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브리핑] 일하는 공간(workspace)을 둘러싼 도시 공간의 재편과 저항 I 심한별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12월 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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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공간(workspace)을 둘러싼 도시 공간의 재편과 저항

심한별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연구원)


사진: 최혁규, 2020

서울의 오래된 도심에 있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05년부터 2008년 사이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진행되었던 곳에서만, 약 3천 8백여 개의 사업체, 1만 5천 명의 일자리가 줄었다. 진행 중인 을지로와 세운상가 주변의 정비사업도 새로운 용도를 위해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소규모 경제활동과 일자리를 지울 것이다. 이런 정비사업은 기존에 있던 일자리를 밀어낼 뿐만 아니라 저렴한 비용의 공간을 없애고 새 건물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업무, 소비, 주거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예정된 정비사업이 모두 완료되었을 때 서울의 도시경제는 어떤 변화를 하게 될까?

서울처럼 대도시 도심을 채우고 있던 생산활동이란 작은 규모로 일하는 시민들의 경제활동이었으며, 그들의 노동으로 인한 생산품과 서비스가 고부가가치 영역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했다. 그들의 일자리는 소규모이지만 자율적이며 경제적 위기 상황에도 버티고 지속할 수 있는 안정성을 가진 것이었으며, 비용이 저렴한 그들의 작업공간은 소매를 포함한 시장, 산업과 제조업, 창의적 노동, 개인 서비스, 도시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경제활동 등 다양한 용도와 경제활동을 포용하는 능력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저렴한 비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일하는 공간을 도심에서 축출하는 개발 압력은 그곳의 작은 경제주체들의 강제적 이주는 물론 일하는 공간에 대한 사회적 투쟁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일하는 공간’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불평등한 주거와 투기적 주택시장이 사회적인 문제로 뚜렷하게 인식되어 온 것에 비해 일하는 공간의 문제는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상생활과 생산과정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 상황은 개인적인 차원의 일하는 공간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대부분 경우 개인이 ‘임대’하는 공유오피스는 ‘출근하지 않을 자유’와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을 대표하기보다는 불안정한 노동시장 참여자가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관리하고 노동할 공간을 마련하는 비용까지 떠맡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더 이상 노동자가 큰 생산체계로 조직되지 않고 “협업 co-work”하는 개인사업자로 바뀌는 변화의 이면에서, 공유오피스가 진정 혁신적인 개선일 것이며 저렴한 비용(affordable)의 일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도시에서 강제 철거와 쫓겨남은 가장 반공공적인(anti public) 일이다. 도시의 공기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Stadtluft macht frei”)는 11세기 독일 지역의 속담처럼 도시는 장원제도의 예속에서 벗어나려는 농노들이 해방의 공간이었다. 물론 그들이 아무 조건 없이 자유로운 시민이 될 수는 없었을지언정 도시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일하는’ 시민들을 전제한다. 이들의 존재야말로 도시를 생산의 공간으로 지속할 수 있게 하며 그 동력을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는 마주침과 혼종이 출현하는 바탕이다. 그래서 도시는 “누구에게나 의자가 마련된”(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공공성의 공간이다. 존재의 자유가 없는 도시는 곧 생기와 번영을 잃는다. 공공성을 잃는다면 즉 누구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장소가 된 곳은 더 이상 도시가 될 수 없다.

