮤니티가 되는 데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사실,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 신나게 떠드는 것도 커뮤니티잖아요. 동네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싶었어요. 찬찬히 제 삶을 돌아보니 정말 ‘커뮤니티 중심’적으로 살았더라고요. 주말마다 참석하는 동네 신문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모두 커뮤니티고요. 자발적이고, 재밌고, 능동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게 꼭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놀이’처럼요! 

요정 _ 커뮤니티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하여 

어영부영 10년이 흘렀네요. 2010년 2월 서울에 올라와 집을 구하러 다녔어요. 대학교 앞 원룸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어요. 동아리, 봉사 활동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해체하기를 반복했어요. 이제는 각자의 길로 들어서며 경조사에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어느 순간엔 SNS로만 소통하게 되었죠. ‘친구 관계는 아는 사이로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 인연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흘러가는 인연이 있음에도, 혈연관계로 얽힌 가족과는 붙잡히고 붙들린 채 지내는 거 같아요. 가족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가족 구성원을 만드는 방법이 결혼뿐인 건지. 그러니까, 단지 혈연이나 동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닌 살아가는 방식을 공유하는 관계를 꿈꾸는 게 이상적인 걸까요? 어떻게 대안 가족이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3-4년간 새롭게 만난 동료이자 커뮤니티가 있는데, 재미 삼아 10년 뒤에 같이 사는 공동체를 이야기하곤 해요. 지난 호에 ‘빈집과 빈땅’을 살펴봤지만, 저는 지금 당장 실제로 시도하지 못하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공동투자할 용기도 없고, 누구와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삶의 실천적 지향점은 있는데, 어떻게 되어야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오늘 주어진 일에 할 수 있는 일로, 그때그때를 살고 있어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지금을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지금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방식을 보았을 때, 저는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도시에 왔다 갔다 하면서 살 수 있는 게 필요해요. 그래서 더욱더 다 거점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이번에 전기선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거점 커뮤니티의 경험을 듣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대가 되어요!

도넛 _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지난해 전셋집을 얻으며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 이전에는 여러 곳을 떠돌며 누군가의 공간에 의탁하는 생활을 했고요.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점점 늘어가는 짐들 때문에 내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혼자인 공간이 생기니 처음엔 좋았지만 정리 안되는 짐들로  가득 찬 집을 보며 자괴감이 늘어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기운이 쫙 빠져 축 처진 상태로 있어요. 그러고 또 집을 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오면 다시 방전된 상태가 되고요. 하나 둘 미뤄둔 것들이 널브러진 형태로 거실과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네요.

저에게 생활 공동체(커뮤니티)는 공간을 함께 잘 사용하는 부분이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것 같아요. 누군가와 어울려 산다는 건 부지런해야 가능한 게 아닌가 싶고요. 정리 안 된 집 구석구석을 보며 그걸 잘 할 자신이 점점 없어지고요. 더 넓은 공간이 생기면 정리를 잘 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가도 우선 버리고 비우는 게 선행되어야지 않을까 하고 또 생각하는데 잘 버리지 못하는 몸에 밴 성격이 버리는 일을 자꾸 주저하게 만들고요. 

더 넓은 개인적인 공간을 갖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만한 공간을 마련할 여력은 없고, 2년의 전세 계약은 곧 끝나가는데 이다음은 어떤 공간에서 살 수 있을지 막막해요. 공간을 함께 쓸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내 공간 마련을 위한 종잣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고..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뭐 없을까를 고민하며 커뮤니티가 뭘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기선과의 대화


Kison キソン
Culture Interpreter / Builder 
Based in Kumamoto,Fukuoka,Tsushima,Kyoto

Q.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 <왔다갔다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세요!

이 프로젝트는 7년 전부터 제가 일본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 친구들이랑 같이 왔다갔다하면서 한국 친구들도 일본 왔을 때 코디네이터도 하고 안내도 하고 그랬어요. 

공동체마다 사람마다 관심이 있는 부분이나, 가는 장소나 만나는 사람도 코디네이터를 하고 기획을 계속 해왔습니다. 

