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융자본의 세계에서 커먼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공동체은행 빈고 지음

7월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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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의 중심 상가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주인이 장사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가게를 내놓았다. 이 가게를 평소에 눈여겨보던 두 집단이 있다. 한 곳은 지역의 큰 부동산 회사고 다른 한 곳은 마을 주민들 일부가 모여있는 카페 커먼즈다. 가게 주인은 적정 가격만 맞는다면 부동산 회사던 카페 커먼즈건 상관이 없다. 부동산 회사는 이 가게를 매입하고 임대를 해서 수익을 얻고자 한다. 적당한 아이템이 있다면 점포를 직영해서 더 높은 수익을 노릴 수도 있다. 카페 커먼즈는 평소 이 마을 주민들이 편하게 모여서 얘기 나눌 수 있는 카페 공간을 만들어서 커먼즈로 운영하고 싶어 한다. 부동산 회사는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투자할 곳도 많고, 투자 대비 수익률도 계산해보고서는 자기 자본은 일부만 투입하고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끌어오고, 나머지는 은행 대출을 받기로 한다. 카페 커먼즈는 주민들에게 출자를 모금하고, 개인적으로 차입도 하지만 나머지는 은행 대출을 받기로 한다. 작은 가게를 둘러싸고 부동산 회사와 카페 커먼즈, 곧 자본과 커먼즈의 한판 대결이 시작된다.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은 모두가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은행이 전문적인 부동산 회사가 아닌 실체를 알 수 없는 카페 커먼즈에 대출을 하겠는가? 카페 커먼즈는 아직 법인을 설립한 것도 아니고, 대표자나 직원이 확실한 것도 아니다. 자본금도 별로 없고 출자금을 얼마나 모을 수 있을지 모르고, 모은다고 해도 안정적이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업계획도 아직 구체적이지 않고, 회의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얘기를 하면 또 언제 바뀔지 모른다. 수익이 되는 가게를 할 게 아니라고 하니, 일하는 사람들은 먹고는 살지 알 수 없다. 결국 은행은 부동산 회사에 대출하고, 부동산 회사는 요새 가장 수익률이 좋다는 가게, 아마도 복권방을 차릴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역에 수익성 높은 기업이 생기고, 일자리도 생기고, 세금도 늘어나니, 지역 경제도 살아나고 참 좋은 일 아닌가? 부동산 회사도 돈 벌고, 은행도 돈 벌고, 부동산 회사와 은행에 투자한 사람들도 모두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예상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닌가?

누군가는 매입은 어려우니 임대하는 것으로 윈윈하는 것을 제안했다. 부동산 회사는 공간을 매입하고 카페 커먼즈에 임대를 해서 수익을 번다. 은행은 부동산 회사에 매입 자금을 대출하고, 카페 커먼즈에 임대 보증금과 투자금을 대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대료는 오르고 부동산 가격도 오른다. 카페 커먼즈는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다. 부동산 회사는 가게를 팔아 시세 차익을 얻던지, 더 높은 임대료로 다른 업체에 임대한다. 다시 복권방이 들어온다. 처음부터 복권방을 바랬던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복권방이 들어오면 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릴 것이다. 물론 카페 커먼즈를 포함해서 마을 주민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지금 커먼즈의 힘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걸 탓할 수밖에. 

금융자본의 세계에서 커먼즈가 자본과 경쟁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커먼즈의 힘은 정말 여기까지인 것일까? 이 마을에는 사실 여러 커먼즈들이 있었다. 물론 원래 이런 이름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커먼즈로 통칭해보자. 오래전에 만들어진 농지 커먼즈가 있는데 한때는 주민들이 주말농장이나 협동농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농사를 꾸준히 짓는 것은 어렵고, 농사를 지어서 수입을 얻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한 사람한테 임대를 주기로 했다. 이 땅을 임대한 사람은 이주 노동자를 고용해서 농사를 짓고 수익을 얻고 있다. 그런데 주변 개발붐에 따라 땅값은 꽤 올라서 1,000평에 10억 정도라고 한다. 

