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에게 | 위스테이 별내 사회적협동조합 이상우 상임이사

1월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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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안녕,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난 최근 별내로 이사 왔어. 별내는 택지 개발 지구로 아파트가 들어선지 올해로 10년이 된 인구 8만 명의 작은 도시야. 춘천으로 나가는 철도가 있는데, 집 가까운 곳에 4호선 연장선이 진접선이 들어와서 곧 개통해. 3월이면 전철을 타고 서울로도 갈 수 있고, 산책길 좋은 광릉숲도 더 쉽게 갈 수 있어. 별내는 멋진 바위를 가지고 있는 불암산을 등지고 덕송천, 불암천, 용암천 등의 하천이 동네 중심부를 지나고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멋진 동네야. 

   그런데, 이런 동네에 작년부터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어.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와 약 7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아파트 30층 높이에 연건평 1만 5천 명에 달하는 큰 물류 창고가 들어선다고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야. 하루 들고나는 차량이 그것도 물류 트럭이 1천 대가 넘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대. 이 소식을 나중에서야 들은 동네 사람들이 ‘단순 창고를 가장한 거대 물류센터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물론 이 중에서 가장 열심히 반대 투쟁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어린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이야. 트럭이 가장 몰리는 시간이 하필 오전 8시에서 9시래. 이 시간에 들락거리는 차량은 총 218대 정도라니,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왜 공무원들은 이런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거지? 학교를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창고 공사 시행 회사가 육교를 지어주겠다는 말을 해서 학부모들은 더 분노했다고 해. 아이들 부모들이 ‘별내학부모연대’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이런 규모의 물류창고가 어떻게 시에서 건축허가를 받았는지, 왜 허가취소를 할 수 없는지 등등을 놓고 가장 앞에서 투쟁을 하고 있어.

   그런 와중에 놀라운 일이 있었어. 지난 12월에 학생들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이런 물류창고 건축 허가를 내준 시에 항의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등교거부 운동을 한 거야. 부모들끼리 비상 연락망과 동네의 맘카페 등을 활용해서 등교거부 운동의 취지를 알리고 동참할 사람들을 모집을 했지. 자녀들을 볼모로 NIMBY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해.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고 취지를 분명 히하고 학생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안내를 한거지. 무작정 학교엘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명확하고 분명한 의지를 모아내고 보여주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설명한 거야. 하지만, 취지에 동의하고 행동에 참여하려 해도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서 오랜 시간 등교거부 운동을 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딱 이틀만 하기로 했는데, 걱정 많은 이때 마을의 어른들이 나섰어. 마을에 임시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신거야, 이분들이. 평소의 등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돌보고, 점심 식사를 먹이고, 학교 하교 시간에 맞춰 돌아가게 하자는 내용이었어. 당연히 이런 돌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지원이 필요했는데, 우리 마을은 이미 마을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잘 구성된 공간들이 많이 있는 곳이잖아. 내가 살고 있는 위스테이 별내는 돌봄과 교육의 공동체를 표방하면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서로 돌보는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공동구매나 동아리 활동, 마을 행사들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진행해 왔어. 작년에는 국무조정실에서 주는 생활 SOC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거든. 어쨌든, 우리 아파트에는 남양주시 다함께돌봄센터 3호점도 마침 들어와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침부터 정해진 정원 안에서 긴급 돌봄을 맡아주었어. 그리고, 동네 책방에서는 약 25명 정도의 3학년 이하 친구들의 돌봄이, 동네 창작소에서는 5명의 고학년 친구들의 돌봄이 진행되었어. 동네 어른들이 자원봉사로, 업사이클 공예 수업, 그림책을 활용한 연극놀이, 수어로 배우는 다양성 이해, 창의력 아이디어 놀이, 책 읽기와 자유놀이, 아파트 탐험대 등 수업을 진행한 거지. 이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수업은 고학년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 탐험대였대. 아파트 관리소장님이 소개하는 아파트의 숨겨진 장소들을 직접 볼 수 있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신났겠어. 관리실 안쪽에 있는 CCTV, 옥상에서 열일하는 태양광발전소, 층과 벽 사이에 숨어있는 피트 공간들도 보았대. 나도 궁금해지더라니까. 사실 하이라이트는 점심시간이었어. 우리 아파트에서는 경로당을 60+센터라고 불러. 시니어 어르신들이 경로당에서 고스톱치고 밥이나 같이 먹는 수준이 아니라, 일자리를 함께 도모하고 치매예방 교육이나 건강 동아리 활동을 하는 곳이야. 실제로 어르신들이 <60플러스행복협동조합>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제로 웨이스트 물품 판매와 ‘할배달’이라는 마을택배 업무를 하고 있지. 커뮤니티 공간을 청소하는 ‘청소어벤저스’ 모임도 있어. 이 어르신들이 떡국과 하이라이스를 점심 메뉴로 결정하고 직접 장을 보고 동네부엌에서 직접 조리를 한 거야. 나도 돌봄 교사로 참여했기에 한 끼 얻어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정말 맛있더라고. 하얗고 노란 계란 지단이 정성스럽게 올라간 떡국에 홀딱 반했다니까. 아이들이 평소 학교급식에서는 손도 대지 않을 반찬도 잘 먹고 두 그릇 세 그릇을 먹는 걸 보니 흐뭇하기 짝이 없었어. 쇠고기랑 야채 등 떡국에 들어갈 일부 재료들은 동네 주민들이 기부를 하기도 했어. 아이들에게 오늘 왜 학교에 가지 않고, 여기에 있는지 물었는데 아이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어. 무서운 트럭이 다니는 물류창고가 학교 옆에 오는 걸 반대한다고 말을 하더라고. 난 이틀 동안 아파트 곳곳에서 평일 아침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 그날, 오월의 광주가 이랬을까, 그때 파리코뮌이 이랬을까. 온 마을이 마음과 뜻을 모아 서로의 지금을 돌보는 것을 넘어 내일의 미래까지 걱정하고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짜 ‘마을의 돌봄’, ‘돌봄의 마을’이 아닐까? 그 이틀 동안 덕송초 재학생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오백여 명이 등교거부에 참여했어. 

   이날 행사에 참여해 준 주민들에게 용기를 얻은 우리 사회적 협동조합은 아이들의 방과 후 일상 돌봄을 올해 더욱 확대한다고 해. 키움터, 자람터 등으로 국한되어 있던 돌봄 공간을 체육관, 도서관, 창작소 등으로 확대해서, 단지 ‘케어’만을 위해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을 부모들이 퇴근하는 저녁까지 마을에서 돌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고 하니, 너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    

   K야. 

   넌 평소에 정부나 기업들이 뭔가를 주도해서 우리 삶을 끌고 가는 것에 대해 늘 불만이 많았지? 난 우리 위스테이 별내 아파트에 이사 와서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에 늘 감동하고 감탄한단다. 법에, 시장에, 관계에 얽매여 살아가는 우리가 진실로 진실로 만들어가야 할 것은 시큐리티가 보장된 내 집이 아니라,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돈이 아니라, 내 가족만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신화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 안전하고 평화로운 생활환경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웃이, 신뢰가, 공동체가 나를 정말 돌봐주고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지. 잔디광장을 뛰노는 아이들과 걱정 없이 지켜보는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우리 공동체를 계속 지켜봐 주고 응원해 줘. 또 소식 전할게.

 

2022년 1월

별내에서 S가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홍지수, 홍다솜, 송지우, 심여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1년 01월 30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