단체마다 요구하는 부분들이 달라서, 예를 들면 퍼머컬처 커뮤니티에서 일본의 공동체 생활이나 퍼머컬처 하는 모습 보고싶다던지, 아니면 자연농이나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다니고 싶다든가. 아니면 음악이나 아트 쪽에서 표현하는 부분에서 한국에서도 해보고 싶다 일본에서도 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이쪽에서 코디네이터도 하고. 다양하게 생활이나 문화 쪽에서 다양하게 배웠었어요.

제가 지금 다섯 개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데 그 커뮤니티를 왔다갔다 하면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마다 색깔이 달라요. 하나는 산속에서 30년 정도 같이 살고 있는 퍼머컬처 기반으로 디자인을 하는 공동체이고, 도쿄나 교토나 도시 안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나 미래나 그런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지는 커뮤니티에도 속하면서. 저 자신도 시골과 도시를 계속 왔다갔다 하고 있어요. 

Q.생활자 커뮤니티가 어떤 계기로 생겨났나요?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하나는 일본 대지진이 있었잖아요 후쿠시마에. 그 이후에 일본에서 공동체 시골쪽에 공동체가 많아졌고 그 이후 2-3년 도시에서 커뮤니티가 많이 생겼는데 하나 큰 공통점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의존을 하고 있는 부분들을 작은 부분들을 볼 수 있는 생활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어떤 것인지를 실험하고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장소를 만들어 나가자 하는 공통점이 있어요. 

도시에서 혼자 살거나 가족끼리 살고 이 커뮤니티 감각이라는 것들의 중요성이 많이 나와있어서, 아마 도쿄나 교토 같은 경우에는 확장 가족이라는 의식이나 컨셉트를 내놓고 이제 사람들이 모여왔거든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되는지 실험하고 있고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의식이나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커뮤니티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같이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어떤 커뮤니티든 여러 가지 문제는 있는데 고민도 있고. 그래도 작년에 그 대마도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어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저 자신은 뭐 도시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도시에서 지역으로 가는 친구들 다 똑같아요. 사람이니까. 생겨나는 고민이나 문제들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부분도 비슷하긴 한데 아무래도 도시 생활이랑 지역생활이랑 방식이 많이 달라서 사람이랑 이렇게 같이 살아가고 있다라던지 같은 산을 올라가고 있다는 감각, 커뮤니티 감각을 같이 실험을 하면서 느끼는 단계에서 도시에서 그런 커뮤니티 감각을 키울 때에 어떤 음식으로 살아가자 하는 말이 필요하거든요. 

일부러 만들어 가려는 노력들이 필요해서. 지역이나 시골쪽에서는 그런 컨셉이나 말이 없어도 같이 체감을 하는 시간들이 너무 많아서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은 금방 나온달까. 그걸 어떻게 사회로 연결을 해야 될지. 이런 고민을 하는 지역 시골 커뮤니티들이 많고 

도시 커뮤니티는 컨셉이나 의식이나 말 언어 이런 것들이 다 있는 상태에서 의식을 하면서 체감으로 이렇게 같은 선을 올라가는데 완전히 프로세스가 다르죠. 저도 그런 기반으로 지역이나 환경이나 사람들이나 그런 부분을 관찰 하면서 그런식으로 커뮤니티 디자인을 생각 하면서 장소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대마도에 커뮤니티를 만들 때 다른 커뮤니티도 비슷한데.. 저는 일단 계절 여름 가을 겨울 이런 계절을 1년을 보내고 디자인을 해야지 그냥 그 사람들이 경험을 해온 것들이나 그 사람이 보고 있는 세계나 시선들이 그냥 그 안에서의 해결 방식 밖에 못만드니까. 거기에 있는 계절이나 환경이나 사람들이나 거기에 모여 오는 사람들 이런 부분을 계속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이제 이건 사업이 아니니까, 라이프 워크 같은 거라서. 뭐 죽을 때까지 하는 직업이기도 하고 작업이기도 하고 그래서 시간 감각이 1년 2년이 아니라 5년 10년 30년. 이런 축에서 발동하다 보니까. 

처음은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이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에 다 똑같이 생각하는 부분이나 모든 사람들이 가치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맛있게 밥을 먹고 잘 자야 된다. 결국에는 이 산의 끝에는 사람들의 의욕은 거기 밖에 없어서. 그래서 대마도에서도 제가 시도한 것은 커뮤니티 빌딩에 있어서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철학이나 사고 이런 얘기를 안 하고 하루하루 맛있게 밥을 같이 먹는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같이 살아가고 있다든지 연결되어 있다든지 이런 마인드가 형성이 되는 것 같아요. 

