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신촌 지역 연구공동체 소개 | 현대정치철학연구회 황재민 연구원 인터뷰

5월 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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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라면 어떤 주제와 입장의 일관성 같은 것도 매우 중요하잖아요. 왜냐면 일관된다고 하는 것은 신뢰감을 주는 거죠. 그 연구자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그만큼 그의 작업은 (독자라고 하건 아니면 수용자라고 하건) 그런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신뢰감을 가지게 하는 것 같은데요. 저희 현정철 소속 연구자들이 그런 식의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연구자로 계속 이렇게 남을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는 것, 이게 저희의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2023년 웹진 공유도시 팀은 ‘마포-신촌’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지식 공유 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여러 학술 단체들을 직접 취재하여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그 중 세 번째로, 2000년대 후반부터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정치 철학’ 연구자들이 모여 지역사회에서 꾸준한 세미나와 토론회,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번역 작업을 통해 다양한 ‘현대 사상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온 ‘현대정치철학연구회(이하 현정철)’를 찾아가 보았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회와 흘러 넘쳐나는 정보의 물결 속에 자신만의 긴 호흡으로 한 연구 주제를 탐구하는 일은 점점 어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이 곁에 있다면 어떨까? 깊은 사유와 통찰을 위하여 서로 응원하고, 소통하고 때론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현정철의 ‘공방’에서라면 아마 함께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정철의 황재민 선생님을 만나 지식 공유를 실천하는 삶에 대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자 | 2023.05.19. (금) 오후 3시

장소 | 현대정치철학연구회 공방


현대정치철학연구회가 걸어온 길

Q: 우선 선생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황 : 안녕하세요. 저는 현대정치철학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재민이라고 합니다. 저는 박사논문 준비 중인 서양철학 전공자이고요. 우리가 보통 ‘현대 프랑스 철학자’라고 일컫는 미셸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령 이 둘에게서 쟁점이 될 수 있는 권력과 저항의 문제, 또 그 둘이 사용한 개념으로 치자면 ‘장치’, ‘주체화’ 같은 것을 중심으로 탐구하고 있는 철학 전공자입니다.

Q: 감사합니다. 그러면 현대정치철학연구회(이하 현정철)는 어떤 단체인지 탄생 배경과 걸어온 길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황 : 저희가 이제는 ‘연구회원’이라고 해서 저 포함 열네 분이 함께하고 계시는데요. 일단 탄생 배경을 말하자면 구성원 몇 분 성함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출발은 2000년대 후반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000년대 후반에 진태원 선생님께서 꾸려 갔던 ‘현대정치철학 세미나’ 모임 하나가 있었고요. 그리고 서강대를 거점으로 김정한 선생님께서 주도한 ‘서강정치철학연구회’가 있었습니다. 이 두 모임이 따로따로 진행되다가 합쳐져서 2010년대 초부터 ‘현대정치철학연구회’라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카페 하나 열어 두고 계속 장소 빌려 가면서 모임을 지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현대정치철학연구회’를 걸고 치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때부터 진태원 선생님과 김정한 선생님 이 두 분이 함께 치른 토론회 등이 모임의 기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두 분 공통의 관심사가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사상,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주제 등이기도 했기 때문에 꾸준함을 보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이후에는 당시 푸코와 아감벤, 랑시에르의 저작들을 국내에 다수 번역해 소개하고 있었던 김상운 선생님, 양창렬 선생님께서 합류했기에 모임에서 독서하는 주제나 책이 좀 더 다변화되었지 않았나 추측되고요.

