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교통이라는 도시 커먼즈, 도시 전환의 열쇠 |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

3월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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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

커먼즈라는 개념은 논쟁적이다. 역사적으로 퇴화된 단어들을 뒤지면 나올 것도 같은데 당대에 사용하는 한글로는 적절한 번역어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커먼즈를 아는 데는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감각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도로와 주차장을 생각해보자.  도로나 주차장의 경우에는 분명 개방되어 있는 곳이다. 몇몇 제한적인 유료 시설을 제외하고는 분명 누구나 이용하는데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 다만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되 모두에게 유용하지는 않다. 단 하나의 조건, 즉 자동차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라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유용성에 한계가 존재한다. 대개의 공공적인 것the public은 이런 속성을 지닌다. 공공적인 것들은 제공된다는 측에서의 개방성을 전제로 성립되는 것이지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충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차가 없는 나에게 도로의 신설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것은 당신의 사정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코로나19 시기에 가장 빠르게 셧다운 했던 공공시설들은 해당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시민들의 필요가 아니라 시설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자신들의 책임에 우선적으로 반응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책을 봐야 했고,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있어야 할 곳이 필요했지만 공공적인 것들은 이런 필요를 후순위로 밀어 두었다. 이럴 경우 집에 책이 없거나 돌봄노동을 제공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면 코로나19에 따른 보건의 위기를 넘어서 삶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집 앞에 도로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집 안에 고립될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로와 주차장, 공공적인 것의 딜레마

잘 생각해보면 공공적인 것은 결정적으로 소유관계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러다 보니 공공적인 것이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차이, 특히 소유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기본적으로 공공적인 것의 공공성은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공급의 전략이지 이것이 사용되는 것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다. 반면 커먼즈는 기본적으로 소유관계를 문제시한다. 정확하게는 취향과 개성의 표출인 개인 소유가 아니라 배타적이고 약탈적인 사적 소유를 문제시한다. 대기나 물이 커먼즈라고 할 때 그것은 사용할 자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누군가가 남벌하거나 약탈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범이기도 하다. 만약 도로가 커먼즈라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특수한 소유관계가 도로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규범적 접근은 당연하다. 안 그래도 좁은 도로에 무리하게 주차나 정차를 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는 사적 소유에 의한 커먼즈의 독점에 대한 패널티로, 후자는 커먼즈의 남벌에 대한 패널티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발상은 공공적인 것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상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모두다 똑같은 시민이기 때문에 이미 동일한 몫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니까 개인의 행위는 모두 시민의 권리로서 각각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일차적이기 때문에, 내가 자동차를 가지고 나와 도로가 막히면 도로를 확장해야 할 문제이고 내가 정말 급한 일 때문 가로 주정차를 하면 필요한 곳에 주차장을 만들지 않은 것이 더 문제가 된다. 즉 동등한 시민이라는 주장은 곧 권리의 동등성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권리를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 즉 공적인 것에 대한 요구로 나아간다. 어떤 의미에서 공공적인 것은 권리요구의 다발일 수 있다. 반면 커먼즈적인 것은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 즉 필요의 충족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할 때 이동할 수 있으면 된다. 그 방법이 구태여 뭔가를 소유함으로써 자격을 갖출 필요는 없다. 물론 소유함으로써 더 쾌적하고 만족스러운 이동은 가능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내가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원에 접근이 가능한가라는 것이 더 핵심이다.  

준공영제, 소유권의 특권화

사실상 공짜로 공급되는 도로와 주차 공간과 다르게 대중교통은 언제나 유상이다. 또한 도로와 주차 공간을 이용하는데 부담은 작아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부담은 지속적으로 커진다.  실제로 2001년 이후 급지 변화를 제외하고 공공주차장 기본요금은 한 차례도 오르지 않았지만 대중교통 요금은 5차례나 인상되었고 기본요금은 2배 이상 높아졌다. 서울에서 지하 주차장 한 면을 조성하는 데 드는 비용은 8,000만 원에 달하지만 대부분의 공공주차장은 관리비용을 추가로 지출한다. 그나마 일반 대지에 조성된 주차장의 경우에는 <공유재산법>에서 정한 공시지가에 따른 토지 임대료 수준을 훨씬 하향하는 요금을 받고 있을 뿐이다. 공공교통네트워크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자가용 한대가 1회 운행할 때 공기오염이나 교통체증, 교통사고 등으로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은 1, 3000원 정도로 추산된 반면 세금 등으로 납부하는 비용은 3,000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게 보면 그 사회적 비용의 차액은 또다시 자가용을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지 않던 모든 시민들이 부담하는 공공재정으로 지불된다. 어찌 된 일인지 국제원유가가 들썩이면 기름에 붙는 세금을 낮춰주어 자가용 이용자의 부담을 덜어주지만, 대중교통의 측면에서는 요금 인상의 요인이 된다. 낡은 차량을 폐차하고 새 차를 사는 데는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한 달 내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정기권 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교통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공공적인 것이 어떻게 사적 소유의 관계를 지지하고 지원하는지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말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버스 운영체계가 되고 있는 버스준공영제다. 놀랍게도 버스준공영제를 최초로 도입한 서울시가 사용하는 semi-public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학자들만 사용하는 개념이다. 말인 즉, 준공영제 같은 개념은 엄밀하게 보면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상 준공영제는 운영체계에 있어서 공영제 기반임에도 일정부분 취약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준공영제는 운영체계에서 공적인 기반은 하나도 없다. 교통체계 운영의 핵심은 운수사업의 면허권과 노선의 처분권에 있다. 준공영제 체계 내에서 여전히 면허권과 노선의 처분권은 민간사업자에게 종속된다. 한국의 공적 면허체계에서 운수사업자의 면허권은 유일하게 갱신절차와 일몰 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형식적으로 노선의 조정권이 서울시 등 공공에 있어 보이더라도 현행 노선조정심의기구는 사업자들이 주도하는 협의기구에 가깝다. 이것을 협의해주는 대가로 운영 비용을 보전받는다. 이게 버스준공영제다. 그러면 기존의 재정지원형 민영제와는 무엇이 다른가. 그 경우에는 적자의 일부나 전부를 보전하는 것이지만 준공영제는 운영비, 즉 이윤이 포함된 운영이익을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준공영제 버스 체계에서 사업자는 운송 부담이 없는 상태에서 버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공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들에게 대중 교통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버스 사업들을 영세하게 만들어 사업에서 철수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그 피해가 시민들에게 돌아가니, 사업자를 지원함으로써 시민들의 피해를 막는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런 준공영제 체계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버스업체에게 주는 돈을 버스업체에게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하고 말이다. 동일한 규모라면 사업체의 수익보장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요금 지불 방식을 바꾸면 가능하지 않을까. 