Q.커뮤니티를 굴러가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개인들이 모여와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데. 개인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런 생각으로 모여오잖아요. 개인이 어떤 생활을 하고 싶고 이런 부분에서 모여 오는데,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하고 싶었던 내가 생각하고있는 부분들이 전체적으로 개인이 아니라 전체라는 부분을 깨닫는 프로세스가 있어서 전체 속에 개인이 있다는 식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는 사례가 많아서. 그렇게 되면 그냥 그 개인이 결국 하고 싶은 것들을 그 안에서 하는 것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응원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그런 관계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개인이기도 하고 전체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공동체로서는 같이 가고 있고. 그런 감각들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이야기이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아도 괜찮죠. 물론 지속가능한 사회를 얘기하고는 있는데.. ‘모든 것들이 지속가능하면 좋다’라는 가치관 자체가 어떤 시대적으로 만들어진 감각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가치라고 생각해야 되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지속 가능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Q.공통의 감각을 만들어 내고 경험하고 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셨는데, 저도 그런 경험을 많이는 못해본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면 좋을까요?

공동체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 모르니까 그래서 만들고 있는 것이죠. 알고 있다면.. 안 만들어도 되는거라서. 공동체 생활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제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장소를 어떤 친구들이 같이 모여서 같이 실험을 하면 더 재밌게 실험을 할 수 있는지 상상을 하면서, 그래서 떠오르는 친구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이나 생각이나 어떤 일상에서 생활 하는지에서 그 공간의 설계나 공간의 크기나 그리고 공간이 어떤 장소 였으면 하는지 그 사람들의 반응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해서 공동체 생활 경험한 게 필요한건 없고 라이프 워크로 죽을 때 까지 실험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니까. 

생활자 형태의 커뮤니티도 있고 회사나 이런 직업의 커뮤니티 같은 것이 당연히 있고, 모든 영역의 커뮤니티가 있으니까.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각도에서. 누가 잘 알고 모르고 그런 얘기는 아니니까.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커뮤니티이지 않을까요.

Q.최근 고민하는 지점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활동을 하면 할수록 내가 인간으로서 밖에 살아갈 수 없구나 하는 고민이 있어요.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어디까지 가더라도 뭔가 사람의 영역에서 밖에 활동을 못 한달까. 그런 고민이 있어요. 내년에 전시 준비를 하고 있어요. 홍콩에서 하는데, 그 부분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밖에 살아갈 수 없고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형태랄까. 인간으로 벗어나는 그냥 존재로서의 존재가 무엇인지. 인간만이 아닌 존재하는 존재가 어떤 부분에 있는 건지 이런 걸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런 고민들을 풀어갈 수 있는 환경, 리듬이 생겨서 되게 고민이었는데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어요. 


공유 & HOW

투기적 도시화와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

모든 것이 사유화, 상품화되는 신자유주의적 도시공간에서 도시를 커먼즈로서 상상하고 실천하는 시도가 있다. 이들 도시 커먼즈는 기존 공간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질적 공간, 즉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8월 공유&How에서는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점과 헤테로토피아로서 도시 커먼즈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1. 투기적 도시화

압축적 고도성장 속에서 한국의 도시 공간은 자본과 토건세력, 권위주의 정부의 개발연합에 의해 끊임없이 사유화되었고, 상품화되었다. 바로 한국의 도시가 거쳐온 ‘투기적 도시화’의 길이다. 이러한 투기적 도시에서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시세차익을 노리고 ‘사는 ‘것’에 가깝다.  공간에 대한 권리는 단지 ‘구매력’으로 얻은 사적 소유의 권리로 제한된다. 그리하여 높은 지대를 감당할 수 없는 도시의 빈민, 그리고 공간을 다채롭게 만들어온 기존의 주민, 상인,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축출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는 글로벌 스케일에서도 나타난다. 높은 이윤을 향해 이동하는 글로벌 자본의 흐름은 더욱더 복잡한 투기적 도시화의 지형을 생산한다.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도시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동아프리카의 투기적 도시화에 관한 Goodfellow의 연구에 따르면, 르완다,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낮은 국가들이 최근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급격한 도시화를 이끄는 주요한 추동력 중 하나는 바로 글로벌 자본이다. 부동산과 관련된 엄격한 세금 및 규제가 부재한 제도적 환경과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적 환 경은 이들 국가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본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아디스아바바, 키갈리 등의 도시에는 높은 고층 빌딩과 고급 주택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사진설명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고층 빌딩 및 건축 현장, 사진출처 pixabay