방금 말씀드린 네 분의 주도로 2018년부터 저희 고유의 공간을 만들자는 흐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3월에 처음 상수역 부근에 터를 잡았는데요. 과거에는 하나의 세미나 모임으로서 지속돼 오다가 이제 이런 공간을 마련했으니까 말하자면 사업을 벌여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멤버십도 정확히 해야 할 만한 사정이 생겼고요. 사실 이 인터뷰를 통해서도 저희 구성원 열네 분의 이름과 어떤 활동을 주로 하는지가 좀 정확하게 담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어쨌든 그게 제 몫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 황재민 연구원(황)

Q: 그러면 그분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괜찮으시다면 이제 현대정치철학연구회를 꾸리고 계시는 열네 분이 어떤 분이 계시고 또 어떤 일을 하시는지 간단히 한번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황 : 말씀드렸다시피 최초 만들어진 시점이 이제는 꽤 오래된 셈이죠. 따라서 지금 웹진 공유도시에서 인터뷰하게 된 여러 단체에 비해서는 뭐랄까요, 회원들 간의 일종의 이제 연배 차가 조금 있을 수 있는 조직인 것 같습니다. 선배 선생님들 같은 경우 대학을 소속으로 해 계시는, 아까 김정한 선생님 같은 분은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에 재직 중이시고요. 진태원 선생님께서도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소속입니다.

또 김상운 선생님, 양창렬 선생님, 이보경 선생님 등은 다른 생업은 가지고 있으면서 현정철 공간에서 연구와 작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노력하시고 계신 분들입니다. 번역도 꾸준히 하시고들 계신데, 조만간 이들의 새 번역서들, 즉 푸코와 데리다의 저작이 하반기에 차례차례 나올 전망입니다.

바깥에서 현정철에 대한 인상은 현대사상가에 대한 번역, 소개 작업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국내 급진적 담론의 대표적 잡지 일에도 관련했고 또 현재도 하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요. 가령 사회적 재난 관련한 연구와 활동을 하시는 정원옥 선생님은 󰡔문화과학󰡕 일에 오랫동안 관여해 오셨고요. 앞서 말씀드린 진태원 선생님도 『황해문화』편집위원이시고요. 최근 기후 문제 관련한 여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채효정 선생님은 잡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입니다. 서평집 중심의 저술 활동을 하시는 강민혁 선생님도 계시고요.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내는 출판사 ‘두번째테제’ 꾸려 나가고 있는 제 오랜 동료 장원도 저희 구성원입니다.

저도 열거하고 보니까 연구, 번역, 출판, 잡지 등 여러 방면으로 저희 구성원들이 포진되어 있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외 약간 공부를 좀 더 하기로 되어 있는 저 같은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노동운동에 관심 갖고 있고 이제 박사논문 거의 다 마쳐 가고 있는 장진범(사회학), 서양철학 전공하는 강길모, 이찬선, 최의연 등은 막 박사과정 진학했거나 하려고 하는 분들입니다.

이 열네 분이 왜 모여 있을까요? 아마도 구성원들이 해 왔던 어떤 작업물들이 있잖아요. 번역서가 있을 수도 있고, 논문이 있을 수도 있고, 책이 있을 수도 있고, 잡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서로 공감을 하고 함께하고픈 그런 의지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현대정치철학연구회 공간 벽면. 현정철은 사회운동 단체 ‘플랫폼씨’,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두 모임과 함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현정철 홈페이지 https://space-x.co.kr/)