무상교통, 필요를 중심으로 재구축하기 

이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 무상교통의 논리다. 무상교통은 이동의 비용을 없애는 것이다. 화성시가 도입한 무상교통은 특정 대상에게 한정된 요금 지원방식이다. 청소년과 노인은 버스를 이용하는 비용이 없다. 그래서 이동을 통해서 도시 내에 산개되어 있는 자원들에 접근하는 부담을 낮춘다. 실제로 현재 화성시의 버스 통행 중 35% 정도가 무상교통 대상자들의 통행이다. 이것이 앞서 살펴본 준공영제와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공공재정이 누구를 특권화시키는가라는 점이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무상교통의 이용자가 많아지만 기존의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버스의 수익도 좋아진다. 따라서 개인기업에게 지원한다는 최종적인 효과는 동일하다. 하지만 준공영제는 개인기업이라는 서비스 제공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서 교통이라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무상교통은 이용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서 교통이라는 공공서비스를 유지한다. 그것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충분성이 해소되지는 않지만, 준공영제는 이용자가 늘던 줄던 상관없이 비용을 보전하지만 무상교통은 이용자를 늘리면 늘릴 수록 이익이 늘어난다. 즉 인센티브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도로나 주차장이 자동차 소유자에 대한 보장을 통해 교통을 유지한다면 준공영제는 사업 면허를 독점하는 개인기업에게 보상함으로서 서비스를 유지시킨다. 즉 공급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교통의 공공적인 것의 특수성을 보장하는 것과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공공적인 것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정리하자면, 공공적인 것은 가까이 있는 것present-at-hand에 대한 감각이라면 커먼즈는 가까이 유용한 것ready-to-hand이라는 감각이다. 도로와 주차장이 제공된다 해도 그저 가까이 있는 것이라면 무상교통은 가깝게 있으면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커먼즈는 사적 소유의 여부와 상관없이 필요가 충족되는 형태로 자원들을 재구축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단지 교통수단의 녹색화 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교통 전환의 과제들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전체 교통량의 축소 없이 전기자동차만 공급이 된다고 해서 도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커먼즈는 자원을 지속가능한 형태로 유지한다는 구체적인 자원의 상태를 목적으로 삼는다. 데이비드 볼리어는 도시에서 커먼즈를 말하는 의미에 대해, 투자자들에 앞서서 시민이 가장 우선적인 이해당사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말한 바 있다. 반복하지만 이는 곧 공급이 아니라 필요의 충족이 커먼즈를 매개로 하는 도시 전환의 핵심이다. 

교통이라는 메타 커먼즈

공공재, 공공서비스, 공공공간이 도시에 대한 권리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이라면 이를 연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교통의 역할이다. 그동안 도시 커먼즈의 논의는 대부분 공간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자원들의 분포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었지 그것들을 물리적으로 연결하여 필요와 이용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교통체계는 사적 소유로 특권화된 형태로 고착되었고 이것이 도시 자원의 평등한 사용에 차이를 발생시켰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이 공공적인 것에 접근하거나 사용하는데 우선권을 지니고 행정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제값도 내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처럼 간주했다. 언론에서 오르내리는 공공요금의 원가 보전율이라는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평성을 핵심으로 하는 공급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는 기존의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격차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필요의 충족이라는 관점에서, 사적 소유 구조와는 상관없이 교통할 수 있도록 하는 자원의 생산과 유지라는 관점은 기존 교통체계에 대한 고민을 근본적으로 제기한다. 개인적으로는 무상교통에 대한 실험이 가장 구체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과잉 사용이나 독점을 제한하는 커먼즈의 관리 방식은 기후 위기 시기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구체적인 교통체계의 변화에도 다양한 쟁점을 제공한다. 단일목적의 버스정류장을 어떻게 다양한 필요가 교차하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 보행과 자전거가 버스나 지하철 이동과 어떤 방식으로 통합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공급자-소비자로 머물렀던 관계를 공동 생산과 관리의 관계로 전환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이 나온다. 따라서 교통은 다양한 커먼즈들의 분포를 상대적이고 관계적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많은 도시 커먼즈들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특히 교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발행인 | 박배균

편집장 | 이승원

편집 위원 | 홍지수, 홍다솜, 송지우, 심여은

발행처 |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시ᆞ시ᆞ한 연구소

발행일 | 2022년 03월 30일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음(NRF-2021S1A5C2A03088606)