하지만 이러한 도시에서 글로벌 자본이 생산한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인구는 전체 도시민의 약 20%에 불과하다. 동아프리카 인구의 대부분은 새롭게 지어진 고층 빌딩과 고급 주거지를 구입 및 임차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도시에는 아무도 점유하지 않은 빈 껍데기와 같은 공간만이 가득하게 되었고, Goodfellow는 이를 해골 도시(skeleton cityscapes)에 비유하였다. 더불어 부동산 개발의 과정에서 부동산 거품이 형성되었으며, 도시 전반을 점유하였던 기존의 슬럼들은 새로운 공간에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밀려나야만 했다. 즉, 글로벌 자본이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한 빈 공간들이 동아프리카 도시민들의 삶의 공간을 파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뼈대만 남은 공간들은 도시민이 그곳에서 어떠한 사용 가치도 향유하지 못하는 반면, 지구 반대편의 투자자들은 교환가치에 기초하여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산업화를 동반하는 전통적인 도시화의 풍경과는 달리, 동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이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늦게 시작된 국가들은 투기적 자본의 힘이 도시화와 도시 경제의 성장을 이끈다. 이는 투기적 도시화가 비단 공간 불평등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생산 부문으로의 자본 유입을 저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프리카 도시민들은 생산 부문 및 경제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생활 수준의 향상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향유하지 못할 장소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투기적 도시화는 한 국가 내에서의 불균등 발전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케일에서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설명Ndegeya, C., Rwandan Slum Dwellers Forced out for High-rise Project, The EastAfrican, 2018

2. 투기적 도시의 헤테로토피아들

Michel Foucault는 우리에게 이질성과 이소성의 감각을 가져다주는 반공간(contre-spaces)이자,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에 맞서는 장소로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개념을 제시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모든 공간들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그의 비유에서 헤테로토피아가 기존의 공간들과 이질적인 새로운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enry Lefebvre는 자본주의 및 국가가 생산하고 합리화하는 공간 질서, 즉 이소토피(isotopy)에 이질적으로 존재하며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헤테로토피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기존의 공간 질서와 우리의 일상생활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영역이자 운동이며, 전통적인 도시의 중심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중심성을 창조할 가능성을 담지한다.

Torre David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수엘라의 토레 다비드(Torre David)는 투기적 도시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토레 다비드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45층의 오피스 건물이다. 1993년 완공을 앞두고 사업시행자인 David Brillembourg가 사망하며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1994년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로 건설 자금을 제공하던 금융회사들이 파산하면서 완전히 버려지게 되었다. 이 버려진 건물을 찾은 것은 다름 아닌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와 주거지를 잃은 도시 빈민들이었다. 이들은 경제 위기 이후 도시 외곽에서 비공식 주거지를 형성해 살고 있었지만, 2007년 거대한 홍수로 인해 주거지가 파괴되면서 방치된 토레 다비드를 찾았다. 약 750여 가구가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토레 다비드를 점유함에 따라, 토레 다비드는 세계 최고층의 ‘수직형 슬럼(vertical slum)’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토레 다비드의 주민들은 건물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건물을 점차 변형시켜 나갔다. 또한 거주권 확보를 위해 주민 공동체를 결성하고, 2009년에는 점거 2년 만에 ‘Cooperativa de Vivienda Caciques de Venezuela’라는 조합을 설립하였다.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았던 토레 다비드는 점차 하나의 마을로써 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식료품점, 잡화점, 교회, 농구장 등의 시설이 들어섰으며, 주민들은 공용 공간을 함께 관리하고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자율적 규칙들을 수립해나갔다. 많은 건축들과 학자들은 주거지이자 공동체로서 토레 다비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으며, 그곳에서부터 비공식 주거지의 혁신과 실험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2014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토레 다비드를 상업용 건물로 개발하기 위해 중국 투자자들과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약 1,200 가구들을 퇴거시켰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주민들을 사회주택에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헤테로토피아로서 토레 다비드의 의미와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조치라 할 수 있다.