Q: 네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공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번 여쭤보고 싶은데요. 사실 인터뷰하는 이 장소의 이름도 공방이고, ‘공방’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되게 많이 활용하고 계시더라고요. 공방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초대석이나 세미나, 토론회 등등을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되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공방을 활용하고 계시는지, 현정철에게 ‘공방’이란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황 : 아마도 단체를 만드는 것과 공간을 꾸리는 것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단체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웹진 공유도시에서 인터뷰하려고 하는 단체들의 경우 대체로 공간 이름과 단체 이름이 별도로 이루어지는 곳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처음에는 세미나 모임으로서 존재하다가, 그러니까 거처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채 거의 10년 가까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다가, 이제 이렇게 공간을 잡아서 그런지 이 장소에 대한 별도의 이름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공방’이라고 했는데 공방의 다의적 의미는 그것 자체로 좀 생각을 해 뒀었던 것 같고요. 지적해 주신 대로 한자를 달리해서 여러 의미를 둘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작업 공간(工房)이라는 의미도 되고, 함께 공유하는 공간, 함께 공유하는 방(共房) 이런 의미도 되고요.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한다는 의미에서 빈 공간(空房), 마지막으로 이제 어떤 토론을 벌인다, 논쟁을 벌인다는 의미에서 공방(攻防), 이렇게 네 가지를 ‘공방’이라고 했을 때 벌써 구상은 했었는데요. 이제 그러니까 각각의 사업, 저희가 공간을 만들고 저희 바깥의 여러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런 사업들과 연결해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여러 다른 단체들도 모두 추구하고 있는 바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저희도 명실상부하게 활동해 나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Q: 그러면 현정철에서 많은 행사나 아니면 활동을 진행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오랜 기간 속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는지 한번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황 : 저희가 2019년 3월에 본격적으로 이런 살림을 꾸렸다고 보면 사실 그렇게 오래됐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까 열거한 저희 구성원 열네 분이 있잖아요. 말씀드렸다시피 열네 분이 제각각 활동거지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저희가 사실 함께 모이는 거 자체가 그렇게 쉽지 않은 조직이거든요. 그래서 총회나 송년회같이 다 같이 모이는 자리 자체가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저로서는 좀 감격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모이면 각자 활동에 대한 점검도 되고, 앞으로 무엇을 함께 해 보자고 제안도 할 수 있어서 앞으로 그런 자리를 자주 가져가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그럼 선생님께서는 현정철에서 본격적인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건가요?

황 : 저는 2016년으로 기억이 나는데요. 아무튼 2017년 전후로 좀 합류를 했었던 것 같고요. 그러니까 예전에 현정철에서 해 왔던 세미나 모임이라고 하는 게 구성원들의 초역 원고를 검토하는 모임이 더러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한데요. 저도 제 번역 원고를 가지고 처음에 합류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네요.

Q: 그러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이제 아무래도 ‘공방’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공간을 가지게 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면 이제 앞으로도 현정철에서 해나가고자 하는 계획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홍보하고 싶은 행사나 활동이 있으실까요?

황 : 당장은 ‘맑스코뮤날레’ 행사에서 5월 26일에 한 꼭지 담당해서 구성원 두 명이 발표도 하고, 다른 구성원들이 토론과 사회도 보면서 한 자리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이 행사에 관심 있는 여러 사람이 함께해 줬으면 하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각자의 연구 및 활동이 있어서 저희 자체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기획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맑스코뮤날레’는 전통 있는 행사이기도 하고, 저희 김정한 선생님께서 집행위원도 하시고 계시고 해서요. 저희가 한몫해야겠다 해서 한 꼭지 마련했는데, 아마도 일단 이 행사를 잘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다음 주인데요. 저희끼리 손발도 잘 맞춰 보면서 이를 잘 치러서 앞으로 다른 행사도 도모하는 그런 차원으로 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현정철에 합류한 뒤로 2017년에도 비슷하게 치른 ‘맑스코뮤날레’ 행사라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생소한, 그러니까 현대철학자 카트린 말라부의 사상, 미셸 푸코의 픽션론이라는 어쩌면 실험적 주제이기도 한 것 같은데, 함께 힘을 모으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방어적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맑스코뮤날레’하긴 해야 한다” 식으로요. 구성원들이 바쁘기도 하고 준비 시간도 넉넉지 않았고요. 그럼에도 발표 맡은 분들이 새로운 걸 한번 발표해 보자고, 또 이를 위해 머리를 맞대 보자고 해서 준비 중입니다. 지금 발표자분들이 바쁜 가운데 고생하고 계신데요. 아무튼 이 행사를 잘 치러서 앞으로 내부 기획 역량을 발휘하는 데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Q: 학술 단체를 운영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 이런 단체를 좀 긴 기간 동안 운영을 해오시면서 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운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나 고충이 있다면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황 : 최근 마포 신촌 연구 모임들이 함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활동을 지지하는 성명도 내고 토론회를 치렀는데요. 토론회 일정 다 치르고 뒤풀이 자리에서 제가 다 만난 것은 아닙니다만 몇몇 단체들의 몇몇 분들 만나 얘기를 나누는데 자연스럽게 각자 공간을 운영하기 위한 일종의 경비, 비용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더라고요. 어느 단체나 공간을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기 때문인데요. 그런 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실제적인 고충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있는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사실 이게 연구 모임이잖아요. 연구 모임, 공부 모임이라고 하면 상설적으로, 상시적 일을 진행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각자의 연구라고 한다면 달력식 사업 같은 게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한편에 있잖아요. 바깥에 알릴 만한 일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고 억지로 매번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연구 모임이라고 한다면 항상 곤란함이 생기는 측면인 것 같습니다. 그런 균형을 좀 잘 맞춰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시의성 있는 주제로 항상 외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지만 그것을 너무 기계적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게다가 내부적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순서가 먼저여야 되잖아요.