마을에는 주택 커먼즈도 있다. 공동체 주택을 같이 짓고자 모인 사람들인데, 모임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다. 대략 10명이 각자 3천만 원 정도씩을 모았는데, 집을 지으려면 아직 한참 부족하다. 앞으로 10년쯤 모으면 가능할까? 땅값은 계속 오르고 건축비도 오르고, 그동안 살아야 할 주거비도 오른다. 정말로 건축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그래도 그때까지는 잘 모아두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재테크라도 해서 불려야 하나 생각도 해보지만, 위험하게 투자할 수는 없으니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 

마을에는 식당 커먼즈도 있다. 이곳은 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는데, 성공적인 협동조합으로 알려져 있다. 경영을 잘해서 수익이 잘 나오게 되면서 조합원들에게 배당도 하고, 지역사회에 기부도 하고, 1억이 넘는 적립금도 쌓아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협동조합의 경영진은 당장 적립금을 쓸 일은 없지만, 미래에 사업확장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냥 모아두고 있다. 다른 협동조합에 대출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마을에는 중소기업이 하나 있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30명 정도 있다. 노동자들은 과거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저항하는데 단결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덕분에 노동조건은 많이 개선되었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마을의 다른 직종에 비해서 꽤 높아졌다. 노동자들은 주택도 구매하고 차도 구매하고, 이제 모이면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대한 대화들도 오간다. 그러나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미래는 불안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까지는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본과 투쟁하던 노동조합 조합원이 투자를 하는 상황이 썩 내키는 것은 아니다. 

자원의 여유도 있고 커먼즈라면 다른 곳에라도 출자할 마음이 있는 다른 커먼즈도 있다. 그런데 이 커먼즈는 이 마을과 좀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다. 소식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높고, 알더라도 새 커먼즈나 커머너들의 정보를 알 수 없다. 

카페 커먼즈 내부에도 투자금을 모으는 건 쉽지 않다. 사실 카페 커먼즈는 내부에 공간에 대해서 대립하는 두 개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 그룹은 아이들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다른 그룹은 동네 사람들끼리 술도 한잔할 수 있는 술집의 역할도 하길 바란다. 그런데 술을 팔면 아이들이 올 수 없으니 타협이 불가능하다. 다수의 결정에 따라 카페 커먼즈로 결정이 되었지만, 술집 커먼즈 그룹은 카페에는 투자까지 할 생각은 없다. 향후에 다른 공간에 술집커먼즈를 독립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그때 투자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술집 커먼즈 그룹이 준비한 투자금은 1억정도로 알려져 있다.  

마을에는 시중은행의 지점이 하나 있다. 주민들은 집에서 가까운 이 은행에 대부분 저축을 하고 있다. 카페 커먼즈의 구성원들이나 다른 커먼즈의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구성원 중에 큰 부자는 없어서 소액들뿐이다. 각자 100만원 정도? 이 정도 금액은 언제든 쓸지 모르는 돈이라서 투자하기는 좀 그렇고, 일단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구성원들이 300명이다. 이 은행은 이들의 돈을 이용해서 한 부동산 회사에 대출을 승인했고, 그 부동산 회사는 복권방을 차렸다. 

어떤 사람들은 노후를 위해 모아둔 약간의 여윳돈이 있다. 또 곧 나이가 들면 동네 사람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카페 커먼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윳돈은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손실되거나 필요할 때 돌려받지 못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소문에 어떤 투자회사가 있는데 확실한 투자처가 있어서 원금 걱정은 할 필요도 없고, 이익을 많이 돌려줄 수 있다고 한다. 약간 의심쩍긴 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투자한다고 해서,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일단 투자를 했다. 그 투자회사는 한 부동산 회사의 프로젝트에 투자를 결정했고, 그 부동산 회사는 복권방을 차렸다. 