Art Squat

토레 다비드가 시민들의 우연적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라면, 유럽의 ‘아트 스쾃’은 투기적 도시를 예술적으로 전유하려는 보다 의식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스쾃’(squat)은 오스트리아 목동들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으로 양 떼를 몰고 가는 행위에서 탄생한 말이다. 산업혁명 이후 주거공간의 부족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은 비와 추위를 막아줄 수 있을 만한 빈 공간이 발견되면, 그곳에 흘러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스쾃은 “어떠한 허가도 권리도 없는 점유”라는 사회적 의미를 띤 단어로 쓰이게 된다. 삶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시작된 ‘스쾃’이라는 행위는 68혁명 이후 문화적, 사상적인 의미를 담지한 실천으로 발전한다. 70년대에 이르러 반정부, 반문화주의와 함께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몇몇 예술가, 사상가들은 그들의 작업과 전시를 전개할 공간을 물색하며 스쾃이라는 방법론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들은 ‘아트 스쾃’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보수적인 예술 정책과 다소 느슨한 정부의 대응 덕분에 많은 아트 스쾃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트 스쾃들은 이렇게 방치된 빈 공간을 점유하고,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공고한 ‘사적 소유권’의 신화에 맞선다. 

‘리볼리(Rivoli) 가’는 파리의 대표적인 상업가로 중 하나이다. 이 길 한복판에는, 파사드에 젖가슴 모양의 이상한 구조물을 달고 있는 이질적인 건물이 있다. 바로 아트 스쾃으로 시작해, 이제는 유명한 파리의 문화예술공간이 된 ‘59 Rivoli’이다. 정확하게는, 59 Rivoli는 예술가 집단이 창작 및 전시 활동을 하고 있는 ‘로베르네 집-자유로운 전자(Chez Robert – Electron Libre)’가 위치한 건물의 주소이다. 원래 이 건물은 프랑스 은행인 크레디 리오네(Crédit Lyonais)의 소유였으나, 은행이 파산하면서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러나 세 명의 예술가들이 14년간 방치돼 있던 곳을 1999년 11월 1일, 불법 점거함으로써 빈 건물은 새로운 문화적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예술가들이 이 건물을 점거하자 건물주는 예술가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점거한지 5개월이 채 안 돼 법원으로부터 강제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예술가들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철거를 6개월 뒤로 미루고 그동안 언론과 사회단체에 도움을 구했다. 이어 시민들이 철거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면서, 2003년 파리시는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매입해 매우 싼 가격에 이들에게 임대했다. 그렇게 2009년 새롭게 단장된 모습으로 59 Rivoli는 ‘aftersquat’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 문을 열게 된 것이다. Rivoli의 현재 이곳에서 열리는 예술 행사들은 방문객들에게 모두 개방되며, 이들은 개방된 시간에 건물을 드나들며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을 직접 지켜보며 그들과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사진설명La Generale 소개 video

한편  ‘La Generale’은 비교적 현재 진행형인 아트 스쾃이다. 59 Rivoli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 확보를 위해 버려진 교육부 건물의 일부를 점거했다. 라 제네랄은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의 레지던시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요리사, 학자, 배우, 장식가, 감독, 수목 재배자, 양봉가, 사진가, 감독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약 15명의 활동가와 2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컬렉티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이 ‘정치 생태학적 실험실’로서 스스로를 묘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들은 2019년 12월까지 부분적 불법 점유 상태였던 건물 옥상에서 채소를 재배하기도 하고, 발효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실험하며 요리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음식이 경작되고 재배되고, 소비, 유통, 가공되는 매우 일상적인 과정에 내재하는 정치적, 생태학적 화두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La Generale이 분투하는 것은 투기적 도시뿐 아니라 그들 공동체 내부의 문제다. 어느 누구도 독재하지 않고,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소통을 통한 의사 결정을 위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데 매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때로는 갈등도 불사한다. 공간과 그것을 둘러싼 공동체 내부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커먼즈’적인 고민은  무엇보다 본격적인 ‘정치 생태적’인 실험은 ‘공동의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해나가기 위한 그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설명La Generale의 정원, 사진 출처 Giovanni Del Brenna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함께 최근 많은 아트 스쾃들은 제도의 테두리 내로 진입하기도 했다. 건물주와 이용 대차 계약을 맺거나, 관광지화되며 상업적 도시의 스펙터클로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제3의 방향성을 가진 공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대표적인 예로 폐 병원 부지에 예술인 레지던시와 난민 리셉션을 기획한 les grands voisions 프로젝트).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아트 스쾃들이 국지적으로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영리한 자본이 지속해서 매끈하게 만들어가는 도시에 균열을 내는 헤테로토피아적 실천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기존에 예술이 소통되고 향유되는 방식에 있어서의 부르주아적인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이주자, 부랑자 등과 같이 사회와 예술로부터 소외된 계층들과 함께 ‘감각적인 것을 나누는’ 시도를 실천해가고 있다.