가령 저희 현정철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플랫폼씨’라고 하는 사회운동 단체와 공간을 함께 쓰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사회운동 단체라면 매번 주기적으로 환기가 되는 그런 활동들을 하게끔 몸 틀이 딱 되어 있는데, 연구 모임, 각자 연구하는 연구자들이라고 했을 때는 어떤 외부와의 소통을 주기적으로 혹은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말하자면 활동의 호흡이 다소 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측면이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공간을 마련해 활동을 한다는 것은 항상 외부와 만난다는 뜻이 될 텐데요. 그런 게 한쪽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의 연구를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고요. 그 둘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까 공방 이름 얘기할 때 나왔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세미나 모임, 이런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모임을 충실하게, 지속적으로 계속 해 나가는 게 좀 좋겠다, 그런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저희 구성원 14명 된다고 했는데 이제 각자의 관심도 있고 모여서 함께 할 수 있는 주제도 있을 터인데, 우선은 각자의 관심사들이 이 공간을 활용해서 풀려나갈 수 있는 활동을 차근차근히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Q : 저도 학회 활동을 오래 해봤는데 어려운 것 같아요. 주기적으로 모인다라는 게. 저도 되게 많이 공감되네요.

황 : 아무래도 그런 모임을 한다는 것은 연구자끼리 어떤 문제의식을 나눈다는 것도 있을 수 있고 모임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도 소통한다는 목적도 당연히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다 모임도 꾸리고 공간도 만들고 이러는 거잖아요? 근데 사실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일수록 탐구의 호흡도 길고 진행 과정도 예상키 어렵고요. 그런데 일상적으로 뭔가 계속 해 나간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본업들이 따로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시시각각의 어떤 정보를 나누는 것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어쩌면 이를 극복한다는 게 연구자끼리 모여 얘기를 나눠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현정철 in 마포-신촌

Q : 이제 소개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얘기를 들어본 것 같고요. 그러면 이어서 현정철과 마포 신촌 지역에 대해서 저희가 여쭤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마포 신촌 지역에는 현정철을 포함해서 많은 인문사회 연구 공동체가 모여 있습니다. 현정철도 앞서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상수역에 있다가 마포 신촌 지역으로 이동을 해왔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 지역에 자리 잡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황 : 저 자신도 좀 궁금하기는 하더라고요. ‘여기에 왜 많은 자율적 연구 모임들이 있을까?’ 아마도 대학, 그러니까 인근 대학교들이 좀 많은 편이라는, 다른 시나 구에 비해서는 그렇다는 것도 있겠고요. 그리고 마포라고 하면 결국 합정, 망원, 상수 이쪽인 것 같은데요. 마포와 신촌은 아무래도 청년 지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마 저희 선배 선생님들도 모임을 꾸렸을 때는 그런 측면이 있었겠죠? 더 젊은 학생들이나 연구자들, 여기 웹진 팀으로 보자면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고 시작할 지석 선생님, 석준 선생님처럼, 이런 분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을 겁니다. 다른 단체들도 그랬지 않을까라고 추측을 해 봅니다.

그런데 사실 대학교가 여기 있다고 해서 사는 곳이 꼭 여기는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희 구성원들도 각자의 사는 곳은 좀 더 외곽에 퍼져 있다가 여기 현정철이 있는 망원으로 모이는 형국인데요. 물론 교통편의 편리함도 있겠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웹진 공유도시처럼 이곳으로 묶어서 취재도 하고 대담도 하니까 마치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습니다. ‘월세 더 싼 곳이 있으면 그것을 봐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솔직히 하긴 하는데 이렇게 되니까 의미도 부여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고민도 생기네요.

