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집값! 그래서 우린 ‘터무늬 있는 집’에 산다.

7월 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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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정릉동. 뽀송뽀송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는 빨래방을 지나, 아기와 할머니가 눈 맞추며 ‘곤지곤지’ 하고 있는 대문을 거쳐 오래된 계량기와 녹슨 자전거가 세워진 골목길을 굽이굽이 지나오면 ‘성북청년시민회’라고 적혀있는 큰 문패가 보인다. 이 집은 성북청년시민회가 운영하고 있는 ‘터무늬 있는 집’이다. 

터무니없는 집세! 열악한 주거 현실! 

터무늬 있는 집은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은, 색다른 시도로 만들어진 청년 주택이다. ‘보증금 없음, 월세 10만원(+@)’이라는 조건만 들어도 ‘헉’소리가 난다.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한 것일까. 나는 성북청년시민회 사무국장이자 내게 터무늬 5호집 거주 ‘바톤’을  넘겨줬던 이혜민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터무늬 있는 집’ 사업은 청년 주거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했던 사회투자지원재단에서 시작된 사업이에요. 이후 SH공사와 북서울신협이 가담한 거고요. SH에서도 ‘빈집활용도시재생프로젝트’라는 걸 하고 있었어요. 그 사업의 일환으로 터무늬 있는 희망아지트에 빈집활용 주택을 제공하고 리모델링을 지원하게 됐어요. 북서울신협에서는 ‘터무늬있는소셜예금’ 상품을 운영해요. 시민출자자들이 북서울신협을 통해 출자를 하는 거죠. 3년 동안 8억에 가까운 금액이 출자됐어요. 이 출자금은 모두 터무늬 있는 집 보증금으로 사용돼요. 현재 서울, 경기에 걸쳐 열 한 채가 운영되고 있고 제각각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사회적으로 이바지 하는 청년. 미래의 출자자

“사실상 청년들은 시민출자자들의 도움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고 거주할 수 있다는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죠. 터무늬 있는 집에는 청년 단체로만 입주가 가능한데, 청년들이 이곳에 살면서 청년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역 사회와 교류하고 환원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해요. 장기적으로 보면 이 청년들이 나중에 또 다른 청년들을 위해 출자를 하게 될 수도 있고요.”

나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줄 수 있는 든든한 시니어그룹이 있다는 것

“이 집의 가치 중에 가장 공감을 했던 건 청년의 문제를 진심으로 고민해주는 시니어그룹 이라고 생각했어요. 성과 공유회에 가면 다양한 시니어그룹을 만날 수 있거든요. 끊임없이 질문하고 소통하려고 해요. 덕분에 외롭지 않다, 고립되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투자지원재단에서도 말해요. 아직 이건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금 서울 청년이 300만명이잖아요. 앞으로 터무니 있는 집을 비롯해서 다양한 모델의 청년 주택이 더 많이 생겨야 겠죠.” 

터무늬 있는 집 5호집에는 현재 세 명의 청년(모경, 주니, 콩)들이 거주 하고 있다. 각자 방을 하나씩 사용하고 거실과 부엌을 공유한다. 나는 ‘혜민’의 뒤를 이어 이 집에 들어온 지 6개월, 두 명의 하우스메이트는 1년이 됐다. 바빴던 하루를 정리하며 부엌에 앉아 ‘터무늬 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갑작스러운 ‘인터뷰 톤’에 쑥쓰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나눈 대화를 재구성했다. 

CHAPTER1. 첫인상 

#성북구 정릉동

모경 저는 어렸을 때 정릉이랑 되게 비슷한 동네에서 자랐어요. 정릉은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동네예요. 골목길이 많으니까 차가 안 들어와서 좋더라고요. 이런 보행자 친화 도시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주니 : 여기 골목 구조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신도시는 좌회전, 우회전, 직진, 차가 들어가기 편리한 길로 되어 있잖아요. 이곳은 골목골목에서 현관에 방충망 내려놓고 혹은 집 앞 의자에 앉아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야기하며 계시는 모습을 봤어요. 신도시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되게 새롭게 느껴지는 경험이었어요.

모경 : 초등학교가 되게 많은 것도 특이한 지점이었어요. 그만큼 ‘정상가족’이 많이 살고 있다는 뜻이겠죠. 

주니 : 아이들이 있으면 좀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바로 앞이고 어린이 공원도 뒤에 있고. 원래 여기 초등학교가 있다는 거 알고 아이들 웃음소리 들을 생각에 좀 설렜는데 등교를 안 할 때가 더 많았으니.. 아쉬웠어요. 

#골목길 끝, 청년 주택

: 이 집이 골목길 끝에 있어서 처음엔 되게 무서웠어요. 올라올 때 괜히 뒤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요즘 골목길 범죄도 많이 일어나잖아요. 사실 빈집을 재생했다는 말 그 자체는 너무 아름다운데 한 편으로는 얼마나 외졌으면 빈집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주니 : 고양시에도 사회적 주택이 생겼는데 되게 열 받았던 게..(웃음) 그 집 옆에 쓰레기장이 있더라고요. 외지고 확실히 안 쓰고,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그런 곳에 주택을 지은 거예요. 물론 대안으로 역세권 청년 주택이 있긴 하지만 너무 비싸고 ‘원룸 쪼개기’ 잖아요. 그러면서 ‘공동체 성’까지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 집은 정말 살 만 하다. 이런 생각이. (웃음) 어쨌든 성북이라는 지역은 청년에게 열려 있잖아요. 청년 관련 정책을 만들려고 하는 단체가 있고. 그런 게 이 집에 사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사업’으로 청년 주택을 만드니까. 중심이 청년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CHAPTER2. 느슨한 연대 새로운 가족

모경 : 이런 집에 살지 않았다가 이 집에 오니까 이것도 해보고 싶다 저것도 해보고 싶다 생각해요. 주니에게 듣는 정보도 많고 콩이 얘기해주는 것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한테 얻는 시너지가 되게 많거든요. 그게 제 일에도 도움이 돼요. 쉐어하우스의 진짜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걸 해 보고 싶어요. 계속 재밌는 상상을 해 보게 돼요. 