3. 헤테로 토피아와 커먼즈 

도시 커먼즈 운동은 자본축적의 논리에 기초하여 형성된 기존 도시의 배열을 바꾸어 커먼즈로서의 도시(city as a commons)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도시 속 헤테로토피아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 생산에 필요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의 움직임, 그리고 사적 소유권의 논리에 지배된 종래의 도시 공간에 대하여 도시 커먼즈 운동은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전통적인 공간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의제, 권리 담론, 그리고 이들이 출현하는 거점들의 연결을 통해 이질적인 장소를 창조하고, 이는 다시 새로운 실천과 결합된다.  토레 다비드와 스쾃 아틀리에의 사례는 도시 커먼즈 운동이 투기적 도시화에 대항하는 헤테로토피아를 형성하며, 이로써 신자유주의적 공간 질서에 사로잡힌 도시를 해방적 공간으로 전유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투기적 도시의 내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역. 문학과지성사. 2014. p. 14.

민진영. 프랑스 예술 스쾃 운동 연구. 한국프랑스학논집, 81, 2013. pp. 243-278.

신현방. 발전주의 도시화와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저항의 연대. 공간과 사회, 57,2016. pp. 5–14.

이승원. 도시 커먼즈와 민주주의 도시 커먼즈 운동의 특징과 동학에 관한 이론적 재고찰. 공간과 사회. 68. 2019. pp. 134-174.

Goodfellow, Tom. Urban fortunes and skeleton cityscapes: real estate and late urbanization in Kigali and Addis Ababa. International Journal of Urban and Regional Research, 41(5), 2017, pp. 786-803.

Gómez, Manuel A. The Tower of David: Social order in a vertical community. FIU L. Rev., 10, 2014. pp. 214-238.

Ndegeya, C., Rwandan Slum Dwellers Forced out for High-rise Project, The EastAfrican, 2018, URL: https://www.theeastafrican.co.ke/tea/rwanda-today/news/rwandan-slum-dwellers-forced-out-for-high-rise-project–1384688.

Santos Junior. Orlando Alves dos. “Urban common space, heterotopia and the right to the city: reflections on the ideas of Henri Lefebvre and David Harvey.” urbe. Revista Brasileira de Gestão Urbana, 6, 2014, pp. 146-157.

Torre David. INTERLAB. 2008. URL: http://interlab.kr/archives/4571   


SITE & SIGHT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 워크숍

지난 8월 19-20일, 제10회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이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를 주제로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8월 Site & Sight은 워크숍의 현장과 함께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가 제안하는 포스트 COVID-19 시대의 포용도시를 위한 시각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국가의 연구자와 활동가, 공무원과 결성한 글로벌 협력 플랫폼입니다. 이들 도시는 포용도시의 실현을 위해 오랜 기간 실천을 이어왔으며, 각 도시들을 상호 간 끝없는 경쟁에 밀어 넣었던 기존의 관습을 지양하고 도시 간 협력을 바탕으로 포용도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연대합니다. 그리고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삶의 기회와 인권을 보장하고,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규명하는 연구를 지향합니다.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는 2011년 3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워크숍을 시작으로 매해 국제 워크숍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 포용도시네트워크의 주관으로 제10회 워크숍이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COVID-19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포용도시”로, COVID-19 위기가 드러낸 도시의 문제들을 되짚어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포용도시를 확장할 수 있는 실천적 수단들을 제안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의 연구자, 활동가, 공무원 등이 모여 총 4개의 세션에 걸쳐 COVID-19시대 동아시아 도시와 사회적 약자들의 현황, 공공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10주년 기념 특별 세션에서는 COVID-19시대 동아시아 도시와 홈리스의 현실, 과제, 그리고 이에 대항한 다양한 도시들의 전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동아시아 도시들의 사례는 사회 경제적 조건에 따라 COVID-19 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은 바로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COVID-19은 도시에 배태된 불평등의 논리와 문제점들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면에 드러냈습니다. 수많은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투기적 도시화와 공간 상품화의 문제입니다. 이윤 추구에 따른 투기적 도시화는 주거비 상승,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문제를 초래해왔으며, 이와 같은 문제들은 COVID-19 이후 더욱 악화되어 사회적 약자들을 도시 공간에서 내몰고 있습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COVID-19 이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시공간의 차별과 배제가 더욱 가혹해지는 현실을 조명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포용도시를 더욱 확장하는 방안을 다루었습니다.