Q: :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투쟁을 지지하는 선언과 학술토론회가 진행되었었는데요, 마포 신촌 일대에 있는 연구자 지식인들이 주도하면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마포 신촌지역에 자리 잡은 다른 연구 단체들과도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서로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정철은 이런 연대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가고 싶은 부분이나 기대하는 바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황 : 아마도 단체들끼리 다소 불균형하긴 할 텐데 인적 연관을 긴밀히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이 전장연 투쟁에 연대하는 지지 선언을 주도하신 걸로 알고 있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맑스코뮤날레’ 같은 행사도 그런 분들이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게 앞선 질문 ‘왜 유독 마포 신촌이었을까’라는 것과도 연관이 있죠. 인간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가깝게 있다 보니 언급한 일들도 다소간 쉽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전장연 투쟁 지지 선언과 토론회는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일단은 각 연구 모임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바를 최소한으로 보여주는 활동이었습니다. 전장연의 투쟁이라고 하면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마포 신촌의 연구 단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지향을 최소한도 내에서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저는 되게 의미 있는 활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활동의 결과물로서 토론회를 치렀는데, 그것도 다소 급하게 하느라 많은 연구자, 그때 모인 연구자 단체 각각의 모든 사람이 등장한 건 아니겠습니다만, 어쨌든 급하게 치른 것 치고는 발표 내용들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고요.

또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은 다양한 전공, 다양한 분야가 있었다는 점인데요. 철학도 있을 수 있고, 사회학도 있을 수 있고, 미디어 관련한 전공일 수도 있고, 예술 쪽일 수도 있고, 문학일 수도 있는데 그런 다양한 전공자들이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이었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활동을 통해서 어쨌든 지지 선언뿐만 아니라 연구 활동까지도 이어지게끔, 누구에겐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냈다는 게 일단 좀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도 좀 비슷하게, 꼭 기층의 어떤 투쟁을 지지하는 활동은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주제라고 하든, 정세라고 하든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지난 2023년 4월 15일 ‘역량으로서 장애’ 학술토론회 현장 및 포스터

Q: 그러면 ‘한 가지 사항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씀 해주셨듯이, 많은 단체와 접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 현정철만이 가지는 차별점이라든지, 아니면 뭔가 포지셔닝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현정철만이 가지는 그런 지점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황 : 모르겠습니다(웃음). 제가 말씀드리기 쉽지 않은데요. 저희가 처음 꾸려졌을 때는 안 그랬을 수도 있는데, 이제 어느덧 현정철이 지금 마포 신촌 지역에서 오래된 모임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앞서 언급한 공동의 행사들이 생기면 현정철에 속한 저희 선생님들이 좀 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고, 좀 더 바깥 눈치를 살피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활동들을 열어가야 하는 여러 연구자들이 있잖아요. 이제 그 연구자들에게 작게나마 도움도 돼야 하고 모범도 보여야 하고, 또 새로운 어떤 쟁점을 두고서 날카롭게 논쟁도 해야 하는, 이런 것들을 저희 고참 선생님들이 분명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관심이 구체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맑스코뮤날레’ 같은 행사도 잘해 보려는 게, 전장연 지지 선언도 그랬지만, 어쨌든 이런 사안이 있어야 서로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사안을 어떻게 잘 찾아서 어떤 제안을 해야 할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아무래도 연령대가 좀 있기 때문에 뭔가 사안이라든지 행사라든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계시는군요.

황 : 저는 절대 그런 부담이 없긴 한데요(웃음). 다른 분들은 조금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만 이렇게 한 발 빼는 듯한 답변이 되는 것 같네요(웃음).