자연 이외에 생산은 노동에 의한 것이므로 일하는 공간에서 가치는 만들어진다. 최근 온라인 경제가 급속하게 주류로서 성장하면서 기존의 생산양식은 이미 다른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대도시 공간은 디지털 경제의 노동자들이 밀집하는 생산공간이다. 전 세계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작은 규모의 경제주체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the growing small unit economy). 플랫폼 경제는 안정되고 조직화된 노동 주체보다 불안정하고 개인화된 노동 주체, 프리케리어트(precariat), Gig 노동자들을 노동시장의 단기 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생산체계 내에서 순간적으로 고용되었다가 사라지는 짧은 노동의 연속됨 속에서 그들은 사회의 집단적 생산을 유지하는 체계를 위해서 개인화된 방식의 고립된 노동을 수행한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시간을 스스로 연장하게 하는 생산성의 압력과 일하는 공간과 같은 노동 조건들마저 직접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개인화된 노동이 늘어나는 한편 저렴한 비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일하는 공간은 줄어든다. 데자뷰처럼 반복되지만 일하는 이들의 공간이 사유화와 인클로저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공간에 대한 개발 압력은 대도시 도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의 구성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도심의 전통적인 생산활동은 ‘괜찮은’ 급여 수준의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저렴한 비용의 공간은 다양한 경제활동을 포용하고 그로부터 생성되는 산업의 다양성은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대한 내성과 회복력의 원천이 된다. 즉 저렴한 비용의 일하는 공간이 결국 건강한 도시경제를 만든다. 다양한 생산활동의 중요성과 의미를 알아차린 런던시는 부담가능한 수준의 저렴한 비용의 일하는 공간(affordable)을 도심에 유지하려는 정책 지향을 런던 계획에 담았다. 토지이용 계획에서 생산 용도로 쓰일 공간의 면적을 유지하고(Policy E2). 시장 가격보다 임대료를 낮게 유지한다(Policy E3). 그럼으로써 도심의 생산활동이 특정 부문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수 생산활동도 입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춤으로써 다양성을 얻는 것이다.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되지만,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주거 등의 다른 목적과 일하는 공간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고려한다. 개발 압력이 유일한 논리인 부동산 시장에 도시공간을 맡기지 않고, 일하는 장소 즉 생산공간으로서 균형을 잡기 위한 정책적 개입을 의도하는 것이다.

을지로 주변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강북의 도심도 급격한 변화의 과정에 있다. 전통적으로 서울 도심부는 작은 규모의 자영업자들의 생산활동으로 채워졌다. 특히 청계천과 을지로 주변은 고부가가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제조업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의 소규모 업종들이 자리했다. 특히 그들 제조업은 서울 전체 제조업 사업체의 24%에 달하며 이들이 고용하는 ‘괜찮은’ 일자리는 서울의 제조업 전체의 7%에 달한다. 오랫동안, 이 제조업은 부적합한 생산활동으로 인식되어 결국은 도심에서 나가야 하는 대상(displacement)이었다. 그런데 이들 제조업은 기계, 금속, 목재, 가구, 인쇄, 귀금속, 의료, 문화예술 관련 제작 등으로 대도시 경제에 활력을 주는 ‘새로운 경제(new economy)’를 뒷받침하는 생산활동들이며 새로운 경제는 경제의 주력으로 부상하는 정보, 문화, 창조 부분의 생산과 결합한다. 이러한 연계 속에서 서울 도심의 제조업은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해왔으며, 도시경제가 안정성을 가질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지불가능하다(affordable)는 것은 접근가능하다(accessible)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 목적의 용도를 주거 용도로 전환하려는 압력에 맞서 생산활동을 위한 토지 용도를 보존하고 그곳의 점유 비용을 저렴하도록 유지하는 것은, 산업적 젠트리피케이션(industrial gentrification)을 막아 균형 있고 다양성을 가진 회복력의 도시 경제에 기여할 것이다. 도시는 일하는 공간, 노동이 발생하는 공간, 생산 공간이다.


사진: 최인기, 2019.1.4

참고 자료

  • London Plan 2021, Ch.6 Economy, Policy E3 Affordable workplace
  • Ferm, Jessics, “Preventing the displacement of small businesses through commercial gentrification: are affordable workspace policies the solution?.” Planning Practice & Research 32.4 (2016): 402-419
  • Made in Newyork, http://www.madeinnye.org
  • ‘Affordable workspace; A Solution, Not a Problem’ British Council for Offices, Briefing Note, July 2021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심여은, 김석준, 이희라, 송지우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2년 12월 0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