사진설명제10회 동아시아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 1일차


HOT & NEW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리뷰

사진설명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포스터

악에 대한 분투기를 쓰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인간이 자궁 속에 잉태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각인된 자연스런 본질이 아니다. 존 롤즈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과 ‘원초적 입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이를 차별하거나 혐오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원초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공정과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서 지켜야하는 어떤 지향점일 뿐이다. 다른 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 악한 행위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잘못 투영된 욕망이 그 욕망의 실현을 가로막는 원인을 잘못 찾는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는 자신들의 행위를 악한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 착각한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지난 2020년 3월 개교한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강서지역에 설립되는 과정에서 발달장애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이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향한 정당한 듯 포장된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맞서 싸운 분투기이다. 

이들의 분투기는 투기적 도시화 속에서 일그러진 우리 자신의 모습, 깨어진 거울 조각들 속에서 거침없이 비춰진 도시민의 분열되고 충돌하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 다큐를 보는 내내 어떤 분노와 슬픔과 함께 부끄러움이 마음 한 구석에서 솟구치는 까닭은 아마도 이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한 대응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비춰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주 오랫동안 지극히 비정상적인 생활이 평범하게 이어져왔었다.

학교 가는 시간 평균 3-4시간. 몸과 마음이 불편한 강서구 거주 장애 학생들은 구로구에 있는 학교를 가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차에 힘든 몸을 싣고 일찌감치 학교로 향한다. 그때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 학교로 등교하는 또래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동네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몸이 불편할수록 등교길이 더욱 편해야 하지만, 오히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더 먼 곳으로 매일 유배가듯 통학해야 했다. 동네 학교에서는 통합교육을 피했다. ‘정상 학생’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장애학생’이 방해한다는 편견이 동네 학교의 통합교육을 막아버렸고, 장애학생들은 갈 곳을 잃었고, 그렇게 이 비정상이 평범함이 되어버렸다. 원치않는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들의 삶 곳곳에 폭력이 스며들어 있었다.  

희망, 재개발 욕망의 주술로 괴물의 야욕이 되다.

학부모들의 요구와 교육청의 의지로 동네 어느 폐교부지를 활용해서 강서구와 인근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세워질 계획이 마련되었다. 서울에 특수학교가 추가로 새워지는 것이 17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 동안 세워진 쇼핑몰, 문화체육시설의 수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처음엔 순탄해 보였다. 하지만, 이 지역 국회의원 (당시 김성태 의원)이 이 폐교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아닌 공약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애시당초 교육부지에 다른 용도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부지에는 학교를 짓는 것이고, 한방병원을 지으려면 다른 공공부지를 확보해서 지으면 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폐교부지 국립한방병원 유치’ 망언은 지역 주민 사이 재개발 욕망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국립한방병원이 들어서면 건강하고 안전한 돌봄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이제 우리도 다른 강남처럼 잘 살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지역주민들에게 주술을 걸어버렸다. 

‘특수학교 때문이다, 특수학교가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특수학교 학생들때문에 우리가 가난해진다, 얼마나 우리를 무시하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를 지어서 우리를 또 힘들게 하냐’.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재개발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주택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이 지역에 저소득층을 위한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세웠다. 당연히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 주민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 학생수가 줄어들고,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있던 이 학교는 타 지역 주민의 외면 속에서 결국 폐교되었다. 그렇게 이 지역은 점차 다른 지역과 고립되어 갔다. 