주니 : 작년에는 플리마켓을 계획했잖아요. 결국 코로나 때문에 못했지만. 

: 사실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게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져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 땐 서로의 사생활이 전혀 없었거든요. 작은 방에 다섯 명이서 자고. 지금은 서로 더 많이 존중하고, 캘린더에 일정을 공유하는 규칙도 있고요. 사실 우리끼리도 같이 사는 건 처음이다 보니까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게 단숨에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이 첫 독립의 시간이 나 스스로에 대한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가족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모경 : 우리는 같이 사니 언제든 만나고 이야기 할 수 있고 또 문제가 생기면 같이 해결할 수 있잖아요. 거실이든 부엌이든 자유롭게 회의 하고 소통하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자유로워서 그동안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없다 싶은 것도 이야기 하고요. (웃음) 

CHAPTER3. 아쉬움 

#쓰레기 에너지 문제

: 나는 자취를 하면 요리를 엄청 잘 해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처참히 안 해 먹더라고요. 내가 해먹으면 생각보다 맛이 너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고요. 한달에 한번이라도 같이 밥 해먹는 문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주니 : 맞아요. 차라리 돈을 더 주고 맛있고 제대로 된 음식을 사 먹자. 들이는 에너지는 큰데 맛은 별로니까 잘 안 해먹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플라스틱 용기가 되게 많아지고. 우리가 그래도 다 기후변화에 대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웃음) 이 부분에 대해서 같이 조율을 해봐요. 

모경 : 지난겨울에 난방비도 꽤 많이 나왔는데 처음이라서 우리가 좀 실수를 했던 것 같아요. 중앙난방 체제다 보니까. 이번 겨울은 줄일 수 있는 건 줄이면서 집 관리를 해보고 싶어요. 

#주거랑 일터랑 한 공간? 

주니 : 원래 SH에서 이 사업을 하면서 내건 조건이 이 집을 ‘주거+사무실’ 두 가지 기능으로 사용하자는 건데 그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저는 주거와 일터를 분리 하고 싶거든요. 층간 분리가 된다거나 공간 분리가 되면 괜찮은데 우리 집은 단층이고. 청년단체라도 사실 싸울 수 있잖아. (웃음) “왜 청년들을 지원해줘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청년 문제, 주거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하죠. 

모경 : 청년 주택에 예산을 많이 들이고 있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자기 집’ 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관에서 실사를 자주 나오고 민관 단체와 협의를 해서 문제를 좁혀 나가야 하는 거죠. 이 집에 살아야 하는 청년 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점들이 좀 안타까운 것 같아요. 

CHAPTER4. 터무니있는 내일을 위하여

: 사실 신문이나 언론에서 보는 ‘주거 난민’ 수준으로 주거 난을 겪고 있진 않았거든요. 계속 부모님 집에서 학교에 다녔고. 물론 4시간이나 통학했지만. 그런 기사들을 보면 무서워서 독립을 못하겠더라고요. 여기 들어오니까 오히려 우리나라 청년의 주거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됐고 공감했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아닌 그들이 여기서 살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어요. 내가 ‘당사자성’을 느껴도 되나? 하는 거죠. 주거 난을 겪는 청년임에도 불구하고요.

주니 : 공감하지만 조금 의견이 달라요. 그러니까 부모님의 소득, 내 소득이라는 표면적인 수치 안에 다양한 맥락들이 있다는 거죠. 모든 사람들의 가정사가 다 다르잖아요. 당장 먹고 산다고 해서 주거 빈곤에서 벗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거 빈곤 청년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함부로 재단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모경 : 저도 비슷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혜택을 받는 이상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질문하고 계속 답하려고 노력하게 돼요. 

#thanks to… 

주니 : 공동체 생활이나 단독주택 사는 것, 터무늬 라는 특이한 케이스, 성북 이런 것들 사이에서 되게 많은 걸 발견하게 돼요. 이 기회가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증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서울에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값진 경험이죠.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지만! 그건 작은 부분이고요. (웃음) 사회 지향적인 것들, 공동체 지향적인 것들을 받았을 때 내가 당장 베풀 순 없더라도 어떻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 같아요. 모경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고 우리가 지역에서의 소비를 하려고 한다거나. 

모경 : 기회가 된다면 직접 시니어 그룹을 만나보고도 싶어요. 저는 마을에 좋은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세대 차이를 무시할 순 없지만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인사이트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청년 상황에 공감을 하고 자기 재산을 출자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터무늬가 시니어 세대와 많이 대화하고 교류하는 장이 되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반대할 수도 있지만. (웃음) 그리고 집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청년들이 이렇게 서로 교류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자신의 살 곳, 새로운 고향을 결정하고, 집의 크기와 모양을 고르고, 자기의 편리에 맞는 가구를 선택하는 과정은 유튜브와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꿈의 한 장면일 뿐이다. 대신, 청년을 기다리는 건 ‘닭장’ 같은 방이다. 보통의 ‘살궁리’ ‘먹을궁리’ ‘놀궁리’ 들이 가능한 세상을 꿈꿔본다. 언젠가 청년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 곳을 고를 수 있는 그 날까지. 터무니있는 집값과 터무니있는 일상을 만나게 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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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최희진, 송지우, 상덕, 홍지수, 홍다솜, 이혜원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6월 25일

*2017년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SSK)의 지원을 받음(NRF-2017S1A3A2066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