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고] 어제의 서울과 작별하는 사람들의 모두(共)의 공간

1월 31, 2023
공유하기

어제의 서울과 작별하는 사람들의 모두(共)의 공간

– 경의선 공유지 운동과 한국 커먼즈 운동 논의

서울대 지리학과 우성재


공(公)적이지만 공(共)적이지 않은 공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일이다. 필자의 가족은 신축한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였고, 그 옆에는 임대아파트 단지가 건설될 예정이었다. 두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자그마한 공터가 있었다. 이 부지는 아파트 단지 건설이 허가되면서 공원의 설치가 예정된 부지였으나, 옆에 임대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나서 설치될 예정이었다. 따라서 공터는 입주 이후에도 한동안 수풀로 덮여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주민에 의해 공터 일부가 텃밭으로 가꾸어져 있었다. 이후, 하나둘씩 공터에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같은 단지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이웃의 다른 주민들도 모여 공터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텃밭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어디에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수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수거하고, 모두(共)의 공간인 텃밭을 만들었다. 필자의 가족은 1평 남짓한 공간에 상추를 길렀다. 옆의 이웃은 고추를 길렀고, 서로가 기른 것을 나누기도 하였다. 글로 명시된 규약은 없었지만 서로 암묵의 규약을 지키면서 모두의 공간을 이용했다. 그러나, 임대아파트 단지의 건설이 시작되자 아파트 단지에서는 공원의 설치를 위해 텃밭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공간은 법에 따라 공원으로 지정된 공(公)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따르지 않을 시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관리사무소에서 명시하였다. 필자와 주민들은 자신이 재배한 것을 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공원(公園)이 들어섰다. 따라서 필자에게 있어서 공원은 공(公)적이지만 공(共)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일을 한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금 떠오른 것은 2022년, 박배균 교수님의 <정치지리학개론> 강의에서 경의선 공유지 부지로 답사가 정해졌을 때의 일이다. 경의선 공유지 운동은 경의선이 지하화되면서 그 부지를 두고 마포의 장소 의존적 토건 지향 성장연합이 경의선 역세권의 상업적 개발을 통해 투기적 이익을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경의선 공원화로 포장한 역세권 중심의 상업 개발을 추진하였고, 이에 반발한 반대 세력에 의해 경의선 부지의 대안적 활용 방식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되면서 벌어진 운동이다. 시민의 자발적 의도에 의해 공유지로 이용된 점, 공(公)적 목적에 의해 자진 철거된 점, 현재 공원화가 되었다는 점에서 필자의 경험과 경의선 공유지 운동의 유사하였기 때문에, 답사를 통해 경의선 공유지 운동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경의선 공유지 운동의 현장으로 가다

답사는 공덕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이어지는 경의선 숲길을 따라 이뤄졌다. 답사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필자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경고문이었다. 경고문에는 이 부지가 국유재산으로서 공단의 허가 없이 사용 또는 점유하는 경우 국유재산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필자의 아파트 단지 옆 공터에 설치된 공원 역시 유사한 경고문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고문을 보고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국유지와 공유지, 비슷한 의미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지점은 이런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격언처럼, 국가의 주권은 국민(시민)에게 있지만 국유지와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된 이 부지는 국민(시민)의 사용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또한, 경고문의 맞은편에는 경의선 역세권 사업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재향경우회, 효성, 철도시설공단이 출자하여 건설된 빌딩이 있었다. 이는 현재 수풀로 우거진 경의선 공유지 부지와 대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기업인 효성, 법정단체이자 정치·이익단체인 경우회, 관료 집단인 국가 철도공단이 일종의 성장연합을 이뤘음을 보여준다.

경고문이 부착된 차단벽을 따라 돌아가면 현재 수풀로 덮인 경의선 공유지 부지와 그 맞은 편부터 시작되는 경의선 숲길을 확인할 수 있다. ‘26번째 자치구’의 김상철 ‘전’ 구청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부지는 이랜드와 마포구,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계약하면서 이랜드에 의해 역세권 개발이 이뤄질 부지이지만, 건설 완공 시점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이랜드는 완공 이후에야 임대료를 낼 의무가 있으므로, 이랜드가 이 부지의 사용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임대료는 내지 않고 공터로 남겨 놓는 상황에서, 임시적 조치로서 늘장 협동조합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마포 성장연합과 기재부, 국토부, 철도시설공단 등 신자유주의 국가 세력의 압박으로 인해 마포구가 늘장 협동조합과 벼룩시장 계약을 중단하게 되면서 이 부지를 떠나야 했던 시민들이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을 통해 경의선 부지의 대안적 활용 방식을 공론화하게 된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의 투기적 도시화에 대한 비판 정신을 강화하고 “쫓겨난 사람”, “도시 난민” 등을 품기 위한 시도로서 2016년 11월에는 ‘26번째 자치구’를 선언하였으며, 2018년 5월에는 사회적 기업, 예술가 등 기존 집단뿐 아니라 노동조합, 연구자 등 새로운 집단이 참여하는 경의선 공유지 추진위원회를 통해 지식커먼즈, 시민커먼즈센터, 경의선 광장을 포함하는 경의선 커먼즈 대안 계획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9년 말 정부와 공단에 의해 소송이 제기되면서 이들은 2020년 초에 자진 철거하게 되었다. 현재 철거된 부지는 차단벽으로 둘러싸여 시민들이 출입할 수 없고, 수풀만이 자라있었다. 그 맞은 편에 위치한 경의선‘숲’길이 사실 실제 역동적인 모습의 숲이라기보다는 정태적 자연, ‘이상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옴스테드식 도시공원에 가깝다는 점에서, 차단벽에 의해 시민의 접근이 차단되면서 수풀이 우거지게 된 공유지 부지가 맞은편의 경의선‘숲’길보다 진정한 ‘숲’에 가까운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의선 공유지와 함께 공존, 공공, 공유를 생각하기