특수학교지만, 폐교에 학교가 들어선다니 다행이었다. 지역주민들의 고립감이 해소될 길이 열렸다. 하지만, 자기 지역구에서 표심을 얻어야 했던 국회의원이 뱉어낸 말도 안되는 공약이 결국 방향잃은 기관총이 되어 장애학생과 가족은 물론 지역 주민의 가슴을 향해 총알을 난사해 버리고 말았다. 주민들 사이 파고든 비틀리고 오염된 재개발 욕망은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동네에 있는 학교를 다니겠다는 아주 당연한 소망을 품은  장애 학생과 가족을 동네의 번영을 파괴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 투기적 욕망은 주민들을 서로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연한 권리가 거래되었다.

저 투기적 욕망에 맞서 엄마들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통곡과 절규를 했고, 무릎을 꿇었고, 삭발을 했고, 몸을 던져 항의하기도 했다. 혐오와 눈물로 점철된 공청회가 몇차례 지난 후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가 예정대로 세워지기로 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학교가 세워지는 배경 뒤엔 ‘어쩔 수 없이’ 투기적 욕망과 타협하기 위해 특수학교 설립 조건으로 이 동네에 국립한방병원 건립을 위한 협력이 약속된 것이다. 

엄마들은 반대했다. 나쁜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동네에 특수학교가 세워질 때마다 지역 개발에 대한 조건이 뒤따라야 하고, 그 조건없이 특수학교가 세워지기 어렵게 되는 나쁜 사례를 의사결정자들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할 교육에 대한 권리가 거래된 것이다. 타협할 조건이 없으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식만 생각한다면 거래가 뭐든 상관없이 환영하고 끝냈겠지만, 모든 장애학생들이 다 똑같은 자식이었다. 이들이 경험한 연대의 힘이었다. 내 자식을 위해 다른 이의 자식 가슴에 못 박을 순 없었다. 그래서, 엄마들은 다시 싸워야 했고, 결국 2020년 3월에 폐교되었던 공진 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개교했다. 이렇게 이들의 분투기는 잠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장애학생들의 진짜 어려움은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이다. 그래서 특수학교 설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보호받는 미성년자의 시기를 지나 법적 성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엄마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자식 보다 하루 늦게 세상을 뜨는 것이다(그러면서도,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 생에 태어나도 이들의 엄마로 태어나겠다고, 그 땐 더 잘해주겠다고 말한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미래에 겪을 어려움은 이미 서진학교보다 조금 일찍 개원한 ‘서울시 발달장애인 훈련센터’가 만들어진 아픔의 역사에서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엄마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어야했고, 장애인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그리고 엄마들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죄인이고 천형인 것처럼 멸시받아야 했었다. 

그래서,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특수학교만 지어선 안된다. 허울뿐일 수 있다. 이들의 생애주기가 존엄할 수 있는 여러 기반이 함께 해야 한다. 훈련센터, 자립 주거시설, 베리어 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이 당연히 적용된 문화체육시설과 교통 및 이동서비스 등 그냥 사람이 편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함께 있어야 한다.

위선을 걷어낼 소중한 기회

발달장애인은 아니지만 정신장애인의 가족으로서 영상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억한 감정이 솟구쳐 엔딩 크래딧이 오르는 마지막 장면까지 울음을 참으며 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학생들보다, 그 옆에서 자식들의 모든 걸 기억해야 하고, 항상 곁에 있어야 하고, 울지도 화내지도 원망하지도 말아야 하면서 늘 격려해야하는 엄마들의 모습, 그리고 가끔 비쳐지는 가족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며 소리없는 오열을 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어느 순간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저 엄마들이 아니라, 강당 뒤쪽에서 서서 악을 쓰는 주민들 사이에서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였구나.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은 자가 나였구나. 내 몸의 소리없는 오열은 내 의식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구나.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에 어떻게 아름답게 맞설 수 있을까?”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과 함께, “투기적 도시개발의 욕망은 도대체 우리의 욕망을 얼만큼 비틀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괴물의 주술을 어떻게 피해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이 도시는 과연 누구의 도시이고, 누가 공유하는 공간이자 터전이 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관중에게 위선을 걷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최희진, 송지우, 상덕, 홍지수, 홍다솜, 이혜원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8월 30일

*2017년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SSK)의 지원을 받음(NRF-2017S1A3A2066514)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