Q: 이제 이번 인터뷰를 읽고 처음 현정철을 알게 될 분들 그다음에 혹은 관심을 갖게 될 분들이 계실 텐데요. 그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황 : 현대정치철학연구회라고 하면 뭔가 제도화된 단체인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세미나 모임을 하나 꾸리면 세미나 신청자들을 하나하나 만나게 되잖아요. 그러면 뭔가 딱 갖춰진 분들이 많이 오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새롭게 만나는 분인데 벌써 그분도 연구자라든지 이미 학위를 받으신 분이라든지, 아니면 외부 활동상이 분명한 분들, 이런 분들이 많이 오시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제가 다 아는 건 아니어서 비교는 어려운데) 저희 현정철의 어떤 공개 행사도, 그게 세미나라고 하던, 발표회라고 하던, 저희 현정철 행사는 그렇게 문턱이 높지 않습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오히려 더 낮은 경향이 있어요. 그러니까 하다못해 세미나를 하게 되면 세미나 참가자들이 가지게 되는 부담이 있잖아요. 책을 얼마만큼 읽어가고 발제를 하고 이런 부담이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다른 단체들의 행사와 비교해 보면 현정철이 결코 문턱이 높지 않거든요. 오히려 더 널널하다. 참여하기에 현정철의 모임이 더 문턱도 낮고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Q: 그러면 열네 분 말고도, 따로 추가로 활동하시는 분과 세미나 참여하시는 분들은 다른 건가요?

황 : 저희가 사실은 후원회원들을 두고 있어요. 그러니까 설계는 어떻게 된 거냐면, ‘후원회원’이라면 현정철은 당연히 후원회원들의 후원비를 받겠지만, 저희는 후원해 주신 분들과 세미나도 늘 함께하고 토론회 있을 때는 초대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한 거죠. 저희의 작업 결과물도 나누고요. 공식 출판물은 아니지만 이런 책자도 만들어서 후원회원분들 하고 공유하는 것 이런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미나 모임이 토요일 오전에 자크 랑시에르의 󰡔철학자와 그 빈자들󰡕이라는, 우리말 번역을 준비 중인 그 책 가지고 역자이기도 한 양창렬 선생님께서 진행되고 있는데 석준 선생님께서 오시면 좋을 것 같고요. 금요일 오후 격주로 모이는 ‘노동운동의 지성사’ 세미나도 있습니다. 거창한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주제 관련 서적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온라인으로 푸코 󰡔생명정치의 탄생󰡕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요. 이 모임도 오랫동안 이어진 것인데 어쩌다 보니 지방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이 주축이어서 온라인으로만 일요일 오후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관심사인 푸코나 알튀세르 관련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이런 세미나 모임들이 기본적으로 후원회원분들과 함께하는 활동입니다.

지금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데, 사실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열네 분의 연구회원들이 이 공간에서 자기 시간으로써 삼아 어떤 주제나 책이든 각자 이렇게 세미나를 꾸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결과물도 나오는 그런 형태가 저희 모임 성격에 가장 좀 적합해 보여요.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교류하고 작업물을 공유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형태일 것 같습니다.

[사진] 현정철 세미나 작업물들


마치며

Q: 그러면 어느덧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향후 현정철의 목표나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다면 간략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황 : 얼마 전에도 저희끼리 모였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현정철에서 주로 읽게 되는 작품들을 쓴 사상가들은 말년에 이르기까지 어떤 활동을 했을까? 말하자면 출세작들을 쓰고 나서 죽기 전까지 뭘 했을까? 답은 똑같았다, 강의하고 글 쓰고 발표하고 그랬다, 죽을 때까지. 저희도 마찬가지로 세미나 하고, 책 읽고, 글 쓰고 번역하고 이런 것들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이런 얘기가 나왔었는데요. 저도 그 말에 동감하는 편이고요.

연구자라면 어떤 주제와 입장의 일관성 같은 것도 매우 중요하잖아요. 왜냐면 일관된다고 하는 것은 신뢰감을 주는 거죠. 그 연구자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그만큼 그의 작업은 (독자라고 하건 아니면 수용자라고 하건) 그런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신뢰감을 가지게 하는 것 같은데요. 저희 현정철 소속 연구자들이 그런 식의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연구자로 계속 이렇게 남을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는 것, 이게 저희의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Q: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문지석, 홍지수, 심여은, 김석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3년 5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