금융 자본주의에서 커먼즈가 만들어지는 것은 가능할까? 위에서 본 여러 커먼즈들의 이야기처럼 사실 커먼즈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부자는 아니겠지만, 자본주의 안에 살면서 돈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커먼즈라고 할 수 있는 영역에 이미 들어와 있는 돈들도 많이 있다. 문제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적절히 모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커머너와 커먼즈가 서로 소통하거나 거래하거나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각 커먼즈의 현재 상황을 파악해서 지금 자원이 필요한지, 아니면 활용되고 있지 못한 자원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곤란하다. 여러 커먼즈의 계획을 종합해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하고 필요하고 긴급한 쪽으로 자원을 집중시켜 힘을 실어주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모두 거쳐 자금이 유의미한 규모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 쓰이기는 쉽지 않으니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일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본의 은행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복권방에 돈을 공급했을까? 커머너들이 자본을 지지하거나 대단한 자본 수익을 얻고자 마음을 먹고 자본의 은행과 거래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머너들이 자본의 은행과 특별한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복권방을 만드는 데 동의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당장 쓰임새가 없는 돈을 넣어두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 때 그것으로 큰 힘을 만드는 것이 금융과 은행의 역할이다. 그 역할을 자본의 은행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정말 큰 문제가 아닐까? 

이 마을에는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특한 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15년쯤 전에 가난한 청년들이 한 집에 모여 살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집도 조금씩 늘어나야 했다. 여러 사람들이 소액의 돈을 모아 보증금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이 조합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여러 공동체들도 만들어지고 없어지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점점 은행과 유사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 사람들의 목적이 공동체 공간, 공유지를 만들기 위해 출자하고, 공유지를 만들기 위해 이용하다 보니, 어느 누구도 자본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어색했다. 출자자는 물론 이용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조합은 자본 수익을 추구하는 은행과는 반대로 자본 수익을 사양하는 은행이 되었다. 약 500명의 조합원이 평균적으로는 100만원도 안되는 돈을 출자하고 있는데, 그렇게 모인 5억 정도의 돈으로 18개 공동체에 보증금을 공급하고 있다. 아직 작아서 체계적인 계모임 정도에 불과하지만, 금융 커먼즈의 한 예시가 아닐까?   

만약  커먼즈를 지지하고 각종 커먼즈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시중은행이 아니라 금융 커먼즈와 거래를 하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여러 커먼즈들이 모두 금융 커먼즈를 공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커머너들이 금융 커먼즈에 당장은 쓰임새가 없는 돈을 모아 두었으면 카페 커먼즈에 적절히 자금을 공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대단한 결의와 복잡한 협의가 필요한 어려운 일일까? 여러 기업들이 이용하는 자본의 은행이 기업들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서로 협력을 하려고 자본의 은행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단  한가지의 원칙 모두가 자본 수익을 추구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은행이 공정하게 이를 배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금융 커먼즈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자본 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우리의 돈이 자본 수익을 만드는 자본이 아니라 공유지를 만드는 커먼즈가 되길 기대하고, 금융 커먼즈를 함께 만들어보면 어떨까?  금융이라는 수단을 통해 커먼즈들이 연결되고 확장되는 세상. 우리는 단지 내 돈이 나쁜데 쓰이는 게 싫고, 재테크도 귀찮고, 당장 쓸데도 없어서 돈을 넣어둘 뿐이지만, 금융커먼즈가 확대되면서, 마을에는 차례대로 카페 커먼즈가 생기고, 술집 커먼즈가 생기고, 식당 커먼즈는 돌봄 커먼즈를 만들고, 농지 커먼즈에는 주택 커먼즈가 건축되고, 노동자 커먼즈가 기업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그렇게 커먼즈 세상이 점점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금융 커먼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금융 자본의 세계에서 금융 커먼즈 없이 커먼즈 세상이 열릴 수 있을까? 

웹진 공유도시 (9호, 2022년 7월)  기고글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홍지수, 홍다솜, 문지석, 송지우, 심여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2년 07월 30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