경의선 공유지 부지와 경의선 숲길의 주변에는 기존의 주택과 상점뿐만 아니라 경의선 역세권 사업과 함께 지어진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특히 아파트와 경의선 공유지 운동 간의 관계에 주목할만하다. 아파트 주민들은 경의선 공유지 부지에는 경의선숲길이 아닌 이랜드에 의해 건축물이 들어섬에도 불구하고 경의선 공유지 운동이 경의선숲길 조성을 ‘방해’한다고 보았고, 공원이 들어섬으로써 부동산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보았던 주민들이 경의선 공유지 운동에 대한 여러 민원을 제기한다. 경의선 공유지 운동 측은 주민들에게 경의선 공유지 운동이 어떤 것이고, 이것이 경의선 공원 부지와는 관련이 없음을 설명하였지만, 주민들의 민원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주민들의 민원은 경의선 공원이 건설되었음에도, 경의선 공원에서 공연을 불가능하게 하는 등 지속되고 있으며, 김상철 전 구청장은 이에 대해 다수인 관련 민원이 형성되기 쉬운 아파트 단지의 특성으로 인해 일종의 ‘민원 신분제’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기사에서 지적하기도 하였다(프레시안, 2019.05.20.).

<사진 3> 경의선 공원 인근의 아파트 단지(좌상단)와 연립주택(우상단) 및 상업시설(하단) 

경의선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기업이 빌딩의 건설을 위해 기부채납한 부지에 마포구가 설치한 공원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공덕역 역세권 개발에 의해 아파트, 상업시설 등이 신축되었던 공덕역 경의선 공원과 달리, 기존 주택과 상점들이 주로 위치하였으며 공연도 가능했다. 실제로 답사 당시 공연 부스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포구는 다수의 중소출판사와 독립출판사들이 마포동네책축제를 열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경의선 책거리 전국 서평 그리기 대회 등의 경의선 책거리 축제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경의선 공원에 책거리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책거리는 마포동네책축제를 주최하였던 기존의 세력이 아닌 다른 사무국에 의해 조성되었고,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운영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시, 공(公)적인 공간에서 모두(共)의 공간으로

이후, 지식 커먼즈가 조성한 연구 공간에서 도시 커먼즈 운동을 연구하시는 한경애 박사님께 한국의 커먼즈 운동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강의에서는 오스트름 등의 커먼즈에 대한 논의와 이태원에서 집을 공유하는 활동인 빈집 등 초창기 커먼즈 운동을 논의하였다. 이 강의에서는 국가도 민간도 아닌 시민의 공(共)적 영역에서의 주거 문제 해결 방안이 제시되었는데, 시민의 자발적 움직임, 명시화되어 있지 않고 내재하여 있는 규칙, 시민 간의 주체적 문제 해결 등이 경의선 공유지 운동과 유사하였다.

경의선 공유지 운동과 빈집 등 주택 커먼즈 운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국가와 민간의 이분법을 넘어 공(共)적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경의선 공유지 운동은 겉으로는 공(公)적 이익을 내세우는 국가와 성장 연합정치로 나타나는 민간에 의해 부지에서 자진 철거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가치는 국가와 민간의 이분법에 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권을 가진 시민에게 명령하고, 시민의 공간을 공(公)적 사유로 빼앗던 과거의 서울과 작별하고 모두(共)의 공간을 만들려고 했던 이들의 ‘경의선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문’을 실으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경의선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문>

우리는 새로운 ‘자치구’를 선언한다.

우리는 쫓겨났다.

그들은 우리의 오랜 가게가, 집이, 거리가, 세상이

자신들의 것이라 말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쫓겨난 가게에서는 새로운 간판이 오르고

망가진 집 위엔 낯선 아파트가 세워지고

파괴된 포장마차 위에는 화분이 들어섰다.

그렇게 흔적을 지워버리면 우리의 아픈 삶도

지워질 것이라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은 착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싸운다.

우리가 속해 있던 기존의 자치구가

우리를 버렸음으로 우리도 이들을 버린다.

대신 우리는 각자의 싸움을 우리의 싸움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자치구를 세우기로 했다.

이 곳에서 우리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치지 않는 싸움을 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지우려 하는

이 도시에 지워지지 않는 화인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모이고 살아가고, 투쟁하며 웃을 것이다.

이 곳에 더 많은 시민들을 초대한다.

도처에 뿌리 뽑힌 이들은 이 곳으로 오라

우리는 웃으면서 분노할 것이고 우리의 삶을 걸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26번째 자치구’는 그들이 포기한 자치와 연대,

그리고 희망을 말하는 진짜 자치구가 될 것이다.

오늘부터 명령하고 빼앗던 어제의 서울과 작별한다.

’26번째 자치구’ 만세!

2016년 11월 27일

’26번째 자치구’ 선언 참가자


글·사진 I 우성재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김석준, 이희라, 심여은, 송지우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3년 1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